한국과 비슷한 시기 외환위기를 겪었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은 이후 상당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정된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못한 채 취약한 금융시스템으로 경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 때문에 본격적인 경제회복 국면으로 진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극복과정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3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국, 그들은 지금



 남아시아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순조로운 외자유입과 수출증대로 급속한 성장을 달성해 왔다. 또한 상대적인 물가안정, 세수확대에 따른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신흥시장으로서 큰 기대를 모아 왔다. 그러나 1997년 7월 태국에서 촉발된 외환위기로 극심한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하게 되면서 금융기관 부실화와 기업도산에 따른 최대의 경제적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동남아 주요국들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 구조조정과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다. 특히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IMF 처방에 따른 포괄적이고도 급진적인 개혁조치를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대거 이탈과 금융시장의 교란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 국면이 계속되면서 부실채권 규모가 급증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연쇄부도로 경제기반이 와해되어 경제회복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더욱이 대·내외적인 제약조건으로 인해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이 상당기간 지연되면서 사회·경제적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

 현재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측면이 있지만,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성과는 아직 미흡하며, 금융시스템 재건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불충분한 상황이다. 최근 몇년간 동남아 각국의 경제여건은 크게 개선되었으나,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본다면 아직 본격적인 성장국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없다.  1990년대 중반 8~9%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불과 4~5%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IMF 지원체제 아래 구조개혁 추진

 동남아 경제위기는 1990년대 이래 경기호황과 해외자본 유입의 급증으로 말미암아 과열경기와 거품경제의 붕괴, 자본유입을 위한 고정환율정책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과 배경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정책당국의 감독 소홀, 경제적 투명성의 부족,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다양한 측면에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당사국인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IMF의 구제금융 체제 아래에서 거시경제 전반과 사회부문에 대한 구조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금융 및 자본 시장의 취약성에 의한 경제위기의 구조적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해 경제 구조조정과 제반 개혁조치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동남아 각국은 대외신인도 제고를 통한 외환시장의 안정에 주력하면서 긴축정책 기조 아래 본격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하였다.

 IMF는 경제위기의 처방으로서 경상수지 및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총 수요억제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GDP성장률, 소비자물가지수, 경상수지, 재정수지 등 엄격한 지원조건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금융부문의 건전화, 균형재정의 유지(증세 및 세출 삭감), 금융긴축 등을 명시하고,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입·유통 부문의 독점폐지 등 규제완화를 위한 개혁조치를 추가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초기의 IMF처방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IMF의 정책권고와 개혁조치에도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외환위기 확산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위기와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 저축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해외민간자본의 유출에 따라 유동성 부족 현실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IMF의 고금리정책에 따른 긴축정책이 강행됨으로써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그 동안 재정균형 아래 물가안정과 높은 저축률을 기록하면서 비교적 양호한 경제적 여건을 유지해 왔으나, 고금리정책으로 대표되는 IMF의 총 수요억제책은 오히려 금융부문의 유동성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와 예금자보호를 위한 공적자금의 투입을 확대함에 따라 재정부담은 크게 증가하면서 재정정책 완화는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동남아 경제가 금융체제의 불안과 부실채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금융체제 개편을 통해 경제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최대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를 위해 동남아 각국은 구조개혁 차원에서 각종 독점부문에 대한 규제완화, 국영기업 민영화, 금융기관 정비 등 본격적인 경제재건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한편 IMF는 금융부문의 체질강화와 건전한 금융시스템 구축을 전제로 자본자유화 추진을 적극 권고하였다. 따라서 한국, 태국 등 경제위기 당사국들은 대부분(말레이시아 제외)이 경제위기 조기극복을 위해 외자유입을 목적으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개발하고, 자본의 자유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은 IMF 권고에 따라 자본시장개방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금융부문의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자본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투자제한 조치를 철폐하고, 주식시장 개방과 같은 단기자본시장 자유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반면에 IMF 지원을 받지 않고 자본통제정책을 추진한 말레이시아의 경우, 고정환율제와 주식시장 자금유출을 통제하면서 직접투자 중심의 자금유입정책을 고수하였다 하지만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는 IMF의 권고대로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하였다.



 경제 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의 추진 성과

 경제위기 이후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은 극도의 경제 불안정과 많은 정치·사회적 진통을 겪으면서도 금융산업 재편에 초점을 맞추고, 금융시스템 재건과 기업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및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해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태국은 1997년 10월 금융회사의 합병 및 증자 업무를 전담하는 금융재건청(Financial Restructuring Authority, FRA)을 설립하고, 부실 금융회사의 채권 매입과 매각을 담당하는 자산관리회사(Asset Management Corporation,AMC)를 신설하였다. 인도네시아도 1998년 1월 부실은행 정리 등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전담할 은행재건청(Indonesian Bank Restructuing Agency, IBRA)을 신설한 데 이어, 1998년 9월에는 부실금융기관의 자산 청산을 담당하는 국영기관으로서 자산관리청(Asset Mnagement Unit, AMU)을 설립하였다. 말레이시아도 태국,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98년 7월 부실채권 인수기관(Danaharta)과 자본금 확충을 위한 기구(Danamodal)를 설립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융 구조조정을 초기단계부터 정부주도로 추진했으나, 태국은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지향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해 상당기간 민간주도의 자발적인 방식으로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경제위기 직후 비교적 신속하게 56개 금융회사를 폐쇄하고, 금융재건청(FRA)이 수용한 자산을 민간차원의 자산관리회사(AMC)가 인수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추진된 민간 상업은행들의 부실자산은 자체적으로 민간 자산관리회사에서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부실채권 처리가 지연되면서 태국도 탁신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영 자산관리공사(Thailand Asset Management Corporation, TAMC)를 설립(2001년 7월)해 적극적인 정부개입정책으로 전환한 바 있다.

 둘째,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 각국은 국제적 수준의 감독기준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그 기준을 적용해 나갔다.  태국은 1998년 7월부터 부실채권 분류기준을 강화해 당초 원리금 6개월 이상 연체채권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으로 그 기준을 더욱 강화했다. 이에 따라 태국의 무수익여신(Non Performing Loan, NPL) 비율은 1997년 말 18% 수준에서 1998년 말에는 45%로 크게 증가했고, 1999년 말까지 39.9%로 동남아 4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그림 참조). 이와 같이 부실채권의 급속한 증가는 금융기관의 경영악화를 초래하고 일반기업에 대한 대출제한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의 경영을 직접적으로 압박함으로써 금융시스템 재건에 근본적인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동남아 각국의 자산관리공사는 적극적으로 부실채권을 인수하여 금융기관의 여신능력 제고와 수익성을 회복시켜 금융시스템을 재건하는 데 주력하였다.

 셋째, 금융기관 정상화를 위해 유동성 지원 및 증자를 통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특히 증자에 실패한 부실금융기관을 신속히 정리하고, 예금자와 채권자는 정부가 최대한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각국 정부는 자체 자금 또는 국채 발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러나 재원 마련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각국 정부는 외국인 소유지분 규제 폐지를 통한 금융기관의 자본금 확충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다. 태국의 경우 1997년 10월 외국인의 금융기관 소유지분 한도(기존 25%)를 향후 10년간 한시적으로 철폐하기로 했으며, 인도네시아는 1998년 1월 외국인의 은행 소유지분 상한(기존 49%)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외국은행들이 은행인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부실금융기관 자본금 확충에 소요되는 대부분의 자금을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재정적 부담이 급속하게 증가해 왔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금융 구조조정 비용은 GDP 대비 52%에 이르고, 태국 48%, 말레이시아 30.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재정부담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넷째, 금융부문의 부실채권 정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 차원의 채무조정위원회를 두고 기업 채무조정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채권단과 자율적인 방식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금융 구조조정보다는 비교적 느리게 추진되었다.



 국별 구조조정의 추진 현황과 성과

 태국
태국정부는 1997년 10월 중순 부실금융 처리 및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구체적인 금융정상화대책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국의 금융 구조조정은 비교적 원만하게 이루어졌는데,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는 달리 부실채권 정리 및 공적자금 투입에서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지향적인 자조노력을 통해 금융시스템 재건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초기에 폐쇄된 56개 금융회사의 자산만 FRA가 인수했을 뿐, 민간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민간 자산관리회사를 설치·운영토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부문의 구조조정은 상대적으로 늦어져 부실채권 처리가 지연되자, 탁신정부는 2001년 7월 국영 자산관리공사(TAMC)를 설치하고, 정부관리 아래 신속한 금융부문 부실자산 정리를 추진했다. TAMC는 탁신정부의 공약사항으로서 대선기간 중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바 있고, 국영은행으로부터 240억달러, 민간은행으로부터 5억달러 등 총 295억달러를 인수해 2000년 말 19.5%이던 무수익여신(NPL) 비율이 2001년 말에는 11.5% 수준으로 낮아졌다(그림 참조).

 국내 경기부양책과 수출호조에 힘입어 태국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경기회복이 되면서 2003년 7월 말 경제위기 6년 만에 IMF 관리체제를 벗어났다. 금융시스템이 재건됨에 따라 상업은행의 민간부문에 대한 대출이 2002년 플러스로 반전되고, TAMC이 인수한 부실채권은 명목 GDP의 14.3%에 달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크게 개선되는 중이다. 그러나 2003년 말 기준으로 14%에 이르는 태국의 부실채권 비율은 여전히 한국(2.7%), 인도네시아(6.7%)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그림 참조). 태국정부는 금융기관 유동성 지원, 예금보호, 은행 국유화 등에 1.4조바트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한 국채발행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에 금융재건 비용은 2.4조바트라고 추정한 바 있다. 이는 2002년 명목 GDP의 42.6%에 해당하는 규모로서, 이자부담이 정부예산의 16%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국정부의 재정부담은 지속해서 경제 불안정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은행부문의 개혁을 가속하기 위해 1999년 3월 중순 38개의 부실 민간 상업은행을 폐쇄하는 등 강도 높은 은행부문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금융기관의 증자를 위해 1998년 1월 외국인의 은행 소유지분 상한(기존 49%)을 폐지했으나, 외국은행들이 은행인수에 소극적이라서 부실금융기관 자본금 확충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은행부문 개혁을 위해서는 500조루피아(700~800억 달러)가 소요될 걸로 추정하였고, 이를 위한 재원은 부실자산 매각과 국채발행으로 충당했다.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조치인 은행의 자본확충 방식은 국채와 주식의 교환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실물경제 회복과 금융시스템의 조기 건전화를 통해 거시경제적 성장을 담보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금융체제 개선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은행부실의 주요인이었던 부실채권 누증과 루피아화 가치폭락에서 비롯한 외채상환 부담의 가중이라는 고리를 단절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민간부문 단기외채에 대해서 만기연장이나 중·장기 외채로 전환하는 방법을 추진해 왔다. 일부 채무상환으로 대외 공적채무의 잔고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지만, 세입에서 차지하는 채무원리금 상환 비율이 약 30%에 이르러 재정부담이 크기 때문에 국제적 지원과 리스케줄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2002년 4월 인도네시아 외채에 대한 파리클럽 채권단의 협상에서는 2003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75억달러의 채무 가운데 54억달러에 대해서는 상환기간을 연장키로 최종 합의한 바 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3년 말로 IMF 지원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IMF프로그램을 종료하였다. 이런 결정은 인도네시아가 경제난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회복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나, IMF 졸업 이후 민간차입에 의존한 자력조달, 외국인 직접투자 증대가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말레이시아 IMF와는 독립적으로 자본 규제조치에 의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경제위기에 대처해 온 말레이시아는 금융 구조개혁을 위해 태국 및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1998년 7월 부실채권 인수기관(Danaharta)를 설치하고, 중앙은행 산하에 자본금 확충을 위한 기구(Danamodal)를 1998년 8월 설립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는 1998년 9월 자본규제 조치와 함께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하면서 정부주도 아래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금융부문 정상화를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수자산의 조기매각보다는 자산가치 회복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평균할인율(자산 액면가 기준)은 20% 수준(1999년 기준)에 불과하였다. 또한 총 외채는 약 400억달러 규모로서  GDP의 약 50% 수준이지만, 단기외채비중이 18%에 불과해 단기외채에 대한 채무조정이 적어서 여타 동남아 외환위기 국가들에 비해 외채부담이 적은 편이다.

 따라서 외환규제조치는 마하티르 총리가 기존의 긴축정책을 버리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사실상 국제 투기자금의 유·출입을 차단하고, 링기트화의 국내 거래만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단기적으로는 말레이시아 국내경기의 부양효과와 주식시장의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외환규제조치가 링기트화의 대외거래 중단조치에 의한 대외신인도 저하는 물론 건전한 외국자본의 해외유출, 외국인 투자자본의 유입 중단 등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클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1999년 2월4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자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통화바스킷제도로 이행했는데, 지난 7월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시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정부계 기업개혁 10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과제와 시사점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IMF의 지원조건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면서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금융부문의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자본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역점을 두는 등 과감한 개혁조치를 추진해 왔다.   특히 금융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금융기관의 재무체질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했다. 또한 부실채권 처리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은 기업 구조조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구조개혁의 핵심적 과제로 부상했다.

 외환위기 재발방지를 위해 동남아 각국도 금융기관의 취약성, 경상수지 및 단기채무의 급증 등과 같은 경제적 기초여건 개선을 목적으로 법체제 정비, 금융기관 자본주입, 불량채권 정리, 기업채무 조정 등 금융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나라별로 다소 차이가 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개혁의 피로현상으로 개혁조치의 모순과 갈등이 정치·사회적 긴장을 높이고, 경제적 불안정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이와 같이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세계경제가 안정화됨에 따라 동남아 각국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함으로써 경제안정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 구조개혁을 철저하게 추진하지 못함으로써 대·내외적인 위기감과 불안정 요인이 잔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태국의 경우 2001년 출범한 탁신정권의 경제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GDP 성장률이 6~7% 수준으로 증가한 바 있지만,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어 향후 경제여건이 불투명하다. 그동안 저금리기조 아래 민간소비와 주택투자가 급증하면서 가계부문의 채무잔고가 급증하였고, 태국정부는 단계적으로 금리인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보다 크게 금융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2000년 8월 IMF 지원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사실상 불가피한 금융제도 개혁을 중지했다는 점이다. 추안정권에서 제출한 중앙은행법, 금융기관법, 통화법 등 금융개혁법은 입안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 목표제로 금융정책을 전환했음에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금융기관의 감독권한 강화와 감독체제 재편마저도 진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 부실은행 처리, 예금보호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예금보험기구 설립이 지연을 거듭했다.

 2003년 8월 경제위기가 발생한 지 6년 만에 IMF로부터 지원받은 145억달러의 구제금융 중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16억달러를 당초 일정을 2년 앞당겨 상환함으로써 IMF 관리체제로부터 벗어났지만, 금융제도 개혁조치가 지연되면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 요인이 계속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태국정부는 생산성 개선, 금융안정성 확보, 국영기업 민영화 등 구조개혁에 착수했지만, 무역적자 확대와 민간소비 둔화에 대응한 대규모 인프라 확충과 국영기업 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어 국내의 반발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경우, IMF 관리체제에 대한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2003년 말 IMF프로그램을 조기종료함에 따라 공적채무 조정이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또한 국채발행에 의존한 자금조달을 확대하면서 재정부담 요인이 가중되어 경제 불안정 요인이 확대된 실정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원유수입을 위한 달러 지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루피아화 가치가 20%나 폭락하자, 경제위기설이 재연되었다. 그에 따라 결국 유도요노 대통령은 유가보조금 인상을 단행했다. 그 여파로 격렬한 항의시위가 발생하는 등 사회·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경제위기 이후 구조개혁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각국은 아직도 안정된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못한 채 취약한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경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본격적인 경제회복 국면으로 진입을 못 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정치·사회적 불안정 요인이 커서 나라별로 구조개혁과 경제성장의 진로는 아직 불투명한 실정이다.

 동남아 경제위기의 핵심은 금융시스템의 기능 저하에 있다. 그러므로 부실해진 금융체제의 재건을 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현재 정체된 금융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질적 고도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제조업 생산성의 향상과 경쟁력 증대를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이 구조개혁에 역점을 두는 것도 이런 성장기반 강화를 위한 토대를 다지기 위함이다.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해 해외 단기자금의 관리방식을 재검토하고, 금융시장 정비와 함께 국내 장기자금 조달시스템으로서 채권시장 육성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