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대통령의 딸 결혼식 주례와 이해찬 국무총리의 용산고 3년 선배라는 인연으로 ‘코드인사’ 논란을 불러온 권오승(56)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사실 경쟁법(공정거래법)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다. 비록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정실(情實)인사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하는 것은 일부러라도 피했어야 옳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전문성 측면에서는 공정거래정책을 담당하는 수장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권 위원장은 원래 경희대에서 민법을 주로 가르쳤으나, 1992년 서울대로 옮긴 후, 국내에 처음으로 경쟁법 강좌를 도입해 15년째 강의해왔다. 또 경쟁법 저변확대를 위해 1996년부터 서울대 법대에 ‘공정거래법 연구과정’이라는 6개월 프로그램(야간)을 만들어 격년제로 운영해왔고, 경쟁법학회를 만들어 학회장을 맡아왔다.

 경쟁정책 전공인 이상승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권 위원장은 경쟁법에 관한 국내 최고 권위자”라며 “대개 교수들이 리더십이 부족한데 권 위원장은 학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꾸준히 이끌어가는 등 추진력과 친화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과거 그의 수업을 수강한 법대 졸업생들은 “경쟁법 관련해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인데다 자상해서 따르는 학생이 많았다”고 전했다.

 경희대 교수 시절 초기엔 유물론자였으나 독일의 경쟁법 대가인 리트너 교수와 교류하면서 시장경제를 깊이 이해하게 됐고, 이후 중도성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주위에서 합리적·유화적이란 평판을 받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끝가지 관철하는 등 주관도 뚜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위원장은 교회 장로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교수 시절 서울대 법대 내의 ‘법기독’ 모임 지도교수를 맡아왔다. 그가 다니는 ‘주님의 교회’는 잠실 정신여고 강당으로, 평일에는 학교강당으로 쓰인다.

 학자시절 권 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관계는 본인 스스로 “공정위와는 비판적 협력관계였다”고 밝혔듯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공정위 약관심사 자문위원과 경쟁정책 자문위원장 등을 지내는 등 공정위 정책에 깊숙이 참여하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공정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지난 1996년 공정위 설립 15주년 기념 강연에서 “공정위가 독과점적인 시장구조 개선과 경제력 집중 억제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고 비판했고, 2002년 서울대 학술대회에서는 “현재의 공정위가 독립성은 물론 전문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의 기능을 사법과 정책기능으로 분리, 그 중 사법기능은 독립성이 확보된 기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6년 <국회보> 5월호에 기고한 <국제 경쟁력의 강화와 공정거래법>이란 논문에서는 “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이 위원을 임명할 때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원 전원을 상임으로 해야 한다”고 썼다. 권 위원장은 취임 직후에도 “현재 1급인 상임위원들의 직급 격상과 비상임위원의 상임화라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들이 모두 장관급이나 최소 차관급은 돼야 한다”면서 “입법 사항이라 쉽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정위의 위상이 감사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독과점 규제에 정책역량 집중

 공정위가 맡고 있는 재벌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재벌정책과 공정위의 분리’는 권 위원장의 뚜렷한 소신이다. 그는 2002년 <자유경쟁과 공정거래>라는 책에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고도로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독점규제법에서 규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공정위가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다루게 되면 정치적인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는데, 이는 정치권력에서 독립해 경쟁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공정위 본연의 업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썼다. 한마디로 “공정위는 독과점과 담합 등 시장 경쟁질서를 바로잡는 경쟁정책을 담당하는 곳이지 재벌의 소유 지배구조를 규제하는 기관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공정위 본연업무인 카르텔·M&A 등 경쟁정책을 강조해온 권 위원장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 등 재벌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왔다. 하지만 권 위원장이 학자시절의 소신을 정책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출총제 폐지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막는데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면 출총제가 필요하다”면서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단 출총제를 예정대로 시행한 후 나중에 평가해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출총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니까 공정위가 수세에 몰린다”면서 “초점을 순환출자 방지에 맞추면 공정위가 수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재벌정책의 분리에 대해서도 권 위원장은 “일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벌정책은 재정·조세정책 등이 필요한 종합적인 정책인데 이를 다룰 수 있는 기구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담당해야할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한발 뺐다. 그는 “다만 공정위가 구사할 수 있는 툴(정책수단)이 몇 개 없는데 너무 벅찬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면서 “공정위의 힘만으로는 재벌정책을 다루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학자시절 “재벌규제는 공정위보다는 재벌특별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임명 소감을 묻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법을 연구하는 일을 해왔는데 법을 집행해 보는 것이 평소 꿈이었다”며 의욕을 보였다. 부담은 가지만 해보고 싶은 일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학자시절 소신을 임기 중 얼마나 실현할 수 있겠나”는 질문에는 “그동안 공정위에 비판적으로 협력해왔고, 그 결과 상당히 많이 고쳐졌다”면서 “각종 제도 간에 충돌이나 부조화가 있는 부분을 보완해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공기업의 유산인 규제산업의 독과점 규제에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제조업과 서비스분야는 경쟁질서가 많이 확립됐지만, (전력·가스·철강 등) 자연 독점적 규제산업은 경쟁을 두려워한다”면서 “이 분야에 경쟁원리를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부인 우일강(57)씨와 2남. 경북 안동 출신으로 용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서울대 법대교수를 역임했다. 한국경쟁법학회장과 아시아법연구소장으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