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6월, 홍석주(52) 전 조흥은행장이 증권금융의 첫 민간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자 증권업계는 놀라움과 함께 우려를 내비쳤다. 은행장 타이틀로 증권유관기관의 CEO가 된 사례가 처음인 데다 공기업 문화가 팽배한 증권금융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이 같은 기우는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홍 사장의 조용한 개혁의 성과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있다. 지난 6월13일 여의도 증권금융 사장실에서 만난 홍 사장의 손에는 아직도 개혁의 채찍이 들려져 있었다.

 증권금융의 ‘민간인’ 출신 첫 CEO로 취임하신 지 1년이 돼 갑니다. 취임 소감과 그 동안 역점적으로 추진해 온 것은 무엇입니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전체적으로 왠지 활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천수답식 경영으로 지속적인 성장 모델 역시 부족해 보였죠. 그래서 취임 이후 많은 부분에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우선 조직이 한 생각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비전이 필요했죠. 취임 3개월이 되던 지난 2004년 9월 ‘비전2010’을 선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비전 선포에서 여·수신업무, 고객예탁금 관리, 자산운용업무 및 기관간 중개·수탁 등을 증권금융의 4대 핵심사업으로 제시했죠. 이를 통해 증권금융을 증권업계의 한국은행으로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비전 제시 이후 세부적인 목표도 정했습니다. 올 초 2005회계연도 경영계획 수립을 위한 워크숍을 통해 수익극대화 및 비용절감, 자본시장 인프라업무의 전문화, 선진 경영시스템 확충, 상시적 경영혁신체제 구축 등의 4대 전략 목표를 만들었죠.



 홍 사장이 취임 이후 ‘비전2010’과 전략 목표 수립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까지 증권금융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조직문화 및 업무프로세스 개선, 인력구조 효율화 등 모든 부분에 직접 나섰다고 한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철밥통’으로 대변됐던 증권금융의 공기업 문화였다. 최연소로 국내 대표 은행인 조흥은행장을 지냈던 그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조직문화였다. 그는 취임 이후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업무를 직접 챙겼다. 느슨해진 임직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항상 오전 9시 정시 출근, 오후 5시 정시 퇴근이 몸에 뱄던 임직원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다음으로 그가 손을 댄 것이 사업 및 인력구조 개편, CI 변경 등이었다. 이의 일환으로 노사 공동으로 경영혁신위원회를 설치, 업무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중간관리자 7명으로 구성된 변화추진팀을 신설했다. 또 전체 직원의 25%에 달하는 인력을 명예퇴직시키는 등 혁신을 단행했다. 이는 임직원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서로 경쟁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홍 사장의 이 같은, 조용하지만 과감한 개혁은 임직원뿐만 아니라 증권업계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최근 업계 곳곳에서는 ‘증권금융이 확 바뀌었다’, ‘조직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증권사의 한 영업기획팀장은 최근 업무협의차 증권금융에 갔다가 그 열기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른 증권사에 잘못 들어왔나 싶었어요. 옛날엔 그저 조용하던 회사였는데 분위기가 확 바뀌었지 뭐예요.” 지난 1년간 증권금융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다.



 최근 수익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증권금융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사업 방향을 어떻게 끌고 가실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수익성 위주 사업이 현재 증권금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증권금융은 증권시장 지원을 위한 유일한 회사입니다. 지난 50년간 고객예탁금 전담·수탁관리 등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정책업무를 수행했죠. 하지만 증권금융도 증시통합 및 겸업화 등 시장 변화로 더 이상 기존 업무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과 발전전략 수립이 절실해진 겁니다.

 이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증시정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증권담보금융 같은 증권금융 고유 업무를 통한 공적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한편, 차별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수익사업 분야로 시장인프라 업무나 틈새업무에 특화된 금융기관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증권금융의 핵심 업무인 고객예탁금 관리업무는 앞으로 은행권과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객예탁금을 증권금융에 전액 예치하고 있는 현재 시스템에 대해 감독당국은 물론 증권사도 안정성 및 유동성 확보 그리고 수익성 확보 측면에서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은행과 경쟁관계에 놓이더라도 증권금융은 지난 50년간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객예탁금 운용능력이나 편리한 자금수불 시스템, 은행에 비해 저렴한 수수료율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은행 및 증권금융에 고객예탁금을 분산 예치할 경우 정부의 고객예탁금 및 통화관리정책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운용수익률이 낮아지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6월 시작한 증권금융의 새로운 수익사업인 수탁업무가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중은행과의 경쟁에도 수탁자산이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탁업무는 지난 6월11일 취급 개시 후 11개월 만에 수탁자산이 7조8000억원(업계 8위)에 달하는 등 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시장 초기에는 시중은행들이 펀드 해지 시에 발생하는 미수금 우선충당문제로 수탁을 거부하면서 반사 이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체 수탁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수탁자산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탁사업이 알짜 사업이 돼 가고 있죠.

 증권금융이 은행에 비해 증권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점과 시스템의 안정성, 고객예탁자산을 운용해 온 노하우 등이 고객사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증권금융의 수탁자산 관리시스템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반영한 업계 최신의 시스템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수탁업무 시장 초기 증권금융이 은행들의 수탁거부로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 진행 및 영업을 위한 홍 사장과 담당직원들의 노력은 엄청났다. 당시만 해도 이미 수탁시장은 은행들의 텃밭이었고 은행들의 눈치를 보는 자산운용사들로서는 당연히 은행들에게 수탁업무를 맡기는 것이 관행이었다. 은행들이 수탁거부를 한다고 해도 쉽사리 증권금융에 업무를 이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 따라서 증권금융은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영업을 모두 비밀리에 진행했다. 홍 사장은 업계에서 인정받고 분명한 실적이 나올 때까지 수탁자산의 외부 공표나 언론보도를 자제하도록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수탁업무팀은 날로 불어나는 수탁자산을 보고도 자랑은 물론 좋다는 내색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탁자산이 빠르게 늘어도 은행들로부터 자칫 왕따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좋은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수탁사업팀 관계자는 전했다.



 오는 10월 ‘아시아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실 계획인 것으로 아는데요.

 맞습니다. 일본, 대만,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증권금융회사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증권금융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10월경 ‘아시아 각국 증권금융 산업 공동발전 모색을 위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는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의 일환으로 봐도 됩니다. 아시아 개도국의 금융지원체제를 도와 앞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를 육성하기 위한 포석이죠.

 이미 베트남 정부의 요청을 받아 효율적인 금융지원체제를 위한 증권금융회사 설립 방안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 인도 등에도 증권금융회사 설립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입니다. 

 

 고객예탁금을 증권금융에 전액 예치하고 있는 증권업계에서는 예보료 문제가 항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중규제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증권업계의 이중규제라는 주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고객예탁금을 전액 증권금융에 집중 예치하고 있는 증권사에게 예보료를 지급하라는 것은 문제가 있죠. 반면 예금보험공사는 재원부족을 호소하고 있죠. 따라서 양측이 논의를 통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적정한 수준에서 예보료를 인하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의 경영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경영철학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 동안 최고경영자로서 느꼈던 것은 어느 조직이나 기업문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업문화는 회사의 전략이나 목표를 움직이게 하는 수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기업문화에 따라 전략이나 목표 성공률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취임 첫해 가장 먼저 증권금융의 수동적인 기업문화를 활기차고 능동적인 기업문화로 바꾸는 데 주력했죠. 이제는 기업문화도 어느 정도 정착된 상태인 만큼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수익사업에 ‘올인’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