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우리 정치권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오는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이 과거사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 문제,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과거사 정리 작업, 여기에 ‘친일진상규명법(이하 친일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이하 과거사법)’에 따른 각각의 위원회들도 이미 활동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친일법은 작년 12월에 개정안이, 과거사법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과거사 문제가 한국 정치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작년 7월 무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나오고, 열린우리당이 4월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을 넘는 대승을 거둔 직후다. 여권으로선 가장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과거사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조짐은 그 이전부터 나타났다. 16대 국회 마지막에 여당이 친일법을 밀어붙일 때 이미 이에 대한 여권의 의지가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여권이 과거사에 집착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는 여권 특유의 시각’ 때문이다. 지금 여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한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개혁 평화세력’의 집권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는 해방 당시부터 굴절돼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자신들의 집권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적 소명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과거사 규명·정리 작업이 강제적 물리력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일을 법을 통해서 하겠다고 나섰고, 그 결과 과거사 문제가 여야의 정치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권의 과거사 작업의 첫 신호를 쏘아올린 사람은 역시 노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작년 8월 총체적인 과거사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작년 7월에 벌어졌던 여야 사이의 소규모 과거사 논쟁도 이 같은 노 대통령의 결심을 재촉한 요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 작년 7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총선에서 선전한 것을 바탕으로 당 대표에 재취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여권을 향해 “국가 정체성이 흔들린다.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여당은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의 강제 헌납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동시에 박 대표의 부친 박정희 시대의 문제를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본격적인 과거사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국회가 이에 필요한 입법 조치를 취해줄 것을 주문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과거사법을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과 묶어 ‘4대 개혁 입법’이라면서 이의 통과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물론 한나라당은 극력 저지했다.

 한나라당이 과거사법에 강하게 반발했던 것은 이 법이 박 대표를 공격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가장 폭압적인 정치체제였다고 부르는 시기는 5·16 쿠데타 이후 유신 시대까지다. 바로 박 대표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이다. 또 이 시기는 과거사법이 조사 대상으로 하는 사건들이 집중된 시기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으로선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작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과거사법을 둘러싼 여야 격돌은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어느 정도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는 여론몰이도 한몫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구호만큼 대중적이고 선동적인 것도 드물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비쳐지기 십상이다. 결국 한나라당도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과거사법의 실제 통과는 지난 4월이었지만 큰 줄기는 작년 말에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과거사 문제는 정치권의 손을 떠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과거사의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올해 초부터 외부 시민단체·학계 인사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과거사 진상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살해사건 등이었다. 이와 함께 박 대표가 관련된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 강제헌납사건에 대한 발표도 나왔다. 박정희 정부가 강압으로 이 장학회를 빼앗았다는 게 요지였다.

 이 같은 개별 과거사 문제를 놓고 여야 격돌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이 터져나왔다. 이로써 다시 한번 정치권의 추한 과거가 불거졌다.  뿐만 아니라 재벌과 중앙언론사의 유착 문제까지 겹쳤다. 사건이 굴러가면서 이 문제의 파장이 단지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에만 국한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국정원은 자체 조사를 벌인 뒤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에도 불법 도청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박철언 전 의원까지 자신이 권력 실세로 활약했던 5공과 6공, 그 이후의 정치에서 보고 경험한 내용들을 회고록 형식으로 엮어냈다. 온 나라가 ‘과거사 캐기’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황이 됐다.

 여기서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더 강력하고 분명한 과거사 규명·정리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DJ 시절 도청 사실’ 공개는 노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노 대통령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우리 내부적인 분열의 문제’를 한국 사회를 다시 한번 위기로 빠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꼽으면서, 그중에서도 ‘역사에서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를 본격 거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일부 법적 내용의 손질과 보완을 주문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는 도청 테이프 문제를 놓고 특별검사가 옳으냐, 특별법이 옳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수습되기 힘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또다시 과거사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이로써 여야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국가의 미래나 비전 같은 이슈는 제쳐둔 채 과거사 문제를 붙들고 늘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박두식 조선일보 정당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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