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섬유업계의 산증인인 박성철(66) 신원그룹 회장은 지난 2월9일 국내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성에서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번 기업설명회는 개성공단에 진출한 개별기업의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남북경제협력의 진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는 평이다. 기업설명회와 같은 조그마한 물꼬가 체제를 뛰어넘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그룹은 지난 2004년 말 대기업 가운데 드물게 개성공단에 입주했지만 사실 북한 진출은 10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대 대기업과 어깨를 견주던 신원그룹은 북한에서 스웨터 임가공 공장을 운영했고, 금과 아연 등을 수입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원과 북한과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형성돼 왔다. 박성철 회장이 현재의 개성공장의 뼈대를 그린 것도 이 때부터다.

 “당시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하면 어떤 사업을 해도 괜찮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회체제가 다소 불안한 요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다 우호적인 관계가 정립되면 본격적인 사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4년 말 박 회장이 재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 개성공단 입주를 강행한 것도 당시 이 같은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결정이 맞았다는데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15개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의사소통, 인건비, 물류비 등 장점이 부각되면서 많은 업체들이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박 회장은 2006년 새로운 ‘개성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개성발 세계적 브랜드를 내놓겠다는 것. 남북한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고급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시장을 겨냥하겠다는 포부다.



 -지난 9일 개성공단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기업설명회를 가졌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북측에서 개최한 국내 기업 최초의 기업설명회라 각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 남측 금융권 관계자, 신원 임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고, 이와 함께 북측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죠. 이번 기업설명회는 단일 기업의 행사를 뛰어넘어 향후, 남북의 경제, 산업적 교류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북측에서도 행사의 취지를 이해해주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는 등 발전적인 경제교류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분위기였습니다.“



 -개성공단에서 기업설명회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첫째는 재도약을 준비하는 신원의 의지와 플랜을 그 어디보다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투자,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한 남북 간 최초의 대규모 투자사업이죠. 말 그대로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은 신원이 세계시장에서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임과 동시에 의지를 완성시키는 기회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신원의 의지와 플랜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요.

 둘째로는 개성공단 사업이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큰 물꼬를 트는 사업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중요한 입지적 장소에서 국내 기업 중 최초의 기업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개성공업지구가 보다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민족화합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성공단을 단순히 기업의 이익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는 박 회장은 이번 기업설명회 이전에도 ‘개성 패션쇼’ 등을 개최하며 경직된 남북경제협력 무드를 부드럽게 이끌어나가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신원뿐만 아니라 많은 국내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진출, 다양한 자본주의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메이드 인 개성’ 제품이 생산된 지 1년이 됐습니다. 시장에서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개성제품에 대해 우려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국내 생산제품 및 중국 생산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솔직히 저도 품질에 놀랐죠. 마감부분과 정밀도부분 등에서는 중국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장 북측 근로자의 업무습득 속도도 놀라워요. 북측 근로자들의 업무수준을 보면 젓가락을 쓰는 민족, 그것도 쇠 젓가락을 쓰는 우리 한민족의 손기술을 세계가 왜 인정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겁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 있는 기계들은 국내 봉제기계 보다 더 신형기계인데도 북측 근로자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죠. 이처럼 개선공단이 양질의 노동력을 지닌 생산기지임이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타 업계에서도 개성공단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2005년 2월 신원의 개성공장이 생산에 들어가고 첫 완제품이 나오는데 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1개월. 최소 4~5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북측 근로자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측 근로자와 관련 그는 “손재주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도 좋아 습득력이 매우 뛰어나다. 근로자의 44%가 대학교를 나왔고 나머지 근로자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모두 우수한 인재다. 특히 여타 해외법인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기술이전이 매우 빠르다. 게다가 성실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어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고 칭찬했다.

 북측 근로자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데는 신원의 노력도 어느 정도 숨어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침 악수인사다. 신원 직원들은 개성공장 완공 이후부터 매일 아침 출근 30분 전에 출입문에 나와 327명의 북측 근로자와 일일이 악수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단순한 아침 인사지만 사람의 정과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신원 직원들의 이 같은 인간적인 대우가 북측 근로자들이 점심을 30분만 먹고, 설 휴가 중 하루를 반납하고 일할 만큼 열성적으로 만드는 것. 박 회장은 “북측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의 그 어떤 회사보다 신원에 다니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며 “북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신원처럼만 해달라’고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일화 하나. 00기업 개성공장의 어느 출근길, 북측 근로자 한 명이 공장 출입문에 서서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남측 직원이 “왜 안들오냐”하고 묻자 북측 근로자는 “신원에 다니는 동무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중 나온 신원 직원과 악수인사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안합네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향후 개성공단 등 대북투자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개성공단 제1공장(연면적 1,300평, 투자금액 40억 원)에 이어 제2공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9일 착공식을 가졌죠. 연면적 1100평인 제2공장은 투자금액이 35억 원으로 2006년 6월경 완공될 예정입니다. 제2공장은 생산라인이 10개로 제1공장보다 생상능력이 2배나 높죠. 제2공장이 완공되면 북측 근로자는 2006년 말까지 820명(1, 2공장 합계 인원)이 근무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시범단지 내 단일 기업으로 최대 규모죠.”



 -신원의 제품을 애용했던 국민들은 신원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미래 청사진을 갖고 계신지요.

 “신원은 2005년 3358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했고, 16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전년대비 영업이익이 82% 증가했습니다.  2006년에는 3681억 원의 매출액과 304억 원의 영업이익 달성을 목표로 달려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내수사업 부문에서는 자사 브랜드의 글로벌 판매망 구축과 생산기지 다변화 및 해외소싱 강화를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첫 단계로 내년에는 남북한을 어우르는 명품 신규 브랜드를 런칭해 세계시장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남한의 기술력과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발 명품 브랜드를 세계에 선보이는 것이죠.

 이와 함께 수출사업 부문에서는 오더 수주부터 제품 출고까지의 전 과정에 전산화를 이룩하고 해외법인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수익성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내수와 수출부문의 이 같은 투자와 경쟁력 개발로 향후 2010년에는 매출액 1조 원을 달성, 글로벌 패션 리더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1973년 설립된 신원은 여타 기업들과 달리 수출부터 시작했다. 내수판매를 시작한 것은 설립 이후 17년이 지난 1990년부터다. 그만큼 수출 부문에서는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 30여 년의 수출 경험으로 신원은 바이어의 주문에 따라 2달러에서 2000달러짜리 옷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지의 원자재나 노동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신원의 강점이다.

 박 회장은 이 같은 수출 노하우 때문에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성, 중국, 인도네시아, 콰테말라, 베트남 등 5개의 해외법인을 통해 중국에 대응할 만한 가격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기술력이나 디자인측면에서는 월등하기기 때문. 오히려 역으로 박 회장은 ‘차이나 이펙트(China Effect)’를 꿈꾸고 있다. 거대시장인 중국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신원은 지난 2004년부터 중국업체와 함께 현지 대리점 영업을 시작한 상태다. 현재 중국 내 신원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은 25개로 고가전략으로 연착륙하고 있다. 이어 2005년에는 대만에도 진출, 대리점 영업을 하고 있다. 신원은 올해 중국 내 대리점을 100개로 확대, 내년 5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섬유산업은 사양업종이니 하며 다른 산업에 비해 국민적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입니다. 10여 년 전과 지금의 섬유업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수긍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섬유산업은 다양한 산업의 원재료 및 부재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어떤 산업보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산업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섬유산업이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술과 문화·정보를 접목시키는 지식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죠. 디자인·패션·첨단기술·마케팅·정보화 등 지식적인 무형자산에 의해 무한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섬유산업은 한국경제 성장을 이끄는 수출 효자산업으로 다시 한번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섬유업계의 역사이기도 한 박 회장은 국내 섬유업 전망 이야기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섬유산업이 정보화, 기술화하면서 한국경제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기 위한 몇 가지 충언도 아끼지 않았다. 우선 정부는 물론 업계 스스로 기술 및 디자인 개발을 위한 인재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디자인이 갖춰져야 한다”며 “기술과 디자인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인재”라고 강조했다. 신원 역시 글로벌시장 진출을 위해 세계 유수의 인력을 스카웃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세계적인 브랜드를 육성하고 신 시장개척 등 글로벌마케팅 확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 범용제품은 임금이 싼 저개발 국가로 이전 생산하고 내부에서는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디자인 및 마케팅 능력을 토대로 세계적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다”고 강조했다.



 -워크아웃 이후 보유주식을 모두 내놓으셨는데요. 성과에 따른 스톡옵션 등은 필요한 것 아닌가요. 아울러 리더의 지도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경우 기업지배력에 필요한 만큼의 지분은 필수라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고요. 이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신원의 현재 지배구조는 우리사주조합 12% 및 협력업체인 티엔엠커뮤니케이션에서 18%, 기관투자가 약10%, 합계 약40% 정도의 우호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호세력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은 상태이므로 기업지배력에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에 관해서는 과거 일부 시행하기도 했지만 임직원들의 형평성 문제, 성과평가 문제 등 여러 문제점들이 도출됐습니다. 이로 인해 스톡옵션보다는 성과에 따른 성과급, 보너스 등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보상을 해주고 있죠.”



 -CEO들은 늘 ‘결정의 연속과정’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된 나날을 보내지만 특히 어려운 결정일수록 엄청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회장님이 내린 그동안 결정들 중 가장 어려웠던 결정과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한 고민의 과정을 소개해주십시오.

 “외환위기 당시 그룹이 해체될 때가 가장 힘들었죠. ‘여러 개의 자회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한 달 내내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끝내 내린 결론은 전문화였죠. 그래서 그룹의 3분의1은 구조조정(워크아웃)을, 3분의1은 법정관리, 나머지 3분의1은 청산을 했죠. 지금은 당시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룹 해체 이후 4~5년간 많은 수익을 내 워크아웃을 졸업, 다시 회생했고, 이제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으니까요.”



 -신원이 그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섬유·패션만을 특화하는 전략으로 신원이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원의 기업정상화와 성장의 원동력은 진실한 신뢰 즉 ‘믿음’ 자체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채권단과 기업의 믿음, 기업과 고객의 믿음, 직원과 직원의 믿음, CEO와 직원의 믿음을 기반으로 신원이 회생할 수 있었던 거죠.”



 워크아웃 당시 박 사장은 보유 지분 28% 가량을 전부 회사에 내놓았고 사재까지 털었다. 지난 2003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아직까지 주식은 단 한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으로 주식을 보유하겠다는 욕심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주식을 내놓아) 후련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룹해체 이후 그는 “욕심내지 말고 돈 안 되는 사업을 일체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 회장의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그야말로 사투였다. 그는 전립선암 수술 중에도 기도를 거르지 않고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 회사를 챙겼다.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자칫 직원들이 의기소침해질까봐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이 경영자를 교체하려하자 직원은 물론 거래처까지 나서서 그를 유임시킨 것도 바로 이 같은 강인함과 솔선수범 때문이다. 



 -지난해 신원의 주가는 연초대비 10배 가까이 올라 주주나 투자자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올랐으면 하는지요.

 “신원의 주가는 2004년 초 2천 원대에서 시작하여 2004년 말 18,70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지난 1월중에는 2만4천 원대까지 오른 후 요즘조정을 받고 있죠. 과거 워크아웃시절 회사의 주식가격이 많이 내려가 주주들에게 많은 손해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주식가격이야 수많은 거시경제, 기업내용 등의 변수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회사의 가치(value)로 수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번 개성공장에서의 기업설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신원은 업계 최고의 강한 수익력 및 경쟁력을 보유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면 주식가격도 자연히 동종업계에서 최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개인적으로 향후 10년 플랜이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십시오.

 “내년에 고령화 사회를 위한 재단을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 70세 이상 노인들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던 주역들입니다. 국가적인 대우를 해줘야 하죠. 또 기업도 사회환원을 통해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의 육체와 영혼을 같이 보듬을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 계획입니다. 물론 해외법인에서도 비슷한 사회환원 활동을 할 생각이에요. 해외에서 번 돈의 일부는 그 나라에 환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회장의 좌우명은 ‘청지기 사명’이다. 청지기란 고대에 부유한 가정에서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맡았던 일꾼을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뜻한다. 지난 1994년 설립된 신원문화재단에 이어 노인을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는 그의 계획도 바로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박 회장이 그룹해체라는 역경을 이겨낸 것도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나눔과 사랑’의 정신 때문이 아닐까.



editor talk

 박성철 회장의 손을 잡아 보긴 처음이다. 악수하는 그의 손아귀는 젊은 사람 뺨칠 정도로 셌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 날카로운 눈, 강한 손아귀의 그의 모습에서 얼핏 김선홍 전 기아자동차 회장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였다. 인터뷰 내내 1미터가 안 되는 거리에서 그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맑고 힘 있어 보이는 그의 눈은 어느 젊은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를 갖고 있었다. 이런 그를 누가 66세의 ‘올드 보이’로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