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서실장 출신 첫 정치인이 탄생할까. 재계는 1년 전까지 전경련 부회장으로 ‘재계의 대변인’역할을 했던 현명관(65) 전 삼성물산 회장의 변신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이란 책 제목처럼 과연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번째‘현사모’(http://cafe.daum.net/chejudohyun)가 떴다.‘현대를 사랑하는 모임’과 ‘현정은을 사랑하는 모임’이 1, 2대라면 3대 현사모의 주인공은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1, 2대 현사모가 특정회사와 기업인에 대한 응원부대라면 3대 현사모는 정치적 팬클럽 성격이 짙다. 비유하자면 ‘김친(김근태 친구들)’, ‘유빠(유시민 지지모임)’와 동격이다.

 현사모는 그의 제주지사 출마설이 돌기 시작한 지난해 6월 ‘조용히’ 결성됐다. 2월17일 현재 회원수도 124명으로 단출하다. 이것도 1월27일 한나라당에 입당, 출마선언을 공식화하면서 부쩍 늘어난 수치다.



 ‘이건희 회장과 교감 끝냈을 것’

 현명관 전 회장의 제주지사 도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난해 8월 취재차 만난 열린우리당 제주지사 후보 중 한명인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도 “그(현명관 전 회장)가 나올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현 전 회장이 이건희 삼성회장과도 ‘교감’을 끝낸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전 회장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에게만 말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출마선언 전 그의 공식직함은 삼성물산 회장. 그러나 2003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옮기면서 ‘CEO 현명관’은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해 3월 삼성물산 회장으로 컴백한 후에도 경기도 분당 삼성물산 본사 대신 서울 태평로빌딩 5층 집무실로 출근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은 (전경련으로 갔을 때) 경영일선에서 사실상 은퇴했다”며 “(그가 컴백한 후에도) 삼성물산은 이상대 사장(건설부문)과 지성하 사장(상사부문)이 모든 결재권을 행사해왔다”고 확인해줬다.

 그가 집무실로 써왔던 서울 태평로 집무실로 전화를 하면 그는 언제나 ‘외출중’이었다. 최근 삼성물산 관계자는 “올해 1월10일 퇴사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실제 올 들어서는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는 게 비서의 전언이다. 대신 대부분 시간을 사실상 ‘표밭갈이’에 써왔다. 최근 그의 행보를 따라가 봐도 제주출장이 유독 많다.

 특히 강연과 특강이 현 전 회장의 세력 확장 주요통로다. 지난해 10월부터 제주도지역 강연 요청엔 빼놓지 않고 응대중이다. 일주일 새 제주도 가나안농군학교 신용협동조합 초청 특별강연(11일)-> 제주은행 특강(14일)-> 제주대 여성지도자과정 수강생강연(18일) 등에 세 차례나 잇따라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특히 12월8일 탐라대 최고경영자과정 특강에서는 “주식회사 제주의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제주의 미래가 달렸다”면서 “21세기는 행정시대가 아닌 경영시대”라고 주장, 자신만의 ‘색깔 알리기’에 나섰다.

 지역행사도 빼놓지 않고 눈도장을 찍으며, 제주관련 현 전 회장의 직함 세 개를 적절히 활용중이다. 국제자유도시포럼 공동의장, 제주대 발전후원회장, 제주동초등학교 동창회장이 제주관련 직함들. 지난해 12월12일 제주동초등학교 ‘은사 및 임원 만남의 장’을 주선했고, 국제자유도시포럼이 서귀포시와 공동주최한 서귀포겨울마라톤축제(12월18일)에선 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삼성맨서 ‘정치인’으로 빠르게 변신중

 특히 정가에서는 1월20일 고향 제주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주목했다. 예비정치인들이 정치입문에 앞서 자신의 정견을 담은 자서전 출간을 일종의 통과의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현승종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권이혁 성균관 대학교 재단 이사장, 서정돈 성균관 대학교 총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김세원 서울대 명예교수,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 좌승희 교수,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실제 그는 “제주의 성공신화를 위한 도민의 힘찬 행진에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밝혀 자서전 제목인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도전>이 도지사 출마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출판기념회를 사실상의 ‘출정식’으로 삼은 셈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월27일 그는 한나라당에 입당, 제주지사 출마를 공식화했다. 다음날 한나라당 입당식을 가졌고 2월2일엔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주지사 예비후보로 가장 빨리 등록했다. 당적 선택에 장고를 거듭했지만 결심이 선 이상 다음 행동은 일사천리로 진행중이다.

 현씨 종친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집안 모임에 나갔더니 현 전 회장이 고건 전 서울시장 측과 연계한다는 소문도 돌았다”면서 “종친회에선 큰 정당과 손잡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결국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월12일 모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권은 한국경제를 말아먹은 갈지자(之) 정권”이라며 비난, ‘정치인 현명관’으로의 변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4일엔 제주시 복강빌딩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었고 15일엔 한나라당 경제활성화대책특위 위원장에 위촉되며 ‘세’ 확장에 나선 상태다.

 제주도 현지에서 그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평판도 나쁘진 않다. 제주도 서귀포시장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한 제주소식통은 “삼성회장을 지낸 경제전문가라는 게 최고 강점”이라며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는 게 현지의 평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만일 현명관 전 삼성회장이 5월 제주지사 입성에 성공한다면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장 출신 첫 정계진출자이자 도지사가 된다. 삼성그룹 시절 ‘현통’, ‘현고집통’으로 통했던 그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했던 1993년 10월부터 1996년 말까지 3년2개월간 그룹 비서실장(현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