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외롭다." 요즘 열린우리당 주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대통령이 외롭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고 권력자라는 자리는 원래 외롭다고 한다. 노 대통령에게도 취임 초부터 그런 말이 따라다녔다. 50대 후반의, 기력이 왕성한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갇혀 지내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여권에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여당 주변에서 노 대통령이 외롭다고 하는 것은, 지금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서 나오는 얘기다. 믿었던 이해찬 전 총리도 3·1절 골프 파문에 밀려 떠나보내야 했고,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를 자임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일부 386 참모들도 이제 정치적 독립을 선언하고 대통령 곁을 떠난 상태다. 또 노 대통령에 열광했던 ‘노사모’ 등 정치적 지지집단도 급격한 분화를 거치고 있다. 요즘 여권 안팎에서 ‘노 대통령이 외롭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는 거꾸로 뒤집으면 노 대통령도 어느덧 정치적 시련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임기 4년차에 접어든 노 대통령에게도 점차 레임덕의 징후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 파동과 뒤이은 총리직 사퇴는 노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아쉽고, 통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전 총리의 골프 파동은 노 대통령 임기에서 한 시기를 구획 짓는 분수령 같은 일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이해찬’은 핵심 축이었다. 노 대통령이 2004년 5월 탄핵 사태를 딛고, 다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뒤 ‘노무현-이해찬 커플’은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노 대통령 표현에 따르면 ‘천생연분’이었다.

 이른바 노 대통령이 자신을 상징하는 정치 철학인 것처럼 말해 온 ‘분권형 국정운영’을 가능케 했던 인물이 이해찬 전 총리였던 것이다. 분권형 국정운영이란 대통령이 국정 모든 분야에서 전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총리와 분야를 나눠맡는다는 뜻이다. 필요할 경우, 그 권력을 야당에도 나눠줄 수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대통령과 국정을 나눠 맡는 총리가, 이름하여 ‘책임총리’다. 이런 구상을 현실 속에서 펼 수 있게 해 준 게 열린우리당 5선 의원 출신인 이해찬 전 총리의 존재였다. 노 대통령은 2004년 6월 이 전 총리를 총리에 임명하면서, 내치(內治) 전반을 위임했다. 대통령은 외교·국방 및 장기 국가전략 과제와 주요 혁신 과제에 전념하고, 대신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총리가 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 전 총리한테 ‘실세 총리’라는 말이 붙을 법한 상황이었다.

 과거 국무총리 하면 으레 그 정부의 ‘얼굴마담’이거나, 대통령이 참석할 수 없는 행사에 가서 연설을 대신 읽어주는 대독(代讀)총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전 총리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 전 총리는 일상적 행정 외에도 일자리 만들기, 저출산·고령화, 검·경수사권 조정, 용산민족공원 조성과 주한미군 이전사업 등 주요 국정현안까지 각 부처로부터 가져와 직접 지휘했다. 행정수도와 공공기관 이전, 방폐장 부지 선정, 8·31 부동산 대책 등도 총리실에서 주도했다. 이 총리는 과거와 달리 매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도 주재했고, 대부분의 국무회의 역시 이 총리의 몫이었다.

 이에 따라 이해찬 총리 시절, 총리 산하에 있는 각종 위원회만 50개에 이르렀고, 산하 기획단도 용산공원건립추진단 등 9개가 운영되고 있었다. 정부 안팎에서 “역대 36명의 총리 중 가장 힘이 막강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총리실 조직도 비대해졌다. 총리실 인원은 2003년 말 307명이었다. 현재는 부처 파견인력을 포함하면 590여명에 이른다. 청와대 전체 직원 숫자(568명)보다 많아졌다. 명실상부하게 총리실이 행정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렇게 믿고 의지해 온 이 총리가 예상치 못한 3·1절 골프 파문에 휘말려 낙마했다. 노 대통령으로선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은 셈이고, 또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당초 노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가 끝나면 대대적인 국정 전환 방안을 구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이후 노 대통령이 사실상 정치에서 손을 떼고, 양극화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 대형 국정과제에 전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하고, 근본적인 정부와 정치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안 등이 검토돼 왔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런 구상을 실행에 옮길 무렵, 이 전 총리를 보내줄 생각이었다는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그런데 이 구상이 이 전 총리의 조기 퇴진으로 흔들리게 된 셈이 됐다.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를 떠나보내면서 부쩍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의 정치 상황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의 사퇴를 결심하는 과정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대해 간섭당하는 듯 한 느낌이 들면 강하게 반발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이 전 총리의 골프 파문이 수습 단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권에선 대통령과 여당 대선 후보의 역학구도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해석하기도 한다. 2007년 대선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정 의장 등 여권의 대선 후보들이 노 대통령을 압박하거나 공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텐데 이번 이 전 총리 사퇴 문제는 그런 징후들이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아직 성급하긴 하지만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점점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노 대통령이 무대 뒤로 밀려가는 듯 한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재진입하려 할 것인가. 노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