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고놈 잘~빠졌네!’. 탄탄한 기술력에 디자인까지 더해져 나오는 요즘 제품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 손기술 하나는 정말 좋다”며, 자화자찬(自畵自讚)을 아끼지 않는다. 기술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바로 디자인 경영시대다. 제품의 기술과 성능이 평준화 되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도 뭔가 색다른 것을 갈구한다. 지금은 감성 디자인이 뜨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 나와 동일시 할 수 있고, 나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디자인이 이라면 금상첨화다. 패션, 휴대폰, 인테리어, 전자제품까지 이제는 디자인이 말한다. 한국의 최고 디자이너 5명을 통해 미래 한국의 디자인 세계를 엿보자.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한복은 섹시하게 디자인해도 우아함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윤현정 기자 yoonhj1213@chosun.com



 3월10일 서울 강남 압구정 이영희 한국의상을 들어서자 입구에 하얀 웨딩드레스가 눈에 띈다. 저고리 없이 한복 치마만을 이용해 만든 화사한 드레스였다. 은은한 자수가 놓여진 ‘말기수’(여성한복 치마에서 가슴 쪽을 감싸는 천)가 돋보인다.

 “파리와 뉴욕에서 컬렉션 했던 작품들이에요. 예술자체를 인정하는 파리 의 느낌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뉴욕의 느낌이 묻어나는 옷들이죠.”

 민소매의 짧은 원피스부터 웨딩드레스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한복 색감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감각의 색상들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한복은 점점 모던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입기 어렵고 불편한 옷’이라는 고정관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올해 한국 나이로 69세다. 패션디자인 계의 노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평범한 주부였어요. 아이들을 모두 키워놓고 마흔이 넘어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했죠. 주변에서는 늦었다고 얘기했지만 이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의 길, 그러나 세계에 한복을 알리는 역할은 그녀가 제일 먼저 했다.그녀는 1993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 프레타포르테 무대에 진출했다. 당시 패션쇼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외신 기자들은 전원 기립박수로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한복을 ‘코리안 기모노’라 부르던 이들이 한복의 자태에 반해 ‘바람의 옷’이라고 칭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의 두루마기를 디자인해 세계의 언론을 사로잡기도 했다.

 “누리마루에서 APEC 정상들이 두루마기를 입고 섰을 때, 한복이 이제 세계화 됐다고 생각했어요. 제 모델이 대통령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떨렸죠.”

지금까지 수많은 쇼를 진행했지만, 그때처럼 떨렸던 적은 없었다. 직접 만든 한복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만들어간 옷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각국의 정상들은 아주 만족스러워 했고, 우리나라 한복의 비단과 색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전통의상 입기를 꺼려하는 미국 조지부시 대통령마저 환호를 했다는 것.

 “처음에는 안 입으려고 하더니, 나중에 입고서는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동양인에게만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서양인이 입으니 더 잘 어울렸어요.”

이씨는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한다.



 2004년 미국 뉴욕에 이영희 한국 박물관 열어

 그녀는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컬렉션과 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2004년엔 미국 뉴욕에 이영희 한국 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 개관식 때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도 축전을 보낼 만큼 주변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수익을 고려했다면 박물관을 열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한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한 달 유지비만 1500만달러나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시에 있는 패션 학교에서도 사전에 예약을 하고 방문할 정도다. 패션의 거리, 예술의 거리에 세워진 박물관이 애초에 세웠던 의도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영희 한복의 포인트는 색채에 있다. 기존 한복의 색깔을 화려하고 우아하게 변화시켰다. 그녀가 내 놓은 색감은 옛 전통의상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나온 그녀만의 것이었다.

 “더 좋은 감각의 디자인은 새로운 것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옛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더 많지요. 전통을 모르고 새로운 디자인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녀가 디자인한 실용복은 한복 소재인 생사, 양단, 국사, 노방 등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디자인과 색감 모두 기존 한복과 아주 다르다. 은색과 금색의 한복은 그녀가 처음 시도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외국에서 먼저 알아 봤다고 한다.

 “소재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조금 야한 디자인이어도 우아하면서 단아한 멋이 살아있죠. 비칠 듯 비치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한복 고유의 소재와 선이 여성의 미를 더욱 강조해 줍니다.”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했던 배우 엄지원과 김희선이 유달리 플래시 세례를 많이 받았던 것은 그들이 입은 드레스가 한국의 미를 한껏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저고리만을 벗고 치마의 형태를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한국의 치마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섹시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깨를 드러내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아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복이에요.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드레스를 한복 치마에서 가장 잘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즘 한복의 붐이 다시 일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한복을 입고 나오는가 하면, 세계를 드나드는 배우들 대부분이 한복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을 방문한 정상 부인들은 한복 한 벌쯤은 꼭 구입해 간다. 외국에서 드레스 한 벌을 대여하는 가격과 한복 한 벌을 구입하는 가격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꼭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라고 그녀는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