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유 의원을 장관에 기용하기 무섭게, 여권 안팎에서 ‘제3 후보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여권에선 ‘정동영·김근태 후보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해 초 정치권에서 최대 화제를 낳은 인물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원래 유 의원은 현역 정치인 중 가장 뉴스가 많은 사람이었다. 거의 노무현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다. 올해 초 정국은 그런 유 의원을, 노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소동이야말로, 한국 정 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지난 1월2일 노 대통령은 5개 부처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이중 1곳인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선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협의 절차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유시민 의원이 내각에 들어와서 일할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했다. 유 의원을 장관에 임명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나, 당내 반대 의견이 많으니 ‘당과 협의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었다. 장관을 임명하면서, 이런 설명이 따라붙는 경우는 아마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유시민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무섭게 여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주로 수도권의 초·재선 의원들이 주축이 됐지만, 여당 인사들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의원의 90% 이상이 반대했다”고 한다. 여당 의원들은 작년 11월부터 노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가 유 의원을 장관에 기용하려 하자, 기회 있을 때마다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을 장관에 임명하면, 그 순간 여당 지지율은 반 토막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5·31 지방선거 필패(必敗)”라는 논리였다.  여당 의원들은 그러면서 지역구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시민 의원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극소수 ‘유빠’만을 빼곤, 대다수 국민들이 유 의원에게 거부감을 가진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이해찬 총리 등도 이 같은 여당의 반발을 감안한 조용한 설득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이때 이 총리가 동원한 논리가 기상천외하다. 이 총리는 여당 측에 “유 의원을 당에 놓아두면 분란이 끊이지 않으니 내각에서 일하도록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유 의원에 대해선 여권 내부에서 조차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또 이 같은 사실을 그를 후원하는 노 대통령이나 이 총리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유 의원을 장관에 내정하려는 ‘속내’를 공개하면서, 실제 임명은 ‘여당 지도부와 협의 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를 더 키워버렸다. 여당의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까지 나왔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장관 임명을 놓고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서명에 참여했던 여당 의원은 30여 명.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의 협의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유 의원을 장관에 내정했다. 여당의 움직임을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것이다.

 장관 내정 발표로부터 한 달쯤 뒤인 지난 2월7일. 유 의원은 다시 한번 멋진 드라마를 선보였다. 이번 주제는 ‘변신’이다. 유 의원의 평소 이미지는 ‘냉소적인 자객’이다. 상대편을 인정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얼굴 가득 특유의 ‘조소’를 머금은 채 사정없이 칼을 들이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유 의원은 ‘고개 숙인 남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이것으로 유시민 드라마는 막을 내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한다. 유 의원은 본인 다짐대로,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가급적 ‘정치 논란’과는 거리를 둔 채 장관으로서의 일만 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 의원이 정치권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유 의원은 여당 내부의 한 정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현재 여당 내에서 유 의원이 이끄는 정파는 ‘참정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당 관계자들은 참정연의 지분을 약 10% 정도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유 의원은 인터넷을 바탕으로, 전국 곳곳에 열광적인 지지자를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노빠’라고 불렀던 것처럼, 유 의원 지지자는 ‘유빠’로 불린다. 현역 정치인 중 이처럼 열성적인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박사모)나,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김근태와 친구들) 정도다. 내부 결속력이나 지지 강도 면에서 보면 유빠는 단연 으뜸이다. 이것만으로도 유 의원은 본인의 생각(?)처럼 가만히 있기 어렵게 돼 있다.

 또 여권의 권력 구도가 안정돼 있지 않다는 것도, 유 의원이 또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여권의 대표적인 대선 후보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의원이다. 그런데 지난 1년여 간 여론조사에 나타난 이 두 사람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범여권의 후보로 거론되는 고건 전 총리 등에 크게 못 미친다.  정-김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쳐도 다른 주요 후보의 지지율의 절반도 안 될 정도다. 노 대통령이 유 의원을 장관에 기용하기 무섭게, 여권 안팎에서 ‘제3 후보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여권에선 ‘정동영·김근태 후보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유 의원은 그간 전망이 어둡고 불투명한 2007년 대선보다는, 그 이후를 염두에 둔 발언을 하곤 했다. 지금껏 유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노 대통령의 입장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고, 이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를 두고 ‘정치적 경호실장’이니 ‘노빠 주식회사 대표’니 하는, 비아냥거림에 가까운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할을 통해서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을 이어, 열광적인 ‘노빠’ 부대를 수습해 갈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지지층은 현재 유 의원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또 2007년 이후의 상황까지 감안한 긴 시간표에서 본다면, 유 의원은 몇 차례 더 변신을 선보일 기회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