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사상 최대 폭의 실적 감소를 기록해 기업 공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김택진(38) 엔씨소프트 사장. 하지만 새로운 대작게임인 <길드워>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1월에 이어 5월27일부터 다시 시가총액 1조7000억원대를 돌파했다. 김 사장이 다시 한번 시가총액 2조원 시대를 열면서 게임산업의 미래를 더 밝게 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표적인 게임인 <리니지> 시리즈를 통해 2001년 업계 최초로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던 엔씨소프트는 2003년에는 전년대비 10.7% 성장한 166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468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해외로열티로 379억원의 이익을 거둬들여 업계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지난 1분기 전년동기 대비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이 각각 30%와 33% 줄어 창업 이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애널리스트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김택진 사장이 새로운 게임인 <길드워(Guild War)>를 앞세워 돌아왔다. 돌풍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4월 중순 6만5000원까지 급락했던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6월10일 현재 8만4000원을 넘어 9만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대. 경쟁사인 웹젠의 시가총액이 2400억원대라는 점에서 엔씨소프트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작 게임인 <길드워>가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또 하반기 게임포털시장 진입 전략 역시 중장기적인 성장에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길드워>는 스타크래프트의 대안

 김 사장은 <길드워>로 게임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포부다. 그는 “10년 동안 <스타크래프트>로 일관했던 국내 e스포츠계에 한국게임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길드워>는 ‘대전롤플레잉게임(RPG)’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라이선스 요금제’라는 새로운 요금제로 새로운 게임역사에 도전한다. 엔씨소프트 미국 개발 스튜디오인 아레나넷에서 4년간 70여 명의 개발자가 100억원 이상의 개발비를 들여 만든 대작 게임이다.

 기존의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에서 요구하는 기나긴 레벨업의 과정과 단순하고 반복적인 플레이, 방대한 지역 이동에 따른 시간 소모 등 게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를 전부 배제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추구하는 재미 요소에 바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김 사장은 “기존에 <리니지>를 즐겼던 게이머들의 요구에 ‘바로 이 게임이야’ 하는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게임”이라며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며 새로운 게임에 목말라 했던 게이머들에게도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길드워>는 월정액제를 포기하고 ‘라이선스 요금제’를 채택했다. 향후 1년에 두 차례씩 스토리와 월드 영역을 넓힌 확장팩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김 사장은 “확장팩을 반드시 사야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게임을 더 즐겁게 즐기기 위해 구매하는 옵션 형태로 하되 확장팩을 발표할 때마다 스토리상의 큰 반전과 드라마틱한 요소를 담아 구매 의향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길드워>는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현재 6개국 언어로 개발됐으며 처음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론칭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 각각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를 제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개발자들이 내놓은 의견을 공유해 새로운 게임으로 탄생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는 각오로 공도 많이 들였다. 김 사장은 프로그래머들과 게임의 세세한 부분까지 함께 고민했다고 한다. 게임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게임 개발에 대해 논의하고 방향을 함께 정했다.

 김 사장은 “창조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선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하고 사장도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과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길드워>의 매출 목표는 300억원이다.

 엔씨소프트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개발중인 프로젝트도 오는 9월 공개될 예정이다. 3년 넘게 개발한 이 게임은 <리니지>를 능가하는 진화된 게임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당초 개발 프로젝트 이름은 ‘아이온(AION)’이었으나 상표권 문제로 다른 이름을 찾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게임포털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 게임포털은 기존 웹보드와 퍼즐 게임 위주의 ‘포털을 위한 게임포털’이 아닌 게임 하나하나가 돋보이는 ‘게임을 위한 포털’을 만들 예정이다.



 해외시장 개척은 과제

 글로벌 시장은 아직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엔씨소프트는 이제 <시티오브히어로>로 해외 시장에 이름을 알렸을 뿐이다. 앞으로 기존에 나온 판에 박힌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나가면서 세계시장에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 사장은 그래서 일 년 중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낸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해외 조직은 미국 지사, 자회사인 아레나넷·DG, 유럽 지사, 일본·중국·대만·태국 합작법인 등과 미국 비주얼 스튜디오, 중국 차이나 연구·개발(R&D)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길드워>의 경우 시애틀에 위치한 아레나넷이 기초적인 작업을 하면 한국과 미국 비주얼 스튜디오에서 최종 마무리 작업을 수행해 완성했다. 향후 동·서양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의도에서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차이나 R&D센터도 설립했다.

 그는 거대한 자본과 오랜 경험을 가진 미국이나 일본의 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 시장에 본격 진출할 경우 국내업체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을 우려한다.

 그는 “세계 게임업계에서 10위권에 드는 한국 게임업체는 아직 하나도 없다.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는 게임 회사가 서 너 개 정도 나오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에 밀려 퇴출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국내 업체들의 창의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게임분야에서 승부를 가르는 창작력은 한국 업체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란다. 김 사장은 세계적인 게임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그들의 문화를 흡수해 그들이 좋아하는 색상을 만들고 캐릭터를 개발하는 ‘컬처라이제이션’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365일이 항상 창조에 대한 고통 때문에 괴롭다는 김 사장의 게임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무수히 많은 10~20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될 10년, 20년 후에는 온라인 게임 문화가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머지않아 게임과 문화의 융합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게임세대가 미래 산업의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온라인 게임이 성공하면 이를 활용해 영화화하거나 음악을 별도로 판매하는 등 확장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은 무한대”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더 활성화되려면 게임업체들은 모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