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텔레콤은 1997년에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3년까지 7년 동안 가입자가 483만명이었고, 2001년 5월 4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후 계속 이를 넘기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불과 1년 만에 1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해 500만 가입자를 돌파하는 데 성공한 뱅크온은 이동통신업계 3위 업체인 LG텔레콤에게 분명 새로운 돌파구였다. 여기엔 남용(58) LG텔레콤 사장의 고뇌에 찬 결단이 숨어 있다.
 “LG텔레콤은 소비자가 원하는 고부가가치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것입니다. 뱅크온(BankON)에 이어 뮤직온(musicON), DMB도 1등 기조를 이어갈 것입니다. 후발 사업자의 가입자 약탈에 대해 정부가 시장 감시 강화와 유효경쟁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고, 시장에 공정한 규칙이 확보된다면 매년 20% 성장이 가능합니다. 고객을 중심에 두고 서비스 혁신 등을 통해 매년 20% 성장을 달성하면서 800만명, 1000만명을 넘어 ‘일등’ 할 수 있는 체질과 체력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2005년 1월 LG텔레콤의 남용(南鏞) 사장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동안 3등자리에 머물던 LG텔레콤으로서는 뱅크온이란 히트작을 통해 그동안의 패배의식을 접고 본격적인 일등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결의였다.

 실제로 LG텔레콤은 SK텔레콤, KTF 등 선발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 2004년 뱅크온의 성공에 힘입어 가입자 600만명을 달성했다.

 뱅크온서비스란 무엇인가. 2003년 9월 LG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금융권과 공동으로 상용화한 신개념의 모바일뱅킹서비스다. IC칩에다 금융정보 조회, 자금이체, CD/ATM(은행자동화기기)을 사용하기 위한 이용자의 계좌정보를 모두 저장하고, 이를 휴대폰에 탑재하여 LG텔레콤 가입자가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뱅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계좌 조회와 이체, 대출 조회와 이체, 외환거래 등의 뱅킹서비스는 물론, 현금카드, 신용카드, 교통카드 서비스 등이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뱅크온서비스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지 우여곡절과 결단의 순간이 있었다. 사실 LG텔레콤은 이동통신 산업의 후발업체로서, 가입자 확보와 수익 측면에서 만년 3위라는 실적 때문에 그동안 조직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다.



 “돈 안 되는 사업 접자”사면초가 위기

 특히 이동전화 보급률이 70%대를 넘는 포화된 시장에서 LG텔레콤은 좀처럼 경쟁사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2001년 15.8%(6월 기준)를 차지하고 있던 LG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2003년 14.7%(2월 기준)로 떨어진 반면, 경쟁사인 SK텔레콤은 2001년 49.7%에서 2003년에는 53.6%로 오히려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는 추세였다. 가입자 수만 보더라도 2003년 말 기준으로 SK텔레콤 1831만명, KTF 1044만명 등 이미 1000만명이 넘은 경쟁사에 비해 LG텔레콤의 가입자는 483만명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뱅크온은 회사에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LG텔레콤이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동안 가입자가 483만명이었고, 2001년 5월에 4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이후로 계속 이 선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만연 3위 업체인 LG텔레콤에게 뱅크온은 분명 새로운 돌파구였다. 불과 1년 만에 1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해서 500만 가입자를 돌파하는 데 성공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에 LG텔레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2000년 12월 차세대 이동통신이라 불리는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음은 물론, 좀처럼 가입자 수 500만명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도업체인 SK텔레콤과 KTF는 각각 시장점유율 53%와 32%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쟁구도가 그대로 고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LG그룹 내부에서도 통신 관련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었다. 시장 포화와 선발업체의 독주, 이로 인한 재무성과 악화 등 LG텔레콤에게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었다.

 LG그룹 회장실에서는 “이제 돈도 안 되는 통신사업을 접어 버리자”, “골치만 아픈 계열사인 LG텔레콤을 매각해 버리자”와 같은 과격한 의견들이 속출했다. 특히 재무 분야에서는 돈만 까먹는 LG텔레콤의 모습을 앉아서 바라보기가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남용 사장은 “지금은 어렵지만, 그룹이 미래 도약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그룹 고위층과 다른 부서를 설득했다. 따가운 시선을 참고 넘기기가 남 사장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차별화 방법이 아니고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가입자 유치를 위한 새로운 방식의 돌파구를 찾는 것만이 LG텔레콤이 살아나갈 길이었다.

 2002년 LG텔레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고, 그 중에 한 분야가 m-커머스(mobile commerce)였다. 남 사장은 여기에 차별화 된 승부수를 던져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휴대폰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이동전화 단말기를 이용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모든 이동통신업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SK텔레콤이나 KTF의 경우 통신과 금융을 결합시킨 모네타(moneta), K-머스(K-merce) 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었다.



 m-커머스로 승부수 던져

 LG텔레콤은 다양한 m-커머스 분야 중에서도 모바일뱅킹(mobile banking)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고객들이 당시 제공되는 WAP방식의 모바일뱅킹서비스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LG텔레콤은 검토 끝에 모바일뱅킹 사업 자체만으로는 당장의 큰 기회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직은 우리나라 고객들 중에 모바일뱅킹을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많지 않고, LG텔레콤은 가입자 수도 적었기 때문에 당장 많은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다만 모바일뱅킹 사업을 위해서는 은행과의 제휴가 필수적이고, 은행이 가지고 있는 유통 역량은 LG텔레콤의 눈길을 끌었다. 은행은 전국적으로 많은 점포를 보유하고 있고, 이 점포들이 바로 단말기를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 역할을 할 수 있었다. LG텔레콤은 모바일뱅킹을 매개체로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P-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태스크포스팀(TFT)이 구성되었다. 태스크포스팀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차별화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할 것인가’였다. 가능하면 누구나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공되지 않고 있는 서비스,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서비스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했던 현준용 상무(현 뱅크온 사업부장)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초기 태스크포스팀은 모바일뱅킹 외에도 휴대폰 신용카드, 텔레매틱스(telematics), 모바일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신규 서비스 분야를 검토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경쟁사인 SK텔레콤의 모네타와 KTF의 K-머스 사업이 많은 가입자가 있음에도 성과가 낮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모바일뱅킹사업을 은행과 같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은행들도 구조조정에 관심이 많았다. 태스크포스팀은 제휴 파트너로 국내 최대 소매금융 능력을 갖고 있는 국민은행(KB)을 주목하였다. 2002년 당시 1192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던 국민은행은 모바일뱅킹에 전략적으로 관심이 많은 선도은행이었다.

 게다가 국민은행은 SK텔레콤과 제휴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SK텔레콤은 모네타사업 때부터 금융 소매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SK텔레콤의 미래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국내 은행들은 향후 은행 최대의 경쟁자는 이동통신회사, 그 중에서도 SK텔레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태스크포스팀은 이런 허점을 파고들어 경쟁사 전략상 쉽게 제휴하기 어려우면서도 파괴력이 큰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을 제휴파트너로 삼는 데 성공했다.



 구본무 LG 회장의 ‘일등 LG’로 힘 받아

 2002년 11월 말 양사는 기본 방향에 합의한 후 한 달간 작업을 통해 P-프로젝트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양사는 서로가 보유한 경쟁우위 요소를 결합해 차별적인 사업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이해를 같이했다. 즉, 국민은행은 선도은행으로서 지점 업무 효율성을 개선하는 목적을 추구하고, LG텔레콤은 시장점유율 확대와 서비스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태스크포스팀의 프로젝트는 초기에 적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보다도 제휴라는 것이 단독으로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정교한 쌍방 간의 이해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상대방인 국민은행이 소매금융에서 1위 업체인 데 비해 LG텔레콤은 시장에서 3위 업체라는 현실적인 부분도 프로젝트 진행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은행 유통에 대한 일부 회사 경영진의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은행에서 단말기를 판매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온 고객이 과연 은행에서 단말기를 구입하겠느냐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급기야 LG텔레콤의 2대 주주인 영국 BT(British Telecom)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BT의 코멘트는 위력이 막강해 사내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의견에 따랐다. 또한 그동안 워낙 실패를 많이 한 터라 LG텔레콤의 일반 구성원들 중에도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많았다. 사내 일부 인사들은 “괜히 돈만 잡아먹는 실험을 하지 말고 차근히 시장을 늘려나가야 한다”, “지금 SK텔레콤의 자본과 물량공세를 어떻게 당하겠느냐, 1등 전략보다는 2등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어떠냐”라는 지적도 많았다. 회장실에서는 여전히 ‘돈만 잡아먹는 하마’라며 사시(斜視)로 바라보았다. 이런 모두 것들이 남용 사장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구자경(具滋璟) LG그룹 명예회장의 비서로서,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용 사장. 하지만 LG텔레콤 초창기부터 회사를 맡으면서 여태껏 뚜렷한 실적을 올리지 못한 것이 그에게 늘 부담이 되었다. 그동안 ‘카이’를 비롯해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지만, 히트를 치지 못했던 것도 그에게는 아픈 추억이었다. 하지만 남용 사장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이 ‘일등 LG’를 주창하면서 힘을 실어 주었다. 남 사장은 실무를 맡은 현준용 상무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그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현준용 상무는 당시 난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은행 지점을 통해 단말기를 판매해 보자는 발상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확신을 심어 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회사 경영진들과 제휴 파트너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LG텔레콤 대리점이나 직영점을 통해서는 고객들과 만나 판매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량고객들이 LG텔레콤 대리점에 올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은행은 다릅니다. 우량고객, 특히 경쟁사 고객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판매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과연 우리가 판매할 역량을 갖추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직영점을 통해 우수한 판매원을 육성해 왔기 때문에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12월, 마침내 양사 경영진 미팅을 통해 사업모델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양사는 각자의 사업영역을 존중하고 서로 상대방 영역을 침해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국민은행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채널원가를 절감하고, 업계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LG텔레콤은 국민은행 지점을 판매거점으로 삼아 우량 가입자를 확보하고, 일등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한 LG텔레콤의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양사는 보다 구체적인 사업성 검토를 위해 공동 태스크포스팀(국민은행 7명, LG텔레콤 10명)을 구성할 것에 합의하고, LG 트윈타워 31층을 임대해 2003년 1월 한 달 동안 수요조사 및 양사 수익성 검증작업을 실시하였다.  2003년 2월부터는 세부 계약조건에 대한 협의를 통해 적정수수료 수준, 양사의 역할과 책임 명확화, 제휴협력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했으며, 2003년 3월 별도의 장소에서 공동실행팀이 킥오프(kick-off) 되었다.

 공동실행팀은 모바일뱅킹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금융과 통신 시스템의 통합성이 부족해서 사용이 복잡하고 상거래에 소요되는 수수료 및 통신료가 고객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보안문제에 대한 고객들의 확신도 부족했다. 실제로 기존의 폰뱅킹, 무선인터넷뱅킹 등은 계좌이체 때 약 7~16단계의 입력단계를 거쳐야 했고, 소요시간도 최소 4~5분에서 길게는 1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통신료도 회당 70~340원에 이르는 등 부담이 적지 않았다.  반면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뱅크온서비스는 입력단계를 3~4단계로 대폭 줄였고, 소요시간도 1분 정도로 단축했다. 특히 통신료는 건당 10~30원에 불과했다.

 공동실행팀은 뱅크온의 3대 핵심서비스를 전자통장, 교통카드, 신용카드로 결정하였다.



 ‘이젠 뱅크온이다’

 기술적으로 뱅크온서비스의 차별화 포인트는 세계 최초의 스마트카드(smart card) 내장방식의 모바일뱅킹서비스라는 점이다. 칩을 내장하면 휴대폰에서 칩에 들어 있는 계좌정보로 실시간 은행거래가 가능하고, 복잡한 메뉴를 거치지 않고 전용키를 통해 원클릭(one click)으로 은행에 바로 접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스마트칩을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서비스처럼 계좌번호나 고객ID 등을 입력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이 칩(chip) 방식이 LG텔레콤과 국민은행이 제휴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인데, 그동안 은행과 이동통신업체들은 칩의 소유권을 두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칩은 결국 고객정보를 의미한다. 경쟁업체들은 칩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고객정보를 은행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은행들은 칩을 전자통장으로 간주하면서 고객정보가 이통통신업체로 전달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결국 칩 전략에 대한 시각차로 그동안 은행과 이동통신업체 간의 제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사는 이에 대한 합의를 신뢰를 통해 이끌어냈다.

 뱅크온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종합적인 업무 진행이 필요했다. 우선 남용 사장은 국민은행 경영층과 자주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당시 뱅크온프로젝트팀 황준성 차장(현 일산지점장)은 뱅크온에 대한 LG텔레콤의 전사적인 지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사 차원의 열의와 솔선수범이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경영진들이 실시간으로 실적 관리를 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CEO BankOn Day 행사를 실시해서 본사 전 임직원이 은행 현장 판매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CEO인 남용 사장이 나서서 직접 뱅크온 실적을 챙겼기 때문에 당시 사내에는 ‘뱅크온 잘 하는 분과 뱅크온 못 하는 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LG텔레콤은 뱅크온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마련했는데, 지점별 판매리그(league)제를 통한 경쟁유발(은행 지점별 순회 판매)은 물론, 은행 지점별 콘테스트(contest)를 통해 우수 판매원을 포상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뱅크온의 성공을 위해서는 은행 직원과 LG텔레콤 판매원 간의 화학적인 결합, 즉 팀워크가 중요했습니다. 한 번은 뱅크온이 입점한 국민은행 전 지점에 피자를 동시에 주문해 줘 분위기를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판매원의 베스트프랙티스 공유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고객과 상담할 때에는 가능하면 뜨거운 음료를 제공해라, 그러면 음료를 마실 때까지 시간이 좀더 걸리고 고객과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우량 가입자 40만명 유치

 마침내 LG텔레콤과 국민은행은 2003년 8월21일 힐튼호텔에서 ‘모바일 금융서비스사업 공동추진’을 위한 업무제휴를 맺고, 9월1일부터 휴대전화의 스마트칩을 이용한 ‘뱅크온’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 행장은 “금융과 통신이 융합돼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스마트칩 기반의 모바일뱅킹서비스이며, 이제 고객들은 보다 쉽고, 보다 안전하고, 보다 저렴하게 모바일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남용 LG텔레콤 사장도 “양사의 제휴는 고객의 모바일 라이프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고 사업 제휴의 의미를 밝혔다.

 LG텔레콤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뱅크온을 통해 40만명의 우량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LG텔레콤은 500만명 가입자 달성은 물론이고,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성공은 LG텔레콤에 큰 활력소가 됐다. 그동안 선도 기업의 위세에 눌려 실패만 거듭해 오던 조직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으며, 단기적으로 4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뱅크온을 통해 확보된 고객은 우량고객이었다는 점이 회사에는 큰 힘이 됐다. 은행 입장에서도 뱅크온은 은행고객의 충성도(loyalty)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LG텔레콤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성공 체험이었다. 전 직원을 판매현장에 투입함으로써 성공 체험을 공유했고, 특히 경쟁사의 우량 가입자를 전환 가입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 것이다.

 2003년 하반기 LG텔레콤이 국민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성과를 보이자, 경쟁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과 KTF도 은행과의 제휴를 통한 모바일뱅킹 도입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은행 쟁탈전이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이 2004년 상반기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LG텔레콤은 6개월간의 국민은행과의 제휴가 끝나 제일·외환·기업은행 등과 제휴를 추진하고 있었고, SK텔레콤은 ‘M-뱅크’라는 브랜드로 우리·신한·조흥·하나은행 등과 제휴를 추진했으며, KTF는 ‘K-뱅크’라는 브랜드로 국민·부산·한미은행 등과 모바일뱅킹 사업을 추진했다.

 일단 2004년 3월까지는 LG텔레콤이 하루 평균 3660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데 반해,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F는 각각 1000명과 13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LG텔레콤은 조기 분위기상승(boom-up)을 통해 초기에 경쟁우위를 점해 나갔다.

 2004년 시작된 번호이동성제도와 함께 LG텔레콤의 뱅크온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순조롭게 판매가 이루어졌다. 2004년 하반기가 되자 모바일뱅킹에서는 LG텔레콤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KTF는 은행과의 제휴를 통한 모바일뱅킹을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었고, SK텔레콤도 경쟁사들을 방어하는 차원에서만 모바일뱅킹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다. 실제 2004년 말 기준으로 LG텔레콤은 제휴은행이 상반기 5개에서 하반기 15개로 늘어난 반면, 경쟁사는 오히려 2~3개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2005년 1월은 번호이동성제도가 완전히 개방되는 시점이었다. 2004년까지만 해도 SK텔레콤과 KTF 고객만 다른 경쟁사로 옮길 수 있었으나, 1월부터는 LG텔레콤 고객도 타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됨으로써 후발업체인 LG텔레콤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뱅크온으로 대표되는 모바일뱅킹에서는 LG텔레콤이 승리했다.

 뱅크온은 이후 각종 승차권 예매 등 서비스 영역을 넓혀가면서 이동통신회사의 성공적인 뉴 비즈니스 모델로 회자되고 있다. 자칫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으면서 도태될 뻔했던 기업을 살려 내는 데 뱅크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와중에 LG그룹 회장실이나 LG텔레콤 사내의 반대의견을 의지로 이겨낸 남용 사장의 결단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