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티우먼>에 나오는 리처드 기어를 기억하는가. 수많은 기업을 떡 주무르듯 이리저리 넘기고 인수하던 영화 속 리처드 기어처럼 시장으로부터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고 있는 ‘마이다스의 손’이 캐나다에도 있다. 캐나다 사교계에서도 유명한 그의 궤적(軌跡)을 따라가 보자.
 ‘기업인수의 제왕’, ‘캐나다의 버크셔 헤더웨이(워렌 버핏의 투자회사)’.

캐나다 1위의 기업인수 전문 지주회사인 오넥스그룹(ONEX Corp)과 제럴드 슈바르츠(Gerald Schwartz)(65) 회장을 두고 캐나다 언론이 주로 쓰는 표현이다.

 그가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 설립한 오넥스그룹은 현재 미국 캔자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에 위치한 보잉 항공기 제작공장을 비롯해,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셀레스티카, 복합상영관 체인인 시네플렉스 엔터테인먼트, 병원응급실 아웃소싱업체인 EMS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다. 오넥스와 별도로 슈바르츠 회장 개인은 캐나다 최대의 서점·음반 판매체인인 인디고(Indigo Books & Music)와 와인 판매업 프랜차이즈인 와인 랙(Wine Rack) 등을 소유하고 있다. 오넥스는 지금까지 약 200여개의 기업을 매매했으며, 현재 12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오넥스는 기업매수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상장회사다. 지난 20여년간 주가는 연평균 29% 올랐는데, 이는 S&P 500 지수상승률보다 세 배 높은 수준이다.

 22년 전 자본금 300만달러로 시작한 오넥스그룹은 전 세계에 11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연매출 160억달러(약 15조원)에 총자산 140억달러(약 13조원)를 보유한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슈바르츠 회장은 오넥스그룹을 단기적 기업매수 펀드로만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데까지 확대했다. 이 때문에 의료서비스부터 전자제품 제조, 영화관까지 망라하는 등 북미에서는 보기 드물게 한국의 재벌식 ‘선단경영’을 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 경제주간지인 <캐내디언 비즈니스>가 지난 2005년 말 기준으로 추산한 그의 재산은 8억7500만달러(약8000억원)로, 슈바르츠 회장은 캐나다 48위 부자로 기록됐다.

 슈바르츠 회장이 캐나다 1위의 기업인수 전문가가 된 데는 집안 내력도 무시할 수 없다. 슈바르츠 회장은 1941년 캐나다 중부 매니토바 주 위니펙에서 자동차부품 대리점을 경영하던 아버지 앤드류 슈바르츠와 변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본인이 누구에게든지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탓에 아들도 ‘일등주의’로 무장하기를 원했다. ‘뭔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볼 것’을 아들에게 늘 주문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아들이 1등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대학졸업식에도 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열성 아버지’ 덕분에 슈바르츠 회장은 16살 때 이미 자동차 하나를 분해·조립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를 수 있었다.

 그의 모친은 매니토바 주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는데, 주식투자가 취미였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슈바르츠 회장이 금융계로 진출해 ‘일등 기업인수 회사’를 이룩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슈바르츠 회장이 매니토바대 경영학과를 마친 뒤 1968년 하버드대학교 MBA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소규모 업체를 몇 개 보유하고 있었다. MBA 동급생들이 책과 씨름하고 있을 때, 슈바르츠 회장은 고향 위니펙에 설립한 카펫회사, 동전세탁소 등을 하버드도서관에 앉아서 경영했던 것이다.

 하버드 MBA에서 슈바르츠 회장은 본격적으로 금융시장에 뛰어드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그는 동아리모임인 ‘연설가 클럽’의 대표로 있었는데,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환담을 나누는 행사를 주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세계 최대의 뮤추얼펀드인 인베스터즈그룹(Investors Overseas Services)의 버니 콘펠드 대표가 섭외되었다.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마친 콘펠드 대표는 슈바르츠 회장 등 ‘연설가 클럽’ 간부들과 환담을 나누다 슈바르츠 회장에게 방학 때 자신을 돕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세계 최대의 뮤추얼펀드 운영자가 하는 제안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슈바르츠 회장은 그해 여름을 스위스 제네바 근교 IOS의 본사로 사용되던 방 40개짜리 성(城)에서 세계 최고의 금융전문가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



 1984년 대출금과 종자돈으로 오넥스그룹 창업

 비록 짧은 기간이라서 세부적인 금융거래 기술을 완전히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슈바르츠 회장은 MBA 졸업 후 어디로 진출해야 할지를 명백하게 깨닫고 보스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뒤 슈바르츠 회장은 베어스턴스(Bear Stearns & Co) 증권회사에 취직하면서 뉴욕 월스트리트에 진출하게 된다. 이때 같이 입사한 두 동료와 함께 LBO (Leveraged Buyout : 차입금에 의한 기업인수)시장을 개척하게 되는데, 이들은 당시 금융가로부터 “기업 거래의 규칙을 새로 썼다”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로 증시를 누비고 다녔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금융시장은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즐거운 비명을 올릴 때였고, 이 덕분에 이들 신출내기 증권맨들은 부담 없이 부채의 바다를 둥둥 떠다니면서 기업을 인수해 되파는 일들을 즐겼다.

 하지만 40세를 바라보면서 슈바르츠 회장은 뭔가 자신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77년 과감하게 월스트리트를 떠나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변호사로 일하던 이스라엘 애스퍼(Israel Asper)를 만나 캔웨스트 캐피탈(Canwest Capital)이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한다. 슈바르츠 회장이 월가에서 배운 기업인수 전략과 애스퍼 대표의 꼼꼼함이 어우러져 이후 7년 동안 캔웨스트는 중·소 규모 회사를 몇 개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워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향후 전략을 어떻게 다듬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두 공동 창업자가 심각하게 의견대립을 하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1980년대 초반 슈바르츠 회장은 회사를 떠나고, 애스퍼 회장은 이 회사를 언론그룹으로 키워 나중에 <내셔널포스트>, <글로벌TV> 등을 소유한 언론 지주회사로 변신시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애스퍼 회장은 당시 슈바르츠 회장과의 불화를 두고, “나는 나무에 물 주고 키워서 그 열매를 얻겠다고 하는데, 그는 나무를 키워서 판 뒤 다른 나무를 사겠다고 했다”라고 비유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캔웨스트를 떠난 슈바르츠 회장은 1984년 대출금과 자신의 종자돈을 합쳐 오넥스그룹을 창업한다. 슈바르츠 회장은 ‘시장에서 저평가됐거나 경영진이 무능한 회사를 사들여서 기업가치를 올린 뒤 되판다’라는 단순한 전략을 세웠다. 기업인수 전문회사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첫 작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슈바르츠 회장은 기내식 공급업체인 스카이쉐프(Sky Chefs)를 아메리칸에어라인(AA)으로부터 사들인다. 당시만 해도 스카이쉐프는 AA가 내다버리고 싶어할 만큼 골치 아픈 사업부였으나, 오넥스가 인수한 뒤 군소 경쟁업체를 차례차례 사들여 10여년 만에 기내식 업계의 선두주자로 변모시켰다. 인수 당시 미국 국내시장에서만 영업하던 스카이쉐프는 16년 뒤 전 세계 5개 대륙에 140개 제조공장을 두고 기내식을 공급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스카이쉐프는 16억달러의 이익을 오넥스에 안겨 줬다. 슈바르츠 회장은 스카이쉐프사를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기 3개월 전에 매각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1987년 4월 슈바르츠 회장은 오넥스를 공개, 2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한다. 이 자금으로 주주들에게 큰 이익을 돌려줘 호평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먼저 투자자들은 그가 20%의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은 60%를 장악했다거나(변형우선주를 통해 1주당 세 배의 투표권을 보장받음) 전체 수익의 20%를 운용수수료로 떼 간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슈바르츠 회장은 또 기업인수 과정에서 서투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상장 후 7개월이 지났을 때 오넥스는 다른 외부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여 비아트리스(Beatrice)식품의 캐나다사업부를 인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다 갑자기 인수 작업이 중단됐다. 그러자 주주들은 과연 슈바르츠 회장이 이런 식의 거래를 마무리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수하기는 했지만, 가격을 지나치게 비싸게 지불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여기에다 이후 2년간 오넥스는 20여개 기업인수에 나섰지만, 하나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1988년에는 테니스라켓 회사인 헤드(Head)사의 경쟁입찰에 참여했으나, 낙찰가의 70% 수준에 불과한 입찰가를 써낸 것이 알려지면서 불신은 더욱 커졌다. “도대체 사전조사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불만이 주주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1980년대 후반 북미의 기업 인수·합병시장이 냉각되면서 오넥스도 다소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또 캐나다에서 LBO의 인기가 급감한 데다 경기마저 나빠지자, 오넥스의 주가는 1988년 최고치였던 20.5달러에서 채 2년도 되지 않아 4달러대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경쟁업체 인수 뒤 구조조정으로 비용절감

 슈바르츠 회장은 이때 회사 내부를 추스르고 주주들을 설득해 위기를 극복했다. 수수료가 비싸다는 원성을 수용해 수수료율도 낮추고, 새 출발하는 심정으로 기업거래시장에 뛰어든다. 자금 확보를 위해 1991년 비아트리스식품을 팔마라트유업에 팔고 숨죽이고 있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1990년대 중반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자회사들의 경영실적이 개선된 것은 물론, 주가도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슈바르츠 회장은 위기상황 분석에 들어가 지나치게 단기적인 투자에 치중한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요인이 됐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래서 이때부터 단순한 기업매매보다는 장기적인 기업경영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즈음 그는 회의시간에 임원들에게 “우리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지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규모 증자를 실시해 자금을 확보한 뒤 장기투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오넥스는 한국식 재벌 개념에 가까운 회사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업 초창기와 달리 ‘장기 보유’로 마인드를 바꾸면서 그의 전략은 좀더 세분화됐다. ‘낮은 가격에 사서, 최소한의 자본과 비용만 들이고 어떻게든 운영비를 줄인 뒤 새 경영진을 들이고 핵심사업에만 집중하자.’

 이후 오넥스의 자회사들은 일단 인수된 뒤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경쟁업체를 사들이는 방식을 구사했다. 경쟁업체를 인수한 뒤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덕분에 인수 후 매출액 증가율이 아주 높은 편이다. 이것이 오넥스가 짧은 시간 안에 기업가치를 두 배 내지는 세 배 이상 신장시켜 상장해 자금을 회수하거나 원매자에게 되팔 수 있는 비결이다.

 일례로 셀레스티카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엑스박스를 생산하는 등 가전제품 OEM(주문자상표 부착방식) 업계에서 꽤 알려져 있는 존재이지만, 오넥스가 인수한 1996년만 해도 거대한 IBM제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자회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슈바르츠 회장은 이런 셀레스티카를 지금은 160여개 업체와 거래하는 OEM 전문회사로 키워 냈다. 1996년 1억9900만달러를 주고 인수한 셀레스티카는 현재 매출액 115억달러(약 14조원)대의 전자업체로 변신했다.

 슈바르츠 회장이 이런 전략으로 매매해 큰 수익을 올린 거래 가운데 비씨제당(B.C. Sugar)이 있다. 1997년 강력한 경쟁자였던 패티슨그룹을 따돌리고 비씨제당을 7400만달러에 인수한 오넥스는 이후 경영진을 물갈이한 뒤 이 회사를 상장시켰다. 이 자금으로 경쟁업체인 이스턴캐나다제당을 인수·합병시킨 뒤 2003년 지분을 모두 팔아 1억8000만달러를 회수했다. 6년 만에 두 배의 이익을 올린 셈이다.

 4년여 만에 네 배의 수익을 올린 경우도 있다. 슈바르츠 회장은 2001년 복합상영관 체인인 로위스(Lowes)를 5억3400만달러에 인수한 뒤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낡고 손님이 잘 들지 않는 극장들을 통·폐합하고 내부 리노베이션을 마치자, 손님들이 꾸준히 늘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이 회사를 상장시킨 뒤 캐나다 사업부만 남기고 20억달러에 되팔았던 것이다.

 셀레스티카 인수도 이런 상승 분위기 속에서 성사됐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자업종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슈바르츠 회장은 임원들과 회의를 거듭했다. IBM의 자회사인 셀레스티카를 인수하기 위해 1996년 오넥스사의 임원들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당시까지 단일투자 규모의 네 배가 넘는 1억4000만달러를 들여 55%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지금까지 모두 13억달러를 투입, 21개 관련회사를 추가 인수·합병시켜 현재 중국 등 세계 21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력 있는 가전업체로 키워냈다.



 에어캐나다, 캐내디언에어라인 인수·합병

 당시 북미에서는 사내 사업부를 독립시키는 이른바 아웃소싱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는데, 셀레스티카는 이 물결을 잘 탔던 것이다. 슈바르츠 회장은 <아이비비즈니스저널>과의 대담에서 “1990년대 중반 북미 산업계의 화두는 아웃소싱이었다”라며, “이 추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 오넥스가 기업을 매수할 때도 크게 고려하는 사항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때 오넥스는 셀레스티카 규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버거킹 햄버거사에 소스를 독점 공급하는 프로소스(ProSource)라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스카이쉐프도 결국 아웃소싱 바람 덕분에 기업가치가 상승했다고 할 수 있다.

 창업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확대일로를 걷던 슈바르츠 회장은 1999년 에어캐나다 인수·합병 제안이 좌절되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만난다.

 슈바르츠 회장은 1999년 8월 에어캐나다(Air Canada)와 캐내디언에어라인(Canadian Airline)을 인수해 합병한다는 57억달러짜리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두 회사는 캐나다의 국적기였지만, 경영이 악화돼 휘청거리고 있었던 데다가 이전에 실제로 합병을 검토한 일도 있었다. 1992년 캐내디언에어라인이 먼저 에어캐나다 측에 합병을 제안했다. 그러나 몇 년 후 항공 업계에 불황이 찾아오면서 이 제안은 흐지부지됐다. 이러던 차에 슈바르츠 회장이 두 회사를 합병시켜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에어캐나다 측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캐내디언에어라인을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한다. 당시 에어캐나다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슈바르츠 회장 개인에 대해 불신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여기에다 슈바르츠 회장이 밝힌 57억달러 규모의 인수자금이 미국의 아메리칸에어라인에서 조달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토종 항공사’ 논쟁까지 벌어지게 된다. 결국 퀘벡 주 법원이 이 제안 자체가 위법이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슈바르츠 회장은 인수계획을 접어야 했다. 캐내디언에어라인은 법원 판결이 난 직후 에어캐나다가 제안한 인수의향서를 받아들이고, 캐나다 국적기는 에어캐나다로 통합된다.

 그런데 이후 펼쳐진 상황은 인수실패가 오히려 오넥스와 슈바르츠 회장에게 도움이 됐다는 결론을 도출시켰다.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에어캐나다를 덮친 2001년 9·11테러의 충격파는 회생불능의 상태로 끌고 갔다.  에어캐나다는 결국 2004년 120억달러(약 11조원)대의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법정관리 신청 후 에어캐나다 측은 홍콩 출신 재벌 리자청 허치슨암포와 그룹 회장 일가와 슈바르츠 회장에게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하지만 에어캐나다의 부채 규모는 슈바르츠 회장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증해 있었던 데다가 이미 항공사에 대한 매력을 잃었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에어캐나다는 결국 리자청 회장의 아들인 빅터 리가 인수하는 듯 했으나, 막판에 노조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토종자본’이 아닌 독일계 투자펀드 컨소시엄에 팔리고 만다.

 슈바르츠 회장은 항공산업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항공기 제작 분야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지난 2005년 8월 미국 캔자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항공기 프레임 제작공장 세 곳을 보잉사로부터 6억달러에 인수해 스피릿에어로시스템(Spirit AeroSystems)사라는 새로운 합병법인을 설립했다. 이 공장 세 곳은 보잉 767, 777 시리즈의 동체와 날개, 엔진룸 등을 만들어 내던 보잉사의 주력공장이었지만, 보잉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매물로 나와 있었다.

 업계에서는 오넥스의 인수 타이밍이 아주 적절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파리 에어쇼에서 보잉을 비롯해 에어버스 등 대형 항공기 제작업체들은 500억달러 규모의 주문을 받은 바 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5년 가까이 이어졌던 항공업계의 불경기가 끝나간다는 의미인데, 이에 따라 앞으로 대규모의 항공기 제작 수요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창업멤버 한 사람도 회사 안 떠나

 슈바르츠 회장은 회의 시작 전 탁자에 놓인 연필심 길이까지 챙길 정도로 완벽주의자다. 그렇다고 슈바르츠 회장이 임직원들의 활동을 세세하게 간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회사보다는 더 큰 ‘자치(自治)’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오넥스 창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의 창업멤버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다. 슈바르츠 회장은 전 임직원을 동업자 수준으로 경영에 참여시켜 그들의 에너지를 인수거래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종업원지주제를 확장시켜 임원 전체적으로는 항상 오넥스의 지분율을 21% 이상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또 매 거래마다 최소 9%의 지분을 임원들이 인수해야 한다.

 여기에다 집행임원들은 매년 자기 연봉의 2~6배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한다.  또 매년 15%의 투자이익률을 올리지 못하면 연말에 보너스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아울러 인수한 자회사의 CEO는 교체하지 않는 대신 오넥스의 임원 한 사람이 책임지고, 그룹의 의사를 전달하는 등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오넥스사 본사에서 매주 월요일 열리는 임원회의는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토론장이 되기 일쑤다. 회의실은 온타리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지만, 임원들은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슈바르츠 회장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의료서비스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노령화가 진행되는 것과 함께 ‘웰빙’ 바람이 불면서 재택의료 서비스나 건강관리, 고급양로원 사업 등에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슈바르츠 회장이 지난 2004년 10억달러 규모의 엠케어(EmCare Inc.)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엠케어는 미국 내 265개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응급전문의, 간호사, 행정직원 등을 파견하는 회사다.

 한국과 달리 응급실을 아웃소싱할 수 있게 돼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특성에 걸맞은 의료 파견업체라 할 수 있다. 오넥스는 2005년 3월 엠케어와 함께 구급차 운행 대행업체인 AMR(American Medical Response Inc.)도 인수했다.

 여기에다 재택의료서비스 전문업체인 레스케어(ResCare Inc.), 정신질환자 및 지체부자유자 재활센터인 마젤란의료(Magellan Healthcare Service), 진단방사선 전문병원 CDI (Center for Diagnostic Imaging) 등도 차례차례 인수해 의료 전문 소그룹을 포진시킨 상태다.

 콘텐츠산업의 첨병인 영화관은 2000년대 들어 슈바르츠 회장의 주요 포트폴리오에 들어왔다. 슈바르츠 회장은 그래서 2005년 페이머스플레이어(Famous Players) 극장체인을 인수해 캐나다 최대의 스크린을 보유하게 됐다.

 지난 2004년 로위스를 매각하면서 남겨 놓았던 캐나다 사업본부를 시네플렉스라는 브랜드로 개편한 뒤 경쟁업체인 페이머스플레이어를 4억7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오넥스의 극장체인은 130개 상영관, 1267개 스크린으로 증가했다. 시네플렉스 체인은 지난 2005년 3분기에만 1억5000만달러의 이익을 올리는 등 오넥스그룹의 현금제조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슈바르츠 회장은 이런 사업의 성과 외에도 다양한 기관에 대한 기부와 캐나다 정계와 사교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도서체인인 인디고의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있는 그의 아내 헤더 라이스만도 슈바르츠 회장과 함께 토론토의 사교모임을 자주 주최하는 유명 인사다. 또 폴 마틴 캐나다 총리를 포함해 자유당 인사들과 오랜 교분이 있다. 선거 때마다 자유당 헌금액의 선두를 달리곤 하는 바람에 굵직굵직한 기업인수 때 ‘정치권 비호설’에 휩싸이기도 한다.

 에어캐나다 인수 시도에서 슈바르츠 회장의 ‘적’들이 공격한 부분 중 하나가 “오넥스는 차익만 먹고 쉽게 떠나는 펀드에 불과하다”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슈바르츠 회장은 이 같은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슈바르츠 회장은 <아이비비즈니스저널>과의 대담에서 에어캐나다 인수 무산과 관련해 “우리는 벌처펀드(Vulture Fund : 부실기업을 싸게 사서 단기간에 차익을 올리고 파는 펀드를 가리키는 표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