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불황의 끝이 보이는가 했더니, 이제는 유가가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이에 물러설 기업들이 아니다. 한국의 공사·공단, 대기업, 중소기업 30곳의 비용절감 온갖 아이디어를 알아봤다.
 달 첫째·셋째 금요일과 둘째·넷째 토요일 4시30분, 작업복 차림에 소매를 걷어붙인 ‘쿠쿠홈시스’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한 손에는 빗자루를 다른 한 손에는 쓰레받기를 든 직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내색 없이 들뜬 모습이다. 힘이야 들겠지만 모두들 회사에서 지정한 ‘대청소의 날’에 기꺼이 동참했다.

 청소용역을 없애고 직원들이 직접 청소를 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째. 바쁜 업무에 청소까지 하려면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오히려 그 반대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답답해질 때, 몸을 움직이며 주위를 쓸고 닦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도 해요. 청소하면서 동료들과 격의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고요.”

 쿠쿠홈시스는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질서에서 얻어지는 효용을 뜻하는 5S운동의 일환으로, 대청소는 물론 매일 아침마다 간단한 청소를 하고 있다고 성용태 주임은 전했다.

 GM대우는 지난 2000년부터 아예 부평공장의 땅을 직원 개개인에게 20~30평씩 나눠 줘 스스로 공장 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환경품질책임제의 기본적인 개념인 책임의식을 갖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직원들의 의식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GM대우 김상원 차장은 “릭 왜고너 회장도 이 제도에 관심을 가져 전 세계 GM계열사 및 관계사가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비용절감. 거창할 것이 없다.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기업 측면에서도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만으로 일단 반은 성공한 것이다.



  종잇값 10원을 아껴라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컴퓨터가 종이 없는 사무실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한국제지공업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종이 사용량은 오히려 매년 5~6% 정도씩 꾸준히 늘고 있다. 프린터와 팩스, 복사기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종이 사용량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수롭게 보이지 않는 종잇값도 대량구매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KT는 ‘페이퍼리스 사무실’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적인 보고서나 서류들을 출력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보고한다. 회의가 진행되기 전, 직원들은 이메일로 자료를 서로 주고받고, 회의는 노트북을 보며 진행하고 있다. 또 사원들 간의 의사소통은 자체 개발한 ‘아이맨’이라는 업무용 메신저를 적극 활용한다.

 복사용지 외에 기업에서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종이제품은 아마도 종이컵일 것이다. 중소기업 광주요는 그릇을 생산하는 회사답게 사내에서는 종이컵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생산하다 생긴 불량제품이나 시제품을 사내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온전한 제품은 아니지만 자기 그릇에 차를 마시는 광주요 사원들의 모습이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는 다른 기업 사원들에 비한다면 우아해 보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300명의 ‘에너지지킴이’가 활동하고 있다. 순번제로 돌아가는 그들의 역할은 부서 내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가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개선하는 일.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조명에서부터 에너지절약 홍보 및 계몽활동까지 모두 그들의 몫이다. 물류창고의 나트륨등에 타이머를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냈던 한 ‘에너지지킴이’는 포상을 받기도 했다. ‘에너지지킴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은 비단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사무실 각 층별로 1명의 에너지지킴이를 두고 있다.

 에너지 비용절감을 위한 노력은 하늘에서도 이뤄진다. 대한항공은 최적의 경제항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나라의 상공을 지날 때면 영공통과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될 수 있으면 공해상을 지나는 항로를 선택해 왔다. 하지만 오석중 차장은 “최근 기름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바람에 약간의 영공통과비를 지불하는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이 비용절감의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대한항공은 지난 1년 동안 300억원의 기름값을 아꼈다.

 비행기가 하늘의 운송수단이라면 땅에서의 운송수단은 자동차다. 최근 사내에서 자체적으로 자동차 2부제나 10부제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 다. 특히 공사·공단을 중심으로 업무용차량의 경차 구입 바람도 불고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는 342대의 업무용차량 중 290대가 경차다. 또 한국토지공사, 한국철도공사, 에너지관리공단 등은 경차 전용 주차장을 마련해 방문객과 직원들의 경차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에너지절약을 통한 비용절감은 회사에게도 이익이겠지만, 직원들에게도 짭짤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포스코는 사내 인트라넷에 에너지절감 아이디어를 모으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중 현업에서 사용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들의 복지카드에 마일리지를 적립해 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용절감 하고 싶다면 바꿔라!

 비용절감을 위해 시설을 고치거나 아예 바꿔 버리는 기업들도 많다. 한국조폐공사는 제지 생산 후 발생하는 폐수의 재활용 능력을 600톤에서 2000톤으로 늘려 연간 1억9700만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관리하는 인천국제공항의 경우는 애초에 ‘인버터형 승강 설비’나 ‘자연채광을 활용’하는 에너지 절전형으로 건설됐다. 또 세계 최초로 항공기 운항 스케줄에 의한 조명자동제어시스템을 개발해 매년 4억원을 절감하고 있으며, 지상에서 항공기에 전원을 공급해 주는 회로를 재설계해 연간 6900만원의 비용을 아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공단의 성격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를 뛰어넘어서 ‘안 쓰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난방비 절약을 위해 내복 입기를 권장하고 있으며, 야간시간대의 음료용 자판기는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등 다양한 비용절감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MP3 제조업체인 레인콤은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잉여 문구들을 모아서 직원들에게 재배부하고 있다. 또 업무상 많이 사용하던 퀵서비스를 최대한 줄이고 택배를 활용해 비용절감을 하고 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은 다른 기업에게도 귀감이 된다. 그리고 비용절감을 위한 30개 기업의 끊임없는 노력과 사원들의 적극적인 동참. 그것이 코스트다운의 비결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