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2005년 추석호) 줄거리 : 아들 없이 딸만 다섯인 한씨 집안의 셋째 사위 경호와 셋째 딸 한공녀는 알부자인 장인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30대 후반의 나이에 임신을 시도한다. 막내 내외가 바뀐 가족법을 이용(?)해 ‘아들을 낳을 경우 한씨 성에 등록시키겠노라’ 공언한 것이 시발이었다. 온갖 노력 끝에도 임신에 실패한 경호 내외는 추석날 마흔다섯 나이인 맏딸의 불룩한 배를 보고 경악한다….
 2006년 설을 맞이하는 이경호의 아내 한공녀는 한편으로는 슬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쁘고 신났다. 부산의 큰언니가 임신중독으로 죽을 뻔했다가 죽은 아이를 낳고 간신히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큰언니 부부는 해서는 안 되는 모험을 했다. 마흔다섯에 아이를 가지려고 들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천행이다.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복이란 게 있는 법이다. 부산 언니네의 경우를 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복은 억지로 불러올 수가 없고, 남의 것을 빼앗을 수도 없다. 자기 분수대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의 몸은 물에 떠 있는 배와 같아서 분수 밖의 복을 싣고 있을 수 없다. 분수 이외의 복을 실으면 배가 전복되어 버린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복을 생각하곤 했다. 영검한 사주쟁이들이, 그녀가 중년 들어서면서 큰돈을 움켜쥐고 살 사주팔자라고 말했다.

 차창 밖에 눈보라가 휘날렸다. 벚꽃잎처럼 흰 눈송이들이 팔랑거리며 차창을 때렸다. 이 겨울의 눈은 낭만 수준을 한참 지나 버렸다. 지긋지긋한 폭설과 살인적인 재난으로 자리했다. 크리스마스를 폭설 속에서 보냈는데, 이번 설도 눈 속에서 보내게 될 모양이다.

 그러나 남들은 눈을 지긋지긋해 할지라도, 친정집 마루에서 눈벌판 위로 쏟아지는 새해 새 아침 햇살을 바라보면 가슴이 벅찰 듯싶다.

 시어머니와 차례를 지내는 둥 마는 둥 하고 남편을 재촉해 호남고속도로 나섰다.

 그녀의 배는 바야흐로 둥둥하게 불러 있었다. 남편 이경호가, 그렇게 무거워진 몸으로 어떻게 천리 밖의 친정엘 간다는 것이냐고, 이번 설은 쓸쓸하지만 조용하게 서울에서 보내자고 했지만 그녀가 앞장서서 털고 나섰다.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무거워진 몸을 자랑하고,  힘차게 놀고 있는 뱃속의 아기를 만져 보게 하고 싶었다. 한씨 성 가진 아기를 친정집에 제공할 사람은 셋째 딸 자신임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효도 중의 효도야”

 그녀는 입덧이 시작될 때부터 남편에게 철저하게 함구를 하도록 했다. 점을 치니, 소문을 내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아는 형제들은 아무도 없었다.

 뱃속에 아들이 들어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의사에게 초음파검사를 한 소견을 물었더니, 의미 깊은 대답을 했다. “큰 잔치 벌일 준비를 하기만 하면 될 듯싶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들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보란 듯이 아들 낳아서 한씨 성을 달아 친정아버지 앞에 바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갈 데 없이 우리 아기 것이 될 터이다. 이제 남편은 소원대로 강남 요지에다가 일식집을 차리게 될 것이고, 나는 아기를 낳아 건강하게 키우기만 하면 된다. 가족법 개정은 참으로 잘한 것이다. 딸만 일곱인 친정아버지도 이제 한씨 성 가진 후계자를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흘긋 남편의 옆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달리지 말고 천천히 가다가 휴게소 서너 군데에 들어가서 쉬어 가자. 안전처럼 좋은 것은 없어. 우리 아기를 위해서도 그렇고…‥.”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고, 어깨는 쳐져 있었다. 그런 남편을 위로하고 싶어 그녀는 농담하듯 말을 건넸다.

 “나, 나이 들어서 아기 낳는다고 당신 우울해 하지 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은 효도 중의 효도이고, 또 일종의 사업이니까.”

 그녀의 말에 남편은 대꾸하려 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만 했다. 다시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앞만 응시한 채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눈치를 챈 것일까.

 검사를 한 결과 남편의 정자는 드물었고, 몇 개 있는 것도 기운차지 못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정관을 묶어 놓은 남자의 경우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남편의 정자에 희망을 걸 수 없었다. 의사에게 은밀히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아 시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상적인 성 행위를 통해 남편의 정자를 받지 않고 비밀스럽게 짐승처럼 얼굴도 성도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받는다는 게 가책이 되고, 수치스럽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뱃속에는 아기, 가슴속엔 무지개

 스스로를 타일렀다. ‘정자가 누구의 것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을 수태하여 낳는 모체가 아버지의 딸이면 그만 아닌가. 그런 사실을, 당사자인 내가 죽어 널 속에 들어갈 때까지 함구하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이 자기의 정자를 수태한 것이라고 믿게 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막연한 어떤 예감으로 말미암아 기운이 빠져 있는 남편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당신, 요즘 그 집 주방일이 너무 힘든가 봐. 무력하고 우울해지고, 걸핏하면 짜증스러워하고….”

 “나 아무렇지도 않는데…, 아마 술을 자주 마셔서 좀 꺼칠해 보일 뿐이겠지.”

 그녀가 남편의 한쪽 팔을 쓸어 주며 말했다.

 “자기, 조금만 참아. 그럴듯한 자리에다 일식집 내고 사장 노릇하면서 주방 일을 직접 보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신명도 나고, 활력이 생겨서 얼굴도 펴지고 그럴 것이여.”

 눈보라가 차창 앞을 가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제 당신은, 남의 집 주방장 신세 벗어나 사장 노릇을 하면서 신나게 돈 버는 꿈만 꾸면 돼. 그때 나 괄시하면 안 돼, 알아? 그때 싱싱한 것들 엉덩이 툭툭 치고 그러면은 당신 죽는 줄 알아, 알았어?”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들은 팔랑거리면서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 돼지 잘 가르쳐서 유학 보내려면 많이 참고 기다려야 해. 이번에 친정 갔다가 와서는 당신 술 끊고 보약을 좀 먹어야겠어.”

 뱃속에서 아기가 발길질을 했다. 자동차가 삼켜대는 아스팔트길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 자식이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네. 활기찬 게 영락없이 당신을 닮았는가 봐.”

 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 한 달 전에 대전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떠올랐다. 대전 동생은 딸을 낳았다고 했다.

 “대전 막내에게는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이번에 딸을 낳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것들은 허겁지겁 아들을 하나 더 낳고, 또 아들 하나를 낳으려면 앞으로 최소한 5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녀는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부산 언니가 실패한 것 보고 누가 감히 친정집에 아들 낳아 바치겠다고 도전을 하겠어?”

 그녀의 가슴에는 무지개처럼 울긋불긋한 꽃타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폈다.

 ‘주식이 1400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버지의 돈은 얼마나 불어났을까. 아버지에게는 아들 복은 없지만 재산 복은 있다. 그런 아버지의 복을 이제 내가 가져와야 한다.’

 남편은 여산휴게소에 들어가서 커피를 뽑아다 마셨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는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리고 나서 고개 운동을 하고, 팔 휘둘러대기와 무릎 굽혀 펴기를 하고 나서 심호흡을 했다. 그것은 남편이 기분 전환하는 방법이었다. 기분 전환이 되면 남편은 장인·장모와 동서들 앞에서 어허허허 너털웃음을 웃고, 너스레를 떨고, 넉살스럽고 수다스러워질 것이다.

 눈은 이제 그쳤다. 남편은 차에 올랐다.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다들 와 있겄지?”

 부산 언니의 건강은 어떠할까. 사산아를 낳은 뒤로, 형부 따라다니면서 채소 장수도 못 할 정도로 깡말랐을 터이다. 부산 큰언니는 친정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와 아버지를 안고 엉엉 울어댈 것이다. 대전 막내는 무슨 선물을 사 가지고 왔을까. 아들 낳아 바치지 못하는 대신 선물 공세로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남편은 장인어른을 위해 물개 신에서 추출한 정력제와 홍삼정을 사고, 그녀는 친정어머니를 위해 골다공증에 좋다는 석류 추출액을 샀다. 그리고 사과 한 상자와 귤 한 상자를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녀는 가슴이 뿌듯했다. 무지개 하나를 안고 있었다. 뱃속에서 놀고 있는 아기가 그것이다. ‘나처럼 큰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그녀는 속으로 으쓱해 했다.

 수문 마을을 지나고 율산 마을로 들어섰다. 언덕 위에 있는 친정집 골목 한쪽에 부산 언니네 트럭이 서 있고, 마당 안에는 동생들의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다.



 부산 언니의 달떡 같은 아기

 그들의 차 엔진 소리를 들은 광주 언니와 동생들이 마중을 나왔다. 한데 부산 언니가 웬 달떡 같은 아기를 안은 채 나오고 있었다. 아기는 두 개의 토끼 귀가 달린 하얀 모자와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한데 붙은 옷에 감싸여 있었다. 광주 언니와 동생들이 배부른 그녀를 보고 눈이 휘뒹그러졌다. 물론 부산 언니도 박힌 듯 선 채로 그녀를 보았다.

 “아니, 언니! 임신했네?!”

 대전 막내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힘들지 않냐? 얼굴이 아주 환하고 이쁜 것 보니 아들을 낳을 모양이다.”

 광주 언니가 그녀를 부둥켜안아 주면서 말했다. 그녀는 부산 언니가 안고 있는 아기가 궁금해 “부산 언니 누구네 아기를 안고 있어?” 하고 물었다. 그러자 장흥 동생이 말했다.

 “그 사연 소설책 한 권으로도 부족해. 얼른 안으로 들어가기나 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절을 하고 나서도 그녀는 부산 언니가 안고 있는 아기의 사연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내색을 알아차린 나주 동생이 말했다.

 “부산 언니네 아기, 업둥이라네.”

 보성 동생이 덧붙여 말했다.

 “큰언니가 여덟 달 동안이나 고생하다가 실패하고,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맥이 빠져서 누워 있는데, 한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꽝꽝 두들겨서 나가 보니, 사람은 없고 저 아이가 강보에 쌓여 있더라네. 그래,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친정 어머니, 아버지한테 달떡 같은 아기 낳아 줄려고 한 큰언니 효심에 감동해서 아기를 데려다준 것이라 생각하고 저렇게 키운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