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설팅회사 설립한 LG 출신 CEO들

“여유 없었던 현직의 경험 전수 가장 큰 보람”



 오세희 GS홈쇼핑 전사장과 신흥순 LG패션 전사장. 이 두 사람은

98년과 99년 은퇴후 자신들의 경영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면서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나이 먹었다고 다 보수, ‘꼰대’가 아니다. 노인들이 그냥 노는 사람이거나 필요 없는 자원이 아니다.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본 시니어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다.”

 LG그룹 사장 재직 시절부터 절친했던 오세희(65) GS홈쇼핑 전 사장과 신홍순(65) LG패션 전 사장은 퇴임 이후 조금씩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시니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다.

 LG그룹에서 30년간 재직하면서 GS홈쇼핑(옛 LG홈쇼핑) 대표이사를 역임한 오세희 전 사장은 요즘 수십년간 쌓아 온 기업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실질적인 경영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LG그룹 최고경영자를 지낸 15명이 설립한 ‘그린우드21’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정책 자문과 문제들에 대한 해결사 노릇이다.

 그린우드21은 LG그룹 출신들이 만든 컨설팅회사다. 이희종 전 LG산전 사장, 정효조 전 LG엔지니어링 사장, 신승교 전 LG건설 사장 등 LG그룹에서 퇴임한 CEO들이 전부 모여 있다. 99년 15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20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그동안 퇴직한 사장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20명의 전직 CEO들은 중소기업의 두뇌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경영 노하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그동안 경제 발전에 미력이나마 공헌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개척에 참여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갖기 위해 시작했다.

 오 전 사장은 새로운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이들의 경영 자문은 거의 무료로 이뤄지고 있다. 자원봉사란 얘기다. 엄밀히 말하면 돈을 버는 창업은 아니다.

 그는 보통 1년에 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상담하는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고 한다. 기술을 확보했지만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해외 마케팅·노사 문제, 품질관리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다. 그가 사원으로 입사,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30년 동안 고민했거나 다뤘던 문제들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정통하다.

 안산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에서의 일이다. 인사 체계, 성과 평가와 관련된 문제로 고민하던 인사담당부장이 첫마디를 떼자마자 오 전 사장이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맞혔다고 한다. 이미 20여년 전에 같은 문제로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리고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소상히 가르쳐 줬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30년의 경영 노하우 등을 꿰뚫고 있는 것은 입사 때부터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뤄질 때마다 기록해 두는 습관 때문이다. 그의 노트 중에는 30년된 것도 있다고 한다.

 보수나 꼰대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처럼 그는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이 뭘 고민하고, 원하는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을 공부하고 있다. 한 달에 5~6차례 이상은 조찬세미나에 참석한다.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다. 또 중소기업을 방문, 컨설팅을 해주다 보면 새로운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배우기도 한다. 지식을 채우는 데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요즘도 현직 때처럼 새벽 5시30분이면 기상한다. 조찬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그린우드 사무실에 나오는 시간은 대략 오전 9시30분. 일정에 따라 중소기업을 상담하거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전경련 중소기업 자문 봉사단 등 4~5군데를 다닌다. 현직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녁 6시 이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또다른 인생 살아

 지난 3월30일 재즈공연은 드럼과 색소폰을 빼는 대신 그 자리에 사물놀이와 대금·소금을 배치하는 파격을 선보인 재즈공연이 선보였다. 이날 공연은 퓨전 문화의 가능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연주회로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수준 높은 음악회를 무료 제공한 것은 CMG의 신홍순 고문.

 신홍순 전 LG패션 사장은 아직도 패션업계에 발을 담고 있다. 그는 99년 은퇴 후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의상 관련 과목을 5년간 가르친 후 패션 지원 기업인 컬쳐마케팅그룹(CMG)을 설립했다. 그의 말대로 운영은 젊은 사람들이 하지만, 사업 아이디어와 조직 관리 등은 고문을 맡은 그가 담당한다.

 CMG는 패션 관련 홍보 및 마케팅, 패션쇼, 패션모델 등 패션 관련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지난 3월의 재즈파크도 신고문의 아이디어로 이뤄졌는데 이색적인 공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패션엔터테인먼트 사업은 그가 꼭 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패션이 문화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CEO 시절 알록달록한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직접 LG패션 광고를 찍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랫동안 패션업체 대표를 해서 그런지 패션 감각이 남다르다.

 그는 현재 한국패션협회 고문과 예원예술대의 문화·영상창업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중국에서 가장 큰 의류회사의 고문이기도 하다. 1년에 4~5차례는 중국을 직접 방문한다. 그는 최근의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중국 진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의 자문 역할도 수행할 생각이다. 그의 18년간 패션업계의 노하우가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신고문은 “무엇보다 돈을 떠나서 내 시간을 할애해 내가 알고 있는 일을 전수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노년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 뭐든 자신이 직접 하라는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지하철도 탈 줄 모를 정도였다.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대기표를 뽑아 오라는 은행원의 말에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주에 있는 예원예술대에 강의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이용할 정도다.

그의 수첩은 현직 때와 마찬가지로 빽빽하다. 저녁 시간을 가족에게 할애하는 오세희 전 사장과 달리 그는 예전 CEO 때처럼 저녁 약속이 많다고. 그래서 가족들과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는 적극적인 생활이 건강한 생활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신들을 과장, 부장 시절 잘 살아 보자며 일만 했던 세대라며 그때는 삶의 질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문화 생활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회상한다.

 지난 4월8일 LG클럽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던 현직의 피눈물 나는 성공과 실패의 고된 훈련 과정을 후세에게 전수한다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은퇴 후 조경사업 뛰어든 강홍석 ‘행운조경’대표

 “퇴직 후 8년간 시행착오 끝에  66세 나이에 제2인생 창업”



 정리해고·명예퇴직은 이제 일반 명사가 됐다.

 예상대로라면 수명이 20년 이상 더 늘어난다는데, 나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60대 중반 나이에 조경 사업을 시작한 강홍석씨(66)의 시행착오 경험담에서 배워 보자.



 “우리 세대야 어디 노후 준비란 개념이 있었나요. 그저 회사 생활 열심히 해서 승진하고, 그럼 다 잘되는 거라 믿었지. 69년에 모토로라에 입사해서 28년간 일했습니다. 제조부장을 마지막으로 했으니까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 왔어요.”

 강홍석 사장이 모토로라를 그만둔 건 1997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외환 위기 이전이라 퇴직 후 계획도 ‘뭘 한들  못하겠느냐’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마침 함께 퇴직한 엔지니어 쪽 동료가 반도체 장비 관련 무역을 같이 하자고 제의한 상태이기도 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낸 그는 석달 동안 여행과 휴식을 취했다. 강사장은 “말 그대로 신나게 놀았다”고 했다.

 “무역 관련 사업을 막상 준비해 보니 마케팅 분야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기술 파트와 품질관리 쪽 사람 둘이 뭘 해보려니 정작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몰랐던 거죠. 그러던 참에 생산성본부에서 품질 혁신 부분에 대한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어요. 모토로라는 80년대에 이미 식스 시그마 운동을 통해 품질 관리에 성공을 했기 때문에 저한테 연락이 닿았더군요. 2년 정도 강사로 나가면서 은퇴자를 위한 컨설팅업체에서도 컨설팅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해야 적합하겠더라고요.”

 퇴직 후 3년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일할 의욕이 충만했지만, 실제로 그가 그동안 직장에서 쌓은 경험과 능력이란 건 효용 가치가 짧았다. 강사장은 “실제로 나와 보니 내가 얼마나 안전한 직장에서 평탄하게 살아 왔는지를 알았다”고 했다.

 “대비가 너무 없고, 안일했던 거죠. 축구로 치면 전반전이 끝난 셈이었는데 하프타임에 후반전을 맞을 작전을 잘 세우지 못해 막상 내가 그 입장(퇴직)이 되니까 실천이 어렵더군요. 뭐 다른 걸 할 게 있을까 둘러봤는데, 진짜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만 보고 살 게 아니었구나’하고 후회를 했죠.”

 그가 조경이라는 전혀 낯선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된 건 ‘모토로라 퇴직자 모임’을 통해서였다.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던 그는 회원들에게 회원 소식지를 만들어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회원 중 조경 사업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퇴직한 지 3년만에 제법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토로라에서 관리 업무를 하던 그 분은 공장을 파주로 이전하면서 회사의 조경 조성을 담당하게 됐고, 조경업자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업자를 통해 조경을 배운 그는 퇴직하며 조경회사를 인수, 운영해 오고 있다.

 “최근 아파트에 환경 개념이 도입되면서 조경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저도 조경이 어떤 분야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그분을 만나 얘길 듣고, 조경 업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죠.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직접 농장에 가서 일도 하면서 말이에요.”

 평생 서류와 씨름만 해오던 그는 하루 아침에 삽과 곡괭이질, 트럭 운전이란 전혀 낯선 환경을 맞게 됐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나무나 석재를 옮기거나 싣는 작업을 했다. 강사장은 “당시엔 나에게 맞고 안맞는지 확인하고 잴 여유는커녕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육체 노동이다 보니 아무래도 힘이 많이 달렸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이 일을 통해 뭔가 나만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석재를 옮기고 심으면서 나무 종류엔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를 하게 되었죠.”

 가족들에게는 조경 일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년이 지나서야 아내에게 “조경일을 배우고 있다”고 간단히 알렸다. 공연한 걱정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육체노동은 저절로 군살이 빠지게 했고, 얼굴빛도 구릿빛으로 변해 갔다.

 “3년 정도 별다른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퇴직 후 모아 놓은 돈을 고스란히 빼먹어야 했죠. 그래서 재정적인 부담도 조금은 있었고요. 조경 일이 힘들긴 했지만 보수도 있었고, 장차 내가 이 일을 할 것이란 생각에 집에 와서도 인터넷으로 조경에 관한 정보를 찾는 등 부지런을 떨었어요.”

 현장에서 꼬박 3년 ‘조경 사업’배워

 강사장은 지난 해 10월, 행운조경이란 조경회사를 차렸다. 본인 소유의 땅이나 수목·석재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조경을 필요로 하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그 자신이 영업을 하는 일종의 영업회사라고 했다. 3년간 ‘조경 밥’을 먹으며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겨 시행한 결정이었다.

 “일하면서 나무는 어디에, 석재는 어디에 있고 가격은 어떻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모토로라에서 품질 관리를 하면서 다루는 게 조그만 반도체인데, 이곳은 석재나 관상수 같은 크고 무거운 걸 다루니까 사람들 성향 자체가 달라요. 뒤늦게 세상 공부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3남매 중 결혼해 독립한 두 자식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의 결정에 든든한 응원군 노릇을 한다. 말뿐만 아니라 용돈도 지원해 준다. 강씨는 그런 자식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대견하다.

 “저랑 비슷한 상황에서 여전히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나이에 웬 미친 짓이냐’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멀쩡한 사지육신 가지고 그렇게 판판이 놀고 있는 모습이 더 한심하거든요. 그럴 땐 속으로 이렇게 말하죠. ‘그래,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 두고 보자’고요.”

 현장 경험을 통해 판이 돌아가는 것도 알았고,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뛰어들었지만 아직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조경업 특성상 봄부터 가을까지 일이 많은데, 그는 지난해 10월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았다. 겨울 동안 준비하고 공을 들인 끝에 계약 성사 단계에 있는 일들이 몇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빠르면 올해 안에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조심스런 낙관을 펴보였다.



 눈 크게 뜨고 미리 준비해야

 “이 일을 하면서 제 자신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분야라 학력이 짧은 분들도 많아요. 처음엔 ‘제대로 공부도 못한 양반이…’ 하는, 얕보는 마음을 저도 모르게 갖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들이 그 분야에선 다 제가 배워야 할 스승이에요. 그럴 때마다 겸손해져야 한다고 제 자신에게 되뇌곤 했죠. 아마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늙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의 목표는 수익을 얻어 자신의 묘목을 심을 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사업에 필요한 건축 관련 자격증, 조경사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감만 충만한 건 아니다. 여전히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을 하루하루 안고 산단다.

 “온상에서만 살아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저에게 다시 4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저처럼은 살지 않을 겁니다. 당시 저에게는 품질관리사 자격증이 있었어요. ISO9000, ISO14000 같은 부문이었죠. 회사를 다니면서 품질 관리 전문가가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그만 잊어버렸죠.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아, 그때 그쪽 방면으로 좀더 공부를 해둘 걸’하는 후회가 들었어요.”

 강사장은 “은퇴를 하더라도 자신이 해오던 일과 연관이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인데, 강사장은 역량이란 것이 ‘나만의 확실한 무기’일 때 사회에서 쓰임을 얻더란다.

 “쉽게 예를 들면, 미국에선 용접 기능을 지닌 사람이 무척 귀하게 쓰여요. 보수도 많죠.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저도 한때 용접을 배워 볼까 했는데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어요. 조금만 일찍 눈을 돌리면 세상에는 기회가 무척 많아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얼마나 준비하느냐가 결국 관건이죠.”

 강사장은 요즘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가 아침 7시에 나오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옷도 나름대로 젊게 입고, 염색을 하고 헤어스타일에도 신경을 쓴다. 고객을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아직 나는 젊고 일하기 충분하다’는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요즘 준비 없이 퇴직을 맞거나 불안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선배로서 저는 ‘생생한 체험’과 ‘자기만의 노하우’ 두 가지를 갖는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하나도 두려울 게 없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저보다 젊은 세대들은 저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제대로 된 인생의 후반전을 뛰길 바랍니다. 그래서 멋지게 승리해야죠.”



 ■ 노인만 고용하는 실버택배업체 노인문화택배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무력감 ‘배달의 기수’되어 떨쳐 버렸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마당에 노인 실업 문제를 얘기하면 한가한 소리란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인 수의 급증은 사회 복지 비용 부담 증가를 낳고 있다. 노인 취업 현장을 찾았다. 

   

 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걸어서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건물 2층에 ‘노인복지택배’란 간판이 걸린 작은 사무실이 있다. 5~6평 남짓한 실내에는 3대의 전화기가 놓인 책상 하나와 벽을 등지고 7~8개의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벽에는 외투나 모자, 가방 등을 걸 수 있도록 옷걸이가 가로로 길게 붙어 있다.

 오전 10시, 사무실에는 6명의 직원들이 앉아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배 사무실을 운영하는 최영해(71) 사장은 전화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직원이 따로 없어 내가 전화를 받는다. 다른 분들과 먼저 얘기를 나누라”고 했다. 인상 좋은 최주하씨(68)가 손짓으로 빈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했다. 그는 “방송국 기술직으로 18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어 취재 요청이 오면 언론 담당을 한다”는 농담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2년 전에 현업에서 은퇴를 했어요. 남들보단 오래 일했죠. 65세까지 직장 생활을 한 셈이니까. 방송국 경력을 포함해서 40년 가까이 현업에 있은 셈이에요. 일도 열심히 했어요. 40년 동안 휴가라곤 모르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은퇴하면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노라 마음먹었지. 처음엔 좋더라구. 해외여행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그런데 딱 3개월 놀고 나니까 그게 아니야.”



 할 일, 갈 곳 없는 무력감 견디기 힘들어

 딱히 할 일이나 갈 곳이 없고 나니 밤늦게 잠들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시작됐다. 생활 리듬이 깨지자 무기력해졌고,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매일 눈을 떴을 때 마땅히 할 일이나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조병동씨(69)도 “나이 먹어 보지 않고는 그 무력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고 거들었다. 무력감에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던 최씨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실버취업박람회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지금의 ‘노인복지택배’의 최영해 사장을 만났다. 최사장 역시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다가 노인 지하철 무인 승차 혜택을 사업으로 연결시킨 상태였다. 자격 조건은 65세 이상,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건강만 있으면 됐다. 조건 중 나이 하한 제도는 65세 이상에 한해 무료 승차권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입사 후 최씨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작년 7월부터 나왔으니까 10개월째네. 놀면서 생긴 병이 싹 나았어. 무엇보다 사는 게 괴롭지 않고 재밌어졌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쯤 끝나는데, 한 사람당 하루 3건 정도 배달을 해. 수입은 40만원 정도야. 돈 벌고 건강과 활력도 찾으니 좋지.”

 노인복지택배에는 최주하씨를 포함, 모두 19명이 택배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노인들이 지하철로 물건이나 서류를 배달하다 보니 5kg 이하 물건만 배달한다. 주로 서류나 꽃배달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꽃배달은 대부분 젊은 여자 손님들한테 가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용모도 신경을 써요. 술·담배 냄새가 나면 안되기 때문에 근무 시간중 음주는 절대 안돼요. 또 친절해야 하죠. 내가 왕년에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못해요. 그런 사람은 일을 하다가도 얼마 안가 그만둡니다.”



 노년의 일 삶의  활력 되찾아 줘

 최주하씨 옆자리에서 간간이 미소를 띠며 이야기만 듣고 있던 분이 배달을 나갈 차례가 됐다. 의뢰인의 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한 뒤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최씨는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은퇴한 분으로 연금만 200만원 넘게 받는다”고 했다. 일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노인들에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나와 일을 한다고.

 “여기도 직장이라 한 달에 한 번은 회식도 합니다.(웃음) 다들 좋은 분들이에요. 건강하니까 사고도 건전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대부분 등산을 하거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합니다. 아마 어지간한 젊은이들보다 체력이 더 좋을 겁니다.”

 노인복지택배 요원들은 지하철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간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하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다. 물건을 배달하러 가보니 아들 친구가 알아봐서 당황했던 일, 은퇴 전 다니던 직장에 배달을 갔다가 재직시 말단 사원이던 후배가 이사가 되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대던 그를 앞에 두고 그만 웃었단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꽤 값나가는 물건이나 분실하면 크게 낭패를 보는 물건을 배달할 때가 있어. 여권 같은 건 잃어버리면 여간 낭패가 아니지. 40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떨어본 적 없는 내가 물건을 무릎 위에 놓았는데 덜덜 떨리는 게 보이더라니까.”

 조병동씨는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3명은 결혼해 독립하고,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또한 비슷한 이유로 택배 일을 시작했지만 그는 한 달 동안 버는 40만원을 통해 새삼 돈의 가치를 배운다고 했다. 배달 한 번에 4500원을 받는데, 점심값으로 4000원을 쓰는 데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이 들어도 돈은 항상 필요해요. 자식들에게는 아무리 줘도 아깝지 않으니까. 저희들도 뭔 일 생기면 부모가 으레 주려니 하는 것 같고. 노후 준비라는 게 수십억 자산가가 아닌 이상, 아무리 잘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기 나오는 분들은 다들 몸이 건강하고 고정 관념이 없는 분들이니까 ‘건강한 노인’들인 거죠.”

 조병동씨 또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가 일할 곳이 있다는 점이 일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비용이 적게 드는 시골에 내려가 살 생각을 해보지 않았느냐”고 하자 “도시 사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미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 네온사인을 오래 보지 못하면 오히려 병이 난다”고 했다.

 “젊을 땐 막연하게 그런 삶을 꿈꾸지만 그건 유토피아예요. 동료, 친지, 친구들 다 도시에 있는 데다 시골 경험도 없는 사람은 지방이나 시골에 가서 살 수 없어요. 어떤 지역에서 사느냐 하는 문제보다 사람이 없으니까. 주변에도 보면 그렇게 갔다가는 다들 돌아오더라구요.”



 “조금만 신경 쓰면 노인 고용 문제 풀 수 있어”

 조병동씨의 가족 중 딸은 아직도 아버지가 택배 요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 한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나아진 편이어서 처음엔 “창피하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40만원 가량의 수입으로 그는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각종 경조사 비용도 챙기고, 용돈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 들어도 돈 들어갈 일 생기는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을 하면 상대적으로 덜 쓰기 때문에 2배를 버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하던 중 조병동씨에게 배달 주문이 떨어졌다. 걸어 두었던 가방을 챙긴 조씨는 최영해 사장으로부터 물건을 인수받을 장소, 물건을 건넬 장소를 확인한 뒤 챙모자를 반듯하게 고쳐 쓰곤 사무실을 나섰다. 손양길씨(70)는 출근이 조금 늦었는지 10시반쯤 사무실에 나왔다. 집이 일산이라고 했다. 그는 택배 사무실에 나와 근무한 지 1년6개월 가량 된 ‘고참급’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이젠 사람들 인식도 많이 변한 거죠. 옛날 같으면 창피해서 이런 일 한다는 걸 속였다고 해요. 저도 만족스러워요.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일하는 자체로도 건강하다는 상징이니까.”

 정오가 가까워 오자 주문 전화가 뜸해졌다. 내내 주문 전화를 받던 최영해 사장은 전화 받는 직원 하나 쓰려고 해도 인건비가 만만치 않아 쓰지 못한다며 “다들 걸어 다녀 건강한데, 좁은 책상에 하루 종일 붙어 있으려니 내 건강은 별로 안 좋아졌다”며 웃었다.

 “저도 여기 나오는 분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은퇴 이후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이 사업을 구상했죠. 돈을 벌기보다는 그럭저럭 사무실을 운영해 나가는 정도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 전화 주문을 받고 있겠습니까?”

 노인 인구 증가와 그 대책에 대해 최사장은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노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명이라도 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공짜로 도와달라는 게 아닙니다.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예요. 이런 택배 사무실만 해도 일감을 조금 더 받으면 더 많은 분들이 와서 일하며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어요. 공공 기관이나 업체의 일감 중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배달물도 있을 겁니다. 그런 걸 저희 업체 같은 곳에 주면 그것이 곧 노인 문제를 푸는 방법이에요.”

 “말만 사장이지 꼼짝 못하고 앉아서 감옥 생활을 하는 셈”이라는 최영해 사장은, 그러나 일하고자 하지만 써주는 곳이 없어 무력감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활력을 되찾는 분들에게서 보람을 찾는다. 잠시 후 다시 택배 의뢰 전화벨이 울리자 최영해 사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에~택배입니다.”



 ■ 은퇴자 창업·재취업 지원

 퇴직자 보듬어 ‘평생현역’키운다



 퇴직한 50대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사오정’ ‘오륙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준비도 없이 퇴직하게 되면 그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직지원제도(아웃플레이스먼트)를 통해 퇴직자들은 조금이라도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정년 퇴직자를 위해 마련된 재취업·창업 프로그램이 새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정년퇴직하는 게 착잡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과감하게 창업을 할 수 있었다.”

 포스코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다 지난해 6월 퇴직한 이경희(56)씨는 의료기 전문 대리점을 창업, 이제는 어엿한 사장이 됐다. 이씨는 회사측에서 퇴직을 1년여 남겨 놓은 직원들을 위해 재취업과 창업을 돕는 실버 플랜 계획의 첫 교육생이었다.

 창업 목표 설정을 해놓고는 막막했지만 다양한 세미나에 참석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무엇보다 창업에 필요한 정보들을 많이 얻었고, 교육 기간 동안 자격증(열관리사)을 취득한 것이 큰 힘이 됐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과 어울려 주제를 놓고 토론했던 것이 당시엔 귀찮았지만 나중에 큰 자산이 됐다고 한다.

 이씨는 회사에서 떠날 때 받은 퇴직금 가운데 8000만원을 투자, 의료기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며 월 300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 10명의 교육생들과 모임을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시로 만나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포스코가 200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정년퇴직자 대상 인생재설계 프로그램 ‘그린라이프 디자인’ 과정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기업 중 재직하고 있는 정년퇴직 예정 직원을 대상으로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다.

 강하고 남성적인 철(Steel)의 이미지와는 달리 포스코의 인사 정책은 유연하고 부드럽다. 특히 퇴직자 지원시스템은 글로벌 철강 기업으로서의 명색에 걸맞게 세계 어느 기업보다 선진화돼 있고 독창적이다.

 포스코의 전직 지원 시스템은 그 대상 및 퇴직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정년퇴직 예정인 생산직 주임 대상의 ‘그린라이프 디자인’, 다른 하나는 희망 퇴직을 원하는 간부급 사원의 전직을 지원해 주는 ‘포스코 전직 지원 센터’가 그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 프로그램 모두 재직자 대상, 즉 포스코의 울타리 안에서 지원되고 있다는 점, 또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됐다는 점이다. 특히 정년퇴직 예정자를 위한 ‘그린라이프 디자인’은 1년이란 긴 준비 기간을 준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기존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 비교적 단기간, 그것도 종업원들이 이미 회사를 퇴직한 이후에 일회성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과 비교해 볼 때 포스코의 이러한 차별화된 시스템은 국내 기업의 퇴직자 관리 프로그램 향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빨리 해치운다’식 접근 오히려 반감

 최근 2~3년간 불어닥친 경제 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구조 조정과 중소기업 도산 등으로 인해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이 일반화됐다. 일반 기업체에서 규정한 정년 연령은 높아지고 있으나, 반대로 정년퇴직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의 구조 조정 등이 맞물리면서 많은 청장년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령 인력 해소를 위해 조기 퇴직 등 단편적인 방법들을 써 왔다. 그래서 ‘386’ ‘사오정’ ‘오륙도’란 말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따라서 퇴직을 맞이하는 고령 근로자들을 위한 퇴직 준비프 로그램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로 진입한 우리 상황을 고려해 보면 고령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과 인력 활용 측면에서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준비가 시급하다. 퇴직 준비 프로그램은 퇴직 예정자가 퇴직 이전에 퇴직으로 인해 받게 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한마디로 ‘평생 현역’을 만드는 것이다.

 정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마치 사치쯤으로나 여겨지는 현실에서 기업이 정년을 맞는 퇴직자에게 온전히 1년이란 긴 준비 기간을 사내에서 지원해 준다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포스코의 퇴직 지원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활성화된 예가 드물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고령 근로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미흡할뿐더러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퇴직 준비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 정부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퇴직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하려면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과 근로자의 적극적인 참여, 정부의 각종 지원 등이 마련돼야 한다.

 퇴직은 인생에서의 다른 전환과 달리 매우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다. 준비되지 않은 퇴직이나 갑작스런 정리해고는 심각한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퇴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자는 심리적으로 퇴직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된다. 퇴직에 따른 상실감으로 인한 기업에 대한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포스코, 8개 모듈에서 전문가가 컨설팅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남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과 종업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자발성과 협력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퇴직 지원 프로그램의 효과는 최대화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퇴직자를 위탁 교육시키는 것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김훈태 DBM코리아 상무는 “‘빨리 해치운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반감만 키울 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종종 퇴직 지원 프로그램이 구조 조정을 효과적으로 달성키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IMF 사태 이후 인력 감축을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프로그램을  퇴직 지원을 위한 컨설팅이라기보다는 퇴직자의 불만을 없애기 위한 하나 의 상품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성공적인 퇴직 관리에 나서고 있는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포스코의 그린라이프 디자인은 현실적으로 기업 입장에선 현장에서의 인사 적체와 승진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도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밑바탕에는 기업이 퇴직자 문제를 사회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려는 마인드가 깔려 있다. 더 나아가 향후 고령 사회에서 국내 기업들이 나가야 할 향방에 선도적인 나침반이 돼줄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린라이프 디자인’은 2001년 10월 포스코의 전사적 교육을 담당하는 인재개발원과 세계적 전직 지원(Outplacement) 컨설팅업체인 디비엠 코리아에 의해 공동으로 기획됐다. 포항과 광양 두 지역에서 1기 입과를 시작으로 현재 7기에 이르렀으며, 지금까지 총 214명을 대상으로 성공리에 운용되고 있다.

 개인에게는 지금까지 직장 이름으로 대변되던 자신의 정체성을 무리 없이 되찾아 갈 수 있도록 차원 높은 교육과 상담 기회가 제공된다. 따라서 실제 서비스 대상자의 자부심이 대단할 뿐 아니라 호응 또한 급속도로 전파돼 현재 반장급까지도 확대 적용을 검토할 정도다. 이 프로그램은 전체 8개의 모듈로 기획돼 전문 컨설턴트들에 의해 모듈별로 각각 1대 1 개별 컨설팅과 포항, 광양 합동 워크숍 형태로 진행된다.

 각각의 모듈은 자신과 가족에 대한 심층적인 ‘진단과 변화 관리’, 건강, 일, 재정, 가족, 레저 등 균형 있는 삶에 대해 총체적으로 모색하고 실제 계획해 보는 ‘라이프 플래닝’, 목표 설정과 그에 따라 전략적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재취업, 창업 아카데미’와 ‘현장 학습’, 이밖에 ‘부부 동반 합숙 프로그램’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또 같은 경력 목표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나눠 소그룹 모임을 형성함으로써 이를 통한 테마 학습 발표의 장도 마련되고 있다. 이밖에도 정기적인 정보 교류회 등을 통해 발전적인 프로그램으로의 건의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모든 다양한 활동들은 상호 동질적이고 신뢰감 있는 공감대를 형성, ‘평생 친구’를 만들어 주는 보다 깊은 의미로 발전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체 프로그램이 단순한 새로운 경력에 대한 지원을 넘어서 그들의 공통된 특징인 ‘중년 후기란 생의 발달 단계상에서 오는 여러 과제들을 총체적으로 짚어 불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성공 개념을 ‘직업’으로 국한시키는 게 아니라 ‘일’과 ‘역할’의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보다 미래 지향적이고 넓은 의미에서의 퇴직자 지원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또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이론상의 교육과 상담뿐 아니라 테마별로 소그룹을 결성해 컨설턴트를 동반, 현장을 직접 함께 발로 뛴다. 또 각종 사외 교육을 통한 자격증 취득 기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 세상에 나가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성을 겸비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은퇴 프로그램으로 대상자 개개인의 다짐과 열의는 대단하며, 기수를 거듭할수록 국내에 이러한 형태의 퇴직자 지원 확산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한다.

 이들은 평생을 산업의 최전방에서 밤낮도 없이 묵묵히 일해 온 ‘우리 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비록 예정된 퇴직이긴 하지만 차가운 울타리 밖 세상으로 나가기엔 그들은 마치 어린애 같이 무방비 상태다. 고령 사회 진입의 초읽기 상태인 지금 포스코 ‘그린라이프 서비스’는 국내 기업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례로 자리잡고 있다.



 소문 듣고 고객수 늘어

 포스코 전직 지원 센터는 2002년 10월 서울, 포항, 광양 세 군데에서 동시에 오픈됐다. 외부 전문기관에 턴키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 간부급 중 희망 퇴직자가 대상자란 점이 그린라이프 서비스와 다르다.

 센터는 회사 외부에 상시적으로 설치돼 희망 퇴직과 동시에 전직을 계획하고 있는 대상자라면 퇴직 1년 전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등록할 수 있으며, 등록 고객은 등록 시점부터 각종 사무 편의 시설과 함께 6개월 동안 집중적인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서비스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은 디비엠의 전문 컨설턴트들에 의해 1대 1 개별 컨설팅과 그룹 워크숍으로 동시에 진행되며 감정 관리(Emotion Management)를 위한 심리 상담과 함께 심도 깊은 자기 진단이 기본이 된다.

 워크숍은 재취업, 창업을 주테마로 하나 이밖에 각계 전문가를 초빙해 재테크의 다양한 부분을 정기적으로 편성할 뿐 아니라 기타 레저, 건강 등도 함께 구성된다. 또 매월 팀 미팅, 외부 팀 빌딩 활동 및 소규모 그룹 상담을 통해 정보 교류와 고객 상호간의 단순한 친목을 넘어선 깊은 신뢰를 꾀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밖에 성공 선배를 초청해 그들의 산 경험을 공유하는 ‘선배와의 담화’와 고객 개인의 주특기나 관심사에 맞는 테마를 선택, 프리젠테이션을 주도하는 ‘고객 지식 공유 라운지’ 등은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질적인 동기 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서비스 대상자가 가장 많은 포항센터의 경우 고객이 주체가 돼 ‘포항 CTC(Career Transition Center)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자체 온라인 카페를 개설, 주요 관심사별로 소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센터가 오픈한 지 2년6개월이 지난 지금 초기·중기·최종 설문을 통한 고객 만족도는 ‘그린라이프 서비스’ 이상의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는 한편, 회사내 인지도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초창기 큰 기대 없이 센터 문을 두드리던 태도와 달리 지금은 ‘소문(?)’을 듣고 먼저 찾아오는 ‘고객(?)’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성공률은 6개월 기준 80% 수준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린라이프 서비스와 비교할 때 성공률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린라이프 서비스가 전체 성공자 중 30% 정도의 창업 성공률을 보인 것과 달리 센터의 창업 성공률은 50% 정도로 창업 비중이 현저히 높게 나타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장기적 비전을 위한 재투자로서 각종 교육과 학업을 연장하는 사람들도 18% 정도의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는 현실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라도 보다 주체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스코의 전직 지원 컨설팅은 사기업으로선 국내 최초로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이며 상시적 형태로 기획, 설립된 프로젝트다. 이는 국내 기업의 상시 전직 지원 제도를 토착화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 별도 회사 만들어 재고용

 국민은행은 단순 업무의 분사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명예 퇴직자들에 대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운용중이다. 국민은행은 4월11일부터 3월초 은행을 퇴임한 명퇴자 2198명 중 550명을 업무지원센터 등에 배치, 문서 수발·어음 교환 등의 업무를 맡겼으며 220명은 자체 지점 검사 인력으로 투입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1월 명퇴 신청을 받으면서 재취업이나 창업 희망을 접수한 뒤 재취업 신청자는 보름간의 교육을 실시했다. 창업 희망자에 대해서는 5월까지 일정으로 별도의 연수 프로그램을 운용할 계획이다.

 특히 재취업을 희망하는 명퇴자들을 지원키 위해 은행 직원 기금으로 별도의 인력회사 성격의 KB한마음도 설립했다. 강진섭 직원만족팀 과장은 “단순 업무에 퇴직자들을 재고용하고 정규직 인력을 영업점으로 보내는 방식을 통해 5년간 8000억원 이상을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1년에 두 차례 시행되는 인사 이동에 앞서 전직 지원 신청을 받아 후선 업무로 직무를 배치하는 한편, 6개월간 진로 개척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막막한 퇴직자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는 전직지원제도는 몇몇 기업을 제외하곤 아직 체계적으로 운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퇴직 준비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 정부의 인식 부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퇴직프로그램이 활성화되려면 기업과 근로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고령 인력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여성 최장수 지역 전북 순창군 르포

 “고추장·된장이 장수 비결

 ‘장류 밸리’조성해 지역경제 활성화”



 순창군은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노인인구수가 29명으로 전국 최고의 장수마을이다. 순창군은 이러한 ‘장수’브랜드를 이용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2010년 장류밸리사업이 완료되면 국내 최대의 ‘장류메카’ 로 발돋움한다.



 북 순창군은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노인 인구 수가 29명으로 전국 최고의 장수 마을이다. 순창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513명으로, 전체 인구(3만1814명)의 23.6%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군민 중 85세 이상 노인들의 비중은 6%(461명)이며, 65세 이상 노인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 59%다. 그래서 순창군은 여성 장수촌으로 불린다.

 특히 순창군은 이웃한 전남 담양·곡성·구례군과 함께 장수 벨트 지역으로 불린다. 서울대 노화 및 세포사멸연구센터는 이 지역의 자연 환경적 특징을  “배산임수 지형에 기온은 따뜻하고 강수량은 적으며 숲이 울창한 곳”으로 요약한다.

 전북 순창군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수복지과’란 행정 조직이 있다. 만들어진 지 2년 된 이 부서에는 장수정책계와 진흥계가 노인 복지와 장수 연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병 나”

 순창읍에서 차로 30여분쯤 좁은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상쾌함에다 따뜻한 봄햇살 때문에 포근함이 느껴지는 마을을 만난다. 전북 순창군 어치마을이다. 집들은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안쪽으로 둥그렇게 자리잡고 있다. 어치마을에는 주로 논농사를 짓는 32가구 81명이 살고 있다. 이 중 65세 이상의 노인은 24명이다. 남원 양씨 집성촌이어서 이웃은 그야말로 가족과 마찬가지다.

 “풀이 가득한데 놔두면 어떡해. 밭은 누가 매라고. 움직이지 않으면 병 나”라고 한옥금(97)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이 마을 최장수 노인인 한할머니는 요즘도 밭에 나가 김을 맬 정도로 건강하다. 그날도 조금(?) 맸다고 한다. 아들 양창섭(72)씨는 “옛날에는 혼자서 30마지기 밭을 다 맸을 정도로 밭일을 잘하기로 손문이 났다”고 했다.

 오전에 밭을 매다 들어와 금방 점심을 먹었다는 할머니는 손을 잡자 “손금 볼라우” 하며 웃으신다. “올해 아흔일곱이시라면서요” 하는 물음에는 “뭐혀. 그리 오래 살아서” 하며 미소를 짓는다. 점심에 반주도 2~3잔 걸친 할머니는 아무거나 잘 드신단다.

 점심으로 한숨을 돌린 할머니는 또 밭에 나가신다. 할머니는 호미는 밭에다 두고 왔다며 마당에서 토시를 집어들다 한켠에 있는 짚단 하나를 풀어 외양간에 들이밀었다. 무릎이 아프다며 지팡이를 짚고 문을 나섰다. “옛날에는 30리길 순창장을 왔다 갔다 했는데, 요즘에는 코앞도 차를 타고 다니지” 한다. 평생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무릎이 아파 몇번 다녀왔다며 “무릎이 시리고 아프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해. 몸을 움직여야 건강하제”라고 얘기한다.

 밭으로 가는 집 앞에서 옆집의 할머니가 고개를 내민다. 마을의 두번째 장수 노인인 이금례(91) 할머니다. 이 할머니가 떡 먹으러 오라고 부르자 한옥금 할머니가 밭으로 가던 발길을 돌린다. 마을이 좁고 개방돼 있어 서로의 생활을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이웃사촌이란 공동체적 삶이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집안 청소를 하고 계셨다. 마당에도 빗질이 깨끗이 돼 있는 걸 보니 할머니의 부지런함이 눈에 보인다. 며느리인 이금자(64)씨는 “가만히 계시는 적이 없다.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밭에 나가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고추장을 장수 대표 브랜드로 내걸어

 이금례 할머니는 특이한 식습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며느리 이씨는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한다. 반찬도 필요 없고 단지 장만 드신다. 국도 드시지 않는다”고 했다. 장수 노인들을 보면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할머니만은 예외인 것 같다.

 한옥금 할머니는 결국 이할머니가 잡아끄는 탓에 밭에 나가는 걸 포기했다. 한할머니는 “오후에는 그냥 쉴란다”고 했다.

 순창 장수 노인들의 장수 비결은 뭘까. 순창군은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비옥한 토지, 장류·발효 식품과 매실·복분자가 장수 요인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식적 차원을 넘어서는 게 아니다. 한옥금 할머니는 술도 가끔 한잔씩 마시면서도 집 앞 텃밭을 가꿀 만큼 정정하다. 하지만 이금례 할머니는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서 식사량도 굉장히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장수 전문가들은 장수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공통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다만 무엇보다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려는 생활 습관이 장수 비결인 것 같다.

 ‘백살 밥상’에는 뭐가 있을까 가장 궁금했지만 실제 들여다본 밥상은 초라한 편이다. 그렇지만 두 분 다 비교적 규칙적인 시간에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드신다. 특히 두 노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는 된장 등 발효 식품. 순창이란 지역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한편으로 고추장 때문이다. 순장고추장 민속마을에서 소량 생산되는 고추장은 제품의 질이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민속마을 이외에서 생산되는 고추장의 상표에는 전통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민속마을에서만 생산되는 전통 장류의 지난해 매출액은 150억원에 이른다.

 순창군은 장수와 함께 고추장을 아예 지방자치단체의 대표 ‘브랜드’로 내걸었다. 지난해 10월9일에 열린 세계장수학술대회에서도 순창의 된장이 해외 장수 석학들의 관심 대상이 됐다.

 장수 비결로 알려진 고추장·된장 등 발효 식품을 장수 연계 사업으로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순창에서 제조된 청국장과 고추장, 된장이 돌연변이와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다른 지역보다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대표적인 지역 활성화 사업이 되고 있다.

 상반기에는 장수와 장류를 합친 이미지의 브랜드를 개발할 계획이다. 군은 이 브랜드를 이용해 관련 업체와의 제휴 등을 통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기금을 조성, 각종 장수 관련 시책을 추진한다.

 군은 장류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군청 산하 장류개발사업소도 만들었다. 이러한 연구개발사업소가 운용되는 것은 군 단위로는 이례적인 경우다. 순창군 장류개발사업소의 강성일 소장은 “순창 청국장과 고추장, 된장 등에서 돌연변이와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확인돼 우수함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장류로 1000억원 매출 목표

 순창군은 이미 전국 제1호 장류산업 지역 특구로 지정돼 ‘장류밸리’ 조성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장류산업 특구로 지정됨에 따라 순창군은 순창읍 백산리 일대 9만7000㎡에 국·도비와 민자 800억원을 투입, 전국 최대 규모의 장류밸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년 장류밸리 사업이 완료되면 국내 최대의 ‘장류메카’로 발돋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소장은 “장류특구로 지정돼 장류 매출이 연 1000억원대로 커지는 한편, 장류 생산량 증가로 고추·콩·찹쌀 등의 재배도 늘어나 관련 산업의 고용 인력이 1400~2100여명으로 기존의 2~3배 가량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997년 조성된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에 각각 60억원과 15억원을 들여 ‘순창장류연구소’와 ‘고추장소스공장’을 올해 말까지 지을 예정이다. 2006년에는 장류체험관, 2007년에는 장류대학을 연차적으로 설립하거나 유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군은 민속마을 부지 인근의 사유지 24만7500㎡를 추가 매입, 2010년까지 장류 전시 시설은 물론 도·농 농촌 체험 시설과 숙박 시설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고추장축제 및 전주 발효식품엑스포와 연계, ‘세계장수·장류산업엑스포’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강소장은 “순창군 특산품인 고추장과 메주 등 전통 장류는 웰빙 바람을 타고 지역의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활성화할 것이라며 ‘장류’와 ‘장수’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장수마을에 살면 장수할 수 있을까. 순창군은 장수 브랜드를 이용한 장수타운 조성 사업을 추진중이다.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바로 시니어콤플렉스 유치다. 시니어콤플렉스는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노인 복합 시설을 말한다. 시니어콤플렉스는 장수 벨트 지역의 4개 군이 지난 2003년 6월부터 장수벨트행정협의회를 발족, 이 지역을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 시범 마을로 조성하면서 공동 발전을 위한 청사진으로 마련된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해 사회 활동 능력을 유지시키는 한편, 70~75세가 넘는 노인에게는 복지 시설 제공 등을 통해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순창군은 2009년까지 복합 노인단지, 노인 전용 단지, 은퇴 농장 생산 단지와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62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시니어콤플렉스는 복합노인복지단지와 실버산업단지로 이뤄진다. 농촌 이주를 희망하는 도시 은퇴자들로부터 1억~2억원 가량의 투자금을 받되, 이들의 노후와 일자리를 책임지는 제도다. 실버타운과 산업단지를 결합시킨 시니어콤플렉스는 농촌 지역의 활성화와 부가 산업 창출의 시너지효과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노인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이영찬(68)씨는 갑갑한 서울을 벗어나 순창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있다. 이씨는 “순창이 전국 제1의 장수 고장인 만큼 복합단지에 여가 시설, 농장 등이 갖춰지게 되면 일도 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순창군은 지역 특성화 사업으로 장수 관광 상품화, 장수 식품 재배 실버농장 공동 운용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높은 의료복지 체계 눈길

 순창군은 그동안 노인 전문 요양원 건립, 장애인 및 노인복지회관 등 노인 복지 시설을 확충해 왔다. 또 장수 부부에 대해서는 전통회혼례를 개최하는 등 장수 분야에 대한 기반을 다져 왔다.

 군은 올해 장수 지역에 의료시스템을 구축, 장수 노인에게 한 차원 높은 의료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해 3월부터 이미 군민 모두의 장수 기록 카드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신체 조건, 병력에서 가족력, 식습관, 술·담배, 주거 환경, 교우 관계, 화장실 상태와 가축 사육 실태까지 100여개 항목이 담긴다.

 또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을 ‘노인응급구호시스템’에 적용할 계획이다. 홀로 사는 노인이 집이나 논밭 어디서든 응급 상황 때 단말기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구급차를 보낼 수 있어 구호가 가능하다. 지난해 4월부터는 전북대병원과 연계, ‘전 군민 암 검진 사업’을 수요일마다 펼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의료 지원 협력을 위한 협약식도 체결했다. 지역 장수 노인과 지역민에 대한 진료 편의 제공, 의료 사업 구축 자문, 노인 의학 관련 교육과 학술 지원, 장수 노인에 대한 노화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Plus interview 강인철 순창군수 



"장류와 장수를 결합해 지역 경게 살리겠다"



 강인형 군수는 “순창이 전국 제1의 장수 고장인 만큼 이를 활용, 지역 경제 활성화에 나설 것”이라며 “노인들이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고 지역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동 인구 유입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창이 왜 장수 지역인가.

순창은 전국 제1의 장수 마을이다. 세계적인 장수 고을로 미국의 <타임>지에 실렸을 정도다. 예로부터 옥천골이라 불릴 만큼 쾌적한 자연 환경을 자랑한다. 연평균 온화한 기온과 자연 재해로부터도 안전하다. 특히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장류 발효 식품이 발달해 있다.



장수 마을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떤 시책을 펼치고 있나.

90세 이상 노인에게는 장수 수당을 지급하고 100세 노인에게는 천수패를 전달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 노인을 대상으로 전문직 동록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노인 건강을 지원하는 사업에는 어떤 게 있는지.

보건의료원을 통해 노인 건강 관리 및 방문 보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장수 달력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으며, 지난 3월에는 서울 분당병원과 의료 지원을 위한 협약도 맺었다.



장류와 장수를 결합한 브랜드를 만드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데….

고추장과 메주 등 전통 장류는 웰빙 바람을 타고 고부가가치를 창출,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될 것이다. ‘장류’와 ‘장수’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마케팅도 강화해 순창을 재정이나 신체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건강한 지역으로 키워 나가겠다. 장류 사업은 지역의 미래 성장 사업이 될 것이다.



장수를 활용한 지역 특성화 사업은.

장수 식품의 명품화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핵심이다. 이밖에 휴양형 장수타운과 장수산업단지를 조성, 장수산업 메카로 육성하겠다. 장수 및 장류와 관련된 각종 대회와 행사를 유치함으로서 지역 관광 사업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 남성 최장수 지역 강원 인제군 르포

“칠순 지나도 노인회관 심부름꾼,  즐겁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전부여!”

 로 사정이 과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지만 강원도 ‘인제·원통’지역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오지(奧地)다. “인제(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와 같은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로 힘든 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험한 봉우리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친 소읍 인제군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칠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인제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6번 국도로 양평을 거쳐 46번 국도를 따라 홍천을 지나 인제로 가는 길. 그나마 양평-홍천간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돼 30분 정도 빨라졌고, 홍천-인제간에도 4차선 공사가 구간 구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굽이 물굽이가 험한 지역에 4차선의 시원한 도로를 놓는 일이 힘든 탓에 공사는 수년째 ‘진행중’이었다. 덕분에 오전 9시경 서울을 출발한 차량은 4시간 가량을 달려서야 비로소 인제에 닿았다. 직선 거리로는 서울-대전구간보다 가까운,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오지’인 인제군은 봄비 속에서 방문객을 맞이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을 줄 알았지만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만 해도 ‘남성 최장수 지역’인 줄은 몰랐습니다. 군 단위 중에선 전국에서 두번째로 큰 데다 골짜기마다 흩어져 살잖습니까. 저희도 ‘남성 장수 지역’이란 특성을 특화하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