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엘리엇(Jim Elliott·왼쪽)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미주총괄 전무와 리사 수(Lisa Su) ADM 최고경영자(CEO)가 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짐 엘리엇(Jim Elliott·왼쪽)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미주총괄 전무와 리사 수(Lisa Su) ADM 최고경영자(CEO)가 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삼성과 AMD가 윈윈(win-win)하는 거래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3일(현지시각)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설계 회사 AMD와 초저전력·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발표한 것을 이같이 평가했다.

파트너십 체결에 따라 AMD는 삼성전자에 최신 그래픽 설계자산(IP)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써 온 ARM의 그래픽 IP는 범용이었지만, AMD가 제공할 그래픽 IP는 삼성전자 맞춤형이다. 게다가 AMD의 그래픽 IP는 ARM 것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다.

삼성전자는 AMD가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그래픽 IP를 활용해 더 뛰어난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 처리 장치)를 만들 수 있다. GPU는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의 성능을 결정 짓는 핵심 요소다. AMD와 협력을 통해 삼성 스마트폰의 성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AMD 역시 삼성전자와 협력이 꼭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AMD는 GPU 분야에서 엔비디아에 이어 세계 2위 회사다.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도 인텔에 이어 2위다. 특히 AMD는 PC와 게임 콘솔, 고성능 컴퓨터의 GPU 쪽이 강한데, 모바일은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2009년에 실적 부진을 이유로 모바일 그래픽 사업을 모바일 칩의 최강자 퀄컴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AMD는 모바일 GPU 시장 재진입을 검토해 왔다. 모바일 기기의 GPU 시장이 향후 IoT·자동차 분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련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협력으로 AMD가 모바일 시장에 다시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두 회사가 협력을 발표한 날,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AMD의 PC용 GPU 제품명인) ‘라데온’을 모바일 시장으로 확대할 것이며, 이에 따라 AMD의 사용자 기반과 개발 생태계도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계 전문가들도 삼성과 AMD의 협력이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국내 인공지능프로세서(NPU) 설계 업체 ‘퓨리오사’의 백준호 대표는 “삼성은 자체 개발에 난항을 겪었던 GPU 문제를 전략적으로 해결했고, AMD는 삼성전자와 협력으로 모바일 GPU 시장에 재진출할 수 있게 됐다”면서 “양쪽 모두에 매우 스마트한 전략이 실현됐다”고 말했다.

양사 협력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리고 삼성전자의 미래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주는지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1│삼성의 ‘앓던 이’GPU 문제 해결

모바일 AP는 연산을 담당하는 CPU, 그래픽을 담당하는 GPU, 통신을 담당하는 모뎀 칩 등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는 연산 속도나 통신 속도를 결정하는 CPU와 모뎀 칩이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GPU 성능이 강조된다.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모바일 게임, AR, VR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GPU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도 자체적으로 고성능 GPU 개발을 해 왔으나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ARM의 그래픽 프로세서 ‘말리(Mali)’를 쓰고 있는데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고민이었다.

반면 애플과 퀄컴은 ARM의 표준 디자인에 만족하지 않고 자체적인 연구·개발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진일보한 GPU를 내놓기 시작했다. 뛰어난 GPU의 성능은 아이폰의 성능 향상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지금보다도 더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지만, GPU의 한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모바일 AP 브랜드인 ‘엑시노스’에 AMD의 GPU 기술력이 들어갈 경우 갤럭시폰의 성능이 업계 톱 수준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갤럭시폰 판매가 증가할 수 있다.


2│파운드리 강화하려는 전략에도 순풍

AMD는 팹리스(fabless)다. 제조설비(fabrication)를 갖고 있지 않은 설계 전문 회사이기 때문에, 주로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주문 생산 회사)인 TSMC를 통해 대부분의 제품을 위탁 생산해 왔다. 그러나 삼성과 이번 협력을 기점으로 삼성이 발주량을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 페이퍼마스터 AMD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반도체 전문 매체 ‘어낸드테크’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이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어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AMD의 반도체 발주가 삼성전자 쪽으로 갈 수만 있다면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목표를 가진 삼성전자에 큰 힘이 된다. 삼성전자는 4월 24일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12년간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기술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 최고가 되기 위해선 모바일 AP, CPU 외에 파운드리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 AMD와 손잡은 TSMC와 격차를 줄일 필요도 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48.1%로 1위다. 2위는 삼성전자(19.1%)다.


3│자동차 반도체 경쟁력 향상에 도움

삼성전자와 AMD의 협력은 단순히 스마트폰용 모바일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동차용 반도체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에 탑재되는 인포테인먼트 반도체의 경우 요구 사항과 신뢰도 수준이 모바일용보다 높긴 하지만, 기본 구조는 모바일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자사 AP 브랜드인 엑시노스의 제품군을 자동차 분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AMD는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異)기종 컴퓨팅’ 기술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기종 컴퓨팅이란 CPU와 GPU를 협업하게 해 전체적인 연산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을 말한다.

AMD는 이미 오래전부터 CPU와 GPU의 융합을 강조하는 통합형 프로세서인 ‘APU(Accelerated Processing Unit)’를 개발·공급해왔다. 다만 이 기술은 보통 서버, PC용 컴퓨터에 주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퀄컴 등의 기업이 자동차용 칩세트인 ‘스냅드래곤 오토모티브 콕핏 플랫폼’에 이기종 컴퓨팅 기술을 일부 채용하면서 AMD도 반격을 준비 중이다.

게다가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머신러닝, 사물 인식, 실시간 데이터 분석 등 고성능 컴퓨팅이 필수인데, 이를 구현하려면 뛰어난 GPU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