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오전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모습. 사진 연합뉴스
6월 5일 오전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모습. 사진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월별 경상수지가 7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6억60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월별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4월(-1억4000만달러) 이후 처음이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가 무역이나 서비스 거래, 투자와 임금 지급 등 다른 나라들과 행한 모든 경제적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돈과 지출한 돈을 정산한 결과다.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는 것은 한 국가가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한 돈이 더 많은 적자구조라는 의미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 지급,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가격 하락 등 일시적 요인들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5일 경상수지 적자를 발표하며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반도체 단가 하락과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 교역량의 부진이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라며 “매년 4월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당이 이뤄지기 때문에 계절적 요인도 적자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4월 경상수지 적자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5월 경상수지는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 달리 7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되고 있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경상수지를 흑자로 유지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안전판 역할을 하는데,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 이런 역할이 사라져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단발성이라 해도 한국 같은 나라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왜 특히 위험한지, 앞으로 적자기조로 간다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지 알아봤다.


1│적자 누적되면 외국 자본 이탈

경상수지 적자가 한국 경제에 큰 위험요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규모가 기업규모에 비해 작은 국내 상황 때문에 많은 기업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아야 한다. 주요 기업들과 금융회사의 외국인 지분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은 575조8640억원(시가총액의 32.4%·2019년 4월 기준)에 달한다.

문제는 경상수지가 적자를 이어가면 국내에는 달러화 등 외화가 부족해지고 부족해진 외화의 가격(환율)은 급격히 오른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에 1000원이던 시절에 100만달러를 투자해 10억원 규모의 국내 주식에 투자한 경우 원·달러 환율이 2000원이 되면 주가는 그대로 있어도 50만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 결국 이런 손실을 피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해갈 가능성이 커진다.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들의 주가도 폭락할 수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화 등 외화 공급이 안 되면 환율이 상승하고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커진다”고 했다.

실제 IMF 외환위기 당시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화가 부족해지면서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한 번에 빼가자 결국 한국정부는 지급불능 사태에 빠졌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1997년 11월 이후 이듬해 5월까지 1만5000개 이상의 기업이 부도처리된 것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태에서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선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 김광두(서강대 석좌교수) 국가미래연구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일자리 상황 악화, 투자 감소 등 경제 흐름 약화에도 외환시장이 안정을 유지했던 것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됐기 때문인데 이마저 위협받는다면 경제는 내우외환에 직면할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2│실물경제도 위기 가능성

경상수지 적자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면 소비나 고용 등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지면 고용을 줄이거나 투자를 하지 않는다. 또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임금을 줄이는 등의 긴축책을 편다. 이렇게 되면 민간의 소비가 축소되고 소비 축소가 기업들의 이익 감소로 이어지며 경제 전체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경제 전체의 심리가 꽁꽁 얼어붙을 수 있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상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감소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지 우려되고 실물경제도 사실상 위기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4월 이후 실제 경제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5월 들어 97.9로 기준치인 100 이하로 떨어졌다. CCSI는 2003~2018년의 소비자심리 평균치를 100으로 놓고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 심리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1~4월까지는 기준치인 100을 넘겼지만 5월부터 기준치 아래로 내려갔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는 톱니바퀴처럼 수출과 내수(실물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그간 수출이 잘돼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와서 경상수지가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수출이 줄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며 내수가 동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3│국가신용등급 하락 가능성도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누적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경상수지는 한 국가의 지급 여력을 보여주는 핵심지표다. 그렇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누적된 국가에 대해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국가신용등급을 낮춘다. 이 국가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주면 되돌려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을 내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국가에 속한 모든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금리도 올라간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면 기업들이 연간 약 3800만~7600만달러(2016년 기준)의 이자를 더 내야 한다. 다만 아직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번에 나온 4월 경상수지 적자만으로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