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제도가 오랜 논쟁 끝에 지난 1월1일부터 전격 시행됐다. 2000년 10월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을 결정한 후 4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 되는 상장 등록 기업은 허위 공시와 분식 회계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소송 대상이 된다. 주가 조작은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상장기업이 그 대상이다. 사실상 모든 기업이 증권집단소송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기업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시민단체에서는 ‘주주의 권익 보호’라며 반기고 있다. 전문가들을 통해 이번 증권집단소송제도 시행의 득과 실을 알아본다.

 “제도 도입은 변화의 기회, 소송대란은 어불성설”

 해부터 시행된 증권집단소송제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는데도 다시 오는 2월에 부작용 방지 장치를 논한다고 한다. 증시불공정행위 억제와 기업투명성 증진, 흩어진 약자들의 권익 보호라는 장점은 제쳐두고 온갖 부작용에 관한 말들만 무성하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이 기초로 삼는 사실들은 대부분 왜곡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한낱 억측에 불과해 순수성이 의심된다. 진정 기업들을 위하고 경제를 걱정해서 나오는 말들 같지 않다는 것이다. 집단소송제가 우리에게 생소한 제도임을 이용해 관련 사실을 왜곡해서 기업들을 겁주고 이를 통해서 특정 단체가 세를 불리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물론 집단소송제는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획기적인 제도이다. 과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분식이나 주가 조작이 있더라도 피해자들이 흩어진 다수라서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원고 측 변호사들의 주도 아래 소액 다수의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기업들, 특히 증권사나 투신사 등 금융기관들은 내부 통제 장치를 철저히 해야 한다. 회계 법인들은 외부 감사의 충실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과거의 분식을 해소하기 위한 분식이라든지, 경미한 오류만으로도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일단 소송을 당하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므로 겁먹을 필요 없다.

 집단소송은 원고 측 입장에서 볼 때 많은 비용과 노력 그리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소송 방식이다. 소송 허가 절차, 구성원 고지, 분배 절차 등 특수한 절차 때문에 1심에만 4~5년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비용도 많이 들고 패소 시 책임도 막중하기 때문에 명백히 고의적인 분식이나 주가 조작, 그것도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인과관계가 명쾌한 경우에만 제기될 것이다. 투자자 소송을 다뤄 본 법률 전문가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온 한 연구소가 올해부터 소송이 쏟아질 것이고 연간 약 40건 정도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지만 터무니없는 예측이다. 이 예측은 분명히 빗나갈 것이다. 집단소송을 당하면 그 자체만으로 기업에 타격이 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보통 투자자 소송은 기업이 부도를 내거나 하는 경우에 제기된다. 소송을 제기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망했기 때문에 소송이 제기되는 것이다.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 분식 회계와 단절을 꾀하는 모든 기업들은 걱정할 것 없다. 분식 회계가 있다 하더라도 중대한 분식이어야 하고,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하며, 이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실제로 피해를 입혔어야 한다. 현대상선이나 SK네트웍스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분식이 있다고 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회계 기준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지만 소송이 제기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소송은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억측에 입각한 무익한 논쟁은 접었으면 한다.

 대신 이번 집단소송제의 시행을 기업 투명성 증진의 계기로 삼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더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는 전체 기업들의 자본 조달 비용을 하락시킬 것이다. 집단소송제의 실시로 인한 소송대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새로운 제도에 발 맞춰 변화하려는 우리 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제발 집단소송에 대해 너무 겁먹지 말았으면 한다.

 

“절차 및 법 기술 문제로 소액주주 피해 커질 수도”

 1월 1일을 기해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다. 당장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대기업을 상대로 한 증권집단소송만이 가능하지만 오는 2007년부터는 모든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해진다. 2004년 정기국회가 과거 분식을 소송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처리하지 못함에 따라 대기업들은 우선 과거 분식을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집단소송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제도 시행과정에서 많은 절차적 및 법 기술적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미국의 경험이 보여주듯 증권 집단소송은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다. 오히려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등 선량한 주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주주들은 증권집단소송이 주주를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주주를 위협하는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 이 소송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결국 화해로 매듭 짓기 마련이고, 그런 타협을 통해 변호사는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이다. 미국에서 집단소송 변호사가 ‘악덕 변호사’의 대명사가 돼 버린 것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증권집단소송이 한국에서는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판단도 있지만 그것은 대개 변호사들의 연막전술일 뿐이다. 변호사 숫자가 갈수록 늘어 하찮은 꼬투리를 잡아 소송을 거는 판인데, 소송가액이 천문학적인 집단소송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을 당한 기업은 원고를 대리한다는 변호사와 막후 협상을 통해 해결 짓기를 원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변호사들이 노리는 바이다. 집단소송에선 변호사가 사실상 원고로 행세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돈벌이 장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식시장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모든 상장회사가 증권집단소송에 대해 취약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당장 과거 분식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회계 처리와 공시 등 모든 면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형편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한 건의 집단소송으로 파산하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우리의 증권집단소송법은 원고에 대해선 담보 제공 의무를 거의 부과하지 않으면서도 이사와 공인 회계사에게는 무거운 연대책임을 지우고 있다. 원고에게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집단소송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르거니와 원고에게 과도한 담보 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국민의 재판 청구권을 침해하는 면이 있다. 이처럼 집단소송을 인정하면서 오남용을 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의 기업인들이 한국이 큰일을 저질렀다고 놀란 것만 보더라도 집단소송은 그 자체로서 경제에 대한 악재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집단소송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시장경제,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할 가능성이다. 이 경우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엔 집단소송을 견제할 만한 장치가 별로 없다. 변호사 윤리기준이 느슨해서 비리 변호사를 견제할 방안도 없다.      

  어떤 기업이 자기들은 회계 원칙을 잘 지키고 정도(正道) 경영을 하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많은 변수에 의해 주가는 오르내리는 것이고, 기업이 공시를 정직하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예측 불가능성과 위험 선택은 자본주의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것을 빌미로 소송을 걸면 빠져나갈 기업이 없다. 집단소송법을 통과시킨 우리 정치권은 무모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국회 의석에 변화가 생기는 대로 이 악법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임상연 기자 / 대담 : 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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