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9일 재개된 북핵 6자 회담이 공동성명 발표라는 성과물을 내놓음으로써 한국의 신용평가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은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모두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두 단계 아래로 부여하고 있다. 특히 무디스와 피치가 지난 2002년 이후 단 한 차례의 등급조정을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외환위기 당시 투자부적격 등급인 B+를 부여했던 S&P는 이후 총 7차례의 등급 조정을 했고, 지난 7월27일 투자적격 등급인 A로 상향조정했다. 북핵 불안감이 상존해 있던 시기였다. <이코노미플러스>는 지난 10월10일 미국 뉴욕에 소재한 S&P 본사를 방문, 존 챔버스(John Chambers) 국가신용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한국경제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S&P의 다양한 견해를 들었다.

 국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가장 널리 전파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국가신용등급’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단어 하나가 한 나라의 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그 막강한 위력을 실감하지 못했다.

 지난 1997년 임창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국제금융기구(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한마디로 한국에 투자하면 망한다는 경고였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 경제에 대한 성적표다. 비단 국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은행의 신용등급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요 신용평가기관들이 기업이나 은행을 평가할 때 수익구조나 재무상태 외에 정부의 정책이나 국가신용도 등도 함께 조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신용등급의 영향력 때문에 신용평가기관을 가리켜 일부에서는 극단적으로 ‘죽음의 사자’라는 표현을 동원하기도 한다. 

 국가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신용평가기관으로는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와 무디스, 그리고 피치 등이 ‘빅3’로 불린다. 또 미국의 톰슨 뱅크워치, 일본계의 JCR·NIS 등도 신용평가기관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가운데 S&P는 무디스와 함께 세계 신용평가기관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S&P의 신용평가 역사는 19세기 중엽 헨리 바넘 푸어가 설립한 정보서비스 사업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용등급과 유사한 등급 체계가 개발된 것은 1900년대였다. 물론 투자자들에게 투자분석정보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은 그보다 50여년 전인 19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개발도상국가였고, 철도와 운하 개발 등 기반시설 프로젝트가 서부개척의 붐을 타고 진행되고 있었다.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은 주로 유럽의 투자자들로부터 조달해야 했다. 그러나 유럽의 투자자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길이 없었다. 이를 주목한 헨리 바넘 푸어가 미국 철도회사의 투자정보를 유럽에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것이 S&P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S&P는 전 세계에 분포해 있는 전문 인력을 통해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 500지수를 비롯해 S&P Global 1200, S&P Asia 50, S&P 헤지펀드 지수, S&P/시티그룹 지수까지 고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벤치마크 지수를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1조 달러가 넘는 투자자산을 연동시키고 있다.

 기자가 미국 뉴욕 맨하튼의 S&P 본사를 방문했던 지난 10월10일은 월요일이었지만, 콜럼부스데이로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S&P 본사 앞의 워터 스트릿(Water Street)은 축하 퍼레이드 관람객들을 위한 임시장터가 들어선 탓에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어수선했다.

 S&P 본사는 방문자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금속탐지기를 휴대한 보안요원들이 방문자의 소지품을 일일이 확인한 후 출입을 허용했다. 뉴욕 지하철 테러 정보에 따른 미국 입국절차가 보다 엄격해졌다지만, S&P 본사를 출입하는 보안검사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존 챔버스 국가신용평가위원장은 오전부터 줄곧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는 게 데이빗 워진 미디어담당자의 말이었다. 또 <이코노미플러스>와의 인터뷰 이후에도 각종 회의가 예정돼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존 챔버스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국가신용평가위원회는 신용등급을 최종 결정하는 의결기구다. 해당 애널리스트로부터 신용평가를 위한 기초분석이 완료되면, 해당 국가를 방문, 다양한 실사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여러 국적을 가진 다수의 위원들이 참가하는 신용평가위원회가 소집되고, 다수결로 신용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존 챔버스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대면 인터뷰와 함께 S&P에서 제공한 자료를 일부 인용했다.



 -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거시경제지표들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실제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경기는 외환위기 당시와 다르지 않다고 호소한다.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정부의 강한 정책대응 덕분에 한국의 경제 회복은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외환위기 전의 정책실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기업과 은행 부분의 적극적인 개혁이 성공을 거두면서 빠르게 신뢰감을 회복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부분의 개혁도 병행하고 있다. 재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현명하게 세수 기반을 넓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다시 위기를 딛고 세계경제에 우뚝 섰지만,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도 피폐한 상황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 1997년 금융위기의 잔재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보는가, 아니면 현재 흡수 및 제거되고 있다고 보는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등 경제 외적인 체질은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강해졌다. 1997년 12월 기준으로 수십억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만 보더라도 증명된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4위 수준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수준의 보유고라고 생각한다. 민간부문 역시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재정부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리고 기업지배구조의 많은 문제들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첫 번째로 투자나 저축을 분배함에 있어서 정부의 영향력이 아직도 크다. 두 번째는 시장에 맡겨서 상황이 해결되도록 가만두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는 게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 이론 중 자유방임적인 정부의 정반대 개념으로 정부가 시장에 일일이 간섭을 하고 시장의 규칙 또는 게임의 법칙을 정부가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과거 위기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의 잔재들이 상존하고 있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경기침체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한국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정부가 저축과 투자의 분배를 하면서 그 역할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알아서 경제활동을 영위해 갈 수 있다. 그래도 5년 전에 비하면 1인당 국민총생산이 1만1000달러 정도로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성장률이 높은 편이다.



 - 지난 몇년간 한국의 재정은 직접적인 국채발행이 절제되는 등 비교적 균형을 이뤄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P는 한국의 재정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은 몇년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의 재투자로 인한 공공부채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 결과 S&P는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 등급을 계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은 우발적인 재정 위험이라는 특이한 상황이 있다. 북한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위험 등에 대한 최선의 준비는 부채 수준을 계속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 정책 입안가들은 이 부분을 성공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한국을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에서 다른 국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특징적인 요소가 있는가. 있다면 그 같은 특징은 신용평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우리는 107개국 중앙정부에 똑같은 방법과 기준을 적용해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한다. 기준을 예로 들면 정치적 위험, 경제구조, 성장 전망, 재정 균형, 정부부채, 재정부채, 환율정책감독, 외부부채, 공공분야의 외부부채, 민간 분야 외부부채 등을 꼽을 수 있다. 107개국 중 아마 6~10개 정도의 국가만이 ‘의미 있는’ 외부적 정치위협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 S&P는 지난 7월27일 3년 만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끌어올린 A로 상향조정했다. 이 같은 평가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국가신용등급 향상에는 몇몇 요인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금융권은 강해지고 있다. 대출 편중 현상도 감소되었다. 위기관리시스템은 바젤Ⅱ 지침에 맞도록 향상되었다. 은행권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두 배 가까이 증대돼 올 6월 말 현재 평균 자산수익률이 0.8%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또한 향상되었다. 전체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사회이사로 구성했다. 이 같은 체질 강화는 정부의 재정적 부담 가능성을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신용카드 채무에 대한 높은 가계채무 불이행 비율과 은행 여신정책에 정부가 간접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추세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원화환율의 유연성이 강화되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좀더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이는 중앙은행의 외환수급 관리에 따른 손실을 줄이는 데 일조했고, 경제적으로 외부충격에 대한 완충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대외수지도 견실한 상태다. 한국은 2005년 말 순 대외자산 규모가 경상수입의 22%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외화보유고도 6월 말 현재 2050만달러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5년까지는 단기 외채 대비 비율도 300%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당시 신용등급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북핵을 둘러싼 6자 회담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한국을 둘러싼 불확실성 해소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신용등급의 상향 조정에 대한 기대도 높다. 가능한 전망인가.

 지난 7월 우리는 한국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재개된 북핵 6자 회담은 다행히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최악의 상황을 줄일 수 있었다. 많은 국가에서 북한의 핵무기 실험과 다른 도발적인 행동을 우려해 왔다. 개인적인 견해 역시 6자 회담이 한국의 신용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S&P는 북한과의 협상으로부터 얻어지는 결과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만약 회담이 계속 미루어지고 성과가 없다면, 우리 생각엔 어떤 협약도 북한을 감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 대북지원이 과다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S&P의 견해는 어떤가. 한국의 채무변제 능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 요소는 아닌가.

 북한으로부터 받는 위험은 두 가지라고 본다. 군사적 위협, 북한 경제의 갑작스런 붕괴가 그것이다. 현재 남한정부가 이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임박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내일이 될지, 10년 아니 2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북한으로부터 받는 위협은 반드시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1979년의 중국이나 1986년의 베트남과 같은 전면적인 개혁이 없다면, 북한의 경제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정부의 노력은 북한 경제 낙후성에 대한 어느 정도 비용 절감의 효과 같은 것일 수 있다. 마치 미래의 빚을 현재의 금리로 상환해 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한국정부의 꾸준한 대북 지원을 분석해 보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정책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대미 금리역전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저금리정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한국은행은 내수 회복의 초기 단계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대부분 이자율을 급격히 내리거나 올리지 않을 것이다. 사적 영역의 초과 보유금과 다소 가라앉은 내수 상황에서 이자율을 더욱 낮추는 것은 경제활동을 자극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유동자산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사적 영역의 자금들은 한국 내의 투자를 꺼리고 있다. 구조적 경직성은 기업투자 특히 노동시장과 관련된 부문에서는 더욱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 한국의 신용평가등급이 외환위기 이전인 AA-까지 회복 가능한가. 또 회복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들은 무엇인가.

 한국은 외환위기 당시 B+ 등급에서 최근 A로 상향조정된 등급을 부여받았는데, 국가신용등급 역사상 이렇게 빠르게 등급을 회복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제가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한국의 경제정책은 구조적인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북한문제 역시 발목을 잡고 있다. 1994년 제네바협약 전에 한국의 등급은 AA-였는데, 현재 상황만으로는 다시 그 수준까지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에 늘어난 비용문제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비용, 경제구조의 완전 붕괴, 높은 수준으로 자원을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 등 한국은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신용평가기관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혼란스러운 국가경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용평가기관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현상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투자자들은 기업, 은행, 보험회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신용도를 알고 싶어 한다.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신용평가기관은 객관적 데이터에 의거해 이들의 신용상태를 분석하고 평가해 투자자들이 알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금리는 신용위험도에 따라 결정되지만, 우리는 신용위험도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