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내수 경기는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상황이 어려웠다. 수출이 2004년 한 해 동안 2542억 달러, 무역 흑자만 297억 달러를 기록했고 전년 대비로도 32.1% 증가라는 눈부신 실적을 거두는 등 호황을 지속했음에도 침체 국면에 빠진 내수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업 투자는 바닥에서 맴돌았고 도·소매 판매 등 민간 소비는 지난해 하반기까지 2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지속했다. 그러나 2005년 들어 상황은 조금씩 반전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내수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늘어나면서 우리 경제 곳곳에 훈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연초부터 코스닥을 비롯해 주식 시장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크게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최근 발표된 올 1월의 수출 실적이나 지난해 연말의 각종 실물경기 지표들이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이 전하는 재래시장이나 상가 등 생활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지난해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룬다. 지난해 12월 중 도·소매 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로 0.1% 감소했으나 감소폭이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에 있고, 계절적인 효과를 제거한 전월비 증가율은 1.8%에 달했다. 또 지난해 12월 중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도 6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서비스 관련 소비가 다소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제시된 각 연구기관들의 향후 경기에 대한 판단도 일단은 긍정적인 기대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수출이나 기업 실적에도 비관적인 분위기 일색이었던 지난해 하반기와는 아주 대조적인 양상이다. 지난 2년 여 동안 살아날 듯하면서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던 내수 경기가 마침내 회복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일까. 



 최악에서 벗어난 심리지표

 ‘경제는 심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비자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실물 경제의 제반 성과도 크게 좌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자기 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부른다. 우리 경제의 경우 소비자나 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앞날을 지나치게 비관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침체되고 이러한 내수 침체가 다시 소비자와 기업들의 기대 심리를 억압하는 악순환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들어 나타난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하고 또 평가할 만한 대목은 역시 경제 주체들의 심리 개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부의 갖은 경기 부양책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악화일로를 치닫던 소비자들과 기업 부문의 심리 지표가 회복세로 반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 반짝 효과에 그칠 수도

 올 연초 들어 나타나고 있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 회복 조짐과 수출, 산업 생산 등 실물 지표의 선전 소식에도 아직 우리 경제의 향후 전망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소비자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 회복 추세가 일시적, 단발성 반짝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경제 각 부문으로 확산되도록 관리하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 주체들의 위축된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심리 회복 추이가 완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문 간 편차가 적지 않다. 경기 회복을 거론하기가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의 경기 동향을 보면 국내 경기는 통계청이 확정한 제7 순환기상의 경기 정점인 2000년 8월 이후 최근까지 50개월 이상 장기 하강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물론 신용카드에 기초한 소비 버블이 형성됐던 2002년이나 수출 활황으로 산업 생산이 늘었던 2004년 초반 두 차례의 일시적인 경기 회복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의 경기 회복 시도는 지속성이나 강도면에서 본격적인 경기 상승 국면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연초 수출 활황이 지속되면서 수출 증가에 따른 소득 효과에 힘입어 내수 경기도 회복세로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으나 기대와는 달리 연중 내수 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비정규직과 빈곤층 등 사회 취약 계층의 경제적 고통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 주체들의 기대 심리 회복 추이를 잘 관리하고 확산시키는 가운데, 내수 경기 전반의 회복 노력을 배가하고, 동시에 ‘양극화’ 문제로 집약되는 우리 경제 내부의 부문별 편차를 완화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의 봄을 앞당기고, 경제 각 부문이 고루 따스한 봄볕을 누리도록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경기 활성화 정책 효과 발휘할 적기

 향후 내수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주체는 역시 정부다. 무엇보다 최근 나타나기 시작한 소비자와 기업 심리 회복 추세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금융 및 재정 정책 측면에서 확장적인 경기 대응 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수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책 당국에서는 상반기 중 재정 조기 집행, 하반기 중 경제 활성화를 위한 종합 투자 계획 시행 등 재정 지출 규모의 확대를 통한 유효 수요 창출을 공언하고 있다. 물론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가 불요불급한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고 있고, 또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대규모 재정 지출이 실제 경기 회복이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한 문화복지 시설 확충이나 국가 물류체계의 혁신을 위한 인프라 투자 등 국가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사업이라면 총체적인 유효 수요 부족으로 내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현 시점이 오히려 정부의 경기 안정화 정책이 효력을 발휘할 적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리 인하 효과 살아나

 금융통화정책 측면에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현재의 저금리 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두 차례의 금리 인하가 소비나 투자 회복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과 미국 등 주요국이 지속적으로 정책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더 이상 정책 금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두 차례의 금리 인하가 시차를 두고 작용해 연말과 연초 경제 주체들의 기대 심리 회복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것처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저금리 기조는 가계와 기업의 금융 비용을 절감시키고 장차 소비와 투자가 회복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매우 유력한 장치로서 작동할 것이다. 이외에도 경제 활력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이나 이념 정체성, 그리고 주요 경제사회 정책 방향과 관련해 가계나 기업 등 경제 구성원들의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을 초래하지 않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가 ‘경제 올인’, 또는 ‘실용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기업, 근로자, 소비자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그동안의 갈등과 반목을 접고 경제 회생에 매진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투자 회복 위해 기업 수익모델 구축 도와야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이상과 같은 단기 과제 외에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경제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 향후 내수 경기가 본격 회복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먼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급선무이다. 기업 투자에 대한 각종 세제 감면이나 금융 지원을 늘리는 일도 단기적으로는 투자 활성화를 도모하는 좋은 대안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마땅히 투자할 대상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차세대 신성장 동력 발굴 사업처럼 정부와 민간 공동의 대형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통해 불확실한 미래 사업 및 기술 환경으로 인해 수익모델을 발굴하지 못하고 보수적 경영 및 투자 행태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 기업들을 투자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직접금융시장 자금 중개 활성화 시급

 기업 투자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직접금융시장의 자금 중개 기능 활성화도 시급히 요구된다. 기업들이 돈이 없어 투자를 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적지 않지만, 외환 위기 이후 은행권의 기업 대출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아직도 일부 극소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많은 기업들이, 특히 유망 기술을 지닌 많은 벤처기업들이 투자 재원을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은행 등 간접금융시장의 경우 근본적으로 위험 회피 성향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기업 투자에 소요되는 장기 안정적인 자금의 공급은 기본적으로 직접금융시장이 맡도록 직접금융시장의 자금 중개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망 중소기업들이 코스닥 등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공급받는 한편으로 투자자들은 유망 기업의 우량 주식을 대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직접금융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조속히 회복돼야 할 것이다. 고위험, 고수익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기업 벤처 캐피털과 국내 자본에 의한 사모펀드(PEF)의 활성화, 연기금의 주식 투자 확대, 기업 연금제도의 조기 정착 등을 통해 최근 극도로 왜소해진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기업 자금 공급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도 꼭 필요하다.   



 소비 회복 중산층 이하로 확산되느냐가 관건

 지난 2002년 하반기 이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민간 소비의 부진 현상은 기업 투자 부진과 더불어 내수 경기 침체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올 들어 고소득층과 소비 성향이 높은 20대 청년층 등을 중심으로 소비 심리가 개선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소비자 집단에서 소비 심리는 기준점보다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 계층 간 소비 여력의 격차가 매우 크다. 지난해의 경우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내수 기업의 실적 악화는 물론 민간 소비에 의존하는 생계형 중소 자영업자들이 대거 파산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이 속출했다. 

 올해의 경우 당초 예상보다 소비 회복 시점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으나 전반적인 여건상 아직 소비 회복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고소득층 소비 심리 개선에 크게 기여한 연초의 주가 상승세가 올해 예상되는 IT 경기 둔화, 기업의 수익성 악화 등으로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 전망이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고소득층 소비가 회복되더라도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는 데는 과거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소비 회복을 위해서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의 재무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계 부채 문제의 원만한 조정, 신용 불량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 창출, 비정규직 증가 등에 따른 고용의 질 악화와 소득 양극화 추세에 대한 적절한 대안 마련, 그리고 세금, 연금, 주거 및 교육비 등 고정 지출 부담 완화와 같은 보다 구조적인 현안 과제의 해결에 많은 사회적 노력이 경주돼야 할 것이다.



 중산층 이하 재무 상태를 회복시켜야

 특히 올해의 경우 2002년 주택 가격 급등 시기에 이루어졌던 40조 원대의 주택 담보 대출 만기 도래분이 집중돼 있고, 주택 담보 대출 외에도 카드론 등 상당수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능성은 낮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거나 은행들이 대출 회수 경쟁에 돌입할 경우 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400만 명에 육박하는 신용 불량자의 회생을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주택 구입 문제로 인해 과도한 부채 부담을 지고 있는 상당수 서민 가계의 대출 만기 도래 문제가 큰 무리 없이 해결될 수 있도록 만기 연장, 상환 스케줄 재조정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비 회복과 관련해 날로 심화되고 있는 고용 및 소득 양극화 현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외환 위기 이후 ‘개방과 경쟁’ 이데올로기로 재편된 한국 사회에서 일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사회 안전망이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지나친 비정규직 증가와 임금 저하 등 고용 및 소득 양극화는 사회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총 수요 위축 등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본격적인 소비 회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과 빈곤층의 재무 상태를 안정시키고 소득을 보전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수출과 소비 동반 성장해야 경기 회복

 향후 국내 경기는 IT 경기 조정, 달러화 약세와 원화 절상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인한 수출 증가세의 둔화를 소비, 투자 등 내수 부문의 수요 증가가 어느 정도 만회하느냐에 따라 회복의 속도와 강도, 지속성 등이 좌우될 전망이다. 물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은 수출과 소비의 동반 성장이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경제에 나타난 소비와 수출의 엇갈림 성장, 또는 절름발이 성장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출과 소비가 동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의 회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비상한 각오가 요구된다. 내수와 수출이 지속성을 갖고 균형 있게 성장을 이끌어 가는 경제 구조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정부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조절 정책과 함께 소비와 투자의 활성화, 그리고 범국가적인 R&D 활성화, 교육 혁신, 그리고 노사관계 선진화 등 중장기 성장 잠재력 제고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 제품 경쟁력을 향상시켜 수출 여건 악화에 대응해야 한다. 내수 회복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수출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은 향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화 절상의 부정적인 효과가 최소화되도록 시장 개척 등을 통해 수출 물량을 확대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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