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2주년을 맞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참여정부는 여러 부분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패러다임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 결정 구조는 여전하다.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시스템에는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경제 정책의 입안 및 시행과 관련된 시스템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문민정부 시절 경제수석을 지낸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장을 만나 균형잡힌 경제정책 시스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어봤다.
 난 1997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재임했던 김인호(63) 중소기업연구원장은 경제 정책의 입안 및 시행과 관련된 시스템의 왜곡 현상에 대해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한 조직 성격에서 오는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다거나, 반대로 책임은 있는데 권한이 없는 정부 조직의 성격이 이처럼 왜곡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한국 경제는 모두가 열심히 나무를 가꾸고 있을 뿐, 정작 숲을 가꾸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 전 수석은 특히 경제사령탑이라 할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왜곡돼 있다면서 경제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이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시종일관 주장했다. 즉 경제부총리가 경제 컨트롤 타워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현안에 매달리지 않고 세계 속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볼 수 있는 거시안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위해 부총리에게서 빼앗아간 예산권을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김 전 수석은 강조했다. 

 경제 정책 시스템과 관련, 참여정부 출범 2년의 오류를 짚어보고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효율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지금 당장 논의되고 개선돼야 할 당면 과제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청와대 조직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2년 집권 기간 동안 이 같은 조직 개편을 효율성 측면에서 평한다면 어떤 평가가 가능합니까? 

 청와대 조직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몇 가지 관점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 책임제 하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성격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통령부’(Office of the President)라는 개념에서 일정한 권위와 책임을 가지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를 만들 것이냐, 아니면 순수한 비서실을 만들 것이냐가 그것입니다. 이와 관련 사람마다 견해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인 결론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대통령부를 생각할 때가 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부 조직의 기본 원리는 항상 책임과 권한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한은 있는데 책임은 안 진다, 아니면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진다는 것은 안 됩니다. 

 지금처럼 모든 권한은 대통령과 내각에 있는데 비서실에 책임이 지워진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원래 비서라는 것은 책임이 없습니다. 부정비리를 저질렀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조직 원리의 ABC도 모르는 겁니다. 비서는 원칙적으로 책임이 없는 자리입니다. 오로지 자기가 모시는 사람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모든 책임은 그 사람을 통해서 구현되는 겁니다. 때문에 비서에게 책임을 묻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비서가 모시고 있는 사람, 즉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판단했을 때 일을 못한다 하면 면직하는 것으로 책임이 끝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비서실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 본질이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청와대 조직을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책임과 권한 문제의 연상선상에 있지만, 대통령 비서 조직의 기능과 내각 장관들의 기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참여정부가 많은 부분에서 비서실을 개편했는데 본질적이고 명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편한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합니다.



 청와대 조직 개편이 문제의식 없이 개편됐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어떤 형태로 개편돼야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미국의 대통령부는 그 안에 다 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있고, NEC(국가경제회의)가 있고, OMB(행정관리예산국)가 있고, USTR(무역대표부)이 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동시에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국민과 의회에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비서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으면서도 책임을 져야 될 만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행정조직상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반드시 소관 국무위원인 행정 각부 장관을 통해서 행정을 구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비서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실제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을 합니다. 

 두 번째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많은 개편이 있었고, 특히 각종 위원회 조직들이 많이 신설되었지만 그 위원회 조직들 역시 성격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 조직이냐는 겁니다. 정책을 실질적으로 조정한다면 법률적으로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 한계가 불분명합니다. 

 또 경제 정책의 조정 기능을 담당하는 경제수석도 없앴다가 경제정책수석으로 다시 부활시키지 않았습니까. 물론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다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결국 기존의 조직 운영이 별로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현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판단을 합니다. 



 미국과 같이 대통령부로 개편해 청와대 비서실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또 내각도 동시에 개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행정 각부의 장관들, 즉 국무위원들에게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소관 분야에 대한 행정의 책임자라고 하는 기능이 있는가 하면, 국무회의 구성원으로서 대통령의 참모 역할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Secretary(세크리터리)라고 하는 참모 기능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Minister(미니스터)와 Secretary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Minister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각책임제의 Minister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양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대통령이 내각을 통해 국정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또 내각과 별도로 대통령의 측근에서 대통령의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기구가 필요한지, 또 필요로 할 경우 그 기구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처럼 방대한 비서실 조직을 갖추고 있다면 차라리 미국식의 대통령부로 개편해 일정한 권한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대내외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어떠냐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청와대 직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만 제가 청와대에 근무했을 당시 청와대 직제상에 직명이 명시돼 있는 사람은 비서실장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 제 직명이었던 경제수석비서관은 법은 물론 직제에도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은 대통령의 편의에 따라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경제수석비서관을 임명할 수도, 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권한과 책임에 대한 법적 뒷받침이 없는 경제수석이 강력한 조정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법치국가에서 당연히 제기돼야 하는 문제 아닙니까?



 비서관들의 권한과 책임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 그들의 직무는 어떤 규정에 따르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부여하는 데 따라서 권한이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무 유기로 고생을 했지만 직무를 규정해 줘야 유기가 있지 않겠습니까. 직무에 대한 규정이 없는데 어떻게 유기가 있을 수 있습니까. 가정해서 대통령이 경제수석한테 ‘당신은 나에게 1년에 딱 한 번만 주요 현안을 종합해서 보고해’라고 지시해서 1년 동안 한 번도 안 찾고 또 1년에 한 번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해서 직무 유기라 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왜냐면 대통령이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비서실 조직을 다루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제기돼야 되는 문제가 바로 권한과 책임의 일치라고 저는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되고 근무했던 당시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요?

 경제수석으로 임명될 당시 저는 ‘경제수석은 얼굴이 없는 자리다’, ‘엄밀히 말해 경제수석의 정책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경제수석이 하는 정책을 대통령이 ‘그래 맞아, 당신 말대로 해’ 하면 그게 바로 대통령의 정책이 되는 거고, 각부 장관들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장관들이 경제수석의 견해를 따르면 그것은 그 장관의 정책이 되는 것이지 경제수석의 정책은 아닙니다. 경제수석이 분명하게 자기 주관을 가지고 모든 일을 자기 주관대로 관철하려고 한다면 그건 경제수석의 바른 역할이 아닙니다. 만약 경제수석에게 그런 역할을 원한다면 그 사람은 경제부총리를 시켜야 합니다. 



 경제수석의 정책이 되지 않는다 하다라도 경제 정책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경제수석은 내각과 대통령의 관계가 원활하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방향을 설정해 내각에 전달해야 하는 겁니다. 즉 때로는 대통령이 명시하지는 않더라도 묵시적인 대통령의 관점을 파악하고 내각이 대통령의 관점을 잘 반영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본업이지,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다 하겠다 하면 그것은 경제수석의 역할을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많은 경제수석들이 이러한 역할보다는 직접 정책에 개입하고 인사에 개입했던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경제수석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경제수석과 내각의 관계 설정을 잘못한 경우라고 판단됩니다. 물론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조심을 해야겠지만, 예를 들어 제가 부총리와도 토론을 하다 보면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99%는 대화로 해결되지만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때 최종적인 판단은 부총리에게 맡깁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부총리지 경제수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총리와 대화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대통령에게 부총리의 판단이 잘못됐으니 바꿔달라고 건의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중대한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중대한 사안이 아닌 서로 약간의 견해차가 있는 부분은 책임을 져야 하는 내각에 판단을 맡겨야 합니다. 

 제가 경제수석 재임 시 강경식 부총리와의 관계에 대해 언론들이 모두 찰떡궁합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부총리와 갈등을 노출시켰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판 때 이러한 관계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 당신은 대통령의 입장에서 부총리를 견제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부총리를 견제하는 게 경제수석의 본업이 아니다’고 말입니다. 항상 생각이 같았느냐는 질문에도 몇 십 년 경제 정책을 다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심 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개 합의가 되고, 안 되는 부분에서 부딪혔을 때는 ‘부총리의 소신대로 하시오’ 해서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의 관계를 중심으로 경제 정책 결정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합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경제수석의 기능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는 게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물론 첫 번째는 대통령의 성격과 지휘 방식, 스타일에 따라 가장 큰 차이가 납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그 다음에는 내각의 부총리를 비롯한 각료들과 수석의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시스템이 움직였습니다. 

 주요한 이슈가 발생하면 대체로 부총리가 경제수석과 사전에 조율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장관 회의를 하기 전에 경제장관 간담회라는 자리를 통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합니다. 경제장관 회의에서는 조금 더 격식을 차리며 토론을 하고, 국무회의로 올라가면 그건 정말 요식행위에 불과한 토론을 합니다. 

 경제장관 간담회는 부총리 집무실 옆의 접견실에서 진행을 했는데, 경제기획원이 광화문에 있을 때 그 접견실의 바닥에 녹색 카펫이 깔려 있다고 해서 녹실(綠室)이라 불렸고, 간담회를 ‘녹실회의’라고도 불렀습니다. 녹실회의가 바로 경제 정책의 산실이었던 겁니다. 이 자리는 경제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날 이슈와 관련된 장관들, 그리고 경제수석 또는 총리실이 필요할 때 총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경제 관련 책임자급 인사 등이 모여서 토론을 통해 결정을 했습니다. 

 또 이슈에 따라 경제수석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관심사항이 될 만한 이슈가 있을 때는 반드시 참석했습니다. 이때 경제수석은 직접 참석하거나 아니면 비서관을 보내 비서실에서 보는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아마 이것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과 맞을 것이다’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착각하면 안 됩니다. 수석 개인의 이야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비서관의 개인 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관점에서 볼 때 아마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는 의견만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통령의 뜻과 구별돼야 합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여러 장관들과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부총리가 청와대의 뜻이 무엇인가만을 파악하기 위해 경제수석과 조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우 당시 부총리와 경제장관 간담회를 통한 조율도 많이 했지만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전화를 하고 조찬도 하고 밤늦게 퇴근하다가도 만나서 이야기함으로써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대통령의 뜻이 경제수석을 통해서만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경제 정책 결정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했습니까? 

 가령 부총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대통령이 나중에 ‘그런 결정을 하는데 나는 몰랐어’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총리는 대통령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게 사실 가장 중요합니다. 부총리가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은 바로 경제수석이 해야 합니다. 경제수석은 부총리가 끊임없이 대통령을 만나게끔 해주고 평소에는 부총리의 생각을 대통령에게 전달해 줘야 합니다. 또 대통령의 메시지를 자기 주관 없이 있는 그대로 부총리에게도 전달해 줘야 합니다. 부총리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하는 것이지 부총리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경제 정책에 대한 권한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때문에 부총리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하고 있다는 것이 장관들에게 먹혀 들어가야 장관들이 부총리의 조정 권한에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수석 중 차관급 수석은 직급상 부총리와 비교가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부총리와 비슷한, 대등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경제수석이 하는 말은 곧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간주 혹은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총리나 경제수석은 본질적으로 같을 수 있겠지만 부총리는 공적 권한을 가지고 있고 경제수석은 공적 권한은 없지만 대통령을 대신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보완 관계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보완 관계가 잘 작동하면 보다 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간에 갈등 구조가 생기게 되면 복잡해집니다. 공적인 권한과 책임은 부총리가 지는데 부총리는 사실 대통령과 자주 만나게 되지 않습니다. 경제수석은 하루 몇 차례라도 대통령을 만나게 되지만 부총리는 꼭 면담 신청 후에 일정을 얻어 만나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대통령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의 뜻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가 많을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 권한과 책임은 부총리가 지는데 경제수석과 생각이 같으면 몰라도 다를 경우 두 사람 간의 갈등 관계가 발생할 여지가 여기에서 생기는 겁니다.



 대통령은 경제수석을 통해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당연히 경제수석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경제는 부총리에게 맡긴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박정희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부총리에게 경제를 맡기지 않는다고 말한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경제를 어떻게 부총리에게 맡깁니까? 맡겨지지 않는 권한입니다. 경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성패가 좌우되는데 어떻게 부총리에게 맡기겠습니까. 맡겨 놓고도 자연히 불안한 겁니다. 뭔가 부총리가 내 뜻대로 잘 할까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의구심 때문에 부총리가 과연 대통령의 뜻대로 잘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지금까지 경제수석의 또 다른 역할이 되어 왔습니다. 이 역시 부총리와 경제수석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요소입니다. 또 여기에 경제수석 개인의 의견과 철학이 가미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전 김재익 수석 때처럼 대통령이 아예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당신이 모든 것을 다 해줘’ 하면 그때 부총리는 시행자가 됩니다. 이렇게 명쾌하게 해주면 좋은데 그것도 아닙니다. 

 갈등 구조는 공식화될 수 없는 측면이 많을 때 발생합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조직은 대폭 개편됐는데 하드웨어에 대한 개편만 했지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가져다주는 그런 개편은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경제수석이라고 하는 역할은 대통령에게는 조언자, 내각에는 메신저 역할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단순한 조언자나 메신저가 아니라 고도의 경제 정책에 대한 조언, 고도의 경제 정책에 대한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철학이 없이는 어렵게 되니까 자연히 경제수석실로서의 여러 가지 참모 기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각 내각에 상응하는 비서관들을 두고, 비서관 한 사람이 부처를 담당하고 그 부처 업무를 팔로우 업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조언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현재 청와대 조직에서 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기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 청와대 내에는 그런 조직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경제정책수석이라고 이름이 바뀐 것 같은데, 그 직능은 과거의 경제수석과는 많이 다르고 범위도 훨씬 좁은 것 같습니다. 과거 경제수석실에서 하던 일들의 대부분은 지금 10여개의 위원회 조직이 하고 있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은 경제부총리가 경제장관 회의를 통해서 하던 기능이고, 그 중의 반 정도는 경제수석이 참모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기능입니다. 일관된 정책이 나오는 조직이 아니라 각각 따로따로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조직 구조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역할을 분담시킨 조직 구조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점도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출범하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 축소했던 재정경제부를 이어받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 정책의 조정자로 강력한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거죠. 동시에 재경부가 가지고 있던 예산권도 떼어내 버렸습니다. 내각의 강력한 조정 기능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김대중 정부 말기에 재경경제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키는 등 되돌아갔지만 부총리가 부총리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툴은 제대로 주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갔습니다. 또 그것을 이 정부는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부총리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예전처럼 직급은 격상돼 있는데 부총리로서 다른 부처의 장관들을 리드해 나가면서 조정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툴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재정과 금융의 두 가지 툴이 있었는데 금융은 거의 자율화됐을 뿐더러 감독 기능도 독립돼 나갔고 예산은 기획예산처로 독립돼 있습니다. 부총리가 과연 무슨 권한을 가지고 견해 차이가 날 때 다른 장관들을 리드하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부총리가 선임자로서 고참이고 나이도 많고 누가 봐도 한 수 위니까 따라줘야 합니까? 아니면 아주 경제를 잘 알아서 논리적으로 설득을 시켜서 따라오게 하고 있습니까? 조정 기능을 행사하려면 기본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의 백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예산권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조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각의 경제 행정 조직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이 두 조직을 같이 놓고 봐야지 내각은 그대로 놔두고 청와대 조직만 어떻게 개편해 효율적으로 해보겠다는 것도 안 되고, 반대로 청와대 조직은 그대로 두고 내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두 조직을 함께 놓고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 행정 조정 기능을 강화하자고 하는 이유는 경제 행정을 효율적으로 하자는 겁니다. 부총리의 권한을 높이자는 뜻이 아니고 그렇게 해야 경제 행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전제 하에서 저는 현재 청와대 조직 개편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이 내각의 경제 행정 조직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경제 행정 조직의 편제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인데 어떻게 재편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행정 조직은 크게 봐서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옛날로 말하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기능입니다. 공정 거래 기능은 떨어져 별로의 위원회가 됐고, 예산 기능은 기획예산처가 됐고, 나머지 재경부가 가지고 있는 금융 기능 중 감독 기능은 또 따로 돼 있습니다. 

 통폐합을 통해 이들 조직을 두 개의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부총리가 경제 정책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첫째는 부총리가 너무 현업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현안에 직접 책임을 지는 그런 위치에 있게 되면 조정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현안에서는 One Step Away, 즉 현안을 무시하거나 간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한 걸음 뒤에서, 한 단계 거쳐서 오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조정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뒷받침해 줘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은 경제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거기에 몰두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런 세 가지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경제부총리는 이 조건에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밤낮 금융 현안에 매달려 직접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야전사령관이 되어 있습니다. 또 부처의 현안을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할 수 있는, 명시돼 있는 권한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세계를 내다보고 그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는가를 고민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제일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는 과거와 달리 어떻게 마켓 기능을 살려서 시장 원리에 의해 경제를 끌고 갈 것이냐 하는 게 최대의 과제입니다. 이 과제에 집중적으로 몰두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나 법률 등은 과거의 박정희 정권부터 정부가 깊이 개입했던 것이 온 경제 사방에 깔려 있기 때문에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고칠 것은 고치고 새로 도입할 것은 도입해서 한국 경제를 명실상부 국제화·세계화된 마켓이코노미로 끌고 가는 것을 최대 목표로 생각할 수 있게끔 조직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부총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부총리가 금융 기능을 직접 책임지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금융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일이 터지게 돼 있고 시각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에 부총리는 일이 떨어지면 그것부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틈이 주어지질 않습니다. 

 두 번째는 예산권을 줘야 합니다. 세 번째는 경쟁 정책에 더하여 시장을 만드는 기능입니다. 바로 소비자 정책 기능입니다. 그 다음이 대외 정책 조정 기능입니다. 세계를 보고 한국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 것인가 조정하는 기능입니다. 이 세 가지 기능이 부총리의 핵심 기능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경쟁 정책 기능은 공정위가 가지고 있고, 소비자 정책 기능은 재경부에 있는데 이것도 공정위에서 가져가네 마네하고 있고, 또 대외 정책 기능은 통상본부라 해서 외무부가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 행정 조직의 재편은 부총리가 현안에서 일단 벗어나서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고 경제를 크게 보면서 각 부처가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판단을 하고, 또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지도하고, 말을 안 들으면 예산을 통해서 말을 듣게 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정책 기능은 부총리에게 주고 공정위는 조사 및 심판 기능만 가져가 엄격한 준사법 기구가 돼야 합니다.



 공정위를 감시와 심판 기구로만 기능하도록 하자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부총리 산하의 별도 위원회로 하되 공정위는 감시와 심판 기구로만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준사법 기구가 정책 기능을 가지니까 자꾸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심판자로서의 역할에 문제가 생깁니다. 

 재무부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과 구 재무부 기능의 대부분을 다시 살려내되 금융 감독 기구를 통합해야 합니다. 감독 기능 없이 금융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감독 정책을 포함한 금융 정책 기능과 국고 세제 기능을 재무장관에게 주고, 금융 감독 기구는 산하 기구로 설치하되 일정한 독립성을 주는 방향으로의 경제 행정 조직의 재정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정 조직과 청와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청와대의 경제 정책 기능을 생각하면 됩니다. 즉 청와대의 경제 조직을 대통령부로 개편하고 경제에 일정한 책임을 지는 기구로 만들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경제수석을 둬서 그 사람이 대통령과 내각과의 관계를 잘 조절해 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부여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당연히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조직 개편이 크게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데 결국 삐거덕삐거덕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많은 위원회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않고 철학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두 번째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개인적 성향이 많이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부총리 제도를 김대중 정권에서 없앴는데 임기 말에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현상이 생겼겠습니까. 부총리가 됐건 수석이 됐건 장관이 됐건 모두 대통령의 부하입니다. 모든 것이 대통령의 권한이고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집니다. 그들은 일정 부분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 갖고 행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DJ는 자기가 직접 하면 대통령의 권한이고, 내각에서 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경제를 조정하는 부총리가 행사해야 할 예산권을 떼어버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부총리에게 예산권을 주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과 같이 청와대가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와대에서 가져가려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가져가려면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대통령부입니다. 대통령부를 만들어서 예산권을 옮겨가면 되는데 비서실로는 가져갈 방법이 없습니다. 비서실은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요. 예산권은 바로 국회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권한인데 책임을 지지 않는 비서실이 어떻게 행사합니까. 내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다 보니까 기획예산위원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또 별도로 예산청도 만들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이게 바로 문제의식, 즉 철학의 부재 아니겠습니까. 저는 완전히 낭비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난센스가 벌어졌습니다. 예산에 대한 실질적인 조정 기능을 갖고 있는 기획예산위원장이 당시 진념 씨였는데 위원장은 법률적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에 가서 책임을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재경부 장관이 가서 책임을 지는데 재경부 장관은 예산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즉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책임도 지고 답변도 하는 난센스가 벌어진 겁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초래된 비극입니다. 



 국민연금의 활용 방안을 놓고 이헌재 부총리와 김근태 복지부장관의 갈등은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 조정 기능이 상실된 대표적인 사례로 보여지는데요. 

 국가 전체로 봤을 때 국민연금이라고 하는 방대한 리소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 사안입니다. 그건 복지부장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총리 혼자 결정할 사안도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부총리의 조정 기능을 필요로 합니다. 또 예산은 예산대로 일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부총리, 복지부장관, 그리고 기획예산처장관 이 세 사람이 합의를 봐야 되는 겁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부총리가 조정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다만 조정권 행사 과정에서 서로 간에 충분한 의사 토론이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또 조정 기능이 행사되면 장관들은 승복을 해야 합니다. 또 이 조정에 의한 결정은 총리나 대통령이 승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유사한 업무의 참모와 의사 교환도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됐던 것은 그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발표부터 하고 본 겁니다. 또 김 장관 역시 문제가 있다면, ‘왜 나하고 협의를 하지 않았느냐. 지금이라도 나와 협의를 하자’ 하는 게 아니라 언론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한 것은 전형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에서의 문제를 노출시킨 겁니다.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의 관계가 긴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건지요? 

 적어도 경제수석이나 경제부총리쯤 되는 사람들이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들 그만한 경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또 나름대로 자신들의 주관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제수석을 통해서 대통령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말은 그렇게 안 하겠지만, 만약 대통령이 내각을 못 믿겠다, 경제수석을 통해 내각을 견제하겠다고 생각하면 부총리와 컬러가 다른 사람을 경제수석으로 임명할 겁니다. 반대로 두 사람이 한 팀이 돼서 일을 잘 해주는 것이 결국 자신을 잘 보좌하는 길이라고 믿으면 가능한 한 컬러가 같은 사람을 쓰게 되겠지요. 컬러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고 경제철학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일률적으로 이처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경제를 잘 알았던 대통령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부총리나 경제수석을 바꿀 때는 어떤 이유 때문에 바꾸는지, 예를 들어 그동안 이런 정책을 썼는데 이제는 그 정책보다 다른 정책을 쓸 때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총리를 바꾸고 또 부총리와 호흡이 잘 맞는 경제수석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내각을 구성하고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을 바꿨는데 왜 바꿨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아니면 경제가 잘 안 돌아가니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되겠고 그래서 그만두게 하고 다른 사람을 찾다보니까 누구를 시켰는데 서로 전혀 다른 컬러를 가진 사람이 온 겁니다. 따로따로 뽑다 보니 나타난 결과입니다. 다 인사에 대한 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각과 청와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이 인사에 반영돼야 합니다. 경제는 아주 복잡한데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참모를 썼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해야 합니다. 결국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총리의 생각은 이렇고, 수석의 생각은 이런데 대통령이 판단을 해 주십시오’ 하면 ‘그래? 이번에는 이 정책이 좋겠어’, ‘아니 이번에는 이 정책이 좋겠어’ 이렇게 판단을 해줄 만한 능력을 갖춘 대통령이 우리에겐 많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것이 가능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임기 말에는 가능했다고 기억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미안한 이야기지만 경제를 잘 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제가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 지금 노무현 대통령? 다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경제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부총리와 경제수석 두 사람이 잘 합의해서 가장 효율적인 안을 가져오도록 기대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로 팀을 꾸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깊은 지식과 비전, 철학을 가진 분이 대통령을 한다면 달리 할 수도 있겠죠. 오히려 상반된 사람을 통해서 더 고도의 정책을 만들어내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내각과 청와대를 운영하겠다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많이 알고 스스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경제 전문가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한국의 정치 구조상 경제 전문가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거든요. 



 현재와 같이 경제 위기라고 하는 상황에서 경제수석실의 경제 조정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통령부로 개편하고 경제 정책의 최종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지는 형태로 가지 않는 한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그런 현상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물가가 오르면 감당을 못했습니다. 국민 여론도 나빠지고 언론에서도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면 부총리가 미안하지만 책임지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주로 박정희 정권에서 그랬고 이후 정권에서도 그랬습니다. 

 그 점에서 경제문제를 비롯한 기타 국정 운영이 대통령부를 통해 직접 책임지는 형태로 가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이 비서실 체제로 운영하면서 경제수석에게 강력한 힘을 갖게 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너무 할 일이 많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장관들은 대통령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장관은 취임할 때 한 번 만난 뒤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각의 경제 행정 조직의 정비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경제 부처의 사람들 대부분은 말은 못하지만 다 느끼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4개 부처에서 일하고 있는 장관들도 다 마음속으로는 뭔가 조직 개편이 있어야 된다고 느끼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동안 FTA 등 대외 통상 문제에서, 대외 개방을 포함한 주요 대외 문제는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외교통상부가 그 역할을 떠맡고 있습니다. 오히려 부총리는 한발 비켜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부총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엔 우리나라의 대외 경제 정책 조정 기능이 경제기획원에 있었잖습니까. 물론 교섭까지 경제기획원에서 했던 것은 아닙니다. 교섭은 외무부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가 했습니다. 

 ‘바깥에서는 이런 환경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대응은 어떻게 하고 우리 내부 제도는 어떻게 정비해야 하지?’ 이걸 생각해야 하는 게 부총리의 주요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역할을 하는 곳이 없습니다. 외무부의 통상교섭본부장이 그 역할을 어떻게 합니까. 교섭을 하고 다닐 수는 있을망정 경제 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고쳐나가야 되는지 통상교섭본부장이 무슨 권한을 가지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 고치라 마라 하겠습니까. 



 참여정부가 만들고 있는 경제 정책에 대한 로드맵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고 있습니까? 

 분야별 로드맵을 만든다는 기본적인 발상은 좋다고 봅니다. 우리 경제가 가야 할 코스를 만들고 그 코스에 따라가야겠지요. 그것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그 코스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하니까 기다려봐야 되겠지요. 

 우리가 경제를 생각할 때 몸속의 핏줄에 비유할 수 있는데, 몸속에는 수백 수천 가닥의 핏줄이 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다 대통령이 해결해야 하고, 내각이 해결해야 한다면 밤잠을 자지 않고서 처리해도 불가능합니다. 그 전체를 통하는 하나의 커다란 원리를 분명히 설정하고 큰 원리가 위에서부터 흘러 내려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 조직이 그 원리에 맞도록 일관성을 갖고 또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가 로드맵을 만들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사회복지라든가, 노사문제, 연금문제, 교육문제 등의 이슈들이 골칫거리입니다. 즉 경제와 표리 관계에 있는 이런 분야들이 경제의 발목을 잡거든요. 

 이 분야들이 경제와 같이 경제 논리에만 의해 흘러가기는 어렵지만, 이 분야들이 꼬이면 절대 경제가 잘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 시스템의 구체적인 모습도 이것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다 사회주의적이냐, 보다 시장경제주의적이냐, 보다 자본주의적이냐, 보다 국가 계획적이냐 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겁니다. 때문에 이런 문제들과 경제 정책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가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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