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김봉수 사장(당시 전무)은 매일 밤잠을 설쳤다. 회사 설립 후 영업 개시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지만 증권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주식 거래 수수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수수료를 결정치 못하면 영업 개시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시장 진입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미 미래에셋, 이트레이드증권 등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경쟁사들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온라인 주식 거래 수수료를 0.1%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죠. 회사 설립 초기인 만큼 어느 정도 수익 기반을 갖춰 나가기 위해선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3년 후부터 수수료를 단계별로 내릴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어디서 영업 기밀이 새어나갔는지 경쟁사들이 더 낮은 수수료를 내걸고 잇따라 영업을 개시하지 뭡니까.”

 사면초가였다. 선발사보다 수수료를 높게 책정할 경우 고객을 끌어 모으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더 낮게 책정하자니 손익분기점(BEP)을 맞추는 게 태산을 옮기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결정은 쉽지 않았다. 앞뒤 사정을 보자면 밑지고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떤 오너가 이를 받아들일까 싶었다. 영업 총괄이란 직분이 천근만근처럼 여겨졌다.

 “온라인 주식 거래가 조금씩 활성화되면서 주식 거래 비용인 수수료는 고객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항이었지요.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죠. 잠이요? 잠이 오겠습니까.”

 김사장은 결국 업계 최저인 0.025%를 주식 거래 수수료로 채택했다. 당초 계획의 25% 수준으로 내린 것이다. 밑지고 장사를 하더라도 일단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오너와 사장도 그의 어려운 결정과 모험에 동참했다.  0.025%의 수수료로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시장점유율이 3% 이상은 돼야 했다. 하지만 신생사가 단기에 3%의 점유율을 기록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천지개벽과도 같았다. 당시 증권사들은 0.1%의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수십억원의 홍보 및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증권업계의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0.025%의 수수료로는 1년도 채 안돼 망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최저 수수료 결정 “일단 가자”  

 “업계 최저인 0.025%의 수수료로 영업을 개시하자 별의별 말이 다 나왔어요. 단기 사망할 것이란 말도 수없이 들었고요. 아마도 회사 직원들도 의문을 가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증권 영업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이라면 상식 밖의 결정과도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김사장은 자신했다. 또 스스로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위안했다. 매일 여유가 날 때마다 ‘사업 초기에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는 “어떤 말이 나와도 긍정적으로 생각키로 했어요. 솔직히 주변의 말에 휩쓸릴 여유도 없었고요. 결정이 난 상태인 만큼 빨리 고객을 늘려 나가는 게 급선무였죠”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영업 개시 첫 해인 2000 회계연도에 키움닷컴은 6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자본금도 76억원이나 까먹었다. 사업 초기 마케팅·홍보·전산 등 투자 비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수료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손실 폭이 60억원에 그쳤던 것은 주식 거래 수수료 수익 부문 이외에 여타 영업 부문이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 수수료로 당장 수익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죠. 그나마 종합 증권사로 채권 등 홀세일(Wholesale) 부문에서 수익이 많이 나면서 영업 첫 해 손실을 줄일 수 있었어요.”

 영업 개시 첫 해 실적 발표 후 업계에선 “그나마 잘 버텼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키움닷컴 매각설마저 시장에 흘러나왔다. “투자 자금을 까먹으면서까지 오너가 증권사를 고집하겠느냐는 것”이 그 근거였다.

 소문의 근거가 어떻든 김사장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문을 좇기보다는 고객을 좇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자리에 연연하는 등 한눈을 팔면 자신은 물론 회사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이듬해 키움닷컴은 91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김사장의 저가 정책과 고객 서비스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주식 거래 점유율이 손익분기점인 3%대 가까이 올라서면서 영업 비용 대비 수익도 점차 늘어났다. 이같은 실적 개선으로 당시 전무였던 그는 2001년 3월 사장으로 전격 승진됐다.

 사장 승진 이후에도 그의 주식 거래 점유율 확대는 끊이질 않았다. 지점이 없는 온라인증권사란 단점을 콜센터와 다양한 고객 서비스로 채워 가면서 주식 거래(위탁) 시장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손익분기점인 3%의 시장점유율을 돌파한 키움닷컴은 2002년말 4%, 2003년말 6%, 2004년말 7%에 이어 최근에는 8%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경쟁사는 물론 대형 증권사를 제치고 업계 3위권에 진입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2년 66억원, 2003년 74억원, 2004년 103억원(세전)의 순익을 올리는 등 4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주식시장 침체로 여타 증권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도 키움닷컴증권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수수료 결정 당시에는 정말 생존이 가능할까 하는 부정적 인식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지난해부터는 대형사마저 제치고 주식 거래 부문에서 업계 수위를 달리자 모두들 대단하다는 반응이에요.”

 지난해 4월 그는 또 한 번 사건을 만들었다. 신생사 중 후발 주자였던 키움닷컴을 코스닥시장에 가장 먼저 올려놓은 것. 키움닷컴은 코스닥 등록 후 일반 증권사의 주가 수준을 뛰어넘었다. 또 외국인 지분도 12% 이상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수익 구조가 탄탄하다는 반증이다. 이같은 현상은 영업 개시 초기 김사장의 ‘상상 밖의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그가 높은 수수료를 결정하거나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했다면 또다른 결과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시장점유율 10% 돌파에 주력

 그는 “업계 최저 수수료를 결정하고 나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후회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고객 입장에 서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사장은 매주 리테일 영업 회의를 직접 주관한다. 공식 회의 명칭은 ‘9% 미팅’. ‘시장점유율 9% 돌파’를 위한 선언적 명칭이다. 그는 점유율 3% 때부터 이 미팅을 매주 주관해 왔다.

 “10% 돌파가 최종 목표입니다. 10% 이상이면 키움닷컴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정도지요.”

 최근 그는 또다른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고객 종합자산관리서비스가 바로 그것. 키움닷컴은 온라인증권사로 지점이 없어 얼굴을 맞댄 상담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극복키 위해 김사장은 온라인펀드 판매는 물론 콜센터와 온라인을 통한 자산 관리 상담 서비스를 개발, 조만간 실시할 예정이다.

 김사장은 “앞으로 자산 관리 업무가 시장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자산관리서비스를 위해 자산운용사 인수나 신규 설립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