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이슈로 떠오르는 요즘 유럽경제공동체 연구의 대가인 프랑스의 자크 마지에 교수와 소피 사글리오 교수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전 단계로 통화공동체를 제시해 눈길을 끈다. <이코노미 플러스>는 이들 두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실시했다.
 자크 마지에(58) 프랑스 파리13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1981년부터 1984까지 프랑스 국무총리실 경제계획단 고문을 역임했고, 유럽경제통합과 유럽통화연맹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유럽경제통합 분야의 대가다. 소피 사글리오(32) 교수는 파리 13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있으며, 자크 마지에 교수와 ‘유럽연합의 비대칭과 조정’(2004) 등의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동아시아 통화공동체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7년에서 1998년의 기간에 발생한 아시아 금융 위기와 1999년 유럽통화연맹의 출범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공동체를 향한 움직임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즉 향후 또 다른 금융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억제하고 역내 금융시장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아시아 경제권의 국제무대에서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통화 공동체의 장점은 단일 통화를 보유함으로써 무역 및 자본 이동과 관련하여 환전을 위한 거래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들 수 있는데, 유럽의 경우 단기적으로 평균 0.5%의 국민총생산(GDP) 증가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경우 통화공동체를 향한 과정에서 한국이나 일본 등 경제력에서 앞선 국가들이 더 큰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 간에 투기적 환수요가 사라짐으로써 환율 안정을 이루게 되고, 역내 금융시장 안정화를 가져오게 되며, 환위험 관련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이자율의 현격한 하락세가 시현되어 금융 비용이 절감된다. 이외에도 국경 간 무역 및 투자 유인을 강화시키고 국가 간 재화가격의 차이가 줄어들게 되며, 통화 정책의 국가 간 협조가 원활해질 뿐만 아니라, 어느 한 국가가 일방적인 평가 절하를 통한 실업의 수출 현상(평가 절하를 통해 자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상대방 국가의 경쟁산업을 위축시켜 자국의 실업률은 감소하고 경쟁 국가의 실업률은 상승하게 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게 되는 점도 장점이다.”



 EU가 통화공동체로 가며 단계별로 직면했던 문제들은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1979년에서 1992년간 유지되었던 유럽통화체제(EMS: European Monetary System)의 경우 참여 국가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상이했을 뿐만 아니라 참여 국가 및 다른 유럽국가의 경제 성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비용이 매우 컸던 시스템이었다. 즉, 유럽통화체제의 통화였던 유럽통화단위(ECU: European Currency Unit)는 독일 마르크화에 연동한 통화로, 독일 마르크화의 움직임에 의해 그 수준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기 자본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손실을 입은 국가들은 환율이 약한, 환율 변화가 급격하게 나타나는 국가들로서 이들 국가들은 긴축 정책을 쓰거나 이자율의 급격한 인상 등의 정책을 사용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 경제의 불균형 현상의 주요한 원인으로서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성장 및 고용시장에서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유럽통화연맹의 산실로서 통화연맹 출범 이전인 1998년 말까지 참여 국가가 충족시켜야 할 거시경제적인 조건들을 명시함으로써 참여 국가들의 경제 정책을 제한하고 각국의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유로화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단계를 제시한 것이지만 이를 통한 유럽 경제의 재건은 아직 미완이며 유럽통화연맹은 아직 매우 불균형한 상태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럽통화연맹 출범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이로 인한 이익은 국가별로 상이한데, 그럼에도 유럽통화연맹이 탄생한 것은 통화연맹이 경제적인 계산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통화동맹 또는 경제공동체는 경제적인 문제 이상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안보적인 부문을 모두 총괄한 종합적인 비전 하에 정치적인 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유럽을 위한 노력은 반세기에 걸쳐 이루어져 왔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손실에도 유럽통화연맹은 현재 미국 경제권에 견줄 수 있는 거대 경제권이며 유로화 또한 국제 결제 단위로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EU의 사례로부터 동아시아가 배워야 할 점을 꼽으라면 우선 어떤 점을 들 수 있는가?

 “1999년 1월1일 출범한 유럽통화연맹은 불완전한 제도적인 장치로서, 유럽의 안정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기반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통화연맹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재정 정책의 효율적인 협조 체제를 창출하고, 재정 및 통화 정책 간의 보다 효율적인 협조 체제를 구상하여, 유럽통화연맹권 외부에 대한 대외적인 환율 정책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통화연맹과 같은 범국가적인 환율체제를 구축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국가 간의 정책적 협조 체제의 구축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즉 어느 한쪽만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요구하자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

 “단일 통화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개별 국가는 더 이상 환율 정책을 임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주요한 정책 수단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역내 혹은 역외에서 발생하게 되는 경제 충격, 예를 들어 오일 쇼크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 수단이 사라지고, 노동시장을 통한 정책이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환율 정책이 단기적으로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정책임에 반해 노동시장 정책은 그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나고 완전하지 못한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중국 등과 같이 노동시장이 매우 경직되어 있는 국가의 경우 통화공동체 안에서 외부의 경제 충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어려움도 상존하게 된다. 유럽에서도 자국 통화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 높은 실업률이 존재하는 국가는 팽창적인 통화 정책을 쓸 수 없게 되는데, 유럽통화연맹(EMU: European Monetary Union)의 경우에도 외부의 경제 충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미비한 상태에서 단일 통화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의 지나친 자율권과 국가간 통화 및 재정 정책의 조화가 어렵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역내 환율제도의 안정을 위한 정부 간 협조 과정에서 적정한 초국가적인 기관 또는 제도의 완비를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통화연맹의 경험을 통해 동아시아 통화공동체의 모델을 모색해 본다면 어떤 모델이 적합하다고 보는가?

 “1997년에서 1998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발생한 아시아 금융 위기는 안정적인 환율 시스템의 중요성과 위기 과정에서 단기 금융자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경우이다. 1970년대 초반 이후 동아시아 국가에서 채택한 환율 정책은 이들 국가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압력과 불균형 현상이 199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 금융 위기로 나타난 것이다.

 아시아 통화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연맹에 비해 훨씬 유동적인 성격을 띠는 아시아통화단위(ECU:Asian Currency Unit) 같은 안이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은 일본 엔화를 포함한 아시아 통화들로 아시아통화바스켓을 구성하는 것이다.

 1993년 이후 상하 15%의 범위로 그 변동 허용 폭이 확대된 유럽통화체제(EMS:European Monetary System)의 경우와 같은 통화바스켓의 구성은 아시아 국가들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진전을 의미할 것이다. 구성 국가의 통화 환율을 아시아통화단위의 중앙값에 연동시켜 각국 환율을 아시아통화단위의 중앙값 대비 상하 15%의 변동 폭만을 허용하는 아시아통화바스켓안을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아시아 참여 국가들 간에 국가별 환율 정책의 자유도를 제한함으로써 아시아통화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자본 이동을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장치는 1992년과 1993년, 독일과 다른 유럽통화체제 국가 간의 정책적인 비협조 과정에서 발생한 유럽통화체제(EMS)의 비대칭적인 균열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 유럽에서 독일의 위치에 비견할 수 있는 아시아에서 일본이 엔화를 통해 일방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현상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U와 동아시아는 많은 면에서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경제공동체로 갈 때 어떤 점들이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가?

 “아시아와 유럽의 경우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아시아의 경우 경제 개발 및 경제 수준의 차이가 유럽통화연맹 국가들보다 훨씬 크다. 두 번째는 아시아 국가의 경우 경제 협력을 위한 국가 간의 다자간(multilateral) 협조 경험이 유럽에 비해 일천하다.

 아세안(ASEAN) 국가의 경우 구성 자체가 느슨하며 아시아자유무역권(Asian Free Trade Area)을 위한 진전 또한 매우 느리기 때문에 쌍방 간 FTA가 이를 대체하는 돌파구로서 추진되고 있지만 단일 시장(Single Market)으로 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매우 먼 것으로 보인다. 통화 및 금융 협력과 관련하여 아시아 중앙은행 간 또는 재무부 간의 협조 체제는 무게감이 작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정도가 지난 수년간 이루어진 노력 중 가장 중요한 정책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2000년 5월 태국의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에서 개최된 ASEAN 국가 및 한·중·일 3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국가 쌍방 간 위기 시에 합의된 규모의 단기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다.

 2004년 말 현재 365억 달러 규모의 쌍방 간 자금 대출 스왑 계약이 국가 간에 체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는 금융 위기 발생 시에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규모이므로 아시아 국가 간의 범국가적인 협조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통화공동체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아마도 한국,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이 통화 동맹을 결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이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국가보다 경제 개발 수준이 뒤떨어지는 다른 아시아 국가 및 중국은 통화 동맹을 추진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으로 판단된다. 단계적인 추진 작업이 중요하며 국가 간의 정치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자간 협의 체제를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이 뒤떨어지는 부분이며, 통화공동체를 향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결단과 비전,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 실물 부문에서의 공동체 형성이 선행되어야 성공적인 통화공동체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한국이 특히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로 갈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통화공동체로 가든 경제공동체로 가든, 중요한 사실은 어떤 연맹을 결성하는 것은 경제 논리 이상의 문제이며 정치적인 결단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국가적 규모가 작고 이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이 두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통화공동체 및 경제공동체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으나 그에 따른 리더십에 대해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충분히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는 경제공동체에 대한 적극성이 미진하고 경제 수준 또한 통화공동체로 가기 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국가의 입장을 조화시키고 역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한국이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체들은 통화공동체에 대비해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통화공동체가 형성되면 역내 국가의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된다. 왜냐하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의 국가 간 비교가 더 용이해지고,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구조 조정 및 기업 혁신 노력을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서비스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역내 경쟁 체제를 준비해야 하며 역내 다른 국가들에 대한 시장 및 경쟁 기업 조사, 시장 확대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