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축은행업계의 최대 화두는 ‘변화와 혁신’이다. 경영부실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고 금융환경마저 급변하면서 업계 전체가생존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코노미플러스>가 선정한 베스트 저축은행(5월호 참조)에 뽑혔던 동부상호저축은행(이하 동부)의 김하중(60) 사장은 대표적인 혁신 CEO 중 한 사람이다. 업계 최초로 유럽식 경영모델을 도입해 주목받고 있는 김 사장을 지난 6월29일 만나 저축은행의 발전 방향과 방법론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한마음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조치를 받는 등 저축은행의 경영환경이 어려웠습니다. 2004 회계연도 경영실적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해(2004 회계연도)는 경기침체에 따른 투자수요 부진 등으로 인해 저축은행의 영업환경이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한 해 재무적 성과 측면을 보면 당기순이익은 40억원을 기록했고 자산은 10%(6500억원) 정도 성장했습니다. 철저한 고객 및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소나마 성장 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김 사장은 2004 회계연도 경영실적에 대해 담담히 말했지만 사실 그동안 동부가 투자했던 인적 및 물적 비용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동부는 지난해 불경기에도 전체 인력의 20% 정도(16명)를 경력 및 신입사원으로 채용했고 임직원 해외연수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또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 CRM(고객관리시스템), BSC(성과관리시스템) 등 상품개발 및 고객관리를 위한 IT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히 업계 최초로 유럽식 경영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스웨드뱅크( 

Swedbank) 수석부사장 출신인 피터만센씨를 경영고문으로 영입하고 독일, 스웨덴 등 선진 금융기관과 파트너 뱅크 업무를 체결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만도 수십억원을 쏟아부었다. 이 같은 투자에 힘입어 동부는 2004 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400% 이상 증가했다. 또 BIS비율 9.4%, 고정이하여신비율 2.9%, EVA 100%를 달성했다. 이는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의 공격적인 금리영업으로 저축은행들이 소매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 시중은행들의 영업행태에는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시중은행들은 현재 자기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커머셜뱅크(Commercial Bank)로서 투자은행(IB) 등 도매금융 능력과 글로벌화를 대비한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할 판에 금리영업을 통한 고객 뺏기에나 여념이 없으니까요. 금융대전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해외 선진 금융기관과 경쟁이 되겠습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이러다간 자칫 금융시장 최전방인 1금융권을 모두 해외에 내줄 수도 있습니다. 해외 선진 금융기관과의 경쟁이 어렵다고 도매금융은 저버리고 손쉬운 리테일에만 제살 깎기 식으로 주력한다면 언젠간 시장 전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김 사장은 국내 시중은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하게 비판했다. 경쟁사 고객을 뺏기 위한 금리영업 등으로는 절대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시중은행의 취약한 영업행태와 관련해 그는 황당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했던 한 고객이 대출금을 갚으러 왔다. 예정에 없던 대출상환이었기에 이유를 묻자 A은행의 여신직원이 찾아와 더 싼 금리를 줄 테니 저축은행 대출을 갚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한숨이 나왔다. “은행이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고객 입장에서는 싼 금리를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은행들이 철저한 담보심사나 분석도 없이 단순히 실적을 위해 금리영업을 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드림(DREAM)2007’이라는 경영비전을 선포했는데요.

 IMF 이후 향후 생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현재와 같은 업무와 역량으로는 금융자율화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돌파구가 필요했죠. 이를 위해 2002년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 저축은행이 잘 발달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조사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유럽 저축은행의 경우 과학적인 고객 데이터베이스에 의한 강력한 지역밀착 영업을 통해 자국내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었죠. 특히 독일,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어느 나라나 저축은행 상품이 자국내 1~4위 안에 들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죠.

 ‘드림2007’은 유럽 저축은행의 경영모델을 벤치마킹해 기존의 업무관행과 프로세스를 완전히 개혁하는 것입니다. 저축은행의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수준의 역량과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죠. 이를 통해 새롭고 차별화된 소매금융 서비스로 영업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직원에게도 업계 최고수준의 근무여건을 실현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유럽 최대 저축은행인 독일 스파르카젠(Sparkassen)과 스웨덴 3대 은행인 스웨드뱅크(Swedbank)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직원연수, 해외 전문인력 영입, IT투자 등을 추진한 것도 모두 이 ‘드림2007’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죠. 올 하반기부터는 새로운 모습으로 고객을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당국의 구조조정 촉진 정책과 맞물려 저축은행도 M&A가 활성화될 전망입니다. 동부는 어떤가요.

 맞습니다.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자발적인 M&A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부 역시 항상 M&A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드림2007’ 비전과 함께 M&A를 통한 대형화로 지방은행 규모의 리테일 뱅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죠.

 저축은행업계 M&A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당국의 저축은행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영업적인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는 매수자가 나타날 리 없죠. 시중은행과 동등한 영업환경을 만들어놓는다면 M&A가 활성화돼 업계 전체가 대형화, 선진화될 수 있고 이는 곧 지역경제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저축은행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라고 봅니다. IMF 이후 대부분의 금융권에 규제완화 조치가 이루어졌죠. 그러나 저축은행은 거의 소외된 상태였어요. 일부 규제완화 조치 역시 실익이 적은 제한적인 규제완화였죠. 규제 일변도의 정책하에서는 저축은행이 제대로 된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저축은행이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포지티브형 법이 네거티브형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최근 저축은행의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저축은행들이 기준 이상의 LTV(Loan To Value ratio, 주택담보비율)를 적용해 주택담보대출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후순위대출도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연쇄부실 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죠. 과거 소액신용대출이 가계부실로 저축은행들을 압박했듯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주택담보대출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동부상호저축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0억원  정도이지만 철저한 담보심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후순위대출은 아예 취급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저축은행의 구조조정 촉진 방안으로 차별적인 규제완화를 계획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별적인 규제완화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전국에 109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외형이나 자본력, 경영능력이 천차만별인 것이 현실이죠. 그렇다 보니 업계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태입니다. 따라서 모든 저축은행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합니다. 저축은행업계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차별적인 정책을 통한 규제완화 조치가 꼭 필요하죠.



 국내 저축은행업계의 비전과 발전 방향은 무엇입니까

 저축은행의 존재 목적은 지역서민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역서민금융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 은행산업을 보면 IMF 이후 시중은행은 대형화되는 반면 지방은행은 시장에서 점차 퇴출되고 있는 상태죠. 지방은행의 퇴출과 함께 지방 경제도 힘을 잃고 있습니다. 지방 경제를 되살릴 소형은행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거죠. 유럽·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저축은행이 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국내도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지역내 풀 서비스 리테일 뱅크(Full Service Retail Bank) 역할을 담당하도록 육성해야 합니다. 개별 저축은행도 구조조정과 선진금융기법 도입 등을 통해 지역 경제의 파수꾼으로 거듭나야 하고요.  



 김하중 사장은 저축은행업계의 산증인이다. 신용금고 시절부터 25년간 저축은행에 몸담은 그는 현재 저축은행업계는 위기와 기회 사이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변화와 혁신’만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사장은 ‘변화와 혁신’으로 유럽식 선진금융기법을 채택했다. 그의 처방이 새로운 리테일 뱅크를 탄생시킬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