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중심의 중소기업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2월 설립된 한국기업데이터(KED)의 배영식 사장(56). 그의 꿈은 국내 최대 기업 신용정보를 활용해 KED를 ‘아시아의 무디스’로 만드는 것이다.
 “동북아의 무디스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표준으로서 국제적인 공신력으로 인정받는 기업 신용조사·평가기관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배 사장은 KED의 목표로 차별화된 기업정보 및 평가시스템을 통한 ‘아시아의 무디스’를 표방했다.

 배 사장이 ‘아시아의 무디스’가 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신용등급의 신뢰성이다. 그는 아직까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과 분석의견에 대해 국내기업이 드러내진 않으나 불신하고 있다는 점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그동안 국내시장에 신용정보 체계를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며, 일부 신용평가기관이 채권추심이나 유가증권 평가에 주력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배 사장은 KED의 신용평가는 충분히 신뢰받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런 자신감은 KED가 보유한 중소기업 데이터베이스(DB)에서 출발한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법인사업자와 개인사업자를 합해 약 300만개의 사업자가 있어요. 이 중에서 250만개는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자입니다. KED는 약 100만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의 기업정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양적으로 국내 최대의 기업정보 DB다.

 그는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300명에 달하는 조사전문 인력들이 수집하는 생생한 현장조사 정보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개별기업의 종합적인 신용등급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객관적인 기업신용 등급 평가를 위해 전문인력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세분화된 업종별 전문가를 양성해 업종의 동향, 주요 특징, 평가 체크포인트 등을 세밀히 파악해 신뢰성 있는 신용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KED는 지난해 7월 발표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통해 금융기관의 신용여신과 기업간 신용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은행연합회,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은행 등 11개 기관이 참여해 지난 2월 출범했다.

 이 회사는 금융기관을 비롯해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 흩어져 있는 신용정보를 모아 통합관리하면서 이를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신용정보회사다. 은행이나 대기업 등은 KED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정보를 활용해 대출을 하거나 협력업체를 선정한다.



 조달청 등에 기업신용 정보 제공

 이미 한국기업데이터에서 평가한 신용등급은 조달청에서 정부조달업체를 선정하거나, 일부 금융기관에서 담보 없이 신용만으로 대출할 경우에 필수항목으로 반영하고 있다. 두산그룹을 비롯해 삼성,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도 협력업체에 대한 신용정보 서비스를 KED로부터 받는다.

 “조달청이나 공공기관에 물자를 조달할 때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신용평가를 받아야만 입찰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과거에는 자격도 없는 중소기업들이 무조건 싸게 덤핑으로 낙찰을 받아 채산성을 못 맞추고 납품 전에 부도나는 경우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는 국방부나 도로공사, 주택공사 등에서도 KED의 신용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배 사장은 올해는 출범 첫 해인 만큼 조직의 기반을 여러 모로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효율적인 기업정보 관리의 기틀을 잡아나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풀링(Data Pooling)이라고 불리는 ‘정보의 집중’을 위해 주력할 예정이다. 그는 “재무제표 위주의 정태적(情態的) 정보로는 급변하는 기업의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동태적(動態的) 정보수집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신용평가 서비스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은행의 대출관행을 바꿀 정도까진 아니라는 게 배 사장의 설명이다. 아직 은행들은 담보 없이 KED가 제공하는 신용정보만으로 대출해 주는 걸 꺼리고 있다는 것. 현재 국민은행은 KED에서 제공한 정보로 일정 등급 이상의 중소기업에게는 담보설정 없이 대출이 가능한 체계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전 은행권으로 확산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배 사장의 판단이다.

 그는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시장은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이 될 겁니다”며 은행권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배 사장의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그동안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한편 이들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시절 ‘중소기업이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닌 기업인을 수없이 접하면서 중소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고민을 통해 그가 만든 이론이 ‘KIMTCH(김치론)’과 ‘페달론’이다.

 김치론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여섯 가지 경영요소를 이니셜로 따서 만든 내용이다.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 키워야

 K는 Knowledge(지식)다. 새로운 전문지식이 없이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I는 Information(정보)로 시장·경쟁사·우량 정보 등 정보가 곧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M은 Marketing(마케팅)을 뜻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도 홍보를 포함한 판매네트워크가 부실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또 Technology(T:기술)에 대한 투자도 아낌없이 해야 합니다.”

 C는 상품에 대한 지역·소득·계층·연령별 문화를 담아야 한다는 뜻으로 Culture(문화)를 의미한다. H는 Human relation(인간관계)을 말하는데, 대내외적인 인적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으면 사업의 전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그는 이 중에서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크게 기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단언했다.

  ‘페달론’은 기업이 첫 페달을 밟는 것은 정부가 도와주지만, 일단 탄력을 받으면 혼자서도 굴러갈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된다는 뜻이다. 정부가 우량한 기술혁신 중소기업에 대해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하지만, 중소기업도 내적으로 기업성장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그는 “지금은 신용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기업의 신용도가 각종 거래의 의사결정 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선정하거나, 중소기업 간에도 거래를 할 경우 ‘그러면 한국기업데이터에서 평가한 신용등급을 보자’고 하는 그런 날이 조만간 올 겁니다”고 기대했다.

 배 사장은 1978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공정거래실, 기획예산담당관, 공보관, 경제협력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재경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2년부터 2005년 6월까지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2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었을 때 노조로부터 보약을 선물 받은 일화는 유명한데, 그만큼 그는 덕장형 리더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