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9월8일 목요일 오후 3시. 평소라면 업무에 한창 박차를 가할 시간이지만 잡링크와 DIT 직원들은 바삐 회사를 나선다. 평소와 달리 가벼운 옷차림의 한현숙 대표도 직원들과 뒤섞여 차에 오른다. 유럽과 미국을 오간 오랜 출장에서 돌아온 지 3일째.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표정만은 어느 순간보다 밝다. 목적지는 성남 모란 시장 부근에 있는 ‘안나의 집’.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노숙자 무료급식 자원봉사를 하는 날이다. 서울 명동에서 기업 인사 관련 책임자들이 모이는 중요한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한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안나의 집’행을 택했다.

 두 회사의 직원들은 2001년부터 자원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안나의 집’을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인 김하종(보르도 빈첸시오) 지도신부의 도움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봉사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항상 해야 하는 것’이라는 한 대표의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매달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직원은 15명 안팎. 훨씬 많은 수의 직원들이 스스로 참여하기를 희망하지만 일하는 공간이 한정돼 있어, 매달 순번제로 돌아가며 기회(?)를 잡는다. ‘안나의 집’에 도착하면 직원들은 익숙하게 자신의 일거리를 찾는다. 몇몇은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으로 향하고, 또 다른 몇몇은 2층에서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옷을 정리하고 분류해 놓는다. 그들이 이렇게 척척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배어 있다.

 가을바람이 선선히 부는 날이었지만 주방 안은 한여름의 열기를 능가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시원해진 거란다. 한대표는 한창 때는 40℃ 가까이 올라가 정말 쓰러질 뻔했다고 귀띔한다. 봉사활동을 하는 게 결코 수월하지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안나의 집’ 봉사활동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해 저녁 9시까지 이어진다. 재료 준비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6시부터 배식이 이루어진다. 2시간 동안은 모든 사람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한 대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집에서는 잘 하지 않던 요리와 설거지를 두 팔 걷고 나서서 한다. ‘안나의 집’ 주방 책임을 맡고 있는 김춘자씨(52)는 한 대표와 직원들의 봉사를 가장 반긴다고 한다. “사장님부터 정말 진실하게 봉사를 하시니까 직원분들도 다 모두 열심이시거든요. 폼 잡고 사진 찍으러 오는 국회의원 분들과는 다르죠.”

 직원들도 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느낀다. “솔직히 봉사활동은 제 만족이 큰 시간인 것 같아요. 지난 번에는 저희 아이들과도 함께 왔는데 다녀간 뒤에는 애들이 달라지더라고요.”(이정호 DIT 상무이사)

 봉사활동은 한 대표와 직원들, 그리고 직원들 서로 간에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봉사를 매달 빼놓지 않으려고 해요. 회사에서는 사장이지만 같이 음식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똑같은 봉사자에 불과하거든요.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같이 땀을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라며 봉사활동의 또 다른 매력을 말한다. 직원들도 이 시간만은 어려운 사장님과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다. 가끔은 평소에 엄두도 낼 수 없는 훈계도 한다. “사장님이 실수하시면 ‘사장님 왜 이렇게 못하세요’라고 말하죠. 같이 일하다 보면 그냥 옆집에 사는 동네 아줌마 같아요.”(SM 사업부 정선화씨, 30)

 사무실이 여의도와 안양으로 나뉘어 ‘안나의 집’ 봉사활동은 직원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좋은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하종 신부에게 한 대표는 늘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다. “한 사장님은 저희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항상 찾을 수 있는 분이죠. ‘안나의 집’ 홈페이지(www.annahouse.or.kr)도 만들어 관리해 주시고, 얼마 전에는 컴퓨터 7대도 놓아 주셨습니다. 봉사는 자기 재능에 맞춰 하는 건데,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열심히 베풀고 계시죠.”

 한 대표는 매달 ‘안나의 집’을 찾는 것 외에도 2000년부터 양호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양호’는 한 대표의 아버지인 고  한정대 회장의 아호에서 따 온 것이다.

 “양호재단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함경도 분으로 어려운 역경에서도 포기를 하지 않은 분이셨죠.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정신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한 대표의 집무실에는 부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공익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늘 잊지 않고 따르기 위해서다.

 양호재단을 통해 매년 지급되는 장학금은 1억5000만원 이상. 주로 한 대표가 발품을 팔아 각 기업체를 돌며 모금하고 있지만, 소액기부를 받아 지원하는 금액도 500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양호재단의 홈페이지(www.smallworld.or.kr)를 통해 일반인도 금액에 상관없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지원할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학비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이들이 성장하면 잡링크를 통해 취업 지원까지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이  한 대표의 생각이다.

 다른 집 자식에게는 더없이 베풀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매우 엄격하다. 두 자녀 모두 해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주겠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천만에요”라고 답한다.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비타민을 한 알씩 챙겨 주는 자상한 한 대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저도 아버지에게 큰 도움 받지 않고 학교를 다녔거든요.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고 싶습니다.”            

 저녁 5시30분. 노숙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면서 ‘안나의 집’ 앞이 시끌벅적해진다. “그만해, 이 자식들아!”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유창한 한국말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이 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배식을 시작했다. 한 대표도 배식대의 반찬통 앞에 서서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반갑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익숙한 듯 웃으며 한 대표와 눈인사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