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4월2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값ㆍ전셋값만큼은 대통령인 제가 직접 챙겨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참여정부는 이른바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쏟아낸 크고 작은 부동산 안정대책만 24건에 이른다. 그러나 부동산가격은 지난 2004년 한 해를 빼놓고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불안한 ‘널뛰기’만 반복했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백약(百藥)이 무효’라며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정권 중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대책을 쏟아냈으면서도 부동산가격을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부동산가격 상승의 원인을 ‘시장의 실패’, ‘분배와 균형’이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대책의 방향이 ‘세금 만능주의’와 ‘수요 억제’ 일변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두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배탈약을 주는 식의 정책이 되풀이된 셈이다.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에서도 코드(code)를 중시해 왔다. 바로 ‘분배와 균형’의 논리다. 이는 참여정부의 핵심브레인 이정우 전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의 부동산 가치관을 분석하면 잘 알 수 있다.



 편중된 소유구조가 부동산가격 왜곡

 이 위원장은 한국의 ‘헨리 조지스트’로 불린다. 헨리 조지는 ‘사회가 진보하는 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불황이 계속되는 이유는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주장한 경제학자다. 이에 따라 ‘토지의 불로소득을 전액 세금으로 환수하면 경제발전도 저절로 가능해진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 이 위원장 역시 자신이 쓴 논문에서 “부동산에서 나타나는 소득의 차이가 너무 심해 소득분배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헨리 조지의 이론에 동조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세제’(稅制)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 같은 분배주의 시각은 결국 부동산가격 상승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즉, 현재 부동산가격은 공급의 부족이나 시중의 풍부한 유동자금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 투기수요 때문이라는 것. 일부 투기세력이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을 사재기하면서 정상적인 시장가격을 왜곡시켰다는 인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17만7000가구)가 사유지의 34.1%를 소유하고 있고, 금액으로는 26.9%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치를 내놓았다. 또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지만, 자가주택 보유율은 절반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온 것도 결국 주택 소유가 편중돼 있는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청와대에서 부동산정책의 실무를 총괄하는 김수현 경제비서관은 “부동산 소유구조의 불평등이 결국 가격급등이란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는 양도세를 통해 초과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하고, 지속적인 재건축 규제 정책을 실시해 몰려드는 투기적 가수요를 차단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 왔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수요억제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에 대해 다소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지난 2003년 10·29대책과 이번 8·31대책에서도 주택공급 확대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억제 대책과 달리 공급 대책은 변죽만 울리는 식에 그쳐 왔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의 절대량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에 맞는 공급이 부족했다”면서, “지금 수요자들은 1000cc짜리 자동차 100대가 아니라 1500cc 중형차 10대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약발이 길어야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DJ정부 말기인 2002년부터 뛰기 시작한 집값은 노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왔다.

 참여정부가 처음 칼을 빼든 건 지난 2003년 5월23일. 당시 서울 송파구 잠실과 강동구 고덕동 일대 저층 주공아파트 가격이 불과 1~2개월 동안 3000만~4000만원씩 급등했다. 실제로, 2003년 1월 한 달간 서울 재건축아파트 가격변동률은 -1.96%로 하락세로 시작했다. 하지만 5월에 서울과 경기 재건축단지 매매가는 전달 대비 각각 5.83%와 10.7%의 급등세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아파트분양권 전매 금지를 수도권 과밀억제권역과 충청권 일부 지역으로까지 대폭 확대했다. 재건축아파트의 경우,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다음에 분양하는 ‘후(後)분양제’가 도입됐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300가구 이상 주상복합은 전매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후 집값은 잠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5·23대책’ 발표 이전 월간 단위로 1.5~2%씩 뛰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은 6월과 7월 연속으로 1% 미만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약발은 2개월을 가지 못했다. 방학이 끝나고 가을 이사철이 시작된 8월 들어 3%, 9월에도 2.5%의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  주로 강남권의 재건축아파트가 오름세를 주도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다시 ‘9·5대책’을 내놓으며 시장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재건축아파트의 전용면적 25.7평 이하 소형을 일정 비율 이상 짓도록 하는 소형의무건설제와 조합설립 이후 조합원 명의변경을 불허하는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번 달궈진 집값은 식을 줄 몰랐다. ‘9·5대책’은 결국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용도 폐기됐다.

 2003년 10월29일. 이 날은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1편이 완성된 날로 기록된다. 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세금인상과 규제강화를 골자로 하는 ‘10·29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세제 대책으론 1가구 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가 나왔고, 6대 광역시와 도청 소재지로 투기과열지구가 확대됐다. 재건축아파트에 대해선 개발이익환수제가 도입됐고, 주택거래신고제 시행방침도 포함됐다.

 김 부총리는 10·29대책 발표문에서 “보유세와 양도세를 기본 축으로 하여 보유세는 과표 현실화와 함께 토지·주택 과다보유자에 대해 누진세 부담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고, 양도세는 1세대 다주택자가 얻은 금리수준을 넘는 초과이익에 대해서 세금으로 대부분 환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부동산이 주식 등 금융자산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아 주택을 구입하고 투기하려는 세력들과 그로 인해 향후 집값 하락시 예견되는 가계파산과 금융부실을 막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을 억제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강남·분당·용인 등지의 아파트값은 대책 발표 하루 만에 호가(呼價)가 급락하고, 거래는 완전히 끊겼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주공아파트는 2억원 이상 수직하락하기도 했다. 11월 이후 3개월 연속 집값이 떨어졌다.

 그러나 하락세는 3개월 천하로 끝났다. 2월 들어 상승세로 반전한 집값은 3~4월 들어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10·29대책 후속 조치로 4월 말 강남·분당 등 네 곳에 대해 주택거래신고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주택거래신고제가 시작되면서 거래가 급격히 줄고, 가격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땜질식 처방에 실수요자만 피해

 안정될 것 같던 집값은 올 초 다시 뛰기 시작했다. 판교신도시의 분양가격이 평당 1500만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주변 집값이 뛰었다. 압구정동 등 강남일대의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강남과 분당의 아파트값이 한 달 새 1억원 이상 동반 급등했다. 상승세는 과천·용인·평촌 등으로 번져 갔다. 당황한 정부는 2월17일 판교 11월 일괄분양, 5월4일 1가구 2주택자 실거래가 과세라는 카드를 잇달아 꺼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부는 6월17일 “기존 정책을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손을 들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의 정책이 응급처방에 그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투기꾼의 내성만 키우고, 국민들의 불신을 샀다고 지적한다. 재건축아파트값이 오르면 재건축을 규제하고, 아파트 분양시장이 과열되면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지정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정책은 항상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출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투기지역 지정제도로, 정부는 현재 전 국토의 30%가 넘는 곳을 주택이나 토지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투기지역은 집값이나 땅값 상승률이 3개월간 일정수준을 넘는 곳에만 적용된다. 따라서 투기지역으로 지정될 때에는 이미 해당지역 부동산가격은 오를 대로 오른 경우가 많았다. 김우희 저스트알 상무는 “정부가 규제를 가했을 때는 이미 투기세력은 차익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제도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검토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투기지역의 경우, 매도자의 양도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종전에는 기준시가로 내던 세금이 실거래가로 바뀌기 때문이다. 문제는 증가한 세금을 매수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토지나 주택의 경우, 꼭 필요한 실수요자는 어쩔 수 없이 세 부담을 안고서라도 부동산을 살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가격만 올리는 꼴이 돼 왔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주택거래신고제 역시 강남·분당 등 집값이 많이 오른 곳에 시행해 매입수요를 억제시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거래가 신고에 따른 취득·등록세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정책의 이중성(二重性)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쏟아내면서 다른 한편에선 투기를 부추기는 각종 개발정책을 남발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으로 혼선이 빚어졌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추진하면서 행정수도를 충남 연기·공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위헌결정을 받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다시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에만 무려 12조원이 투입된다. 토지보상비만 4조원이 넘게 풀린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주변 지역 땅값은 폭등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수천만평에 이르는 기업도시 개발 등도 땅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들 사업은 주로 지방에서 추진되면서 그동안 수도권에 몰렸던 토지투자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토끼몰이식 규제가 계속되면서 규제가 없는 쪽으로 투자수요가 몰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지난 2003년 5·23대책으로 재건축 후분양제가 도입되자, 이미 사업승인을 받아 예외가 인정됐던 서울 5개 저밀도지구 재건축아파트값이 급등했다. 주상복합아파트의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자, 오피스텔이 대체투자 수단으로 떠오르며 청약 인파가 몰려드는 광경도 연출됐다.



 투기심리는 잡았지만, 장기적인 비전 제시 못해

 전문가들은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기본 방향 자체가 나쁘진 않았다고 말한다. 양도세와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현실화해 조세의 형평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좋았다는 것이다. 또,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분양권 전매 금지 등으로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탕주의’ 심리를 없애는 데도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가한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정부가 배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정부의 대책에는 장기적으로 부동산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부동산가격의 최대 불안요인인 시중 부동자금 흡수대책이 항상 대책 발표 때마다 빠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을 유도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했지만 구두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족한 주택과 토지의 공급을 어떻게 늘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기업들의 투자수요를 진작하고,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도 시중 부동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주택 공급 역시 당장 늘리기는 불가능하지만, 공급 확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심어 주면 집값이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