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경제적인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아파트가 현대인 주거방식에서 대세를 이루지만, 개성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담은 주거공간을 선호하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2005년 하반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선보인 ‘르 씨뜨 빌모트’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예술인마을처럼 멋진 디자인으로 눈 밝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축주인 아이비하우징의 강병선(52) 대표의 사무실은 아주 멋진 ‘르 씨뜨 빌모트’(Le Site Wilmotte)를 지은 건축주의 사무실치고는 소박하고 수수했다.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엔 그 흔한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목수는 자기 집을 크게 짓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일까? 강 대표는 “크게 번 돈이 없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파트처럼 수요가 많은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망할 수도 있는 시도였던 셈인데, 다행스럽게도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남시 분당구 중원동에 위치한 ‘르 씨뜨 빌모트’는 3000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 5동을 가리킨다. 77평부터 126평까지 모두 36가구가 전부인 고급 공동주택인 셈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빌모트마을’인 셈인데, 건물 설계를 프랑스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맡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는 엘리제궁의 대통령 방, 레바논 베이루트의 쌍둥이빌딩 설계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조경, 건축물의 설계와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와 장식물 하나의 디자인과 위치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토털디자인을 고집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강병선 대표와는 가나아트센터, 인사아트센터의 설계-시공사로 만나 친분을 유지해 왔던 터였다.

 “빌모트씨는 자신의 건물이 들어설 주변 환경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설계 의뢰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르 씨뜨 빌모트’가 들어설 입지를 보더니, ‘여기라면 멋진 집을 지을 수 있겠다’라고 해서 시작한 겁니다. 생존만을 위한 주거공간이 아닌, 살면 살수록 집의 품격이 높아지는 골동품 같은 집을 짓고 싶었어요.”

 김 대표가 지은 ‘르 씨뜨 빌모트’를 보고 있으면, 내장재는 물론, 외관과 자연경관이 조화가 근사한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찾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자작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로 단장된 단지는 흑백 컬러의 건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공간을 연출한다. 그러나 가장 큰 자랑은 청계산을 뒷산으로 둔 덕분에 맑은 공기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분양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왔어요. 실제로 이런 주거공간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고객의 욕구를 보다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어요. 방의 크기나 주방의 크기에서 한국인들은 큰 걸 좋아하는데, 짓는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르 씨뜨 빌모트’에는 현재 30가구가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분양가격은 77평형이 16억원에 달한다. 그런 까닭에 고소득층인 기업인, 의사, 스타 연예인 등이 입주해 있다.

 “이 정도 입지와 규모에 아파트를 지었으면 아마 더 많은 돈을 벌었겠죠. 그렇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미술관을 짓는 일로 인연을 맺고 나서 집을 짓는다는 직업을 가진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평생 행복한 일을 하는 쪽을 택한 셈인데, 후회는 커녕, 감사할 따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