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에 모처럼 생동감 넘치는 기운이 흐르고 있다. 차기 회장을 선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2월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또 여전히 공석인 상근 부회장 선임 문제에 대해서도 3월초에 비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의욕상실증 환자와 같았던 전경련 관계자들의 태도는 지난 3월10일 월례 회장단회의 이후 판이하게 달라졌다. 소위 거물급 그룹 총수들의 적극적인 회의 참석에 고무된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또 이날 회의가 이같은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난 3월10일 마지못해 회장 연임을 수락한 2기 강신호 회장 체제의 첫 전경련 월례 회장단회의에는 그동안 뜸했던 그룹 총수들이 대거 얼굴을 내밀었다. 최태원 SK 회장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회장단 가입과 함께 이날 전경련을 찾았고, 최근 실질적인 그룹 총수로 위상을 다지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도 2년여만에 발걸음을 했다. 또 회장단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끝내 회장직을 고사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200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참석, 전경련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다음 회의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강회장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져 전경련은 다시 재계 본산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을 더해 주었다.

 비록 재계 ‘빅4’ 가운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참했지만, 상위 그룹 총수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실추된 전경련의 위상 곧추세우기와 재계 단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회장이 된 것 이상으로 전경련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던 이건희 회장이 지속적인 회장단 회의 참석을 재확인하는 한편, 회장단에 새로 가입한 김준기 회장과 최태원 회장 역시 “재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중견 그룹 모임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전경련은 간판급 그룹의 모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도 “그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전경련이 이날 회의를 기점으로 기사회생하는 듯한 느낌”이라며 “향후 전경련 위상에 힘을 실어 준 것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소원했던 상위 그룹 총수들의 단 한 번 회의 참석으로 이같은 낙관론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그만큼 전경련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23일 정기총회에서 제30대 회장으로 재선임된 강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재계 단합을 위해 노력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변신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임 회장으로 할 수 있는 의례적인 덕담이라고 받아들이기에 강회장의 이날 언급은 예전 회장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즉 재계 안팎으로부터 ‘위기’라고 지적되고 있는 전경련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강회장이 해결해야 할 2기 체제의 당면 과제로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재계의 단합, 전경련의 역할 재정립,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 등이 그것이다. 전경련을 둘러싼 각종 잡음과 혼란,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흔들기 등은 모두 이 세 가지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과제가 강회장 재임 기간중인 1~2년 안에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재계 관계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워낙 뿌리가 깊고, 또 해소하기에 손을 대야 할 대목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회원사의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회장의 리더십과 전경련 내부 관계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렇다고 전경련의 위기가 최근 들어 불거진 것은 아니다. 전경련은 벌써 10년이 넘도록 동일한 과제를 짊어지고 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어 회장단이나 내부 직원들조차 망연자실, 혹은 포기 상태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10년 동안 이어져 온 변화 요구

 전경련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던 지난 92년부터 무용론과 해체론, 그리고 경제단체와의 통폐합론에 시달려 왔다. 비록 내부적으로는 반(反) 전경련 성향의 외부 단체로부터의 구호성 주장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왔지만, 이는 곧 전경련의 정체성과 직결된 지적들이었다. 특히 해체와 통폐합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부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데에는 전경련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사들 역시 공감하고 있다. 때문에 전경련 내부에서도 신임 회장 취임 때마다 변화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돼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원인들이 제기되고 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치하에서 창설된 전경련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유린하던 시절에 채택된 목적 의식과 기능 및 조직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면서 시대 변화에 따른 전경련 내부의 변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황교수의 이같은 분석은 전경련의 위기가 지난 92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쉽게 증명된다. 즉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으로 기존 군사 독재 정권이 문민 정권으로 바뀌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전경련은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부의 자원 배분 관행에서 비롯된 관치 금융, 정경 유착, 불법·탈법과 편법, 부정부패, 황제 경영, 방만한 차입, 선단식 경영 등에 길들여져 있던 과거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려는 근본적인 개혁을 도외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위기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비단 황교수의 지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부 개혁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전경련은 급기야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97년 사실상 외환 위기 주범으로 내몰리며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경련은 외부의 변화 요구에 부응치 못한 채 과거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여기에 차기 회장을 선임하지 못해 겪어야 했던 전경련의 고민은 고질적인 지도력 부재로 이어져 내부 부실화를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전경련의 변화보다는 자신들의 변화에 더욱 골몰했고, 이는 결국 전경련의 변화를 방치토록 했다. 따라서 전경련 회장직도 실세 그룹 총수들의 기피 현상에 따라 비실세 그룹 총수와 전문 경영인으로 대체됐다. 김각중(26~27대)·손길승(28대)·강신호(29~30대) 회장이 그들이다. 전경련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회장 선임을 둘러싼 고민은 전경련이 탄생했을 때부터 이어져 왔던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다. 전경련 초창기에 부회장을 역임한 김입삼씨는 “회장직을 선뜻 맡겠다고 얘기한 적은 전경련 창립 이래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흔히 표결 절차를 거치는 방식이 아니다. 총회에서 회장 선임 안건이 상정되면 대개 한 회원의 발의로 전형위원을 뽑고, 이 위원들은 별도 장소에서 20~30분간 신임 회장 후보를 선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추천된 후보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그러나 총회에 앞서 다양한 조율을 거쳐 추대 작업을 해놓는 게 일반적인 전경련의 관례였다.



 4대부터 시작된 회장직 기피 현상

 전경련 회장 선출의 이같은 관례는 4대 김용완 회장 때부터 적용됐다. 당시 2대에 이어 3대 회장을 재임하고 있던 이정림 회장이 건강 문제도 있고, 사업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하루 빨리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싶어 했다. 이에 이회장의 임기를 단축, 경방 김용완 사장이 차기 회장으로 거론됐다. 

 김용완 사장이 폭넓은 지지를 얻었던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경방 하면 업종은 면방직이지만 당시로선 기간산업에 속했다. 또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공개주식회사였고 김사장 스스로도 선공후사(先公後私), 사심 없는 일 처리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회장으로 모실 수 있는 방법이 문제였다. 선거로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절대 수락하지 않을 게 뻔했다. 또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내분과 외풍이 끼어들 소지를 제공하고 있어 선거 없이 추대식 회장 선출 방법을 궁리해낸 것이다.

 1964년 4월17일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정기총회는 회장 선출 문제로 회원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1962년 9월 총회는 예상을 뒤엎고 이병철 초대 회장을 물러나게 했다. 그 다음해 총회에서는 내분과 외부 개입으로 회장 선출이 큰 파란을 일으켰다. 즉 새로 선출된 이정림 회장, 홍재선·이한원 부회장들은 사의를 표명하고 협회는 두 조각으로 양분되었다. 이 분열 상태를 간신히 엮어 겨우 이날 정기총회까지 이끌어 온 것이다. 그러니 회원들 머릿속에는 협회의 불협화음을 종식시킬 수 있는 새 회장 선출에 자연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회장 선출 안건을 상정합니다.”

 최고령자 이원순 임시 의장의 선언에 회의장은 돌연 긴장과 열기를 띠었다. 여기저기서 의사 진행 발언이 터져 나왔다. 회장 선출만큼은 모든 회원이 꼭 한 마디씩 할 기세였다. 항상 선봉에 서려는 심상준 사장(제동산업)이 “회장 선출은 과거 예에 따라 투표로 합시다”며 방법을 제시했다. 곧이어 다른 회원이 “지난번 총회에서 두 차례 직선제 투표 결과, 단합보다는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전형위원제로 합시다”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총회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렸다.

 이때 홍재선 부회장(쌍용방직)이 “한국경제협의회 때처럼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해 이 난국에 경제계 단합을 과시하고 새 회장에게 힘을 실어 줍시다”라고 논리정연하게 제의했다. 여기저기서 “옳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용완 경방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합시다”라는 성 급한 발언도 이어졌다. 또다시 “찬성이오” 하는 큰소리가 들렸다.

 이때까지 회의장 한 구석에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앉아 있던 김사장은 벌떡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를 홍재선 부회장, 이원순 의장이 더 빠른 걸음으로 따라나가 앞을 막았다.

 “김사장, 지금 나가버리면 총회에서 김사장 없는 사이에 회장으로 추대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회의장에 들어가 회장을 수락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회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현책으로 생각되오.”

 두 사람이 김사장의 등을 떠밀면서 하는 말이었다. 엉겁결에 김사장도 그렇게 생각되어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이때 회의장에선 전형위원 후보 명단이 사무국에 의해 호명되고 있었다.

 김사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설경동 사장(대한물산)이 긴급 동의를 구했다.

 “김용완 사장이 다시 회의장에 들어왔으니, 아까 ‘추대 동의’에 많은 찬성 발언이 있었던 만큼 김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할 것을 정식으로 제의합니다.”

 동의가 끝나기 전에 벌써 “찬성이오”, “옳소”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이원순 의장은 기회를 놓칠 세라 “여러분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면 김용완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의결합니다. 땅, 땅, 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사장은 아직 좌석에 앉아 있다가 이원순 의장이 의사봉을 치는 마지막 소리를 듣고서야 후다닥 일어나 뛰쳐나가 버렸다.



 회장 책상도 놓지 말아라”

 김용완 신임 회장은 총회 후 일주일이 지나서도 취임을 거부했다. 사무국장 등이 수차 김회장을 방문해 취임을 간청했고, 대선배인 진학문 상근 부회장은 최두선 총리를 움직였다. 때마침 극빈 동포 구호 문제가 제기되어 최총리가 협회를 방문, 회원들에게 구호 사업 참여를 부탁키로 했다. 물론 진부회장과 최총리가 꾸민 일이었다. 진학문 상근 부회장은 최총리의 백씨인 최남선 선생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최총리의 협회 방문 이유를 들어 사무국은 다시 김용완 회장에게 협회에 나오도록 요청했다. 이때 김회장과 주고받은 대화는 이러했다.

 “최총리가 협회에 오시는데 회장이 안계시면 예의가 되겠습니까?”

 “일국의 총리가 무엇하러 민간 단체에 나온단 말이오?”

 김회장답지 않은 퉁명스런 반응이었다.

 “회장이 취임하지 않으면 협회가 깨집니다.”

 “내가 안나가서 깨지는 협회라면 깨지게 내버려두시오.”

 4월24일 최총리의 협회 방문 전날, 진부회장이 직접 김회장을 찾아갔다. 이쯤 되니 김회장 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진학문 부회장은 인촌 김성수, 특히 수당 김연수와도 해방 전 술과 풍류를 같이한 김회장의 대선배였다. 결국 김회장은 최총리가 협회를 방문하는 날 부득불 회장 취임을 수락, 총리를 영접하고 극빈 동포 지원 사업도 추진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김회장은 회장 취임에 조건을 달았다. “회장 책상은 놓지도 말 것, 결재도 안할 것이고, 진학문 상근 부회장이 도맡아 회를 운영토록 할 것” 등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억지춘향 격으로 회장에 취임한 김회장은 역시 후임자를 찾지 못해 5대 회장까지 연임을 했다. 또 이같은 악순환은 회장 선출 때마다 이어져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29대에 이어 30대 회장직을 맡은 강신호 회장도 지난 2003년 회장 추대에 강력 반발했다. 당시 강회장은 손길승 회장이 물러난 뒤 전경련 관례와 정관에 따라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8시간만에 공식적인 고사 의사를 표명했다. “전경련 관례에 따라 연장자인 본인이 회장에 추대됐지만,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회장직을 수행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강회장은 이같은 의사를 전달한 뒤 행방을 알리지 않고 잠적까지 했다.



 공동 이익보다 경쟁이 우선

 전경련 회장 자리가 그룹 총수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재계의 공동 이익을 대변하거나 경제 정책에 대해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낸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부와 다를 경우엔 그 부담이 더욱 크다. 김대중 정부 이후 실세 그룹 총수를 전경련 회장으로 선출하지 못했던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회원사들간에 중복된 사업 영역으로 인해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고, 재계의 공동 이익이라는 것도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이유도 꼽힌다. 즉 재계의 공동 이익에 앞서 생존을 위한 회원사들간의 경쟁이 그룹 총수들의 당면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전경련 활동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 해석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99년 반도체 사업 빅딜 과정에서 전경련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다. 또 전경련이 2003년 삼성의 화성 반도체공장 증설을 허용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면서 LG필립스LCD 파주공장 허용과 비교할 때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공동 이익보다는 경쟁 의식에 기인한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03년 8월 현대자동차가 어렵사리 임단협에 합의했을 때 전경련은 성명을 통해 “현대차의 경영 침해적인 노사 합의가 다른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와 총체적인 경제 위기를 가속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파업 기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다 노조 동의 없이 신차종 개발, 사업 확장과 합병·양도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주주 경영권의 본질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전체로 보자면 원칙적인 성명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현대차 입장에선 달랐다. 강성 노조를 동반자로 인정해야 하는 현대차의 현실을 전경련은 전혀 고려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재계의 공동 이익과 회원사들간의 경쟁 및 특수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부담은 그룹 총수들의 전경련 회장직 기피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강신호 회장 1기 체제의 전경련을 가리켜 ‘삼경련(전경련+삼성)’이라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장 선출에서의 어려움은 곧 지도력 부재로 나타났다. 전경련을 이끌어가야 할 회장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선출됨으로써 능동적인 활동보다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세 그룹 총수의 회장 취임 필요성도 이에 다름 아니다.

                                      

 “재벌 총수 독대는 제왕시대 유물”

 그러나 근본적으로 전경련의 위상에 대한 전면적인 재편 작업이 선행되지 않았을 때 실세 그룹 총수의 회장 취임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앞서 황태연 교수가 지적했듯이 시대 변화에 따른 내부 변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지난 1월말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전경련은 이제 단순한 이익단체 기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부 지원을 얻기 위한 이익단체가 아니라 시장경제 원리를 발전시키는 틀과 규범을 만드는 데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즉 정치·경제·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개방 경제가 자리잡는 등 흐름의 변화 속에서 경제단체도 그 역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경련이 일부 특정 대기업의 권익 도모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정권이 취임 이후 관례처럼 행해 왔던 ‘재벌 총수와의 독대’를 거부한 것 역시 비슷하다. 전경련은 대통령이 기업별로 사정도 조금씩 다른 만큼 재벌 총수들과 직접 독대를 통해 투자 계획을 듣고 애로 사항도 청취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독대를 희망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지난 1월1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면서도 “시중에서 이야기하듯이 재벌 총수를 만나 투자 독려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대통령을 만나 사기가 살고 투자가 늘어난다는 사고는 이미 이 시대에 맞지 않다”면서 “특히 일부 경제단체 간부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조용히 만나 애로 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과거 제왕 시대에 하던 것이지 민주주의 지도자 시대에 하는 일이 아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노대통령은 “제가 아무 것도 줄 게 없다. 개별적으로 줄 게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그래서 특별한 격려가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역대 정권에서는 대통령 취임 이후 재벌 총수들을 개별적으로 청와대로 불러들여 고충을 듣는다면서 당근과 채찍을 내놓았다. 또 전경련 회장에게는 특혜성 당근을 건네며 정치 자금 등 반대급부를 기대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소위 정경 유착이란 고리로 이같은 밀담을 관례화했던 것이다.

 이처럼 참여정부 들어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전경련은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의 관례를 답습하려 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짊어져야 하는 짐은 많은데 돌아오는 혜택은 하나도 없다는 전경련 회장 자리에 대한 기피 현상은 한층 더할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실세 그룹 총수의 회장 선임은 고사하고, 비(非)실세 그룹 회장까지 전경련 회장직을 기피하는 것은 전경련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이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당장 현실적인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먼저 회원사들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회장이 취임한 만큼 무엇보다 먼저 전경련 개혁을 당면 과제로 설정하고 정체성과 위상 재정립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의 정체성과 관련해 외부 전문가들은 재벌 황제의 친목 단체로서의 낡은 정체성과 각종 개혁적 정책에 대한 저항 거점이 아니라 일본의 경단련(經團連)과 같이 모든 경제인들이 참여하는 ‘열린결사체’로 거듭나 정부와 함께 개혁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그 기능도 탈바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은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주의, 작은 정부 등을 표방하며 1973년 설립된 미국 보수주의의 총본산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이 미국 재계의 후원하에 설립한 정책연구소다. 연구 활동을 통한 대(對)정부 정책 제언 활동에 가장 큰 역점을 두고 있으며, 시장경제 교육과 친기업 여론 형성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경련 내부에서도 전경련 사옥 등 기본 재산은 이같은 싱크탱크의 기금으로 전환하고 회장단은 이사회로, 전경련 사무국과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재단의 연구조직으로 재편하자는 구체적인 안(案)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미국의 대기업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BRT) 모델도 단골로 거론돼 왔다. BRT는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미국 정부와 기업이 직면한 경제 현안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 대안을 공공 정책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또 정부도 그 역할을 인정한다. 

 이와 함께 상공회의소·경영자총협회·무역협회 등 다른 민간 경제단체들과의 통폐합도 오래 전부터 거론돼 왔던 전경련의 변화 방향이다. 특히 이같은 변화를 거부한다면 차라리 전경련은 재벌 총수들이 모여 골프나 치고 덕담이나 주고받는 친목 모임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재계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전경련이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재로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해체야 되겠느냐”면서도 “지금과 같은 표류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해체론, 통폐합론 등과 함께 싱크탱크로의 전환 등 여러 방안들이 있겠지만 모두 거부될 것”이라며 “몇몇 그룹 총수들이 모여 전경련 간판을 붙들고 그 명맥을 유지하는 데 만족해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아직 내부적으로 절실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또 재계 전체의 이익보다는 특정 그룹 지향성이 너무 강해 변화를 모색하려 한다 해도 재계의 지지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경영권 이양에만 급급’

 지난해 4월 정부와 재계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전경련에 파견돼 한 달 동안 기업들과 접촉했던 신제윤 재정경제부 국장의 당시 평가는 현대자동차 관계자의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 준다. 신국장은 복귀하면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구태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아직 그럴 만한 여건이 성숙돼 있지 못한 것 같다”면서 “아직도 재벌 기업의 최고 경영자 등 경영진의 사고가 재벌 오너 2·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삼성은 얽히고설킨 지배 구조 문제로 고생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삼성그룹에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경영권 상속에 속을 끓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재계는 정부에 세금 감면,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 이전에 경제의 미래를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당시 신국장의 주장이었다.

 결국 재계나 전경련 모두 전경련 재편을 전제로 한 변화 모색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질 필요성도 적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의 태도를 보면 더욱 극명하다. 현재 상태로의 전경련에 별로 의미 부여를 하지 못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 제기되는 변화 방향에 대해선 또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전망하고 있다.

 싱크탱크로의 전환과 관련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은 물론 LG, 현대 등 대기업들이 경제연구소를 두고 있는데 전경련이 정책연구기관 형태의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데 얼마나 동의와 협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옥상옥(屋上屋)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민간 경제단체와의 통폐합에 대해서도 “현재 대한상의가 오히려 전경련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역사도 오래 됐는데 통폐합에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경총은 가능성이 있겠지만 전경련이 골치 아픈 노사 문제를 끌어들이겠느냐”고 고개를 흔들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경련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또 조직도 전경련보다 잘 정비돼 있고 대외 활동도 왕성하다. 특히 전경련은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대한상의는 1884년 출범한 한성상공회의소를 모체로 상공회의소법에 의해 설립된 단체다. 때문에 단체로서의 위상은 대한상의가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도 취임 회견 당시 “역사와 조직에서 맏형 격인 상의가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위상을 높이겠다”고 공언했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과 조직력으로 비틀거리는 전경련과는 대조적이다. 곧 대한상의 입장에선 한 수 아래인 전경련과 통폐합을  거론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처럼 전경련은 정체성과 그 위상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다 해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회원사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전경련 스스로도 이같은 변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일까. 전경련 관계자는 “기회만 되면 전경련 위상 변화 어쩌고 하지만 이미 귀에 박혔다”면서 “전혀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신임 상근 부회장이 임명되면 사무국을 중심으로 뭔가 변화는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상근 부회장이 개혁 주도해야

 사실 전경련의 상근 부회장은 실질적인 회장과 맞먹는다. 전경련 회장이 대외적인 얼굴마담 격이라면 상근 부회장은 내부 업무 총괄과 동시에 변화 요구에 직면한 전경련의 개혁을 주도해야 할 자리다. 그동안 전경련이 특정 그룹의 이해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던 것 역시 상근 부회장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들이 중립적인 인사의 상근 부회장을 요구하는 것도 이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각 그룹과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재계 인사가 상근 부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역대 상근 부회장 가운데 이같은 기준을 들이댈 때 대표적인 인물은 손병두 전 부회장이다. 그는 삼성그룹 임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건희 회장과 인연이 깊다. 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경복고 동기로 가까운 사이다. 재임 당시 SK그룹 손길승 회장과는 또 진주중과 서울대 상대를 같이 다닌 50년 지기였다. LG그룹과도 고향이 진주라는 지역적 연고로 인해 풍부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 소위 재계 ‘빅4’로 불리는 실세 그룹에 줄이 닿는 인사였던 셈이다. 손 전 부회장이 세 번을 연임하며 8년 동안 상근 부회장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현재 재계에서 손 전 부회장과 같은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전경련은 어떤 인물이 상근 부회장으로 거론되고 있는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인물군은 재계가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이들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전경련이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며 재계의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또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다만 LG그룹을 제외한 실세 그룹 총수들이 강신호 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은 전경련의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실세 그룹 총수들의 강력한 뒷받침 아래 2기를 시작한 강신호 회장 체제의 전경련이 어떤 변화를 선택할 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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