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팔(74) 교수는 한국이 낳은 노화학의 세계 권위자다. 1960년 미주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노년학회장, 미국 노화학회 생물학 분야 회장 등을 역임하며 노화 분야 연구에 헌신해 왔다. 특히 영양과 산화 스트레스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절식을 통해 노화와 산화 스트레스를 조절한다’는 노화 메커니즘의 단서를 제공했다. 2005년 부산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한국으로 돌아온 유교수를 부산대에서 만났다.

 노화(老化)학 세계 권위자 유병팔 부산대 석좌교수



 안부와 함께 건네받은 명함이 최근 근황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장수생명과학기술연구원 명예원장’. 부산대에서 노화학 연구 지도와 함께 각 과학 분야가 결합된 실버 분야 연구소를 2007년까지 설립할 계획으로 유박사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칠순의 교수는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일하는 게 운동”이라며 유박사는 웃어 보였다.



 고령화에 대한 위기 의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노화학 전문가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노인 문제는 여러 각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 하나만으로 접근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인간의 삶과 관련된 부분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고령화 대책이 나오는 걸 보면 문제의 기본 접근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한 인간의 능력이나 기능을 나이라는 잣대만으로 판단한다면 고령화는 재앙이에요. 그러나 100세 시대의 도래는 건강하고 기능적으로 젊은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지금 노령화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도 충분히 능률을 올리고 앞으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정년’이란 틀에 묶어 강제 은퇴를 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정년이란 시스템은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뒤 비스마르크가 임시로 만든 제도입니다. 한 세기 가량이 지난 지금 시류에 맞지 않는 건 당연하죠. 더구나 경륜까지 갖춘, 활동이 충분히 가능한 사람들이 일을 하면 사회 복지 비용 부담도 줄이는 1석2조의 효과가 있어요. 그런데 순전히 나이라는 틀에 묶어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는 형상입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병팔 교수는 고령화의 근본적인 시각 교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고령화로 인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상하는 많은 기관들의 전망에서 정작 중요한 ‘인간’이 빠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연구 생활을 하셨는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고령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한국에 비해 고령화가 일찍 왔고 상대적으로 대비도 잘 돼 있죠. 기본적으로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제도를 구축해 놓은 상태입니다. 미국은 개개인의 재정을 기반으로 국가 연금제를 병행하고 있어요.



 고민은 지금의 30~40대가 노인층이 됐을 때 이들의 연금을 지탱할 자녀 세대 수가 적다는 데 있습니다. 해결책이 있는지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요. 그렇지만 어떤 문제든 선택은 간단해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주는 게 하나고, ‘은퇴 후 제2의 생활을 이렇게 살라’고 하는 재교육이 필요해요.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요. 잘 늙는 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평균 수명 증가 추세로 보면 20년 후엔 남자는 90세, 여자는 100세가 됩니다. 수명 증가 이유는 무엇입니까.

 책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인류는 125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증으로 증명됐어요. 문제는 건강이지요. 기능이 수명만큼 연장되느냐, 의학이나 이를 보조하는 기관은 기능적 장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유전적 요인이 30%, 후천적 환경 요소가 70%입니다. 대부분 우리 생활 양식(라이프스타일)의 문제예요.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후천적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식생활입니다. 절식을 하면 건강한 장수를 누릴 수 있어요. 단 평균 수명과 최고 수명을 나눠 볼 필요가 있어요. 인류의 평균 수명이 근대에 급증한 것은 최고 수명의 연장과는 다른 상관 관계를 갖습니다. 과거 인류의 평균 수명이 짧았던 것은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내몰았던 전염병들이 극복된 덕분이죠. 사고나 질병으로 조기 사망하는 확률이 줄어들면서 평균 수명이 늘어난 거예요. 의학과 의술을 통해 평균 수명은 연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능까지 담보하지는 못해요.

 (유박사는 “100년 전 인류의 활동량을 100이라 할 때 현재 인류의 활동량은 1~2%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현대인이 마주치는 상당수의 병이나 기능 장애는 사실 운동량이 너무 적기 때문에 온다고 한다. 그는 노후에도 기능성을 지속하기 위해선 활동량을 늘려야 하며, 하루 1~2시간 걷기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70대 중반인 자신도 운동화 차림으로 수시로 걷고, 60세 이후에도 매일 조깅과 걷기를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장수하는 사람들 중에는 술, 담배를 즐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양껏 드시는 분도 있고요. 절식 등이 지나치게 강조된 건 아닌가요.

 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건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됐습니다. 다만 다른 장수 요인들이 이를 극복해 주는 셈이죠. (음주, 흡연 같은) 나쁜 습관을 배제한다면 더 건강하고 오래 사실 거예요. 그리고 절식은 무조건 적게 먹으라는 게 아닙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칼로리만 조절할 수 있다면 마음껏 먹어도 상관 없어요. 장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칼로리 섭취가 많은 만큼 노동량도 많아 모두 에너지로 발산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경우입니다. 잘못된 습관이나 욕망에 충실해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고 입에 당기는 술 마음대로 먹고, 절제를 하지 않은 결과는 좀더 빨리 저 세상으로 가는 거예요.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식생활을 강조하시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영양의 균형을 갖춘 식사를 통해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문제는 과식이에요. 최근 건강하게 살기 위해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등 웰빙 음식 열풍은 반갑고, 긍정적입니다. 꽁치가 완전 식품이라고 해서 어물전에서 많이 팔렸다는데, 꽁치에 함유된 ‘오메가3’이란 기름은 꽁치와 같은 해물 말고 피마자에도 많아요. 피마자를 기름을 내지 말고 갈아서 먹어도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어요. 이런 얘기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합니다.



 현실은 일일이 칼로리를 조절해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식사량을 줄이는 것도 어렵고요.

 소식이란 음식량을 적게 먹으란 말이 아니예요. 음식에 함유된 칼로리를 적게 먹으란 뜻입니다. 칼로리를 중심으로 식사를 하면 얼마든지 맛있게, 또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어요. 쉬운 예가 우리 조상들이 먹던 식사입니다. 콩, 보리, 현미 등의 곡식은 훨씬 낮은 열량을 갖고 있지만 필요 영양소는 포함돼 있거든요.

 선진국의 경우 식품 가공 분야도 꾸준히 저칼로리 음식에 관심을 기울여 아이스크림, 초콜릿 같은 대표적인 고칼로리 식품까지도 칼로리가 0에 가까워 마음껏 먹어도 될 정도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요. 대표적인 고칼로리 식품인 피자도 칼로리를 절반으로 줄인 게 잘 팔립니다. 한국에서도 불과 2~3년 이내에 그런 양상이 전반적으로 확산될 걸로 봅니다.



 노화 관련 연구는 현재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까.

 노화에 관한 세계적인 초점은 뇌의 노화와 질환에 관한 연구에 맞춰져 있습니다. 기능적 장수를 막는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 치매인데, 미국의 노인청(NIA ; National Institute of Aging) 같은 경우 10년째 예산의 50%를 치매 연구에 할애할 정도예요.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치매에 관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중입니다.

 (유박사는 “통계로 보면 80~85세 노인 중 절반은 치매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30% 이상이 치매 현상을 일으킨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흔히 치매는 희생자가 셋이라고 합니다. ‘치매 환자 한 사람을 돌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하루 36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한시도 주의를 놓쳐선 안되기 때문이죠. 본인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건강한 장수를 위해 치매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기도 합니다.

 (치매 원인은 다양한 곳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박사는 “이 중 뇌의 혈액 순환 장애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혈액 순환 장애가 뇌 세포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렇게 되면 뇌 기능이 떨어지고 급기야 이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치매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현재 연구의 핵심은 뇌 세포 활성화를 위해 혈액 순환을 어떻게 활발하게 하느냐에 집중됩니다. 뇌는 우리의 심장에서 나온 혈액의 3분의 1을 쓸 정도로 많은 양의 혈액을 쓰기 때문에 혈액 순환 장애가 생기면 뇌가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1차적으로 혈액 순환 문제가 뇌 세포에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노화와 혈액의 상관 관계를 그는 피부에 생기는 주름살로 예를 들었다. 그는 “주름살이 생기는 피부를 보면 피부 세포의 모세혈관 수가 줄어들어 있는데, 이론상으론 모세혈관 수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세포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가설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넘어서야 할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모세혈관을 조성할 수는 있는데, 이 새로운 모세혈관이 정상 세포로 자라기보다는 암 세포가 되기 쉽다는 점이에요. 몸을 활성화시키려다 암 세포를 심는 꼴이 되는 겁니다. 이 과제를 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현재 다각도로 연구중입니다.

 (한국의 노화 연구는 지난 10년간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개별 연구소 단위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이 적은 것도 문제다. 유박사는 40년간 미국에서 노화학 권위자로 일하면서 한국의 후학들이 노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씨를 뿌리는 작업을 했다. 이번에 부산대에 오게 된 것도 후학인 정혜영 교수(부산대 약대학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40여년만에 한국에 정착한 셈인데,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말씀해 주시지요.

 노인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모두 결합한 실버타운과 노인병원을 설립하려는 계획에 참여하고 있어요. 100세 시대의 핵심은 노인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해 연구소가 아닌 연구원으로 운용하겠다고 하고, 토목·전기·IT 등 다른 분야와의 접목 지원도 약속받았어요. 노화 관련 연구와 함께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맞을 새로운 주거, 노년 생활의 기능이 결합된 센터를 건립할 계획도 있습니다.

 (유박사는 이 땅에 맞는 ‘55+커뮤니티’를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노·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이 커뮤니티에는 55세 이상이 돼야만 가입과 입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곳에 입주한 노인들은 개별적인 주택에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가 하면 건강과 즐거움을 꾀할 수 있는 모든 지원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노화 선진국인 미국·일본과의 연구는 어떻게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요.

 이웃 일본만 해도 국립노화연구소, 도쿄노화연구소 등이 체계화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노화 연구를 해왔는데, 같은 동양권이면서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연구 성과도 많고 함께 할 일도 많아요. 현재 공동 연구를 진행중인 프로젝트도 있고, 공동 논문도 나왔습니다. 저는 미국과 일본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한국의 노화 관련 연구를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할 예정이에요.

 (그는 노화 관련 한국 연구진의 실력에 대해 “한국 사람들 똑똑한 건 세계가 알아 준다”며 젊은 연구진의 열성과 재능을 칭찬했다. 그러나 “이들을 이끌어 줄 교수들이 많지 않은 데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연구실에 들러 박사 과정 학생과 연구 진행 상황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유박사의 모습 그 자체로 ‘100세 장수 시대’의 시작을 보는 듯했다.)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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