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대 재학 때의 일이다. 한겨울 새벽 6시. 어김없이 자명종 시계가 울린다. 마침 오늘은 오전 강의가 없는 날이라 좀 늦잠을 잘까 하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한 바가지의 얼음물을 들고 나타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일어나야지. 젊은 녀석이 왜 이리 힘이 없어?”

 그리곤 아버지는 옆방에 있는 동생 방으로 향했다.

 당시엔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이 싫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나는 20여년이 지난 오늘 ‘애니타임 미팅맨’으로 불리곤 한다. 언제 어느 때라도 미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불려진 별명이다. 실제로 나는 종종 회사 중역들과 밤 12시, 아침 7시에 미팅을 갖곤 한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을 20여년 전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갖췄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 왔다. 할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도 미국 유타대에서 화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에서 10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사실 아버지가 회사 경영에 뛰어들 때 내심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나 역시 고려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인 브라운대에서 화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때 교수직을 제안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경방에 입사했다. 이런 나를 할아버지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할아버지는 “내가 손자 먹일 것 정도는 챙길 여력이 있으니 너는 경방에 구애받지 말고 교수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했는데 회사에 입사했으니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교육자이다 보니 자식들에게는 아주 엄했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처음 스키장을 가려 했다가 할아버지의 꾸지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할아버지는 “네 또래의 사람들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무슨 학생이 사치 스포츠를 즐길 생각을 하느냐”며 꾸지람을 하셨다. 이 때문에 나는 아직도 스키를 타지 못한다.

 나 역시 숱한 과외를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정작 그런 교육을 반대했다. 리더가 되는 교육은 초등학생 무렵 다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 또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 등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다. 기본이 갖춰진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리더가 될 우월한 위치에 있었지만, 남을 하대하지 않는 법에 대한 토론을 많이 가졌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자가용으로 등교를 해본 적이 없다. 이뿐 아니라 나의 하루 용돈은 차비가 전부였다.

 아마 어머니는 내게 넉넉한 용돈을 주는 게 무척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차비 정도만 주었으니까. 나도 이에 대해 별로 불만을 갖지 않았다.

 아버지는 더 심했다. 아버지는 내가 신혼 살림을 차릴 때 본가에서 사용하던 소파를 주셨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유효 기간이 다하지 않은 물건을 그냥 버리는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절약 정신을 딸에게도 가르친다. 언젠가는 딸아이를 불러 이렇게 야단쳤다.



 아버지 무릎에 앉아 피아노 배워

 “피아노 연습을 왜 안했어. 연습하기 싫으면 배우지 말아야지.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연습을 열심히 해야지. 피아노 학원비는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주는 거야.”

 나는 딸에게 뭔가를 하나씩 사줄 때에도 반드시 이 돈의 출처가 어떤 것인지를 강조한다. 이러다 보니 어린 딸은 뭔가를 살 때마다 “아빠, 이거 비싼 거야? 아빠 돈 없어서 못 사줘?” 하고 묻곤 한다.

 내 취미 생활인 음악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피아노 연주를 즐겼다. 대학 유학 시절 합창단에서 테너를 맡아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것은 여섯살 때다. 아버지는 여섯살 난 나를 무릎에 앉히고 피아노 연주를 위한 하나하나를 자세히 가르쳤다. 그 후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의 부인(건국대 음대 교수)에게 피아노를 공식으로 배웠다.

 이제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요즘도 나는 피아노 연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정도다. 얼마 전 나는 재계의 젊은 리더들의 모임인 YPO(Young President Organi- zation)의 송년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당시 연주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연주곡’은 요즘도 종종 멤버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사실 아버지는 내가 학창 시절 늘 ‘친구’처럼 지내 주셨다. 부자가 만나 나눈 대화는 학교 생활에서부터 오페라, 가곡, 정치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해 대화록을 여러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 정도다. 당시 나는 사춘기였지만 ‘아버지는 내 편’이란 믿음이 커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것 같다.

 물론 아버지에게 따끔하게 혼난 적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시험 기간중 커닝을 하다가 담임선생님께 들킨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커닝이 나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무척 많은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마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속인다는 데 대해 일종의 쾌감이 있었던 듯도 싶다. 하지만 예상대로 학교에서 부모님을 호출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몸져 누웠고, 아버지가 직접 학교를 찾았다. 학교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방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를 불렀다.

 “준이, 이리 와서 앉아라. 오늘 학교에 다녀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했어요. 그래서 커닝했어요.”

 부자 사이에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진 것도 아니었고, 또 회초리를 찾은 것도 아니었다. 긴 침묵이 끝나자 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왜 커닝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뭔가를 속이면 언젠가는 꼭 들키게 마련이다. 그 시간 동안 너 역시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거다. 더 이상 이 문제를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의 네 행동은 남을 속인 게 아니라 너를 속이는 거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너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지 말아라.”

 그리곤 아버지는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동안 커닝의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던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당시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은 마치 천둥처럼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이 날의 사건은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자식들을 무조건 믿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잘못 가는 길이라 해도, 또 내가 고쳐 주고 싶다고 해도 일단은 믿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마음의 지침서가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믿으면 믿을수록 아이들은 책임감이 커진다.



 어머니 덕분에 다양한 친구 사귀어

 1월 3일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날이다. 내게는 소위 재벌 2, 3세 친구들도, 평범한 회사 직원 친구들도 많다. 내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역할이 컸다.

 우리집은 신정(양력 1월1일)을 센다. 1월1일에는 집안의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 유달리 음식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친척들을 집에 부르는 것을 무척 즐긴다. 1월2일은 아버지 친구분들이 모이는 날이고, 다음날인 1월3일은 내 친구들이 집에 오는 날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내가 소위 재벌가 2세들과만 교분을 맺는 것을 무척 우려하셨던 것 같다. 대학 시절에도 집이 가난한 친구들, 재벌그룹 친구들과 두루두루 관계를 유지할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셨다. 내 친구들이 우리집에 갑작스레 방문할 때 어머니는 한 번도 난처한 기색을 표한 적이 없으셨다. 덕분에 나는 요즘도 숱한 부류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내가 폐쇄적인 재벌 2세가 되지 않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 대해 욕심을 갖게 마련이다. 만약 머리가 좋은 자식들에게, 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우리 부모에게 있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모와 자식은 엄연히 다른 객체라는 사실이다. 부모의 욕심이 자식 세대에까지 전가돼선 안된다. 부모가 진정 자식이 올바른 길을 가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김준 경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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