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국가 브랜드, 규모의 경제에서 범위의 경제로….
이들 단어를 꿰는 키워드는 문화다.
기업도 국가도 문화를 갖춰야 경쟁력이 생기는 시대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나 왜 문화인지, 무엇이 문화인지, 그리고 문화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혜안을 구했다.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국가 경쟁력’이란 화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보다 앞서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공교롭게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후 대략 10년 안에 2만달러에 도달했다. 우리에게 있어 올해가 바로 그 10년째 되는 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국가 경쟁력 확보란 테마가 벌써 몇년째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

 결국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문화·환경·교육·외교 등에서 앞서가야 하고, 글로벌리제이션, 행정 개혁, 시민사회의 성숙, 신뢰와 투명성이란 사회 자본이 확보돼야 한다.

 우선 그 첫번째로 이어령(71)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나 문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에 대한 혜안을 구했다. 기업도 국가도 문화를 갖춰야 경쟁력이 생기는 시대이고, 최근 미디어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소프트파워, 국가 브랜드, 규모의 경제에서 범위의 경제로 등을 꿰는 키워드도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전 장관은 문화에 대한 개념부터 정의하자고 제안했다.

 “우선 주제를 기업과 문화로 좁혀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문화라는 게 그 정의만 150여가지가 됩니다. 이 중에서 기업과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은 대략 세 가지라고 보는데, 첫번째로 기업가 정신, 상인 정신을 들고 싶습니다. 기업 문화라고 할 때 그 문화가 되는 거죠.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막스 베버가 서구 자본주의를 말하면서 든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그 예겠죠.

 두번째는 기업이 직접적인 거래 대상을 삼을 수 있는 문화가 있겠지요. 즉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산업 같은 것 말입니다. 문화 상품을 말합니다.

 세번째가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분야인데, 기업의 업종이 제조업·농업이라고 할지라도 상품과 서비스 안에 문화를 담으라는 겁니다. 상품과 서비스 자체가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미디어가 되는 거죠. 쉽게 말하면 상품이 필요에 의해 소비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주니까, 즐거움을 주니까,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니까 사도록 만들라는 말입니다. 문화가 들어가 있는 상품이란 니드(Need:필요)가 아닌 원트(Want:욕구)에 의해 수요되는 상품을 말합니다. 앞으로는 기업 활동이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될 겁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예전엔 물건을 주고 돈을 받았지만, 이젠 마음을 주고 돈을 받는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자본에 의한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했는데 최근에는 범위의 경제를 말합니다. 범위의 경제란 규정도 예전과 달리 동종 제품의 다양한 생산이란 의미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번째 영역의 문화를 범위의 경제로 이해해도 되는 건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면 망해요.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존하면 불황을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미 기업 차원에서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으로는 고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고, 이제 이미지와 느낌을 제품에 녹여 팔 수 있어야 생존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데 이의를 다는 기업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존하면 불황을 탈출할 수 없다는 말씀에 대해선 부가 설명을 요청하고 싶은데요.

 공급 과잉의 시대입니다. 수요를 넘어서는 공급이 상존하기 때문에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며 불황이라고 힘들어 하죠. 이 관점은 필요에 의한 것입니다.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는데 그 필요란 거는 한정돼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필요 대신에 앞서 말한 욕망·욕구를 넣어 보십시오. 욕망에는 바닥이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면 필요를 넘어서는 수요를 하지 않습니까. 예전에 어떤 나라 대통령 부인이 구두만 3000켤레를 갖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웃음). 그게 바로 욕망이에요.

 포드는 자동차를 타는 것, 즉 기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획일적인 차를 만들었죠. 하지만 GM은 자동차를 운전자의 상징,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것으로 바라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차를 만든 겁니다. 전 동종 업계 사람들과 경쟁하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욕망을 키워 시장을 늘리지 왜 아옹다옹하며 다툽니까. 웰빙·웰페어·감동, 즉 문화 마인드를 넣어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가 한개 살 거 두개를 사게 만드는 겁니다. 소비자가 그 제품, 그 서비스를 보고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의 시대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상품에 있어 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직접적인 것은 디자인이 되겠죠.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유람선이 시저나 안토니우스의 군선을 제압한 것과 같은 힘이죠. 마쓰시타는 미국 백화점에서 같은 기능과 같은 품질의 물건인데 가격이 다른 이유가 디자인에 있다는 점을 깨닫고 디자인부란 걸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그 정도도 아니예요. 과거에는 하드파워(기술)를 만든 후에 소프트파워(디자인)를 적용했지만, 이젠 소프트파워를 만든 후에 하드파워를 적용해야 하는 거죠.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문화가 되는 겁니다. 상품을 예술적 미디어로 만들라는 거죠. 몸과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라는 겁니다.

 전구를 예로 들어볼까요. 예전엔 전구란 밝음(기능)만 있으면 됐어요. 여기에 은은한 색을 넣어 무드(감정)를 넣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전등을 켜면 맑은 공기가 생산되고(웰빙·건강) 바이오 라이트(환경)까지 나오게 만드는 겁니다. 이런 게 문화 마인드예요. 여기에 상품명을 배우 이름을 따서 지으면 방안이 배우의 향기로 가득 차겠죠(웃음). 이렇게 통합적인 상품으로 만드는 게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휴대폰을 보면 그 안에 다양한 기능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상품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못하면 도태됩니다. 농부들도 딸기에 자기 이름 달고 농부의 마음, 고향의 마음을 도시인에게 파는 겁니다. 그게 문화 마인드예요.



 우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문화 마인드가 생길 수 있을까요.

 어렵게 생각하면 더 어려워집니다. 문화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넥타이를 고르지 않습니까. 그것도 문화입니다. 회화, 장식적인 요소를 충족시키는 거잖습니까. 넥타이 하나를 골라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고 문화 행동입니다.

 단지 제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기업인들이 제품을 만들 때 소비자를 첫사랑 여인으로 상상하고 만들라는 겁니다. 첫사랑과 데이트할 때 얼마나 설레었습니까. 또 그녀를 감동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습니까. 그런 자세면 해결책은 다 나온다고 봅니다.

 기업이 지금처럼 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습니다. 기업에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해요. 시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창작열을 발휘하듯, 기업인도 고뇌에 차서 소비자를 감동시킬 물건을 만드는 겁니다. 그게 문화입니다. 문화 마인드를 가지라고 CEO가 오페라나 보라는 게 아닙니다. 오페라의 감동을 상품에 담으라는 겁니다. 정리하면 옛말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같은 값은 기업 활동이고 다홍치마, 그게 문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 화제를 돌려 국가 브랜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기업체마다 브랜드 경영을 내세우는 이유는 브랜드가 바로 경쟁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노령화 사회가 되면 신규 브랜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한 것에 안주한다는 특성까지 나타날 거랍니다. 그렇기에 브랜드 강화를 위해 진력하는데, 이를 국가 차원에 투영해 보면 선생님이 보시기엔 대한민국이란 브랜드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생성됐다고 보십니까.

 과거엔 국가의 위상이나 이미지가 군사력·경제력으로 형성됐지만 이제는 문화, 문명, 그리고 경제력으로 연상됩니다. 특히 경제가 국가의 이미지를 많이 만드는데 프랑스는 향수, 이탈리아는 구두, 영국은 체크무늬 뭐 이런 거죠.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아직도 분단 국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란 정치적 이미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서양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이미지는 정지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브랜드는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브랜드·이미지는 만드는 게 아니고 편견과 고정 관념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집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전략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고, 외부와의 접촉을 늘려가는 방법이 핵심이겠죠. 그리고 대외적인 것보다 내부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이미지는 현재 농업 사회부터 첨단 IT산업까지 혼재돼 있습니다. 은둔의 나라, 한강의 기적, LCD-TFT, 초고속 IT 등이 혼합된 이미지, 즉 브랜드화하지 않은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하나 된 이미지는 부정적인 어떤 것이고요. 하지만 전 이게 우리에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부티크와 향수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생화학과 떼제베를 만드는 과학 국가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걸 고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그걸 고려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 브랜드의 정체성이 없다는 게 기존의 확립된 이미지보다 유리하다고 봅니다. 서울은 혼잡하다, 단점이면서 유일한 차별화 요소죠. 네거티브 이미지지만 재산이고요. 그리고 네거티브한 것일수록 조금만 잘해도 폭발적인 플러스 이미지로 탈바꿈합니다. 도그(DOG)가 갓(GOD)이 되듯 말입니다.

 월드컵대회 개최 이후 우리의 국가 브랜드를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는데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부합하는 이미지라고 생각되지만, 장기적으로 이 이미지로 가는 게 바람직하고 충분한지 등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다이내믹 또한 마이너스적 요소입니다. 뉘앙스가 야만적이고 거칠고 강렬한, 정제되지 않은 불안정한 이미지거든요. 이걸 해석하고 다듬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형성해 가는 게 우리의 책임으로 남는 거죠.

 대한민국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것을 꼽으라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정부에서 준비한다는 건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한국은 정부 없어도 자기를 조직화하는 힘이 굉장히 큰 나라예요. 한국의 세계 최고 브랜드를 꼽으라면 바둑인데, 이거 최고가 되게 하는 데 국가가 해준 게 있나요. 반도체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이런 데 없었습니다. 개인들이 신명에 의해서 하도록 놓아 두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국가가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어요. 해서 안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이렇게만 해도 순풍에 돛 단 듯 잘 갈 겁니다. 

 최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른바 ‘한류’ 신드롬이 일면서 국내에선 어떻게 하면 이 현상을 좀더 지속시킬 수 있을까를 놓고 많은 토론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이러한 동향에 대해 평하신다면….

 동북아시아를 ‘한자문화권’이라고 부르듯이 우리는 2000년 가까이 중국문화권 안에서 살아왔고, 근대에 와선 백년 가까이 일본문화권의 영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류’란 새로운 한자말이 생겨났다는 것은 한국이 문화 수신국에서 문화 발신국으로 전환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문화·소프트파워의  시대로 전이되는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점 또한 의미가 있죠.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고 과소 평가할 일도 아닙니다. ‘겨울연가’ 한편의 드라마가 한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일본인들의 편견을 바꿔 놓은 것은 그 어떤 군사력과 그 어떤 경제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한류에 이상 기운이 생기고 있다는 보도가 보입니다. 한류를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류를 만들 수 있었던 요인을 지속시키고, 상대국 문화를 잘 연구하고 대응해야만 한류 붐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은 짙은 화장과 성형 수술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잘 대응을 해야겠죠. 또 소프트시장은 만들기보다 관리하기가 더 힘들어요. 과거 70년대에 10년을 두고 팔 수 있는 미국의 가발시장을 마구잡이 수출로 1~2년도 안돼 황폐화시켰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됩니다.



 영상산업에서 우리보다 앞섰다고 자부하던 일본을 한류로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요인으로 보십니까.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문화의 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끼가 많은 우리네 천성입니다. 신명나면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게 우리 문화입니다. 이걸 지속적으로 살려야 합니다. 솔직히 연예계·문화계, 이게 벤처 중에 벤처예요. 피카소가 되면 호위호식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파리의 음습한 다락방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거죠. 그래도, 굶어도 하겠다고 나서는 신명을 계속해서 살려줘야 합니다.

 이 점은 CEO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21세기는 오토포에시즈(Auto- poiesis), 즉 자기 조직화 시대입니다. 기업 문화도 일방 명령이 아닌 쌍방향이 돼야 해요. 바보와 천재의 능력 차이는 많아야 열배 이상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정에 의한 것은 무한대의 차이를 초래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놓아 두는 것,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앞에서 말한 문화입니다. 문화 지향적이 된다는 것은 물질이나 기계를 알아 간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알아 가는 겁니다. 실리콘밸리가 퇴조한 이유를 스톡옵션에서 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초창기 순수한 창조의 욕망을 갖고 목숨을 걸던 벤처 마인드가 스톡옵션에 매달리며 사라졌다는 이야깁니다. 조직을 오토포에시즈로 만드십시오.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이어령 전 장관은 강연 약속이 있다며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지막 멘트는 “21세기는 부국강병의 시대가 아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문화가 끌고 가는 시대다. 기업도 문화가 끌고 간다. 문화인에 대해선 90% 이상이 열광하지만 정치인에게는 지지도가 많아야 40%도 넘지 못한다. 문화의 힘을 기업과 정치가 이용해야 한다”였다.)

최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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