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령과 여당. 운명공동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사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탄, 같은 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그랬다. 임기 말에 새로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등장해 대통령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 때까지 대통령과 여당은 찰떡궁합을 과시하곤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런 종래의 틀에 딱 들어맞질 않는다. 물론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 관계가 괜찮았던 적도 있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에서, 이듬해 4월 총선까지는 손발이 착착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그런 민주당을 절반으로 쪼개면서 만들어진 정당이 지금의 여당이다. 갓 뽑힌 대통령이 자신의 오너십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또 하나의 대통령당(黨) 만들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4월 총선 이후부터다.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 와중에 당적을 포기했던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도 이 무렵이다. 첫 충돌은 총선 직후 불거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었다. 또 그해 여름과 가을, 노 대통령이 과거사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문하면서 당에선 “대통령이 너무 일방 독주하는 것 아니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4년 가을, 김부겸·정장선 등 수도권 재선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는 건 드문 일이었고,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2005년 한해를 거치면서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작년 10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신(神)이냐”라고 하며, 당시 문희상 의장 체제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이때 노 대통령의 총신(寵臣)인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대통령이 여당에서 작은 탄핵을 당했다”라고 했다. 유 의원은 “대통령 조롱이 국민적 스포츠가 됐다”라는 말도 했다.

 여당 주변에선 “노 대통령이 탈당하려고 한다”라는 말이 돌았고, 안영근 의원(오른쪽 사진 위) 등 일부는 아예 공개적으로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여당 관계는 마치 시한폭탄의 시계가 폭발 시간을 향해 한 눈금씩 이동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했다. 신년 초 유시민 의원(오른쪽 사진 아래)의 보건복지부 장관 입각을 놓고 노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유 의원 입각에 반대하는 공개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탈당 카드’로 맞섰다.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싸우고 반목하는, 총체적인 불화(不和)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 관심은 노 대통령과 여당이 지금처럼 불편한 관계를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청산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물론 청와대나 여당 모두 “대통령의 탈당은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은 심정적으론 이미 ‘별거’에 들어선 상태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바깥의 시선을 의식해, 당분간 한 집에 살되 각 방을 쓰는 단계”라고 했다. 물론 극적인 화해를 거쳐 다시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결국 헤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통령과 여당은 최근 1년 반 동안 동반 추락했다. 대통령의 지지도와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더불어 폭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양측이 화해한다면 동반 상승할 것인가? 이에 대해 여권 전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오히려 어느 한쪽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면, 다른 쪽에서 발목을 잡거나 악재를 터뜨리곤 했다는 것이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식의 얘기다. 그렇기에 오는 5월31일 지방선거나 2007년 대통령 선거 등을 감안한다면 서로를 위해 헤어지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1월11일, 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한때 당을 떠날 생각을 했었다”라며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대통령과 여당 관계를 점쳐볼 수 있는 1차 관문이 2월18일로 잡힌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여당의 대표선수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작년 말 장관직에서 물러난 정동영 전 당의장, 김근태 의원을 비롯해 40대 재선그룹, 친노 그룹 등이 각각 당권에 도전하고 있다. 전당대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바로 ‘당·청 관계 재정립’,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될 전망이다. 이미 40대 재선그룹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강하게 비판하는 대안 세력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김혁규 의원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을 내세운 친노 그룹은 노 대통령의 정치노선 계승이란 카드로 맞서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측도 점차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또 전당대회에서 누가 승리하든, 노 대통령의 인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여당은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여당 내의 상황 변화를 수동적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노 대통령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에 구애받지 않고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만약 여당이 노 대통령이 말하는 창당정신의 궤도에서 벗어난다는 판단이 들 경우, 노 대통령은 어떤 형태로든 새판 짜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