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키기술 도약에 일조하고 싶어”



 재일 교포 3세 사업가 가네모토 준지(金本 順二, 43) 씨. 한국에서 스키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고집스럽게 지켜온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

 “할아버지 대부터 3대가 일본 오사카에서 살아 왔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제 대까지 피도 순수한 한국인입니다. 결혼도 재일 교포랑 했거든요.(웃음)”

가방 속에서 꺼내 보인 그의 여권은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것으로 ‘국적 한국, 경상남도 창원시…’라 또렷하게 적혀 있다. 또한 가네모토 준지라는 이름 대신 김순이(金順二)라는 이름이 올라 있어 그가 귀화하지 않은 한국인임을 증명하고 있다.

 “재일 교포 3세들의 90% 이상이 이미 일본인으로 귀화를 했습니다. 저도 사고방식은 일본인입니다. 그렇지만 국적은 저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너의 뿌리는 한국인’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하며 살아 왔죠.”

 오사카에서 태어나 대학(오사카상업대학)을 나온 그는 10년의 은행원 생활 끝에 일신관광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해 오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느낀 설움이나 소외는 크게 받지 못했다는 가네모토 씨.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별은 성장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게 느낀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여행업을 하다 보니 그런 변화를 더 실감하고 있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지만 내세우고 살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힙니다. 나의 뿌리인 한국이 일본 사람들에게 경멸, 무관심의 나라가 아닌 선망의 나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제 일처럼 기쁩니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그 또한 여느 재일 교포 3세들처럼 고국인 한국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희미한 그런 재일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무리 없이 섞여 사는 재일 한국인인 그에게 일대 전기가 마련된 것은 한국의 청년회의소(JC)와의 만남. 뿌리에 대한 기억과 관념이 희미한 재일 교포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는 뿌리의 나라 한국의 젊은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새롭게 조국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이미지는 제가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쯤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고향에 갔을 때가 전부였어요.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는, 제가 살고 있던 오사카와 닮아 놀랐었죠. 또 화장실이 개량되지 않은 재래식이라 낯선 모습에 놀랐죠.”



70세 넘어서도 슬로프 누비는 게 꿈

 11월 초 입국한 그는 한국의 유명 스키장 3곳, 대형 스키 판매업체 2곳과 스키 가공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 스위스 기술자가 개발, 특허를 낸 ‘얼티메이트 그립’(Ultimate Grip)을 만드는 첨단 기계를 국내에 최초로 들여온 것. 기존의 스키 날을 요철 형태로 가공하는 ‘얼티메이트 그립’은 스키의 핵심인 카빙(Carving, 스키의 날을 이용해 회전하는 기술)의 효과를 기존 스키보다 향상시켜 주는 신기술이다. 캐나다에 있는 본사로부터 아시아와 뉴질랜드의 독점 판매권을 따낸 그는 일본, 뉴질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 진출을 선택했다.

 “일본과 뉴질랜드는 물론이고, 동계 스포츠의 강국인 다른 나라에서는 이 기술이 프로 스키어들에게도 도입되고 있습니다. 일본도 지난 시즌부터 도입이 됐는데, 일류 선수들도 기존 스키에 비해 훨씬 향상된 속도와 기능을 느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한국을 두 번째 나라로 정한 건 한국의 스키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제 조국인 한국의 스키 기술이 다른 나라와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젊은 시절 스키 마니아였던 그의 스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스키 가공 사업까지 하게 된 그의 꿈은 스키 부문 최초의 한국인 메달리스트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미 그는 중학생 스키 선수로 장래가 촉망되는 채린의 해외 전지훈련 등에 경비를 보태고 있고,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세계적인 스키어와 ‘얼티메이트 그립’ 기술과 관련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기도 하다.

 “제 아이가 나중에 일본인으로 살게 될지, 아니면 저나 저의 부모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을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런 걸 강요받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제 아이에게도 자유로운 선택권을 줄 생각입니다. 앞으로 나의 아이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며 괴로움을 겪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며 겪은 고민이 제 인생에 좋은 교훈이 되었고, 장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사업가로서 가네모토 씨는 고국에서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한국에 도움이 되면 그보다 바랄 게 없다고.

 “저에겐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하는 것보다 한번뿐인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해요. 스키는 젊은 시절 차별에 대한 콤플렉스를 날리는 데 아주 좋은 친구였어요. 제 개인적인 꿈은 나이가 70이 넘어서도 슬로프를 누비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살 수 있다면, 제 아이들도 아버지의 인생이 괜찮은 삶이라 느낄 거고, 스스로의 뿌리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요?”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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