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1961년 발족한 이래 재계를 대표해 정부의 실질적인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전경련은 내년 2월 현 강신호 회장의 뒤를 이을 제30대 회장을 선출한다.
정부는 내년 뉴딜정책을 포함한대대적인 경기활성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점에서 내년은 재계의 역할이
어느해보다 중요한 때이다. 과연 이때에 누가 재계의 총리라고 불리는 전경련 회장에 오를지 사뭇 궁금해진다.

 전경련 회장은 흔히 ‘재계 총리’라고 불린다. 한국 경제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재벌 계열사들이 전경련의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재계의 실질적인 수장인 전경련 회장은 재벌그룹 총수들로 구성된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가끔 대통령이 경제5단체장과 회합할 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함께 선임 역할을 맡아 재계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 공식적으로는 430여 개 회원사를 대표하고 직원 100여 명인 전경련 사무국·한국경제연구원 등을 책임진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의 불화나 정치권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비상근이라 월급은 물론이고 판공비도 없다. 오히려 회장이기 때문에 전경련에 회비나 기부금을 더 많이 낸다. 전경련 회장을 두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는 말도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전경련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 개혁 드라이브에 맞서기도 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재계의 이해를 지켜야 하는 적지 않은 부담도 지고 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된다). 역대 전경련 회장과 정권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일본 경단련 모델로 결성

 전경련은 1961년 8월16일 재계가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모임이다. 모태는 4.19혁명 이후 부정 축재자로 꼽힌 기업인들이 일본의 게이단렌(경단련)을 모델로 한국경제협의회(한경협·회장 김연수 삼양사 대표)를 결성한 데서 비롯했다. 한경협은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5.16이 일어나면서 한경협은 해체되고 기업인 15명이 부정 축재 혐의로 구속된다. 그러자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당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가들을 감옥에 놔두면 어떻게 하느냐”며 군사정부를 설득했다. 43일 만에 풀려난 기업인들은 국가 기간산업 발전을 위한 역할을 각자 맡기로 하고 ‘경제재건촉진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가 ‘한국경제인협회’를 거쳐 68년부터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전경련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초대 회장으로 선임한 이후 현 강신호 회장까지 모두 12명의 회장을 맞았다. 그 화려한 면면은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역대 회장 중 자신의 뜻에 의해 회장을 맡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상당한 진통을 거친 끝에 새 회장이 선출됐다. 그래도 이병철 회장(초대), 구자경 회장(18대), 손길승(28대)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차례 이상 연임했다. 그만큼 책임감이 강조되는 자리다.

 회장의 임기는 2년으로 무제한 연임할 수 있다. 김용완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각각 10년 장수 기록을 갖고 있다.



 이병철 1대 회장 (61.8~62.9)

 초대 회장인 고 이병철(李秉喆) 삼성 회장은 이 자리를 1년밖에 맡지 않았지만 그룹 일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가졌던 유일한 대외 직함이었다.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한 민간외자도입교섭단을 미국과 유럽지역에 파견, 민간 경제 협력의 첫 장을 열었다. 시멘트, 제철, 화학, 자동차 등 10개 분야의 기간산업 건설 계획안도 내놓았다.

그는 재임 중 전경련에 조사부를 설치하고 사무국 직원의 공채 제도를 도입해 조직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림 2~3대 회장 (62.9~64.4)

 이정림(李庭林) 대한유화 회장은 개성의 상점 점원 출신으로, 경제 재건 과정에서 소외됐던 기업인 들을 적극 유치했다. 울산공단과 한국수출산업공단(구로공단) 설립을 건의하는 등 활발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김용완 4~5대 (64.4~66.4), 9~12대 회장 (69.4~77.4)

 김용완(金容完) 경방 회장이 10년간 전경련 회장직을 맡으면서 전경련은 정치권과 밀월관계에 들어간다. 김 회장은 72년 8.3 사채 동결 조치를 정부에 건의하기 전에 경방이 갖고 있던 노른자위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최장수 재임 기록을 가진 김 회장이지만, 전경련 회장을 연임하지 않으려고 2개월간이나 피해 다니거나 회장으로 추대된 다음에도 한 달 이상 자택에 머물며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정주영 회장과 더불어 최장수 회장 재임 기록을 세웠다.



 홍재선 6~8대 회장 (66.4~69.4)

 일제 강점 기간에 금융조합 이사를 지낸 홍재선(洪在善) 쌍용양회 회장은 오너가 아닌 첫 전경련 회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홍 회장은 금융인이자 전문 경영인답게 종합무역상사 설립 등을 정부에 건의해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정주영 13~17대 회장 (77.4~87.2)

 전경련의 전성시대는 역시 10년간 재임한 현대 창업주 정주영(鄭周永) 회장 시절이다. 정 회장은 소신껏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전경련의 위상과 자율성을 한껏 높였다. 그가 이 재계의 힘을 한데 모아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최대의 작품이다. 숙원사업이던 전경련회관을 여의도에 건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집권 초에는 갈등이 빈번히 노출됐다. 정 회장은 5공 초기 정권이 전경련 회장직을 내놓으라고 압력을 넣자 “나는 회원들이 뽑아 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고 버틴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전경련과 정권이 ‘상부상조’하는 체제로 변하면서 전경련은 기업의 정치자금을 모아 정권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 오점을 남겼다.



 구자경 18대 회장 (87.2~89.2)

 구자경(具滋暻) LG 창업주는 87년 노사 분규의 와중에 재벌에 쏟아지는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전경련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노사 대립이 극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너체제가 전경련을 끌고 가기는 쉽지 않았다. 구 회장은 “차라리 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낫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구 회장은 막역한 사이였던 정주영 회장의 부탁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여서 회장직을 맡았으나 “꼭 2년만 하겠다”던 약속대로 단임으로 임기를 마쳤다.



 유창순 19~20대 회장 (89.2~93.2)

 89년 초에도 노사 대립이 치열한 가운데 비오너 출신인 유창순(劉彰順) 전 국무총리가 관료 출신으로는 처음 회장직에 올랐다. 유 회장은 자유시장경제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 측과 원만한 관계를 정립해 나갔다는 평가도 받았다. 92년에는 기업인 환경선언을 선포, 환경문제에 기업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최종현 21~23대 회장 (93.2~98.8)

 YS정부 출범과 함께 전경련은 다시 오너 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정부와의 갈등도 잦아졌다. 최종현(崔鍾賢) SK그룹 2대 회장은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세계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와 규제개혁 사업에 역점을 뒀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 쌀시장 개방 등을 놓고 관료들과 논쟁도 불사,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규제를 다 풀어라. 기업에 맡겨라”는 최 회장의 발언에 정부는 SK그룹 세무 조사라는 칼을 빼들기도 했다. 또 청와대가 사과할 것을 요구해 재계 대표인 최종현 회장이 홍재형 부총리를 과천청사까지 직접 찾아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쌀시장 개방 불가피론을 폈다가 농민단체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신념을 갖고 강조해 온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장경제주의 정착’ 등의 이념은 이제 재계의 상식이 됐다. 96년엔 기업윤리헌장을 선포하는 등 환경과 윤리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켰다.

재계의 두터운 신망을 받던 최 회장은 재임 중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면서 98년 8월 암으로 별세했다.



 김우중 24~25대 회장 (98.9.17~99.10)

 DJ정부에서 전경련을 이끌게 된 24·25대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활동으로 전경련을 다시 재계의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후 ‘재계 대통령’이 된 것 같았다며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비교적 관계가 좋았으나 말썽 많던 빅딜과 500억달러 무역 흑자론 등으로 관료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 김 전 회장은 결국 무리한 확장 경영의 후유증으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시련과 국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남긴 채 외국으로 떠났으며, 지금껏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김 회장은 61년 전경련 창설 이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는 첫 불명예 사례가 됐다.



 김각중 26~27대 회장 (2000.2~2003.2)

 김각중(金珏中) 회장은 김용완 회장의 아들로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은 첫 인물이다. 선친과 마찬가지로 회장직을 완강히 고사했으나 결국 연임했다.

김우중 회장의 중도 하차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장직을 맡은 김 회장은 대정부 활동보다는 흐트러졌던 재계 분위기를 추스르는 내치(內治)에 주력했다. 정부·노동계 등과도 조용한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정부가 강하게 요구했던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요구도 적절한 선에서 타협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 회장은 정부의 재벌 개혁 움직임이 일 때마다 “매사를 부딪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 과잉 투자 업종의 자율 구조 조정 작업을 큰 마찰 없이 마무리 짓는 성과를 올렸다.



 손길승 28대 회장 (2003.2~2003.10)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뒤 9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역대 전경련 회장 중 최단 임기 기록이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SK그룹 총수와 전경련 회장에 오르는 큰 영예를 누렸으나 SK네트워크 분식 회계, SK해운 비자금 및 불법 정치자금 전달, SK해운 탈세 의혹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로 깊은 상처를 입고 낙마했다.

손 회장은 취임과 함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창하며 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역설했으나 중도 퇴진으로 빛을 잃고 말았다. 퇴임 1개월 전에는 경제5단체장 모임 등 공식 행사에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할 정도로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빠졌다. 손 회장의 중도 사퇴는 재계의 큰 불행으로 기억된다.



 강신호 29대 회장 (2004. 2~현재)

 강신호(姜信浩·동아제약) 현 회장은 재벌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현 정권이 전경련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중책을 맡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회장 때보다도 전경련과 정권의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강 회장은 급진 개혁 세력에 맞서 시장경제 원칙을 확고히 주창하는 등 나름대로 재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재계 원로이자 오랜 기업 활동 연륜을 바탕으로 회원사들을 아우른다는 평이다.



차기 회장은 누구


 전경련 회장은 회원사 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으나 그것은 일종의 요식행위다. 회장단에서 의견 조정을 거쳐 추대되면 총회에서는 박수로 통과시키는 것이 관례다. 그보다는 전경련 회장단과 원로들의 추인을 받아 물망에 오른 총수를 대상으로 숨 막히는 설득 작업을 벌이는 일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매번 막판까지 추대와 거절을 반복하는 진통을 겪어 왔다.

 강신호 회장의 뒤를 이어 내년 2월에 선출될 새 회장은 누가 될까. 차기 회장은 20명의 회장단 멤버 중에서 선임될 것은 분명하다. 전경련 회장직에 재벌이 아닌 전문 인사들이 거론되면서 회장 선임에 진통을 겪은 경험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회장단 내부의 강력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경련 회장단은 강신호 회장과 20명의 부회장들로 구성돼 있다. 부회장단은 조석래(趙錫來·효성), 이건희(李健熙·삼성), 구본무(具本茂·LG), 김승연(金昇淵·한화), 조양호(趙亮鎬·대한항공), 정몽구(鄭夢九·현대자동차), 박용오(朴容旿·두산), 현재현(玄在賢·동양시멘트), 이용태(李龍兌·삼보컴퓨터), 이준용(李埈鎔·대림산업), 이웅렬(李雄烈·코오롱), 신동빈(辛東彬·롯데쇼핑), 최용권(崔用權·삼환기업), 김윤(金鈗·삼양사), 박영주(朴英珠·이건산업), 류진(柳津·풍산), 허영섭(許永燮·녹십자), 박삼구(朴三求·금호산업), 이구택(李龜澤·포스코) 19명의 그룹 총수들과 현명관(玄明官)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다.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는 유력 후보군으로는 역시 빅3 그룹 총수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재계의 실추된 위상 탓인지 보이지 않는 재계의 후원까지 등에 업고 있다.

 그렇지만 추대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강신호 현 회장은 “여러 모로 볼 때 재계의 대표격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맡는 것이 순리”라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의사가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삼성이 국내 재계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한 이상 그에 걸맞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한 상황이다.

 LG 구본무 회장은 본인 스스로 나서기를 싫어하는 데다 수차례 전경련 회장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한때 전경련 회장직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현재는 “더 이상 관심 없고 회사 경영에만 힘쓸 것”이라고 멀찌감치 물러난 상태다.

김희섭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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