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1월말 규제 완화 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정책에서 손을 떼고 시장 원리가 원활히 작동되도록 하는 데 주력하는 쪽으로 기능 재편과 관련한 논의를 하기로 했다. 공정위 기능에 대해 수술을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재벌 정책이 공정위 본연의 역할인지에 대한 논란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공정위 기능 재편에 대한 양측 의견을 들어본다.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법경제연구센터 소장



“기업 고유 선택 영역인 경영 전략까지 개입해서야”



 공정거래위원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시장의 경쟁 과정을 보호하고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기능이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감시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공정위의 경쟁 촉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이나 정체성과 거리가 먼 경제력 집중 억제 관련 규제들이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대대적으로 제도화됐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 및 채무 보증 한도 설정, 지주회사 설립 규제, 출자 총액 제한, 계열사간 내부 거래 규제, 보험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이 그것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효율성과 사회 후생 증대를 위해 기업결합 심사, 부당 공동 행위 및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심사 및 규제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채 본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요 선진국의 경쟁 정책 당국의 시장 경쟁 촉진이란 정상적인 기능과 달리 한국의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미명 아래 기업의 고유 선택 영역인 경영 전략에 해당하는 부문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예를 들면 공정위 주요 업무 목표가 김영삼 정부는 ‘업종 전문화 및 소유 분산’,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 구조 조정 촉진’ 정책으로, 그리고 참여정부에선 “기업 지배 구조 개선”으로 바뀌어졌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 규제를 살펴보자. 공정위는 한국의 독특한 순환 출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중층적 피라미드식 출자를 통한 지배는 유럽 국가에서 허다하다. 출자 규제는 출자 한도 변경, 폐지, 재도입 등 시류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 하며 진화되어 왔다. 과거 출자 규제 목적은 기업의 과도한 사업다각화 및 경제력 집중 억제였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으로 변질되었다. 공정위는 동일한 법 내용을 가지고 시대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법 해석을 달리 하며 규제의 목적을 왜곡시켜 왔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규제 내용들은 소비자 보호 및 시장의 경쟁 과정을 보호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본연의  역할에 크게 벗어나 공정위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

 글로벌 경제화로 세계 시장 단일화가 가속화하는 등 공정거래위원회 출범 및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와는 경제 환경이 많이 변화됐으며, 경쟁 제한 행위도 개별 국가의 범위를 넘어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시점이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공정위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과 관련된 정책은 상법, 증권거래법, 회계제도, 공시제도 및 자본시장의 규율에 위임하고 상품시장의 경쟁 촉진에 집중해야 한다. 즉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에서 벗어나 개별 상품시장 단위에서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기업 행태에 대한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정거래법이 지향하는 목표를 시장 개방과 경제 선진화에 걸맞게 경쟁 촉진으로 일원화해 법이 목표로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한편, 경쟁 당국의 경제 분석 능력 제고와 법 집행력 강화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공정 거래 정책을 통해 시행돼 온 기업집단에 대한 다양한 규제와 제한을 철폐하고 다른 시장 규율 메커니즘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반면에 기업결합 심사, 부당 공동 행위 및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경쟁정책은 보다 강화되고 정밀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공정위가 사법 및 정책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미국의 법무부 독점금지국이나 연방거래위원회와 같이 공정거래법이나 산업조직론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대폭 충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원회가 합의제 기관으로서 설립 취지에 충실하게 운용되려면 위원 상호간은 물론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며, 이를 위해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의 임명 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나 추천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총괄정책과장



“선진국도 공정거래법으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방지”



 근 일부에서 공정위가 운용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 집단 시책과 관련, 공정위의 기능 재편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즉 대기업 집단 시책은 공정위 본연의 경쟁 촉진 기능과 상충되므로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필요하더라도 금융·자본시장을 규율하는 기관에서 담당하는 게 옳으며, 향후 소비자 보호 기능이 이관되면 공정위의 권한이 과도해지고 규제도 증가할 것이므로 공정위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공정위의 기능과 대기업 집단 시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우선 대기업 집단 시책이 경쟁 촉진 기능과 상충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한마디로 재벌그룹의 계열사간 과도한 순환 출자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순환 출자로 만들어지는 가공 자본, 특히 가공 의결권은 여타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므로, 그 자체로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될 뿐더러 지원받는 재벌 계열사와 독립 중견·중소 기업간의 공정한 시장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즉 계열사간 상호 지원이나 배타적 거래, 비계열사 차별 등과 같은 불공정 경쟁 행위 가능성이 높아지고 집중된 경제력의 남용 소지도 증가한다. 따라서 이 제도는 재벌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서 꼭 필요한 경쟁 촉진 시책이라 하겠다.

 둘째, 대기업 집단 시책을 금융·자본시장을 규율하는 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대기업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독점금지법인 공정거래법에 마련,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들의 담합이나 기업 집중·결합을 통해 형성되는 거대한 독과점 자본에 대한 우려로 독점금지법이 탄생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일본은 지배 주주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우리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유사한 ‘대규모 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1977년부터 도입·운용한 바 있고, 지난 2002년 5월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도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안전판으로 ‘사업지 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회사의 설립금지제도’를 따로 신설했다. 금융·자본시장을 규율하는 제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나 자본시장의 투자자 보호가 목적이므로 기업이나 경제력 집중의 폐해 방지와 같이 시장 경쟁을 보호하는 제도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금융·자본시장 규제 기관이 기업 규제 업무까지 수행할 경우 오히려 규제 목적의 상충이나 과잉 규제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소비자 보호 기능의 공정위 이관과 연계해 대기업집단 정책을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치 않다. 소비자 보호 기능 이관 문제는 어떠한 행정 체계가 소비자 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사항이며, 전혀 관계가 없는 대기업 집단 시책과 연계시킬 사항이 아니다. 소비자 보호 기능이 공정위로 이관될 경우 규제가 증가해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기우에 불과하다. 주무 부처가 변경된다고 정부가 실시하는 규제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정위로 이관돼 경쟁 정책과 소비자 보호 정책이 효율적으로 연계·운용된다면 경쟁 정책이 소비자 보호 기능을 대체해 규제가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현 시점에서 공정위 기능 재편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그동안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2003년 12월30일 확정·발표)’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민·관 합동T/F’ 구성·운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계, 학계,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서도 지난해 말 개정 공정거래법을 최종 의결했다. 4월1일부터 시행하는 마당에 적절치도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