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들이 환율 급락에 마치 놀이기구 자일로드롭을 탄 이용객마냥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환율은 정부가 개입하면서 잠시 주춤했다가 손을 떼면 힘없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조순 전 부총리는 "달러 약세라는 국제적인 대세를 무슨 수로 막겠는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맥없이 무너지는 환율을 가만히 쳐다보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환율 전문가들을 통해 원/달러 환율 하락 요인과 전망, 환율의 10년 흐름을 알아보고, 요즘 부쩍 바빠진 외환 딜러들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국 뉴욕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이 최근 발표한 '외환 보유액의 축적-세계 자본 흐름과 금융시장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떨어지면 국내 총생산(GDP)의 3%인 21조원의 자본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률은 8월1일 1164.8원에서 11월1일 1119원으로 50원 가까이 떨어지더니 11월15일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100원선을 무너뜨렸다. 7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한 것이다. 앞서 말한 보고서대로라면 미 달러 대 원화 환율이 5% 정도 감소해 10조 5000억원의 자본 손실을 본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율 전문가들은 중기적으로 1050원을 지지섡으로 보고있다. 엔/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이 1대 10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때문에 삼성 등 대기업들은 이미 원/달러 환율을 1050원에 맞춰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면 뉴욕연방준비은행 보고서가 예시한 10% 하락이 불 보듯 뻔해지고, 21조원에 달하는 돈을 5~6개월 사이에 고스란히 손해 보게 된다.

 원/달러 환율은 과연 얼마나 더 떨어질가.

 국내 환율 전문가들은 글로벌 달러, 외환당국, 역외 세력,경상 수지, 국내 정치적 요인 등 5가지의 변수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달러와 관련해 정미영 삼성선물 과장은 "재선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경상 및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달러 약세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말해 당분간 원/달러 환율 하락의 절대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외환당국과 관련해선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원화의 급속한 절상은 우리 경제에 이롭지 않은 면이 분명한 이상 정부의 개입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이진우 농협선물리서치팀장은 역외 세력 변수에 대해 "외국인들이 연일 증시에 1000억~2000억원대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환율에 끼치는 영향이 커졌다"며 "외환시장에 국내의 많은 기관 및 기업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투자전략실장은 "98년 이후 경상 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 보유액이 늘어나면서 환율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2년 내 세자릿수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이상재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경제조사팀장은 "북한 핵문제의 전개에 따라 원/달러 환율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언급한 5가지 변수들은 따로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 상대변수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때론 크게 악화시키기도 향상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환율 전문가들은 이들 5가지의 변수를 잘 살피면서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승관 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나라 환율은 19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도가 도입된 이후 외환 위기 이전까지 대체로 완만하게 상승했으나 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된 이후 외환 수급 사정이나 기초 경제 여건 그리고 국제 통화 시세와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를 반영해 등락하고 있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환율은 기본적으로 대외 거래의 결과로 나타나는 외환의 수요량과 외환의 공급량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외환의 수급만으로 환율의 변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한 나라와 다른 나라 통화의 교환 비율인 환율은 양국 통화 간의 상대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에 의해 변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03년 3월경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았지만 당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보도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증가시켜 환율이 상승했다. 또 그 해 9월11일 미국에서의 테러 발생은 미국 달러화 약세와 엔화 강세를 유발하며 원화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미 달러화의 안정 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상승했다. 이 중 앞의 것은 뉴스가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이며, 뒤의 것은 시장의 기대심리가 환율에 영향을 준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환율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변동되며, 설령 같은 요인이더라도 당시 상황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오른쪽 그림 참조)은 크게 중장기적 요인과 단기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전자는 기초 경제 여건과 관련된 것으로 물가 수준, 경제 성장, 국제 수지 또는 외환 수급 등을 말하며, 후자는 각종 뉴스, 시장 기대, 국제 통화 시세 등을 말한다.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1996년부터 상승세

 지난 1995년도는 환율이 좁은 범위 내에서 매우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인 해였다. 이것은 당시 환율의 일일 변동폭이 ±2.25%로 제한돼 있고 자본의 유출입 규모도 크지 않은데다 환율에 영향을 줄 만한 특별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반기 동안에는 수출 호조와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으로 1995년 초 789원에서 7월7일 756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무역 수지 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소폭 상승세로 돌아섰다. 1996년 들어서는 연초 775원에서 꾸준히 상승해 연말인 12월26일에 845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승세는 무엇보다 반도체 가격의 폭락 때문이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의 가격 폭락으로 1996년도 전체 수출 증가율은 전년의 30.3%에서 3.7%로 급락했고 이에 따라 무역 수지 적자는 206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6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환율은 1997년 들어서도 추가 절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세가 지속됐다. 특히 3분기 들어 기업 부도와 기아자동차 처리 지연,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 누증, 동남아시아국가 외환 위기의 영향 등이 겹쳐 우리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해외 투자가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11월에는 외국인 주식자금이 유출되고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입금 만기 연장이 어려워지면서 외환 보유액이 급격히 감소했고 급기야 외환 결제 불능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서 환율은 폭등했다.

 1996년 11월17일 환율은 개장과 동시에 일일 변동폭인 +2.25%의 상한까지 상승하면서 외환시장은 기능 마비 현상이 반복됐다. 이에 외환당국은 11월20일 단기적인 환율 상승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환율의 일일 변동폭을 ±10.0%로 확대했고, 12월16일에는 변동 허용폭 제한을 완전히 폐지해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11월19일 달러당 1000원을 넘어선 원화 환율은 환율 변동 허용폭 확대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해 외환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12월24일 사상 최고치인 1965원까지 치솟았다.



1998년 사상최고 무역흑자 기록하며 하락

 1998년 들어 우리 경제는 전년 말 발생한 외환 위기의 충격으로 연초 이래 상당 기간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으나 IMF와의 합의 하에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고 금융 및 기업 구조 조정 등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실물 경제가 개선되고 외환시장도 빠르게 회복되면서 외환 위기에서 점차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환율은 390억달러의 사상 최고 무역 흑자에 힘입어 외환 수급 사정이 급속히 개선되면서 가파르게 하락했다. 1997년 말 사상 최고치인 1962원을 기록한 환율은 1998년 초 이후 빠르게 하락해 3월 중순 이후 1300~1400원대에서 안정세를 보였으며, 7월에는 환율이 일시 1200원대 초반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8월 들어서는 러시아의 지불 유예(moratorium) 선언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1400원대까지 다시 상승했으나 미국 등 선진국의 금리 인하 등으로 10월 이후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데다 무역 흑자 지속 등으로 외환 공급이 확대됨에 따라 환율은 큰 폭으로 떨어져 연말에 달러당 1204원을 기록했다.

 1999년 들어 우리 경제는 외환 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활력과 안정을 회복하고 해외로부터 신뢰를 되찾았다. 전년에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국내 경제는 1999년에 들어 내외 수요의 호조로 경제 성장률이 10.7%의 큰 폭 플러스로 돌아선 가운데서도 경상 수지가 250억달러의 흑자를 이어가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연평균 0.8%로 현저히 안정됐다. 이 기간 중 환율은 두 차례 증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연초에는 구조 조정 지연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잠재하면서 3월8일 1243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무역 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 조정 추진 등으로 외국인의 국내 투자 심리가 뚜렷이 회복되면서 환율은 계속 하락해 6월28일에는 달러당 1154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대우 사태가 불거져 나오면서 환율은 하락세를 마감하고 상승세로 반전돼 7월 말에서 8월경에는 1200원 내외를 기록했다. 11월 들어서는 국가 신용 등급의 상향 조정, 무역 수지 흑자, IT 부문의 급성장 등의 영향으로 다시 가파르게 하락해 12월14일에는 연중 최저치인 1129원을 나타냈다.



2000년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불거지자 상승

 2000년 들어 환율은 외환 공급 우위 기조 아래 전년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9월까지 1100~1140원의 하향 안정세를 나타냈다.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은 3/4분기까지 110억달러 순유입됐고 무역 수지도 8월 말까지 62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환율은 9월6일 1105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9월 들어 상반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현대그룹 유동성이 다시 불거져 나오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 유입액이 급속히 둔화됐고 11월 들어서는 미국 증시의 불안, 동남아 통화 약세 등 대외적 요인과 기업 및 금융 구조 조정 차질 우려 등 대내적 요인이 겹치면서 환율은 빠르게 상승해 12월28일 1267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1년 들어서는 ‘3월 일본 위기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엔화 환율이 급등하자 원화 환율은 동반 절하 기대가 작용하면서 2월 말에서 4월 초까지 급속히 상승해 4월4일에는 연중 최고치인 1365원을 나타냈다. 이후 원화 환율은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안정방침 발표(4월5일)와 엔화 약세의 진정 등으로 빠른 속도로 하락해 대체로 1300원을 약간 밑도는 안정적인 움직임을 나타냈다. 그러나 9월11일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엔화 및 유로화가 강세를 보였으나 국내 외환시장은 미 달러화의 안정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환율은 1300원 이상으로 상승했다. 11월 하순에는 일시적으로 1260원대까지 하락했으나 12월 들어 일본의 경기 침체 장기화 우려로 엔화 환율이 급상승함에 따라 원화 환율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2001년 말에는 1314원을 기록했다.



2002년초 원.엔동조화 현상 심화

 2002년 들어서는 미국이 자국의 경상 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환율 정책을 기존의 ‘강한 달러’에서 ‘달러화 약세 용인’으로 갑자기 전환하자 원달러 환율은 다소간의 등락을 제외하고는 2004년 현재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 기간 중 나타난 특이한 현상은 원화가 엔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소위 ‘원·엔 동조화’ 현상이 과거보다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다.

 2002년 초반에는 엔화 약세와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 순유출로 원화 환율은 상승하기 시작해 4월12일 연중 최고치인 1332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의 환율 정책이 ‘강한 달러’에서 ‘달러 약세 용인’으로 바뀌고 엔론사 등 미국 기업 회계 부정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달러화가 급격히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국내 경기가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자 원달러 환율은 빠른 속도로 하락해 7월22일에는 연중 최저치인 1166원을 기록했다. 이후 일본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부각되면서 엔화가 약세로 반전됨에 따라 원화 환율도 반등하기 시작해 10월 중순에는 1264원까지 상승했으나 다시 미·이라크 간 전쟁 위험 고조 등으로 미 달러화가 급락하자 원/달러 환율은 급격히 떨어지면서 연말에는 1200원을 나타냈다.

 2003년은 미·이라크 전쟁과 북한의 핵 문제 등 소위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작용한 해이다. 연초 들어 원/달러 환율은 북한 핵 문제, SK글로벌 부정 회계, 카드사 부실 등에 따른 불안 심리와 유가 급등에 따른 경기 회복 지연 예상 등으로 오름세를 보여 4월4일에는 1258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전쟁 조기 종결과 북한 핵 문제 해결 가능성 증대 등으로 시장의 불안 심리가 완화되면서 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선 후 외국인 증권 투자 자금의 유입, 수출 호조 등으로 10월13일에는 연중 최저치인 1147원까지 떨어졌다. 특히 9월 하순 두바이에서 열린 G7 재무장관회담에서의 ‘유연한 환율제도’ 성명서 채택은 원화 환율은 물론 아시아 통화 환율을 급속히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신용카드사 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반등한 후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다가 연말에는 1198원으로 마감했다.

 올 들어 환율은 4월 중순까지 무역 흑자, G7 재무장관회담(2월) 이후 나타난 엔화 환율 하락, 외국인 주식 자금 순유입 등으로 가파르게 하락해 4월14일에는 1141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곧이어 중국의 긴축 정책 발표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그리고 유가 급등이라는 3대 악재가 불거져 나오면서 5월 중순에는 1188원까지 급등했다. 이후 미국의 대선과 연계한 달러화 약세 정책과 엔화 환율 하락 그리고 무역 흑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가파르게 하락해 11월 초 현재 원/달러 환율은 2000년 10월 초 이후 최저치인 1110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환율을 돌이켜 보면 외환 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으나 1997년 말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된 이후 지금까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환율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경상 수지와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 등 외환 수급 사정이 영향을 주었으며, 때로는 현대그룹 유동성 문제와 북한의 핵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이후에는 미국의 환율 정책과 엔화 환율의 움직임이 강력한 영향 변수로 부상했고 수출에 의한 외끌이 성장이 가시화된 2003년 초 이후에는 정부의 환율 정책이 보이지 않는 영향 변수로 꾸준히 작용했다. 우리나라 환율은 앞으로도 자유변동환율제도 하에서 자본의 유출입과 국제 통화 시세 등에 의해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