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김치가 수난의 한복판에 놓였다. 중국산 납 김치 파동으로 시작해 기생충 알 파동으로까지 번지더니 국내산 김치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김치의 주재료는 모두 알다시피 배추다. 한순간에 눈치꾸러기로 전락했지만, 우리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의 재료 ‘배추를 찾아서’ 떠난 산지에서 시장에 이르는 1박2일 동행 취재기.
 난 11월9일 오전 7시. 가을배추 산지로 유명한 충남 아산시 모산 지역의 한 배추밭. 밤이 길어진 탓인지 조금씩 희뿌연 새벽빛이 내비치긴 했지만, 어둠은 쉽사리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어렴풋한 윤곽만 겨우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어둠이 깊었다.  10여명 가량의 사람들이 승합차와 1톤 트럭을 밭 한쪽에 주차해 놓았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정육점에서 고기 자를 때 쓰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의 칼과 신문지 뭉치, 작업용 장갑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곧 날이 밝으니까, 작업 준비를 서두릅시다!”

 작업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독려하는 말을 건네자, 작업자들은 도구를 정렬해 놓고 작업용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다. 전날 일기예보에 따르면 중부 지방의 아침 기온은 영상 4~6도.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찬 습기를 잔뜩 머금은 새벽 공기는 저절로 몸을 떨게 만들었다. 승합차 뒷문을 연 한 아주머니가 차에 실린 보온통의 온수를 종이컵에 따랐다. 잇따라 인스턴트 봉지 커피를 컵에 부어 돌렸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선 채 뜨거운 커피로 잠시 몸을 덥혔다.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예의 아까 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작업 개시! 배추를 좀 눕혀 보자고!”



 5톤 트럭 한 대에 실리는 배추는 약 3000포기

 작업용 칼을 든 사람들이 새벽이슬을 맞고 서 있던 배추 밑동을 능숙한 솜씨로 베어 나갔다. 서걱서걱 배추 이파리와 작업자들의 옷깃이 스치는 소리, 툭툭 배추가 베어지는 동시에 쓰러지며 내는 소리만 조용한 새벽 배추밭 하늘에 맴돌았다. 30분가량 작업을 진행했을까. 어둠이 걷히는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빨라졌다. 밑동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배추의 하얀 아랫부분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작업 인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추 밑동을 베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30분쯤 더 지나자, 멀리 밭머리에서 트럭 한 대가 밭을 향해 다가왔다. 배추 베기에 열중하던 인부들은 그제야 일손을 멈췄다. 오전 중으로 배추를 싣고 도매시장으로 가야 할 5톤 화물차였다. 작업반장 김선기씨(47)가 신호하자 분주하던 손길이 일제히 멈췄다. 화물차 운전기사와 작업자들은 이미 친분이 있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20년째 배추 작업해서 먹고 살고 있고, 다른 작업반 식구들도 길게는 7~8년, 적게는 5개월씩 전국을 돌면서 작업합니다. 여름에는 주로 강원도 고랭지 배추 산지에서 작업하고, 가을에는 평택 등 경기도 인근에서, 늦가을이면 이곳 아산 모산 지구나 전북 고창 쪽으로 갑니다. 김장철에는 해남, 영광, 진도 쪽으로 갑니다. 본격적인 김장철에 가정에서 먹는 배추들은 대부분 전남 해남, 영광, 진도에서 납니다.”

 김 반장을 비롯한 작업반원들은 조성훈씨가 소유한 전국의 배추밭을 돌며 작업을 한다. ‘산지유통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조씨는 우리가 흔히 ‘밭떼기’라 부르는 토전매매를 통해 배추 물량을 확보, 도매시장에 내다파는 유통상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배, 생산하는 무와 배추의 60% 이상은 조씨와 같은 산지유통인을 통해 관리, 재배된 뒤 시장으로 나간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안정되었지만, 지난 초가을만 해도 배추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무, 배추 유통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눈치를 많이 봤습니다. 배추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치 폭리를 취한 것인 양 알지도 못하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취재 요청이 와도 대부분 거절해요.”(김선기 반장)



 산지유통인 ‘중간 폭리’ 아닌 리스크 헤지 역할 더 커

 김 반장은 “배추 값이 폭락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값이 폭등하면 전부 우릴 쳐다본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산지유통인 제도가 정착되기 전, 일부 유통업자들이 헐값에 농작물 가격을 후려쳐 영세농민의 시름을 깊게 했던 좋지 않은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산지유통인 자격을 공식 발급하며 관리하고 나선 1995년 이후부터는 산지유통인의 존재가 오히려 농산물 생산과 공급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재배 특성상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배추와 같은 농산물은 업계에서는 ‘도박성 작물’로 불린다. 태풍 등의 영향으로 배추 산지에 작황이 좋지 않으면 가격이 갑작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배 면적이 늘고 작황이 좋아 배추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 오르면 무조건 산지유통인들이 폭리 취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가격이 매입가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작년 가을부터 봄까지 배추 값이 말 그대로 ‘X값’이었어요. 그때 산지유통인 가운데에는 재산 거덜 난 사람도 많습니다. 오히려 산지유통인한테 미리 판 농민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어요.”

 배추 값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수요와 공급이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들어오는 배추의 70% 가량을 거래하는 대아청과 이상용 기획실 차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배추 한 포기가 5000원으로 폭등한 이유는 예년에 비해 강원도에서 공급되는 물량의 숫자와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때마침 터진 중국산 김치에서 발견된 납 파동의 여파가 가격 상승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김 반장의 항변(?)이 길어지다 보니 작업 개시 시간이 5분이나 지연됐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 반장은 작업을 서둘렀다. 3명 1개조씩 2개조로 나뉜 작업반원은 차량의 양쪽에 늘어서서 베어 넘긴 배추를 차량 짐칸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배추 한 포기를 들어보니 2kg은 족히 넘는 듯 묵직했다. 베어 놓은 배추를 일일이 손으로 집어 건네면 신문지로 배추를 싼 다음 짐칸에 쌓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온 청년 2명을 비롯해 40대 아주머니 2명, 70대 할머니 1명 등 모두 6명이 김씨의 작업반원. 70대 할머니는 “서울 사는 아들들이 혹시 알아볼지 모르니 절대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작업반원 1명이 차량 한 대 분량의 배추를 자르고 차량에 쌓는 일로 받는 노임은 2만원. 하루 3대 분량의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하루 6만원 벌이가 되는 셈이다. 유일한 70대인 김순희(가명)씨는 “자식들이 알면 걱정하겠지만, 이렇게 나와 일 하면 돈도 벌고 건강도 지켜진다”고 했다.

 오전 11시쯤 되자 5톤 트럭에 배추가 모두 실렸다. 김 반장을 도와 배추 탑재를 돕던 운송기사 박정규씨(46)는 “배추 크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 한 대에 3000포기의 배추가 실린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까지 운송하는 대가로 박씨가 받는 수입은 26만원.



 정오 작업한 물량 저녁 7시 30분 시장 도착

 “일주일에 많아야 사나흘밖에 일을 못 해요. 경매가 밤 11시에 시작하는데, 차에 실린 배추가 다 팔려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일하면 그 다음날은 일을 못 하기 일쑤죠. 거기다 기름값 6만원 제하고, 밥 사먹고 하다 보면 한 달 150만원 벌면 다행이죠.”

 가득 실은 배추에 포장을 덮은 다음에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는 작업을 마치자, 밭 한쪽 귀퉁이에 세워 둔 차량 앞에서 여자 작업반장이 새참을 먹으라고 작업반원을 불렀다. 커다란 들통에 김이 펄펄 나는 라면이 담겨 있었다. 식탁 대신 나무판을 밭 위에 깔고 작업반원들이 둘러앉았다. 지난겨울에 담갔다는 김장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작업반원들은 “1년 열두 달 김치 맛을 조절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가 등장한 뒤로는 김장 열기도 예년 같지 않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나마 김장철이 가장 바쁘고, 일감도 많은 계절이라 이들에겐 대목이기도 했다.

 새참을 먹은 뒤 작업반은 지체 없이 두 번째 차량에 배추를 싣기 시작했다. 작업을 완료한 시각이 오후 2시. 자체 차량 무게에다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높이 쌓은 배추의 무게가 더해져 차량은 쉽사리 밭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1톤 트럭에 견인줄을 매어 끌어도 소용이 없자, 김 반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인근 농가의 트랙터를 부른 것이다. 김 반장은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트랙터 한번 불러 트럭을 견인하는 데에만 10만원 정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강원도 고랭지에 비하면 여긴 양반입니다. 강원도 어떤 배추밭은 트럭이 밭 입구까지 가지 못해서 큰 길에 트럭을 세워놓고 1톤 트럭으로 겨우 밭까지 가요. 비탈이 심한 밭은 차량이 밭 안으로 못 들어가니까 인부들이 배추를 일일이 지게에 져서 트럭까지 나릅니다. 그걸 다시 5톤 트럭까지 가져가서 싣는 거예요. 여름에도 아무 불편 없이 배추를 사먹는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상상도 못 하죠. 배추 값 비싸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 일하는 우리는 비싸다는 데 동의 못 합니다.”(김선기 반장)

 트랙터가 와서 견인을 하자, 밭에 바퀴가 빠졌던 트럭은 거짓말처럼 수렁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작업반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작업반원 중 한 사람이 미리 밥과 국을 끓여놓고 작업반을 불렀다. 오후 2시가 넘은 뒤늦은 점심식사는 시장을 반찬삼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오후 4시 30분, 세 번째 트럭에 배추를 싣는 것으로 작업반원들의 하루 작업은 모두 끝났다. 머릿수건을 푸는 작업반원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중 열 달 이상을 전국을 돌며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온 몸에 파스 안 붙인 곳보다 붙인 곳 찾기가 더 쉬워요. 힘들어도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밖에는 이런 일 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우린 또 우리대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배운 일이 이거니까 하는 거죠.”(김인자씨, 가명)

 작업반원들이 도구를 정리해 차량에 싣고 돌아갈 준비를 할 때쯤, 박정규씨는 짐칸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운전석에 급히 올랐다. 서울 가락동시장까지 막히지 않고 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고속철 천안아산역 방면으로 나오자, 경부고속도로 아산인터체인지가 나타났다. 박씨는 “가락동이 서울 남서부에 위치한 까닭에 경부고속도로가 가장 빠른 길이라 대부분의 배추 차량들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차량이 기흥쯤에 다다르자, 차량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급기야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결국 1시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이 훨씬 넘은 오후 7시30분에서야 박씨의 차량은 가락동시장의 배추 경매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해산물과는 달리 채소·청과류의 경매는 저녁에 이뤄진다. 그 중에서도 배추는 채소·청과류 중 가장 늦은 밤인 11시에 시작된다. 배추 경매가 시작되기 30분 전에는 무경매가 이뤄진다. 차에서 내린 박씨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돌아와 한숨 자고 나면 경매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가락동시장에도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렸다. 산지에서 출하한 배추는 경매를 통해 시장에 본격 출하된다. 경매는 경매인이 소속된 회사(법인)의 주관으로 열린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제반 관리는 서울특별시 농수산물유통공단이 하고 있다.



 가을배추 가격폭등의 핵심은 ‘작황 저조’로 인한 공급 부족

 “작년 가을배추 가격이 폭락해 올해 배추 재배 면적이 작년 대비 20.6%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수요가 가장 많은 김장철에는 안정적인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봅니다. 김장배추의 주요 산지인 고창, 해남, 영광, 진도 쪽의 작황이 좋기 때문입니다.”(이종육 가락동 농산물유통공사 정보지원팀장)

 전국 24개 공용 도매시장 중 가락동 농산물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배추의 물량이 가장 많다. 전체 배추 물량의 24.1%가 가락동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전국 최다 물량이다. 연중 가장 많은 배추 물량이 쏟아지는 김장철엔 하루 1000톤의 배추가 시장으로 들어온다. 이를 5톤 트럭에 3000포기의 배추가 실린다고 가정할 때, 하루 30만포기의 배추가 가락동시장을 통해 서울과 경기 인근으로 유통되는 셈이다. 가락시장에 들어오는 배추 물량의 60~70% 가량을 거래하는 대아청과를 찾았다. 충남 모산 지역에서 작업해 올라온 박정규씨의 차량도 대아청과 배추 경매장에 들어서 있었다.

 “경매가 열리기 1시간 전쯤부터 경매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중·도매상들이 경매장에 들어온 물건을 보면서 품질을 살핍니다. 트럭이 경매장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입수증을 발급하는데, 생산지역과 출하자 이름을 표기합니다.  이 표기를 차량 뒤편에 걸어놓으면, 중·도매상들이 이걸 보고 어느 지역에 누가 올렸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지역의 작황이 어떤지, 어떤 사람(산지유통인)의 생산품이 품질이 어떻다든가 하는 정보는 중·도매상들이 훤히 꿰고 있기 때문에 트럭에 잔뜩 쌓인 배추를 일일이 검사하지 않고도 대강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죠.”(최윤준 대아청과 기획실)

 최씨는 “전날 거래된 배추 가격은 최하 160만원에서부터 최고 437만원으로 평균 280만원 정도에 거래되었다”고 했다. 출하지역의 작황과 생산자에 따라 가격이 많게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산지유통인 제도가 정착된 이후, 시장에서 신뢰도가 높은 산지유통인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취재진이 찾았던 모산 지역의 산지유통인 조성훈씨는 중·도매상들로부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공급자”라고 귀띔했다.

 도매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배추의 재배와 유통 비용은 얼마나 될까? 시장 관계자는 “경매가격이 5톤 트럭 매매 기준으로 300만원대가 되어야 생산자와 유통업자에게 가장 적정한 가격”이라고 말한다.

 통상 300평 넓이의 밭에서 5톤 트럭 한 대분의 배추가 생산되는데, 원가는 종자 값, 비료대 등을 포함해 50~6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싹이 돋고 어린 배추가 모양을 갖추면 산지유통인이 이를 농민에게서 사는 가격은 대략 150만원선. 이후 한달 보름 동안 무사히 잘 커서 시장에 출하할 경우, 배추 수확 작업 비용에 비료, 농약 값, 수확 비용, 운송비 등 유통 비용 등을 제한 후 산지유통인에게 이익이 발생하려면 최소 280만원은 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밤 10시가 넘어서자 경매장 주변으로 중간 도매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출하지역과 생산자를 확인한 다음, 차량에 실린 배추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치듯 훑어보며 지나가는 사람, 차에 실린 배추를 직접 손으로 쪼개 보는 사람 등 자신이 고를 품목을 검사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모산에서 올라온 박씨의 차량도 포장을 모두 벗겨 내고 출하지와 생산자를 표기한 표찰을 차량 꼬리에 단 채 경매를 기다렸다.



 5톤 분량 한 대 경매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초

 경매 시작 5분 전이 되자, 경매인이 경매차량에 올랐다. 경매차량에는 경매 물건과 낙찰이 되었을 경우 가격을 표시해 주는 전광판이 실려 있었다. 제1경매장에 들어온 물량은 모두 5톤 트럭 46대 분량. 1차 경매에서 유찰되면 유찰된 물건에 대해서만 한 차례 더 경매가 이뤄진다.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중·도매인들은 가격을 써 넣는 응찰기와 도매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경매차량 앞에 몰려들었다.

 “차량번호 충남00 더 0000, 전북 고창의 000씨!”

 경매차량이 경매될 배추를 실은 차량 앞에 도착해 차량에 불빛을 비추자, 해당 차량의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경매 물건을 선창했다. 이어 경매인이 같은 식으로 물건을 확인하고 경매 시작을 알리자, 구매 의향이 있는 응찰인들이 일제히 응찰기를 눌렀다. 5~10초 정도나 지났을까. 최고 높은 가격이 전광판에 뜨는 동시에 낙찰받은 중·도매인의 고유번호가 동시에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낙찰 여부가 결정되는 동시에 바로 옆에 연이어 주차된 차량으로 이동해 같은 방법으로 경매를 실시했다. 3000포기를 실은 차량 하나가 낙찰되는 데 걸리는 시각은 길어야 10초 남짓. 하루 종일 산지에서 작업과 이동을 하며 치른 수고의 판정치곤 허무하다고까지 할 정도로 빠른 진행이었다.

 46대의 트럭을 1차 경매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채 20분이 되지 않았다. 1차에 유찰된 물량은 모두 6대. 2차 경매는 1차보다는 조금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2차 경매가 모두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각은 모두 30분에 불과했다.

 중·도매인에게 낙찰되기가 무섭게 차량 기사들은 산지유통인들에게 일제히 전화를 걸어 낙찰가격을 알렸다. 물건을 출하한 산지유통인이 낙찰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낙찰을 거부할 수도 있다. 모산에서 온 박정규씨도 산지유통인 조성훈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낙찰가격은 330만원. 46대의 물량 중 당일 낙찰된 가격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조씨의 거래 승낙이 떨어질 즈음, 박씨의 차량으로 낙찰받은 중·도매인이 다가왔다.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중·도매인은 사전에 일정한 품질과 가격의 물량 확보를 부탁받고 경매에 임하기도 하고, 때론 사전에 물량 주문을 받지 않고 물량을 확보하기도 한다. 박씨의 트럭에 실린 배추는 갈 곳이 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낙찰된 것이다.

 박씨는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 댔다. 자칫 마땅하게 넘길 임자(도매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튿날 오전까지도 트럭이 비워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박씨 입장에서는 다음날은 공치게 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어디론가 전화를 분주히 돌리던 중·도매상이 ‘용인의 00마트로 간다’고 하자, 박씨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차량 지붕으로 올라가 경매를 위해 걷어 놓았던 포장을 다시 덮고 밧줄을 묶기 시작했다. 포장을 덮은 차량이 가락동시장을 빠져나와 용인으로 향했다. 시각은 어느새 새벽 1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중·도매상에게 낙찰된 배추들은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배달됩니다. 요즘은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기업에서 직접 산지유통인들에게 물건을 사들이기도 하고, 직접 농민과 거래해 물건을 확보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체 거래량으로 볼 땐 미미한 수준이죠. 동네 구멍가게로 가는 배추도 있고, 청과물 전문 소매점 등으로 가는 물건도 있어요. 그 과정에서 한두 번의 중간상인이 더 끼기도 하기 때문에 소매가는 가격 차이가 다양하게 날 수밖에 없어요.”(이종육 농산물유통공사 정보팀 과장)

 낙찰받은 배추들은 산지에서 실은 그대로 김치공장으로 바로 가거나, 박씨의 경우처럼 대형 할인점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트럭에서 배추를 부려 그 자리에서 포기로 나눠 묶은 다음 도·소매상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트럭에 실린 물건이 이튿날 아침 6시까지 다 팔리지 않으면 속칭 ‘아도’라 불리는 도매상이 잔여 물량을 사기도 한다. 중·도매인 자격이 없는 ‘아도’들은 경매 이튿날 아침 6시부터는 경매장 출입이 가능하다.



 급증하는 중국산 배추, 소비자만이 희망

 “배추는 단계별로 손질하는 데 품이 많이 들고 저장도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상승이 불가피한 종목입니다. 재배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동업해야 돈 번다’고 할 정도로 변수가 많은 데다 소매 단계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자칫 배추 유통과정이 ‘복마전’쯤으로 인식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생산자도, 소비자도 정보에 민감하고 밝기 때문에 한두 사람이 물량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유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산도 활발하고 소비도 활발해야 이문이 떨어져요. 물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해 상거래를 흐리는 사람이 한둘 없는 건 아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배추가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이상룡 대아청과 기획실 차장)

 중·도매인이 직접 손질하고 있는 차량 작업 현장으로 가서 “소매로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해서 가격을 물었더니, 제법 큰 포기의 배추는 포기당 1000원, 중간 크기 배추 두 포기 한 묶음은 1500원이라고 했다.  물론 구매량이 많으면 가격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동네 청과상회로 가면 얼마쯤 받느냐고 물으니, 1500원에서 2000원 정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30% 정도 이익이 남느냐고 묻자, ‘배추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200포기 정도는 팔지 못할 물량’이라며, “그 정도 남으면 벌써 부자 돼서 이런 일 안 하죠” 하며 웃는다.

 새벽 1시30분, 경매가 끝난 가락시장 배추 경매장은 공장 등으로 다시 향하는 차량과 중·도매상에게서 물건을 받기 위해 나타난 소형 화물트럭들이 경매장 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트럭에서 배추를 내리면서 손질과 포장까지 해놓기도 했다.

 산지부터 경매까지 과정을 마친 이들이 하루를 마감할 때쯤 해서 또 다른 이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퇴근도 미룬 채 취재진을 맞았던 이상용 차장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절인 상태에서 수입되거나 완제품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배추의 물량이 전체 배추 유통량의 6%에 이릅니다.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무척 큽니다. 작년 배추 가격 폭락에는 중국산 절임 배추의 대량 유입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문제는 그 정확한 양을 추정할 뿐 실제로 얼마나 들어오는지 정확하게 집계가 안 된다는 데 있어요. 점차 사먹는 김치 시대가 오면서 메이커들은 원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중국산의 증가는 불가피하죠. 문제는 중국산과 도저히 가격경쟁이 안 되면 농가에서는 배추농사를 포기하게 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의 건강과 경제에 다시 부담으로 옵니다. 문제 해결의 키는 소비자가 쥐고 있어요. 배추 값 비싸다고 불평할 때 4인 기준 김장 비용이 6만9000원이라고 나왔습니다. 4인 가족 삼겹살로 외식 한번만 해도 3~4만원 정도 나옵니다. 그나마 가장 싼 외식인 삼겹살이 그 정도인데, 수급 문제로 일시적으로 뛴 배추 가격만 죽어라 부각합니다. 납 파동, 기생충알 파동은 정부에서 적극 나서 문제 해결을 해야겠지만, 우리 식탁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순전히 우리 소비자들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싼 것만 찾으면 중국산이 우리 식탁을 완전 점령합니다. 지금은 소비자 시대라 소비자가 요구하면 시장도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