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와 미국 부자, 모두 같은 부자지만 부자가 된 원인과 그 배경이 무척이나 다르다. 경제규모와 경제수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두 나라 부자들이 지니고 있는 자산구성(Portfolio) 요소는 완전히 상반된다. 즉,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각각 대략적으로 7대 3이지만, 미국 부자들의 자산구성은 정반대로 3대 7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한국 부자와 미국 부자들의 자산구성이 어떠냐 하는 걸 강조하자는 건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들 부자들의 자산형태를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자산의 구성 형태는 경제와 금융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알아야 할 점은 한국 부자이든 미국 부자이든, 그들 부자들의 공통점은 위험(Risk)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자산을 투자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부자는 직접투자, 미국 부자는 간접투자 선호

 대부분의 한국 부자들이 금융자산에 비해서 부동산에 보다 많은 자산비중을 갖고 있는 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비해서 보다 더 많은 수익을 부동산이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부자들이 금융상품에 더 많은 투자 비중을 갖고 있는 건, 부동산보다는 금융상품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비해서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미국 부자들은 일반적인 개인들이 직접적인 부동산투자를 잘하지 않는다.  내가 컨설팅을 해준 한 사람은 뉴욕에서 20년 전 5억원 정도의 임대용 상가빌딩을 모기지로 매입해서 20여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갚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상가빌딩의 시세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겨우 2억원 정도밖에 하지 않은 경우에 처했다. 과거 20년 전 그 상가빌딩을 매입할 시기에는 해당 지역이 백인 거주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흑인 거주 지역으로 바뀜으로써 상가의 기능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한 것이었다.

 이 같은 부동산투자의 실패사례는 미국 전역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한 광역도시 인근에 신도시가 만들어짐으로써 구도시에 있던 고급 아파트나 상가의 가격이 크게 급락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미국의 부자들은 부동산이나 증권 시장에 자금을 투자·운용할 때 직접투자보다는 부동산 펀드나 리츠(REITs) 등의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을 이용하고 있으며, 개별주식보다는 전문가들이 대신 운용해 주는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걸 일상적인 투자 방식으로 여긴다.

 이제 우리나라 부자들도 서서히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자산구성을 손바꿈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부자들은 전문지식은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투자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은 누구보다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벌써 웬만한 부자들은 대부분 이미 1~2년 전에 오를 만큼 올라버린 부동산을 매각하였거나 가족들에게 사전 증여해 놓은 경우에 속한다.

 미국 부자들은 노후를 맞이할 나이가 되면 살던 집을 과감하게 매각해 버리고 살기 좋은 미국 동부의 캘리포니아 지역이나 미국 동남부의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는 기타 도시보다 낮은 물가로 생활비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이 좋은 주택 구입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이나 호수, 강, 바다를 옆에 끼고 있고, 부부가 살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주택이라도 시세가 겨우 15~20만달러(1억5천만원~2억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자기가 오래 전부터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감히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살던 곳이 좋은 이유는, 익숙해져 있는 각종 생활 편의시설이나 몇십년 동안 쌓아온 정다운 이웃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전원주택이 관심을 끌면서부터 경기도의 풍경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생기긴 했다. 그러나 그곳으로 이사해 살던 부자들이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래 동네로 되돌아온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직 우리나라는 경기도의 외딴 주택에서 살아도 불편함이 없을 만큼 병원, 학교, 문화시설 등의 사회적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부자들 스스로도 새로운 곳에 적응해서 살려는 의지가 박약한 것도 부적응 이유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부자들은 국민적 습성에 개척(Frontier)정신이 배어 있어 그런지 몰라도, 새로운 곳에 가볍게 이사해서 새로운 외부환경에 기꺼이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그렇지 못한데, 그건 어쩌면 한반도라는 작은 지역에서 살면서 자발적으로 외국으로 건너가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 부자

 가끔 돈 많은 부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등 정말로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에 이민 가서 살아보라고 권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최고로 편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이 모두 함께 모여 있는 우리나라가 훨씬 생활하기가 편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접하며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불편이자 모험이며, 그런 모험을 굳이 늦은 나이에 사서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외국여행을 많이 하지만, 유독 호화유람선을 타고 바닷길로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는 이른바 크루즈(Cruise) 여행은 꺼린다. 외국의 유명 크루즈 여행사들 역시 동양인 부자 고객들을 유치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크루즈 여행에서는 저녁만 되면 승객들이 제한된 공간인 선상에서 주로 파티라는 공동 활동을 한다. 각국에서 모인 서로 다른 승객들과 서로 어울려 대화하고 춤을 춰야 하는데, 동양인 문화권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쉽게 접촉한 경험을 많이 가지지 못한 탓에 서구 유럽인들과는 달리 동양인들에게는 크루즈 여행이 어색하고 즐겁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만난 강남 부자들의 평균연령은 대략 50세에 불과하다. 과거에 비해 부자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한 가지 이유로는, 이른바 인터넷 등 IT 관련 산업이 발전하면서 아이디어만으로도 젊은 나이에 손쉽게 부자가 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처럼 시드머니(Seed money, 종자돈)를 모아서 회사를 차리고, 직원을 고용하고, 공장을 짓고, 제품을 판매해서 성공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함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과거의 전통적인 부자들은 50~60대에 뒤늦게 늦깎이 부자가 된 사례가 많았다.

 현재 연령이 60~70대에 이르는 이른바 전통적인 부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앞서 언급한 돈을 버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을 모두 터득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스스로 열심히 노력을 했고, 남을 시켜 돈도 벌어 본 경험이 있으며, 지금은 여태껏 모아놓은 거대 자산이 스스로 굴러가 더 큰 자산이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전통적인 부자들은 세상경험이 풍부하고, 사람을 효율적으로 부릴 줄도 알며, 자신의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더 큰 돈을 만드는 방법도 자세하게 알고 있다.

 반면, 최근 갑작스럽게 늘어난 50대 신흥부자들을 자산관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통적인 부자들과 상황이 크게 다르다. 신흥부자들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거나 상속이나 증여를 받아 부자가 되다 보니 전통적인 부자들처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돈 버는 방법들을 모두 터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흥부자들은 나날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금융환경과 투자환경 속에서 모아진 자기자산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도 하다.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 않은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와는 반대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많은 재산을 관리하는 것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보면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모든 게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현상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