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유가의 고공 행진은 분명 한국경제에 치명타다. 고유가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특히 유가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고유가 행진이 장기화할 조짐이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까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미 물가와 수출, 내수 등 전방위에서 고유가에 따른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고유가로 인해 비상이 걸린 상태다. 삼성전자는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을 비행기로 운송해 왔으나 최근 고유가로 항공 운임이 상승하자 일부 품목을 선박 운송으로 돌려 물류비를 절감하고 있다. 항공, 섬유, 플라스틱 등 석유 다소비 업종도 ‘기름 아끼기’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연초 계획했던 경영 목표를 수정하는 기업들도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까지 ‘3차 오일 쇼크’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의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지만 기간당 상승률이 1, 2차 오일 쇼크 때보다 작고 에너지 효율성 향상으로 충격파가 당시보다는 약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한국은 유가 변동에 가장 취약한 국가

 연간 소비하는 에너지 가운데 절반 가까이(2003년 기준 47.6%)를 석유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고유가는 분명 경제에 최대 복병이다. 유가 수준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의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급제동에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1달러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포인트 낮아지고 물가는 0.1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경상수지는 연간 7억5000만 달러(8700억 원)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현대경제연구원은 1달러 상승시 GDP 감소폭을 0.15%포인트로 높여 잡고 있다. 연평균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낮아지는 셈이다.

 고유가는 무엇보다 소비와 생산에 치명타를 입힌다. 유가 상승으로 제조단가가 높아지면 기업들은 제품가격을 올리고 상대적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들은 소비를 억제한다. 이에 따라 유가 상승이 ‘물가 인상 → 소비 위축 → 생산 둔화 → 해고 증가’라는 악순환을 초래해 경제가 무기력 증세에 빠진다. 채산성 악화로 수출이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일자리가 10만 개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유가가 침체 상태의 고용 시장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도이체방크의 아시아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클 스펜서는 “한국은 유가 변동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며 “상황이 악화되면(유가가 더 급등하면) 내년에 경제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연초 국내 원유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연평균 24달러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경제 운용 계획을 세웠으나 현재 이 유종의 현물 가격은 40달러를 육박하고 있다. 이승우 재정경제부 경제정책 국장은 최근 “두바이유가 배럴당 38달러를 넘으면 올해 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 스태그플레이션 경고

 고유가의 경제 파장은 이미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중 생산자 물가는 지난해 동기 대비 7.5% 급등했다. 이는 외환 위기를 겪었던 1998년 11월(11.0%)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월 대비 생산자 물가 상승률은 0.4%였다. 두 달 연속 억제선인 4%를 웃돌았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통상 생산자 물가가 2~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연말 소비자 물가는 다시 급등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는 10월5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인플레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계 소비는 최근 6분기 중 5분기가 감소했고, 9월 수출도 전년 동기비 23.5% 늘어나는 데 그쳐 10개월 만에 증가폭이 가장 작았다. 경기선행지표인 건설 수주도 8월에 39.2% 급락, 65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고유가의 장기화로 소매업 매출은 19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마디로 고유가가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에 찬물을 끼얹고 상대적으로 선전하던 수출에까지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고유가에 취약한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 속에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까지 경고한 상태다.



 산업계 비상경영 돌입

 고유가는 기업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고유가 타격은 거의 전 업종이 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항공, 해운, 중화학 등 유가에 민감한 업종들은 이미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자동차 가전 등 국내 주력 기업들도 비상 경영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각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 제품 가격 인상, 공장 가동 단축 및 중단 등의 묘책을 짜내고 있지만 고유가에 따른 비용 상승을 상쇄하는 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유가 상승으로 에틸렌, 벤젠, 저밀도 폴리에틸렌 등 유화제품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수출에도 어려움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최근 공장 가동률이 1년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배경에도 고유가가 깔려 있다.

 LG전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경우 원자재 구입 비용이 2% 정도 뛰는 것으로 판단하고 강도 높은 원가 절감 혁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고유가와 철강재 가격 상승 등 전체적으로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연구 생산 판매 등 사업 부문별로 급하지 않은 투자와 지출을 억제하고 자금 관리를 강화하는 등 내핍 경영에 나섰다. 포스코는 최근 철강 생산 1t당 소요되는 에너지 사용량을 현재 520만Kcal에서 2006년에는 400만Kcal로 낮추는 것을 뼈대로 한 에너지 관리 계획을 세웠으며, 에너지 절감 유형별로 관련 부서를 묶는 전담팀도 구성했다. 대한항공 등 항공업계는 단축 노선 채택, 외국 항공사와의 노선 연결, 항공유 공동 구매 등을 통해 기름값을 절약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연초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기준 30달러를 예상하고 사업 계획을 짰으나 유가 급등으로 4000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유가 상승에도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연초 사업 목표를 달성한다는 목표지만 고유가 행진이 지속될 경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 급락은 없을 듯

 전문가들은 아시아 국가,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이 유가 상승에 취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 전체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다 수출 비중이 높아 유가 상승으로 조달 비용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여타 주요국에 비해 수출 경쟁력이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몇 개월간의 시차를 두고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고유가 충격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의 상품지수(GSCI)가 한 달 여 만에 15% 이상 급등한 것도 쇼크 가능성을 높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1970년대에 겪은 1, 2차 오일 쇼크만큼의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성 향상으로 전체 에너지원 중에서 석유 비중이 낮아졌다는 점을 꼽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53.8%에서 2003년에는 47.6%로 낮아졌다. 물론 우리나라 에너지 자립도는 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인 25위다. 또한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치인 5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지난 20여 년 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할 경우 ‘어렵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의 상황으로는 한국경제가 고유가로 충격은 받되 성장률이 3~4%포인트 정도 급락하는 ‘쇼크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을 전망이다.

신동열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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