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고 말한다. 지난 2월11일 경제팀의 수장으로 돌아온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시장에 대한 이 부총리의 신념은 확고하기까지 하다.



 엇갈린 시장주의자 평가

 “시장은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장은 우리 모두의 장래가 달려 있다. 어떤 이기적인 행위나 투기가 자행되도록 방치돼서는 건전한 시장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시장은 자율화돼야 한다. 시장은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 또 자율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동된다.”

 이 같은 이 부총리의 시장논리는 일반적인 평가 역시 그를 시장주의자라 부르는 데에 이견을 달지 않게 한다. 

 그러나 일부의 시각은 다르다. ‘이헌재 사단’의 일원으로 이 부총리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도 그를 ‘절충형 시장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시장원리를 최대한 존중하되 더 큰 시장 개입의 상황을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감독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원칙적으론 시장주의자지만 시장이 공정한 질서 아래 움직일 수 있도록 정부의 감시 감독 기능이 필요하다는 절충형 시장주의자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은 이 부총리를 ‘시장주의자가 아닌 세련된 관치기술자’라고 혹평한다. “이 부총리의 구조 조정 정책은 법과 원칙을 위배한 관치의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다”는 근거에서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종인 의원(민주당)도 “금융 조작 능력만 있는 사람”이라고 폄하한다. 김 의원은 최근 모 인터넷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총리를 “IMF 사태 이후 금융감독위원장 하면서 금융 구조 개혁을 하고, 공적 자금을 관리했던 사람”이라면서 “그때는 공적 자금이라는 쿠션을 가지고 나누어 주는 것이니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 아니다”며 이 같이 평했다.

 ‘시장주의자 이헌재’를 둘러싼 이들의 평가는 애정과 비난으로 갈려 있다. 개인적인 인연, 혹은 이념적 차이, 아니면 정책 방법론적 차이 등에서 비롯한 평가라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 평하는 이 부총리에게 100% ‘Yes’라는 표를 던져 주지 않고 있다.



 고뇌하는 경제개혁 전도사

 시장주의를 앞세운 이 부총리의 경제도 지금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 시장논리를 저해할 수 있는 이 부총리의 정책 운용도 엿보이고 있다. 더구나 경제팀의 리더로서 보여 줘야 할 카리스마도 점차 퇴색해 가고 있음이 뚜렷하다.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려 오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자리’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까지 몰려 있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부의 한 직원은 “한번 불에 덴 사람은 불 근처만 가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회적인 표현을 내놓았다.

 사실 이 부총리가 다시 재경부 수장으로 돌아왔을 때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외환 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경제 개혁의 전도사’라는 별칭까지 들으며 화려하게 구조 조정을 추진하다 2000년 초 재경부장관으로 영전도 했지만 총선이 끝난 그해 8월 청와대의 견제로 7개월여 만에 쓸쓸히 물러났던 아픈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드’로 대표되는 참여정부의 인사에서 이 부총리가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왔고, 걷고 있는 이들과 합의된 정책을 생산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끊이질 않았다. ‘시장과 성장’이라는 이 부총리의 경제 운용 방향과 ‘개혁과 분배’라는 청와대 및 참모진의 경제정책 방향이 이 부총리의 입지를 축소시킬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총리는 지난 7월 국민은행 자문료 논란 끝에 사의설이 불거지는 악몽을 겪어야 했다. 특히 이의 진원지가 여권 내 386세대로 지목되면서 ‘이헌재 흔들기’라는 해석까지 낳았다. “요즘은 정말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식으로 뒷다리 잡아가지고 시장경제가 되겠나”는 이 부총리의 정면 돌파로 진화되기는 했지만 이들과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부총리는 최근에도 ‘자리’를 걱정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원인은 역시 ‘코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권이 아닌 야권에서 맹공격을 당했다. 다만 이 같은 야권의 퇴진 요구는 지난 7월의 여권발 사의설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때가 되면 물러나겠다”

 지난 10월11일 국회 재경위에서 불거진 이 부총리의 진퇴 신경전은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시작됐다. 윤 의원은 첫 질의에서 “시장주의자임을 자처한 이 부총리의 역할은 반시장경제적 흐름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의 좌편향적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있다는 해석이 있다”면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라”고 요구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 역시 “부총리가 대통령과 거의 독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 경악스러우며 경제정책이 청와대 앞에서 유턴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결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은 현 정부의 ‘방패막이’ 역할에 야당 의원들의 질타로, 깊은 애정의 충고다. 이 부총리는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나겠지만 국민경제를 위해 좀 더 일할 생각”이라며 퇴진 요구를 피했지만 이미 이 부총리의 위상은 추락할 대로 추락해 있다. ‘소신 없는’ 부총리, ‘자신의 철학까지 내버린’ 경제팀 수장이란 수식어가 이 부총리 이름 앞에 붙어 버린 것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의 이 부총리 몰아세우기는 여권 내부와의 갈등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이 부총리에게 무능력함을 이유로 야권마저 등을 돌리고 있어 이 부총리는 여야 양측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왕따’ 신세로 전락했다는 게 과천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해석이다. ‘이헌재식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동력은 물론 지원동력조차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총리는 여전히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끝을 부여잡고 내년 잠재성장력 5%를 부르짖고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과 같은 프로젝트도 올 연말 이전에 발표하겠다며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헌재 부총리의 퇴장이 어떤 모습이 될지, 낙관만 하기에는 불안하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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