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 급속히 확산. 정상적인 소비활동 안돼.
장기적인 성장 전망.비전 제시로 소비자 심리 안정시켜야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침체의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5%의 성장률을 장담하고 있지만 민간 경제연구소 등에서는 회의적 반응이다. 올해 상반기 5.4%에 달했던 성장률이 전적으로 수출 경기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이마저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수출 증가율이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편 끝을 모르고 치솟는 국제 유가가 치명적인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올 경제성장률이 상반기에 못 미치는 5%에 그칠 것이라는 경제연구소들의 전망도 이에 연유한다.



 수출 증가율도 둔화 양상

 이처럼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견인하지 못한 원인으로 한결같이 내수 부진을 꼽고 있다. 결국 수출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소비는 줄어들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 발표한 2004년 4/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 전망에 따르면 경기전망지수(RBSI, 기준치=100)는 79로 전분기 98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116에 달했던 2/4분기에 비해서는 턱없이 추락했다. 연말 특수에 대한 기대에도 위축된 구매 심리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기 침체의 원인 중 하나인 가계 부채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물가마저 불안한 상황”임을 지적하면서 “소비심리 위축으로 유통업계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매우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6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서비스업 활동 동향’에서는 이러한 소비 위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소비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매업 부가가치 지수 가운데 식생활과 직결된 음식료품(담배 포함) 지수가 70.8로 지난 1999년 서비스 동향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의생활과 관련된 섬유·의복·신발(가죽의류 포함) 지수 역시 67.5로 사상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즉 먹고 입는 기본적인 생활과 관련된 소비까지 지나치게 줄이는 ‘과소 소비’ 양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

 흔히 경제학에서 소비는 소득의 함수로 기술하고 있다. 즉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나고 반대로 소득이 줄면 소비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끼어든다. 소비심리라는 보이지 않은 요소가 그것이다.

 전문가들이 현재의 소비 침체에 대해 가계 부채, 소득 양극화, 고용의 질 악화 등 여러 가지의 요인들을 동원하는 한편, 보다 중요하게 소비심리의 경색을 근본적인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정 부분 소비 억제의 근거들이 명확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마저도 불명확하다는 데에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표면적인 요인들보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즉 불확실성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민간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한 경우는 모두 3차례에 달했다. 1989~1992년, 1999년, 그리고 2001~2002년이 이에 해당한다.

 1989~1992년에는 임금 상승으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중하위 계층의 소비가 확대되었다. 이 기간 중 소비증가율은 9.4%로 7.5%의 경제성장률을 상회했다. 또 1999년에는 외환 위기 충격에 따른 과도한 소비 감소 이후의 반등적 성격의 소비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2001~2002년이 소비 급등은 실질 소득의 개선 없이 부채를 통해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영향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이때의 영향이 2004년 소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경기 부진 외에 불안요소가 한층 심각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현재의 소비 부진은 2001~2002년 중 과도한 소비 확대의 반작용으로, 소비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다만 경기 부진 이외에 사회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소비자들의 심리가 매우 악화되어 있는 상태라며 Credit Bureau 활성화 등을 통해 가계 부실의 재발 등을 방지해 안정적인 신용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통해 소비 여력을 증진시키는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수석연구원도 “가계 부채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고 구매력이 완만하게나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소비 부진은 상당 부분 소비심리 위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현재의 소비 부진 원인을 분석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같은 구체적인 이유가 없다면서 오히려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정상적인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전망 내지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일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소비심리 견인 요소 찾아야

 이와 같은 소비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1년 정도 소비가 침체된 후 다음해에는 다시 반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이후 경기저점이 포함된 연도의 평균 민간 소비증가율은 5.4%였다. 그러나 다음해에는 7.2%, 그 다음해에는 7.6%를 기록했다. 또 외환 위기 당시인 1998년에도 -13.4%에서 다음해에는 11.5%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 연구원은 “이번 소비 부진은 우리 경제가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소비 감소세가 1년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음에도 기술적 반등 효과조차 제대로 감지되지 않고 있다며 만약 하반기 이후에도 소비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면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하반기 소비심리 회복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소비심리를 견인할 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오히려 고유가에 따른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는 정부 정책에서도 소비자들의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고들 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자신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의 주체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또 정부의 몫이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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