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의 교훈1 불황기 소비자 취향 공략 2 신제품 개발로 소비자 구매욕구 자극 3 브랜드 가치 보호 및 활용

‘2004년 일본 부활 선언’

 올해 1월5일자 일본의 경제주간지 니케이 비즈니스의 타이틀 기사 제목이다.

 10년간 불황의 ‘덫’에 잡혀 있던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일본 경제 부활의 두 축은 소비의 회복과 기업의 투자 확대다. 특히 GDP의 60%를 차지하는 가계 소비는 경기 회복에 결정적이다. 덴츠(電通)가 2개월에 한 번씩 발표하는 ‘소비 마인드 지수’는 지난해 10월 이후 계속 상승세다. 일본 정부는 7월 월례 경제보고서를 통해 “소비가 거품 붕괴 이후 처음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내수 회복을 공개 선언했다. 수출 활황 덕분에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소비시장은 한마디로 꽁꽁 얼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 경제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했을까?



 닫힌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

 일본에서는 최근의 소비 회복이 소득의 회복보다 더 빠르다는 점에서 ‘마인드 주도 소비 회복’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회복되긴 했지만 서비스 부문의 부진으로 전반적인 임금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이에 대해 “기업 수익 증가와 같은 희망적인 뉴스와 디지털 가전 등 신제품의 등장, 실업률 감소로 인한 불확실성 해소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업 수익 증가 → 투자 확대 → 고용 개선 → 소비 회복’의 선순환 구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일본이 운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다. 단카이(團塊) 세대로 불리는 중장년층의 라이프 사이클이 경기 회복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인 1948년을 전후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7백만 명에 이르는 이들은 ‘인구 피라미드 위의 툭 튀어나온 덩어리’란 뜻에서 단카이(團塊: 덩어리)로 불린다. 단카이 세대는 최근 주택 할부금을 거의 다 상환하고 자녀들 교육도 거의 끝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이전 세대에 비해 소비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노력이라는 ‘씨앗’이 없었다면 많은 기업들이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고사하거나, 힘들게 찾아온 소비 회복의 기회를 그냥 놓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의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해 음양으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내수 불황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이 일본 기업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불황기 소비자 취향을 공략하라

 국내 기업들이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불황기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대응이다. 일본 기업들은 불황기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대응해 의류 브랜드 유니크로와 발포주 같은 ‘불황형 히트상품’을 만들어 냈다.

 불황기 일본 소비자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싸면서도 좋은 물건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경기 불황으로 저가격을 추구하긴 하지만 이전의 소비 수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일반적인 소비자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발포주는 이런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대표 상품이다. 발포주는 맥주의 맛과 알코올 도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격을 대폭 내린 알코올 음료다. 일본 주세법에 의하면 맥주는 맥아의 비율을 67%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며, 한 캔당 세금이 78엔 정도 부과된다. 반면 발포주는 맥아 비율을 25% 이하로 내리는 대신 세금을 절반으로 낮춰 맥주의 70% 가격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발포주는 전체 맥주 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신제품을 통해 소비를 창출하라

 디지털 카메라, 평면 TV, DVD 등 ‘신 3종 신기’(新 3種 神器)는 소비시장 회복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디지털 가전은 정체되어 있던 가전 업계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TV, 냉장고 등 기존의 내구성 가전제품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해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을 생산,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이런 성공은 일본 기업들이 불경기 동안에도 연구 개발 비용을 꾸준히 높인 결과다. 일본 상장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1993년(3.7%) 이후 2002년(5.0%)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 왔다. 캐논의 경우 고부가가치의 신제품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나 된다. R&D를 통한 불황 극복은 대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1년 1/4분기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불황 극복 활동’ 중 신상품 개발에 의한 생산 품목 다변화(33%)가 1위를 차지했다.

 국내 기업도 꾸준한 신제품 개발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해야 한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실제로 가지고 싶은 것을 보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다. 필자가 지난 8월 만났던 니케이산업소비연구소의 나가야(永家) 주임연구원은 “이전 제품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욕구의 충족이나 새로운 기능의 조합이 불황기 마케팅 전략의 열쇠”라고 지적했다.



 브랜드 가치를 지켜라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불경기라 하더라도 기업의 브랜드 자산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례는 불황기일수록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황이 계속되면 소비심리가 움츠러든다. 이럴 때 소비자는 다른 소비를 억제하더라도 ‘확실한 선택’을 위해 시장의 검증을 받은 브랜드 제품을 찾는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일점 호화 소비’(一点 豪華消費)이다. 일본에서는 2002년 루이비통이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고, 명품 아웃렛 첼시는 2003년 미국 매장의 2배에 이르는 단위 면적당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 소비자들 역시 일본처럼 브랜드 선호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섣부른 저가 전략은 오히려 화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브랜드 가치는 낙장불입’이라는 농담을 한다.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기업의 브랜드 자산은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

문권모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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