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요인들이 겹치면서 여당은 동반 추락하는 듯한 분위기다. 여기에도 여당 내부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이념·노선 갈등까지 불거져 나올 기세다. 여당 의원들 입에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다 지고, 좀 더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즘 열린우리당은 공황 상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여당 대표인 문희상 의장이 이와 비슷한 심경을 토로했다. 문 의장은 지난 9월 하순 중국 방문길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여권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쓰나미가 올 때는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권이 겪는 위기상황을 돌파할 방안을 묻는 질문에 “무책(無策)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그는 자신이 ‘신뢰의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요즘은 ‘대통령이 잘했다’고 하면 왕따가 되는 분위기”라며, “대통령 비난하는 게 유행병이 됐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정도이니, 지금 열린우리당의 심리 상태는 짐작할 만하다.

 이 같은 무기력증은 여당 곳곳에서 감지된다. 가장 비근한 예가 10·26 국회의원 재선거다. 대구동을과 울산북, 경기도 광주와 부천 원미갑 네 곳의 국회의원 재선거를 놓고 여당은, 선거운동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포자기 상태의 심리를 보였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당 지도부에서부터 국회의원, 일선 당직자에게까지 퍼져 있었다.

 그러나 출마후보 면면을 보면 그리 비관할 이유가 없다. 대구동을에는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나섰다. 이 전 수석은 호남의 염동연 의원과 더불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또 부천 원미갑에는 현 정권의 출범 공신 중 한 사람인 이상수 전 의원이 출마했다. 3선의 이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 총무본부장과 여당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중진 정치인이다. 이 정도 중량급 인사들이 나섰다면, 여당이 선거에 총력전을 기울이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중앙당 차원의 지원유세를 최소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여당 인기로는,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을 해봐야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여당 지지도는 10%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20%대 중반인 한나라당과 무려 10% 이상 차이가 난다. 김대중정부 중반 이후 실시된 역대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했고, 이번 재·보선에서도 승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당은 아예 선거 결과에 기대하지 않기로 작심한 듯했다. 혹시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미리 들떠서 기대하지는 않겠다는 식이다. 여당은 오히려 정기국회 회기 중이란 이유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지원유세를 비난하고 있다. 바쁜 국회일정을 팽개쳐 두고, 지역일꾼을 뽑는 재선거에 전력한다는 비난이다.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여당의 비판은 박 대표의 발을 묶어 두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선거 현장에서 박 대표와 정면으로 맞서기 어렵다는 이유로, 박 대표의 움직임을 제한하겠다는 생각까지 해야 할 만큼 여권은 의기소침해진 상태다.

 여당이 더 답답해 하는 건 지금 같은 상황의 끝이 선뜻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 의장 말처럼 ‘엎드려 있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누구도 선뜻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요즘 모이기만 하면 자조하듯, “내년 지방선거까지 다 져야 정신차릴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만큼 여당이 겪는 어려움이 일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당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리더십의 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黨·政) 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 여당은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장이 이끌고 있다. 문제는 지난 4월 전당대회에서 당원 직선투표를 통해 선출된 문 의장이 기대했던 것만큼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여권 위기의 책임이 문 의장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 중반을 넘으면서 노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다 갖은 악재가 겹친 것 등을 감안하면, 문 의장으로선 억울한 대목도 많다. 그러나 문 의장이 고비마다 당을 추스를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여권 위기의 바탕에는 다음을 기약할 대선후보들의 부재도 빼놓을 수 없다. 여당의 대선후보는 잘 알려진 대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현재 당을 떠나 있다. 여당 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정·김 두 장관이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 당에 복귀해 이를 수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실제 당 안팎에는 그 같은 주문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당 복귀가 자신들의 대선 가도에 미칠 영향을 따져 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거취는 노 대통령의 임기 중반 정국 구상과 직결돼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정치의 중심에 설 경우, 자신의 리더십을 잠식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김 두 장관이 기대하는 만큼 여당을 구할 폭발적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객관적 지표는 밝지 않다. 정 장관은 작년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대표 등에 크게 뒤져 있다.  김근태 장관은 5%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한나라당이 이 시장과 박 대표의 지지도를 중심으로 활력을 되찾아가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런저런 요인들이 겹치면서 여당은 동반 추락하는 듯한 분위기다. 여기에도 여당 내부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이념·노선 갈등까지 불거져 나올 기세다. 여당 의원들 입에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다 지고, 좀 더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추락의 끝은 과연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