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를 맞아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행사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개최한 서울시의 ‘하이 서울 실버취업박람회’도 이 같은 취지에서 열린 행사이다. 하지만 노인들은 눈 씻고 둘러봐도 마땅한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까 두려워했다. 자식에게 누가 된다는 게 큰 이유. 현장을 돌아봤다.

 난 9월22일 오전 8시30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홀 입구는 개장 1시간 전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언뜻 보기에도 200미터가 넘게 선 줄은 전시장 입구를 지나 건물 바깥까지 이어졌다. 서울시가 주최한 ‘하이 서울 실버취업박람회’는 2004년에 이어 2회째 열린 행사로 시 당국은 6200개의 일자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봐, 사진 찍지 마!”

 “누구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어? 찍지 마!”

 입장을 기다리던 노인들 사이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건물 2층 난간에서 박람회 스케치에 나선 사진기자들은 노인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카메라 렌즈를 황급히 거둬들였다. 개장시간이 임박하자 관람객 줄은 삽시간에 두 배 이상 길이로 늘어났다. 도봉구에서 온 김광수(가명, 67) 할아버지는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한 시간째 줄을 서 있다”고 했다. 일찍 나선 이유를 묻자 “일찍 나오면 좋은 일자리를 먼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오전 9시에 맞춰 박람회장 문이 열리자 길게 늘어섰던 노인들이 앞 다퉈 안으로 들어갔다. 박람회장 입구에는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이력서를 작성하는 장소와 도우미를 배치해 관람객을 도왔다. 이력서 작성에 서툰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엿보였다. 행사장 안 각종 구인부스는 개별 업체 외에 10개 구청, 서울시, 노인회 등에서 마련한 부스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취재진은 대한노인회 구인센터에 취업 신청을 한 전성장(72 대한노인회 서대문 지회장)씨와 함께 전시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토박이로 구의원도 역임한 경력이 있는 전씨는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짧게 자른 머리가 새카만 ‘젊은 노인’이다. 구청과 노인회를 통해 사전에 구인업체를 살펴보고 왔다는 그는 ‘장례도우미’, ‘체험지도자’, ‘결혼주례 전문가’에 도전할 요량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 나이에 무슨 일이냐며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쉬라’고 하지만 물정 모르는 소리입니다.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집사람하고 둘이 살지만 생활비며 용돈이 보통 드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 아직 20대 젊은이들하고 달리기를 해도 이길 자신이 있을 정도로 건강한데 당연히 일을 해야죠.”

 맨 먼저 찾은 곳은 대한노인회 취업지원본부. 새롭게 선보인 직종 가운데 하나인 장례도우미에 이력서를 접수하기 위해서이다. 60명 모집에 월 급여 40만원. 전씨는 “근무시간이 비교적 짧고(1일 4시간), 무엇보다 나이 제한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수가 생각보다 적다고 말하자, “그나마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진 찍지 마. 자식들이 알면 안 돼”

 서울시가 배포한 박람회 안내책자에 보면 구인 조건으로 나이 제한을 명시한 곳은 없다. ‘신체 건강하신 분’, ‘적극적이신 분’ 같은 조건이 전부다. 일부 전문기술을 필요로 하는 업체의 경우에는 ‘경력 20년 이상’과 같은 조건을 달거나 운송업체의 경우 ‘운전면허 소지자’ 등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업체 개별부스를 방문하자, ‘조건 : 나이 55~65세’라고 써 붙인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60세 이하 환영’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나이 제한을 밝힌 업체도 많았다.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했을 때 ‘노인을 위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구청이나 노인회 등에 구인을 위탁한 곳이 아닌 개별업체 가운데는 지하철 택배요원, 택시기사 모집업체 부스가 비교적 다수를 차지했다. 가장 많은 구인처는 ‘건물이나 시설 경비원’ 모집업체. 여성노인을 대상으로 한 간병인, 가사도우미, 보모를 모집하는 업체나 기관도 여남은 군데나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65세 미만, 70세 미만 등 나이 제한을 두는 건 여전했다. 개별부스를 돌아보며 모집 조건을 들여다보던 전성장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대충 둘러보니 80~90% 가까운 업체가 나이 제한이 있어요. 저처럼 일흔이 넘은 사람을 쓰는 곳은 거의 없네요. 내가 아직도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동네 돌고, 등산도 자주 해서 정신력은 물론이고 체력에도 자신 있는데…, 답답하고 화도 납니다.”

 전씨와 함께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건강나이 측정’ 이벤트 행사장을 찾았다.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제공한 이 서비스에는 이미 300명이 넘는 신청자들이 예약을 한 상태였다. 간단한 혈압·맥박 측정부터 골밀도, 체지방율, 혈액검사 등이 이뤄진다. 검진에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는 20여 분이 소요된다. 검사를 마친 전씨는 “실제 나이보다 젊게 나올 것”이라며 자신했다.  그러나 검진 결과 전씨의 건강나이는 실제 연령과 비슷한 70~74세로 나타났다. 체성분 검사 결과 체지방이 표준보다 많이 나왔던 점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 운동 덕분에 근력은 60대 중반으로 나왔다. “보름 정도 운동을 게을리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전씨는 상담요원이 “다시 꾸준히 운동하면 60대 건강 나이를 유지하실 수 있다”고 하자 그제야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박람회 개관 두 시간이 지나자 박람회장 안은 일거리를 찾는 노인들로 가득 찼다. 중앙에 위치한 휴게시설에서는 박람회 방문자 수를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이미 방문자 수는 5000명을 이미 넘어섰다.

 휴게소 탁자에 이력서 빈 항목을 꼼꼼히 채우던 이병수씨(가명, 61)는 “중소기업 상무를 끝으로 1년 전 퇴직해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러 나왔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는 많은데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라서 선뜻 이력서를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그는 “가족들은 내가 이런 곳에 온 줄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일자리 찾는 여성노인도 급중

 여성노인들로 북적이는 여성 채용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여개 업체가 간병인, 보모, 가사도우미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 중 ‘사랑나눔 간병인협회’를 찾았다. 기획실장 권기연(43)씨는 구직자 상담을 하는 중이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가 아닌 이상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간병인으로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간병서비스를 원하는 분들이 대부분 홀로 되신 분이라 친구처럼 푸근하게 대해 줄 분을 찾기 때문이죠. 여성 간병인이 대부분이지만, 남성 간병인을 필요로 하는 수요도 조금씩 늘고 있어요.”

 해당 협회에 등록된 간병인 중 60세 이상 노인들의 비율은 20~30% 정도라고 했다. “시간제 근무도 있지만 업무 특성상 대부분 24시간 근무인데도 격일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업무 만족도가 높다”고 권 실장은 설명했다. 2주 동안의 전문 간병인교육을 이수하면 협회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고, 이후 간병인으로 일을 주선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간병서비스 요금은 병원 입원환자의 경우 24시간에 5만원, 집에 있는 환자의 경우 6만원이다. 꾸준히 일감을 확보한다면 한 달 100만원의 수입은 가능하다고 한다. 권 실장은 “오전에만 20명이 접수를 했고, 4명은 현장 인터뷰를 거쳐 교육 예약을 하고 갔다”고 귀띔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중앙의 휴게 장소로 노인이 몰려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관람객들이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면목동에서 왔다는 김오순(68)씨를 포함한 4명의 노인은 “컴퓨터를 못 해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마음먹고 동네 사람들과 왔다”고 했다. “구청에 일자리 신청을 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오후 시간이 되자 방문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후 1시에 1만명을 돌파했던 입장객 수는 좀처럼 그 숫자가 올라가지 않았다. 상담과 이력서 접수로 북적이던 상담부스가 한산해진 반면, 건강나이 측정 코너에는 여전히 1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순서를 기다렸다. 노인 택배업체 구인 설명회장을 찾았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어지는 무료승차권을 이용한 노인택배는 노인 일자리 창출의 모범 사례로 꼽혀 온 업종.

 네 살배기 딸을 업고 아버지와 함께 박람회장을 찾은 김미연(35)씨는 “68세인 친정아버지가 아직도 일을 하시는데 좀 편한 일이 없을까 싶어 함께 모시고 왔다”고 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가족들 몰래 일자리를 찾는 데 비해 아버지를 모시고 박람회를 찾은 김씨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러나 김씨도 “적당한 일자리가 좀처럼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씨는 “65세 미만으로 나이를 제한하는 업체가 많아 실제 노인들이 일할 곳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이에 대한 ‘편견’ 버려야

 이튿날인 9월23일, 박람회장은 오전부터 여전히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전날 구직활동에 동행했던 전성장씨는 이틀째 박람회에 출석 중이다. 오늘은 주례 주선업체를 돌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함께 ‘결혼주례전문가협회’ 상담부스를 찾았다. 전씨는 “3년 전에 보건복지부에서 주례 전문가 코스를 이수해서 정식 자격증도 있다”며, 업체에 등록한 뒤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상담과정을 함께 들어봤다.

 -협회 등록을 하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위나 전직이 중요합니다.

 “구의원으로 1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못해도 학교 교장선생님은 돼야(협회 등록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 나이가….

“나이 일흔둘이 뭐가 많다고 그래요?”

 -요즘 결혼하는 젊은 부부들이 찾는 주례 선생님은 ‘가급적 젊고, 경력이 화려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협회 측이 내놓은 팸플릿 뒷면에는 ‘한국 대표적 명사 주례 서른 분’의 증명사진과 이력 면면이 적혀 있다. 전직 대사, 교수, 교장, 00실업 대표, 전 국가보훈처 실장 등의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일단 이력서를 접수하고 가세요”라고 협회 관계자가 말했지만, 전씨는 이력서를 접수하지 않고 상담부스를 빠져나왔다. “어쩔 심산이냐”고 묻자, “두세 곳 더 상담해 본 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택시업체에 등록할 생각”이라고 했다. “30년간 청계천 납품업체에서 운전을 했고, 택시기사는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평생 동안 열심히 일했고, 62세에 생업에서 손떼고 10년 동안 구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아직 아픈 곳 하나 없고, 일할 의욕도 넘치는데 막상 상담을 받아 보니 ‘연령 제한’의 벽이 너무 높군요.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가 있어도 힘들다고 안 하고, 나이 먹은 노인들은 일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못 하고,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 열기가 한풀 꺾인 박람회장이었지만, 노인모델 선발업체 부스는 줄까지 늘어서 있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부스 입구에는 ‘접수는 받지만 모델로 활동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회사가 결정합니다. 모델 등록 여부도 개별 통보됩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휴대용 캠코더로 2~3분 동안 간단한 포즈를 촬영하는 게 전부였는데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3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촬영에 참여한 김대홍(71)씨는 “네 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가는 길에 재미삼아 한번 찍어 봤다”고 했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40대에 조기퇴직한 김씨는 이후 자영업으로 전직했지만, 겨우 먹고 살 만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슬하에 5남매를 둔 그는 “넷은 출가시켰는데 아직 막내가 남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아내가 6급 장애인이에요. 스포츠마사지 자격증도 있어 먹고 사는 건 어떻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듭니다. 지금으로선 그저 밥만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오후 들어서자 파장 분위기가 일찍부터 시작됐다. 행사장 안은 이미 부스를 비운 업체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오후 3시, 박람회장을 나가는 박영범씨(가명, 60)에게 관람 소감을 물었다. 공무원으로 지난 2004년 초 정년퇴직한 박씨는 60대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다. 그는 “경비를 비롯해 건물관리 업체네 곳에 이력서 내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가 둘인데 대학교 졸업해서 다 자기 벌이 하고, 많지는 않지만 생활하기 충분한 연금 나오고, 내 집도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운동도 하고 놀러도 다녀봤는데 다 소용없어요.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가 쓸모없어졌다’는 무력감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동안 공무원 경력을 살릴 만한 일자리를 찾아보기는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며, 그는 “이젠 어떤 일이건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심정”이라고 했다.  박씨는 “나는 이런 상황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아는 건 정말 싫다”고 하면서 신상을 공개하지 말 것을 연신 당부했다.

 이틀 동안 취업을 위해 박람회장을 찾은 노인들은 줄잡아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산술 계산을 해봐도 6200개의 일자리가 시장에 나왔으니 3대 1의 경쟁률인 셈이다. 여기에 나이 제한을 비롯한 각종 조건을 따져 보면, 노인이라 규정할 수 있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극히 일부인 셈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추세 속에서 급증하는 ‘젊은 노인’들이 일할 만한 적절한 일자리가 현실적으로 태부족하다는 걸 실감한 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