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계를 큰 혼란으로 밀어 넣었던 LG카드 사태가 해결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LG카드는 2005년 순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할 전망이며,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 등이 인수를 위해 치열하게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LG카드의 기적 같은 부활 뒤에는 ‘구조조정의 달인’ 불도저 박해춘 사장이 있었다.

 2005년 스포츠계에서는 김인식 한화이글스 감독이 화제가 됐다. 김 감독은, 나이가 많아 방출된 선수나 부상이 심해 재기가 어렵다고 버려진 선수들을 극적으로 부활시켜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도 많은 노장선수와 부상선수들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바 있어 ‘재활 공장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도 김인식 감독 못지 않은 재활의 달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박해춘(57) LG카드 사장이다.

 박 사장은 부도위기에 처한 두 회사의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부임할 때마다 두 번 모두 회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켜 세인들을 두 번 더 놀라게 했다. 박 사장이 구조조정의 귀재, 기업회생 전문가로 이미지를 굳힌 것은 서울보증보험 사장 재직 시절부터이다.

 1998년 서울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부실로 서울보증보험으로 통합되면서 예상을 깨고 당시 삼성화재 상무였던 박 사장이 선임됐다. 박 사장은 서울보증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자산관리공사의 공적자금 1조6000억원 전액을 상환하는 데 성공했다. 또 삼성생명 주식의 해외매각을 주도하고, 삼성캐피탈, GE와 함께 신용정보회사를 설립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 사장은 일단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다. 삼성차 채권회수 건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박 사장은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와 관련 채권을 갚지 않을 경우, 이건희 회장 집을 압류하겠다”며, 강공책을 펼쳐 9433억원을 회수했다. 당시 14개 채권단 중 일부 금액이라도 회수한 곳은 서울보증보험이 유일했다.

 박 사장은 서울보증보험을 빠르게 정상화 시켜 이제는 손보사들 중에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회사로 만들어 놨다. 그러나 박 사장의 진가는 2003년 다시금 주목받게 된다. 2003년 말 국내 금융업계는 LG카드 사태로 IMF 이후 제 2의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방만한 경영과 대출, 연체율 증가로 LG카드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채권단과 LG그룹은 LG카드 유동성 지원 협상을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었으며, 금융당국은 부도에 대비해 회사 정리절차로 들어갔을 경우 은행 손실 규모와 연말까지 쌓아야 할 충당금 적립 규모, 채권회수율을 산정하는 등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맡고 있던 박 사장은 LG카드 사태가 터질 때만 해도 자신이 LG카드 사장으로 가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가 복귀하면서 LG카드 문제의 구원투수로 박 사장을 낙점하기에 이른다. 박 사장은 알려진 대로 이헌재 전 부총리와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일원이다. 이 당시 박 사장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조차 박 사장이 LG카드 사장으로 선임될 줄은 아무도 상상치 못할 정도의 깜짝 카드였다. 그가 서울보증보험을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은행장으로의 변신이 점쳐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은행장 후보에서 LG카드 구원투수로

 LG카드의 사장으로 내정됐지만, 박 사장은 처음에는 내심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박 사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부임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 취임 후 우리금융지주에는 황영기 회장이 내정돼 박 사장과의 운명이 엇갈렸다. 이 부총리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황 사장을, LG카드 사장에 박 사장을 지명하고 일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LG카드 취임 후 사석에서 “서울보증보험에서 너무 고생을 해 당시 이 부총리가 돌아온다기에 은근히 은행장직을 바랐다”며, “하지만 이 부총리는 황 사장을 우리금융에 보내고, 나를 다 망가진 LG카드에 보냈다”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박 사장은 또 “이 부총리가 이 말을 듣고 핏대를 세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운한 감정을 표시했지만, “일단 LG카드 회생을 위해 온 만큼 ‘올인’ 전략을 구사해 기필코 경영정상화를 시키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인선 과정에서 느낀 서운함을 푼 박 사장은 LG카드 회생을 위해 전력투구를 시작했다. 박 사장은 “취임 당시에는 LG카드 회생 여부가 금융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라 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며, “매달 수천억원씩 적자가 나던 회사를 되살리려고 수도 없이 사선을 넘나든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박 사장은 “서울보증보다 LG카드를 정상화 시키는 게 더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이유로 “서울보증은 부실 규모가 무려 20조원이었지만, LG카드는 7조원에 불과해 서울보증보다 정상화가 쉬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마음을 다잡고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카드 업종에 대한 업무 파악이었다. 알려진 대로 박 사장은 보험 전문가이다. 삼성화재에서 상무를 역임했고, 손보업계에서는 몇 안 되는 보험계리인이다. 그러니 가능한 빨리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사장을 잘 아는 지인들은 카드회사의 업무를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박 사장이 보험계리인 자격을 취득한 일화를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보험계리인은 보험상품의 요율을 만들고 검증하는 전문가이다. 박 사장이 삼성화재에 있을 때 생명보험사에는 보험계리인 자격증 취득자가 많았지만, 손보사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박 사장은 생보업계에서 손보사에는 보험계리인도 없다고 말하는 걸 듣고 기분이 상해 계리인 시험을 준비했고, 곧바로 합격했다. 박 사장이 합격한 이후 12년간이나 손보사들내에서는 계리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박 사장의 추진력과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박 사장이 업무파악을 끝낸 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일찍 출근하기였다. 삼성을 거치면서 보증보험 시절까지 박 사장은 오전 7시 이후에 출근한 적이 없다. 그를 보필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너무 일찍 나와 아래 사람들이 피곤해 할 정도”라고 말한다.

 박 사장은 2004년 3월 LG카드 사장에 취임한 이래 매일 오전 6시50분에 출근하고 있다. 노조는 물론 일반 직원들도 뒤따르지 않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조기 출근을 결의했다. 또 지방을 수시로 방문해 독려하는 바람에 직원들 사이에선 홍길동이라고도 불린다.

 박 사장은 “LG카드 직원들의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인원 감축 대신 기존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은 ‘경제적 구조조정’이었다. 조직 및 인력을 무조건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곳은 축소하고, 강화할 곳은 강화·확대하는 방법을 택했다. 본사 관리조직은 대폭 줄이고, 강화가 필요한 채권회수와 영업조직은 확대·신설해 본사 인력을 현장에 전진 배치시켰다. 아울러 채권 부문에는 외부 인력을 스카우트해 전문성을 높였다. 또 불필요한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카드업의 핵인 신용관리, IT 시스템 부문에는 오히려 투자를 강화해 추가적인 손실 발생 요인을 차단했다.

 당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채권 회수였다. 박 사장은 “연체율이 30%를 넘어선 상태에서 매일 수억원씩 적자가 나고 있어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채권 회수 강화였다”며, “그러나 단순한 채권 회수만을 추구하지는 않고, 민원을 줄이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돈을 받는 ‘감동 회수’에 전력했다”고 밝혔다

 또 현금 중심의 회수 활동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대환대출을 축소하고, 심사기준도 강화해 대환자산의 건전성을 올리는 데 힘썼다. 그 결과 대환자산을 포함한 연체율도 지금은 8%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 사장은“”서울보증의 경우 두 회사를 합병해야 했기 때문에 대규모의 인력감축이 필요했으나, LG카드는 그렇지 않았다”고 또 다른 이유를 밝혔다.  이후 강력한 부실채권 회수 정책으로 LG카드를 급속도로 안정시켜 나갔다. 이 결과 LG카드는 2005년 3분기까지 금융감독원 기준 대환 포함 연체율이 8.67%를 기록, 9월보다 0.54%포인트 낮아져 지속적인 연체율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환자산 규모도 1조9300억원으로 전 달의 2조111억원에 비해 811억원 감소했다. 정상자산은 8조6353억원으로 7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했으며,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2월의 7조5562억원에 비해서는 1조791억원 늘어났다.

 현금 위주의 채권 회수와 수익성 자산 증가 등에 힘입어 자산건전성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며, 자산건전성 개선에 따라 올 한해 1조원 이상의 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익 1조원 달성 보람 느껴

 현 시점에서 박 사장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박 사장은 “쓰라린 기억만큼 보람도 컸던 세월이었지만, 연초에 2005년 연말까지 영업실적을 극대화 해 현재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있는 LG카드의 매각가를 올리겠다고 다짐했고, 지금은 이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져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채권 금융기관들이 잘 알아서 매각을 진행하겠지만, 전 직원의 희생으로 살려낸 LG카드가 매각의 풍랑 속에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며, “(LG카드를) 누가 사든, 회사명이 어찌 바뀌든 간에 최고의 카드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채권단의 지원만으로 LG카드가 살아난 것이라고 말하는 일부 주장에 대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회생 방침에도 지원을 망설이던 은행들이 이젠 서로 사겠다고 나서는 지금의 상황을, LG카드의 자구 노력 없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사장은 서울보증보험과 LG카드를 거치면서 자신의 역량을 100% 이상 보여줬다. LG카드, 보증보험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회고했을 만큼, 그는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금융업계의 큰 축을 이루는 두 회사를 살려냈다.

 이제 수익 1조원을 달성, 금융계의 애물단지에서 관심업종으로 떠오른 LG카드는 조만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박 사장은 서울보증보험에서 LG카드로 자리를 옮길 때 “LG카드를 매각한 후 은퇴하고 싶다”며, “하지만 그때가 되면 또 다시 부실금융기관이 발생해 기용될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그의 말처럼 박 사장은 다시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해 내는 구원투수의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