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드라마 인기로 시작된 ‘우연한’ 한류가 한순간의 신드롬에 그치지 않고 3년째 불고 있다. 단순히 지속되는 범위를 넘어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드라마 인기에 이은 스타 마케팅으로 전개되었던 한류열풍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인기로까지 이어진 상태다. 한류 바람을 타고 대박 비즈니스를 진두 지휘하는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김영규 포커스투어즈코리아 대표

 차별화된 관광상품으로 일본 중년부부 30만 유치



 2005년 9월, 문화관광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우수여행사’로 31개 업체를 선정했다. 그 중 일본 인바운드(외국 관광객들을 국내로 유치하는 것) 전문여행사인 (주)포커스투어즈코리아는 지난 한해 동안 일본인 관광객 11만명을 유치, 280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여 우수여행사 2위로 선정됐다.

“2005년까지 우리 회사가 벌어들인 외화 획득액은 3000만달러를 넘어섰어요. 이 때문에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는 관광진흥탑 수상도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김영규(44) (주)포커스투어즈코리아 대표는 자신만만했다. 그가 일본에서 여행상품 판매를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여행사를 차린 건 1997년 6월. 한국관광에 대한 일본인의 선호도를 직접 체험한 그는 승산을 예감했다. 여행사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기존의 여행상품으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걸 직감했다. 결국 새로운 기획을 통한 새로운 상품만이 후발주자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 관광객의 취향을 면밀하게 분석한 그는 기존에는 없던 세 가지 유형의 여행상품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는 한국의 먹을거리 문화상품, 두 번째는 일본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용상품, 세 번째는 50~60대 중년부부를 위한 상품이 그것이었다.

 김치와 불고기가 한국음식의 전부라고 알려졌던 90년대 말, 김 대표는 노점음식이 즐비한 남대문시장에 일본인 관광객을 직접 데리고 갔다. 한국의 다양한 먹을거리에 대해 소개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은 남대문시장을, 일본인들은 선호했다. 그리고 일본 여성 관광객을 데리고 마사지숍을 찾는 등 한국식 피부관리를 받을 수 있는 미용상품을 내놓았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또 ‘부부가 즐기는 4일간의 온천’이라는 상품은 물을 좋아하는 일본인 중년부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김 대표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세 가지 상품만으로 일본인 관광객 30만명을 유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003년 12월부터 욘사마열풍이 불자, 김 대표는 발 빠르게 한류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촬영현장 답사를 중심으로 한 (주)포커스투어즈의 상품은 한국 체험관광이라는 새로운 기획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 결과, 김 대표는 2004년 <겨울연가> 상품만으로 3만5000명, 2005년에는 2만5000명이 넘는 인원을 유치했다. 아울러 드라마와 영화, 한류스타와 연관된 상품을 지속적으로 판매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일본에서 방영될 <내 이름은 김삼순>의 가치 있는 내용을 찾아 사전에 현지답사나 상품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2005년부터 시작한 일본인 관광객 감소는 한류에 가장 민감한 여행업종에는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 김 대표는 “일본인 관광객 감소에는 우리나라 한류스타의 역기능이 작용했다. 일부 연예인이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어 보자는 식의 사인회를 개최하고 있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연예인들 때문에 관광객들의 반감을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예인들도 한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값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자꾸 높은 가격을 요구할수록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일본 관광객 유치로 회사 규모를 성장시킨 김 대표는 현재 중국 관광객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일본 관광객이 줄어드는 추세인 데 반해 중국 관광객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이 대표는 중국 관광객 유치시장에도 진출, 중국 내 한류 특화상품을 적극 개발할 계획이다.



 박재복 MBC 콘텐츠사업부 차장

 <대장금>·<신입사원> 한류 선도 2005년 드라마 수출 1억달러



 지난 12일에 만난 MBC 콘텐츠사업부 박재복(47) 차장은 한류 관련 자료를 한 묶음 들고 나타났다. 자리에 앉은 그는 “문화교류 측면에서 한국문화의 위상이 확실하게 변했다”고 단언했다.

 “1993년 트렌디 드라마로 성공했던 <질투>를 중국 하얼빈TV에 수출했어요. 드라마를 수출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하는 드라마 수출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얘기도 많았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수출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선진국의 우월한 문화에 호응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던 과거의 한국은 문화수입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3년 <질투>의 수출로 문화수입국에서 문화수출국이 되는 전환점을 맞았다.

 1년 뒤인 1994년, 중국공영채널 중앙방송인 CCTV에 MBC 드라 <사랑이 뭐길래>를 수출했다. 중국 전역에서 방송됐기 때문에 가장 의미 있는 수출이었다고 박 차장은 말했다.

 방송콘텐츠 수출 15년 역사와 함께 해온 박 차장은 특히 1993년, 1994년도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서 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시작한 우리 드라마 수출은 2006년이 된 지금까지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박 차장은 한류가 앞으로 꾸준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인 한류가 가능하려면 콘텐츠의 질이 우수해야 돼요.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 사람들의 심리와 똑같죠. 먹다가 맛 없으면 그냥 버리기도 하잖아요.”

 쉽지만 가장 잘 다가오는 말이다. 우리 안방에서도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가차 없이 채널을 돌려 버리지 않는가?

 현재, 여러 개의 킬러콘텐츠 드라마가 한류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MBC의 경우, <대장금>, <신입사원>, <인어아가씨>, <원더풀 라이프>, <불새> 등이 2005년 한류를 선도했다.

 “방송콘텐츠로 벌어들이는 액수는 연간 1억달러나 돼요. 그야말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에요.”

 문화수출이 문화수입보다 많아진 시점은 2002년부터다. 수출이 수입의 몇 백만분의 일도 안 되던 때부터 같아지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 후로 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수출이 수입보다 두세 배가량 증가했다고 박 차장은 말했다.

 드라마 하나를 제작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만, 한류바람을 타고 외국으로 수출만 되면 들어간 돈은 초기에 어느 정도 거둬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출을 통해 드라마 제작비 60~100% 는 회수가 가능해요. 킬러콘텐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죠. 러닝 개런티를 따로 받기로 계약하기 때문이에요.”   

 KBS가 <겨울연가>의 수출로만 벌어들인 돈은 150억원에 달한다. 중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권을 바탕으로 수출됐던 드라마가 이제는 중동의 이집트, 이란, 아프리카의 가나에까지 수출될 예정이다. 드라마 하나로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알릴 수 있어 좋고,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하지만 <겨울연가>처럼 한 드라마가 모든 지역에서 환영받지 않는다. 각국에서 선호하는 취향과 금기시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란한 드라마와 사제 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를, 중동지역은 노출이 많은 드라마를 금기시 합니다. 중동의 경우, 차도르로 몸을 다 싸고 다닐 만큼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수입국의 구미에 맞게 드라마를 제작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보편성을 지닌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문화상품 유통에서는 잘못된 말이에요. 보편성을 갖추고 있어야 어느 곳에서나 공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 문화의 특수성은 보편성을 갖춘 후에 가미시키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정재연 쇼이스트 과장

 영화 <외출>로 일본 극장 개봉수익 27억엔, 관객 수 230만명 달성



 <외출>은 2005년 외국으로 수출돼 흥행했던 영화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부진했지만, 일본에서는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당시 배급을 담당했던 쇼이스트의 정재연(35) 과장은 “일본 현지에서 이루어진 영화 <외출>의 마케팅은 미국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으로 진행됐다”라고 전했다.

 “<외출> 시사회를 한 후에,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돔 경기장에서 대규모 외출콘서트를 열었어요. 3만여장의 티켓은 콘서트 하루 전 모두 매진됐죠.”

<외출> 콘서트 당일, 배용준과 손예진을 위해 쇼이스트 측에서 배치한 경호원만 40여명이었다.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외출>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경기장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진풍경을 자아냈다. 지나가던 일본인은 줄지어 양 옆으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일본 수상이 오는 날이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정 과장은 그때의 일화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2005년 9월 17일 개봉한 <외출>은 개봉 12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12월 초까지 집계된 극장 개봉수익((box office)은 27억엔(270억원), 관객 수 230만명에 달했다.

 영화 <외출>은 일본 전역 321개 극장, 434개 스크린에 간판을 올려 개봉됐던 한국 영화 중 역대 최다 스크린 확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전에 최고 기록을 세웠던 <쉬리>를 제치고, 최단 기간 내에 100만명 관객 돌파라는 기록도 세웠다. 개봉 한 달 동안, 한국에서는 6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성적을 감안할 때, <외출>의 일본 성공은 ‘한류의 영향’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영화 <외출>은 유통과정부터 특별했다.

 “제작사는 블루스톰이지만, 투자와 배급은 쇼이스트가 도맡아서 했어요. 기획과 시나리오 작업이 끝난 후, 일본의 배급사 유니버설 픽쳐스와 계약을 했죠. 배용준, 손예진의 캐스팅만 보고 맺은 계약이었다는 점에서 파격이었습니다.”

 영화의 수출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다 만들어진 영화를 시사회를 통해 본 현지 바이어가 계약을 맺는 방법과 제작발표와 캐스팅이 끝난 후 프로모(프로그램 선전용 스폿)만 보고 계약하는 경우다.

 그러나 <외출>은 달랐다. 주인공이 배용준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본 쪽에서 반응을 보였고, 시나리오도 보지 않은 채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극장 상영이 끝난 뒤에도 <외출>의 인기는 이어졌다. 일본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 12월29일, 일본 현지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DVD로 발매됐다. 발매 후 11일 만에 <외출>DVD는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진로재팬 한덕호 지사장

  일본에 ‘태극기 휘날리자’ ‘참이슬 주세요’ 이구동성



 우리나라의 대표기업 ‘진로’는 국내기업이 아닌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진로소주는 2001년 전 세계 증류주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4년 연속 세계 증류주시장 판매량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일본을 비롯해 유럽, 동남아시아 등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79년부터 수출을 시작한 진로는 최근까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일본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런 결과에는 한류의 영향이 컸다고 한덕호(51) 진로재팬 지사장이 말했다.

 “2004년 3월1일, 진로재팬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일본열도에 한류열풍이 불고 있던 때였죠. 하지만 제가 본 진로재팬의 성적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한 지사장이 일본에 부임한 2004년, ‘참이슬’은 폐쇄적이고 복잡한 일본 유통시장을 뚫지 못한 채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2004년 하반기, 한 지사장은 한류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한국 본사에서는 극구 말렸어요. 제가 내놓은 전략에 부정적이었죠.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되더라고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적극 추진했습니다.”

 그때 내놓은 전략이 ‘한국의 넘버원 소주와 한국의 넘버원 배우의 연계’였다. 당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류스타로 떠오른 배우 장동건을 캐스팅해 2005년 5월, TV광고와 포스터를 제작했다. TV광고의 콘셉트는 상식의 허를 찔렀다. 광고 속 장동건은 “참이슬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의 코멘트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다. 일본 본토에서 한국모델이 한국어로 광고를 하다니, 기존 상식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광고는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즉각 일본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장동건의 멘트는 유행어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한류와 맞물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했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참이슬 주세요’라는 뜻을 파악한 일본인 고객들이 매장에서 구입할 때도 유행처럼 사용했죠.”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은 광고와 똑같이 “참이슬 주세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점포 주인들은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해 웃지 못할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광고가 전파를 탄 지 한 달 만에, 진로재팬은 또 다른 마케팅 전략을 내놓았다. 소주 한 병을 구입하는 손님에게 장동건 포스터를 끼워 주는 방법이다. 진로재팬 마케팅팀 권홍봉 차장에겐 불붙었던 당시의 마케팅 현장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주 한 병에 포스터 한 장을 주자, 일본인들은 포스터를 얻기 위해 소주 한 박스씩 사가곤 했습니다. 당시 점포 주인들이 항의도 많이 했어요. 포스터 수량이 적어 곤란하니, 더 많은 포스터를 제공해 달라고요.”

 급기야 줄을 서서 참이슬을 사 가는 진풍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참이슬이 없는 점포엔 팔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따져 묻기도 했다. 2004년 1.4%이던 참이슬의 인지도는 장동건을 내세운 2005년에는 20%로 성장했다. 65% 수준에 그치던 매출이 1년 뒤인 2005년에는 무려 128%까지 상승했다.

 “예상 밖의 결과에요. 참이슬은 빠른 시간 안에 시장에 정착했고, 취급점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류열풍이 식었을 경우, 이 제품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 중이에요.”

 한류가 한때 잠시 부는 열풍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홍업 대우일렉트로닉스 베트남 지사장

 장동건·신주리 광고모델로 매출성장 두 배로 ‘쑥쑥’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냉장고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다른 지역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냉장고가 유독 베트남에서 선전하는 데에는 일찌감치 ‘한류’를 활용했던 대우의 선점전략이 주효했다. 현재 대우일렉트로닉스 국내 영업담당 이사를 맡고 있는 김홍업(48)씨는 한류열풍이 시작됐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하노이에서 베트남 법인장을 지냈다.

 “베트남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은 편이었어요. 다른 기업보다 베트남시장에 먼저 진입했던 선점효과도 컸지만, 1997년에 대우가 외국인투자법을 만들어 주면서 진입했던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1997년부터 대우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00년 중반까지 호치민과 하노이공항의 모든 TV를 대우에서 지원했어요. 이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의 대우라는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이사가 베트남 법인장을 2년 정도 지낸 2000년 말, MBC드라마 <의가형제>가 베트남 현지에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대우는 매출 상승을 위해 한류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2000년 말부터 2001년 말까지, 약 1년 동안 <의가형제>의 신주리를 세탁기와 냉장고 모델로 활용했고, 2001년 3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의가형제>의 장동건을 TV광고 모델로 썼다.

 “장동건씨와 신주리씨를 광고모델로 쓰자, 매출은 두 배로 증가했고, 베트남법인은 20~30% 정도 성장했어요. 이 같은 성장세는 다른 법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수치죠.”

 매년 약 20%씩 성장을 거듭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2006년 지금도 여전히 냉장고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김 이사는 “한류는 이미 베트남 국민들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하노이에 있는 대우법인의 총 직원은 720명. 주재원 6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베트남 사람이었다. 한국의 드라마는 한국 직원과 베트남 직원 사이의 이질감을 메워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굉장히 높았어요. 베트남 직원들은 ‘베트남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2004년에 방영됐던 <대장금>도 인기를 끌었어요. 감동을 주는 소재가 동질감과 막연한 동경을 만들어 낸 거죠.”

 김 이사는 “한국에 대한 동질감과 막연한 동경이 한국제품에 대한 구매로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라면서 한류마케팅의 성공 이유를 들었다.

 2003년 5월, 김 이사는 6년간 역임했던 베트남 법인장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국내 영업이사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베트남 한류마케팅 성공의 주역이라는 ‘딱지’는 1년 반 뒤인, 2004년 12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베트남 하노이 법인장으로 다시 장기 파견근무를 나가게 만들었다.



 임지훈 한훈엔터테인먼트 대표

 ‘자탄풍’ 공연 수익금 전액 기부 중국 한류 비즈니스 초석 마련



 “중국은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공산주의국가, 획일적이고 낙후된 국가가 아닌 그야말로 거대한 시장이자 신천지였습니다.”

 중국 상해에서 ‘한훈엔터테인먼트’(한훈예술학원)를 운영하는 임지훈(36) 대표가 중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받은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2001년, 그는 영화 전문 프로듀서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얼마간의 기간을 남겨 두고, 여행을 다니던 임 대표는 중국여행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

 ‘여기서 문화사업을 하면 어떨까?’ 미국 유학파들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보다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문화사업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한국은 문화사업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경쟁이 심해요.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같은 노력에 비해 기회가 적죠.”

 임 대표에게 중국시장은 블루오션인 셈. 어학연수를 마친 임 대표는 뜻이 맞는 한국인 2명과 함께 현지 조선족 직원 2명, 중국 변호사 1명을 직원으로 두고 사무실을 차렸다. 사업 초기, 임 대표는 시장조사와 법률 검토까지 꼼꼼하게 마친 뒤 연예아카데미를 설립했다. 5억5000만원이라는 투자비용이 들었다. 자금은 임 대표 본인의 8000만원과 한국의 개인투자자, 중국의 물류회사로부터 투자받은 4억7000만원으로 조달했다.

 사업의 성격상 엔터테인먼트 업종은 한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다. 공연과 이벤트, 전시사업과 스타마케팅, 한류 콘텐츠 유통사업이 김 대표가 벌이고 있는 주요 사업들이다. 지난 2004년 5월 임 대표는 한국의 유명 포크그룹 ‘자전거탄풍경’을 중국으로 초청해 상해공연을 성공리에 치렀다. 임 대표는 공연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을 ‘상해한국학교’ 설립 기금으로 기부했다.

 공연기획사로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진행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무허가 영업’이었다. 그러나 임대표가 수익금을 공공에 기부하자, 중국당국은 임 대표의 공연기획 사업에 정식 허가증을 발급했다.  기회를 얻은 임 대표는 그해 11월 한국 외교통상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대형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중국 공연을 성사시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모델과 메이크업 전문가, 댄스 선생을 초빙해 수업을 실시했고, 지금까지 각각 3기씩 배출했습니다. 그 친구들을 회사가 기획하는 각종 행사나 광고에 적극 활용하기도 하지요.”

 잘 훈련된 모델과 댄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수익원. 임 대표는 단순히 행사에 인력을 공급하는 데에서 벗어나 각종 행사 자체를 기획하고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 하반기부터 경상비와 매출이 거의 같아졌어요. BEP(손익분기점)를 넘기기 시작했죠. 아직은 시작 단계에요.”

 임 대표는 얼마 전 2005년 사업내용을 결산해 보았다. 사업을 시작한 뒤로 약 8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왜 중국에서 문화사업을 하냐고요? 한국에서 이수만이 될 자신이 없어서예요. 한국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나 싸이더스와 같은 회사를 만들기 힘들 것 같았지만, 중국에서는 제 힘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거든요.”

 임 대표의 2006년 계획은 이제 수익을 내기 위해 노심초사 하던 단계를 넘어섰다. 한·중 합작영화 제작과 스타 메이킹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 제작이 2006년의 사업목표다.

 “중국인들은 의식이나 수준이 한국인들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자존심만 센 중국인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나기도 했죠.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사람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 12억 중국인에게 화가 났던 셈이에요. 12억 중국인 모두에게 화를 낼 수 없으니 사무실 전화기를 집어던지거나 휴지통을 걷어차기도 했었습니다.”(웃음)

 임 대표는 현재 코트라 현지 고문으로 중국 비즈니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자문도 하고 있다. 그는 “중국을 기회의 땅이라고만 생각해 사업을 덥석 시작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많은 기회가 오히려 실패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충분한 준비와 자세가 겸비되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학진 ‘예쁜(yebbn)브랜드’ 대표

 이탈리아 명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메이드인코리아 구두



 중국에서 이탈리아 명품보다 비싸게, 잘 팔리는 국산 브랜드는? 국내 소비자에게는 낯선 예쁜(yebbn)브랜드를 단 구두다. 이 구두를 제작 판매하고 있는 이학진(41) 대표는 “예쁜 브랜드를 단 구두가 중국에서는 이탈리아 브랜드보다도 더 좋은 명품으로 통한다”라고 자부한다. 중국인들은 ‘예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멋있는 남자’를 연상한다. 한국 소비자에게는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예쁜’은 이 대표가 사전 시장조사까지 꼼꼼히 해서 얻은 소중한 브랜드다.

 “중국시장에서 고가의 브랜드로 정착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을 영문으로 지어보려고도 했지만, ‘한국제품이니 한국어로 지어 중국시장에 내놓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예쁜(yebbn)브랜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2003년 2월 말. 상해에서 11년, 북경에서 6년을 합쳐 중국에서만 17년을 거주한 이 대표는 중국시장의 실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엘칸토 중국지점의 총 경리를 10여 년간 맡았기 때문에 구두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했다. 당시 엘칸토 중국지점 총 경리로 있던 이 대표는 ‘제2의 브랜드를 만드는 건 어떨까?’라는 발상을 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떤지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는 한편, 근무하던 회사에 사업계획서 형태로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만류였다.

 “번번이 거절을 당하자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결국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라고 결심했어요. 당시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사람들>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중국으로 수출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어요.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인들의 촌스러웠던 패션 감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어요. 드라마에 등장한 한국 여배우의 패션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고, 한국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죠.”

 이 대표는 이런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에서 방영하는 한국 드라마를 꼼꼼하게 모니터 하는 한편, 여배우들이 입은 옷과 구두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어떤 디자인의 구두를 신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재빠르게 디자인 연구에 몰입했다.

 처음에는 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구두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했다. 그러나 여배우들이 신은 구두를 중국인들이 직접 신자,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발상을 전환한 이 대표는 한국 배우들이 신는 구두디자인을 중심으로 예쁜(yebbn)브랜드만의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이 대표는 한 켤레에 20만원이 웃도는 가격의 구두를 시장에 선보였다.

 “중국 사람들에게 20만원이라는 돈은 상당히 큰 액수입니다. 하지만 한번 사 간 고객은 꼭 또 다시 와요. 우리 제품의 품질에 대해 만족한 것이죠.”

 상하이의 ‘이세탄백화점’, 베이징의 ‘싸이터백화점’을 비롯해 7개 고급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는 예쁜(yebbn)브랜드의 월 매출은 매장당 4000만원선.  지난 한해 동안 올린 매출만 약 30억원이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2003년 2월에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망하는 줄만 알았어요. 그 해 9월까지 총 생산량의 30%만 팔렸거든요. 70%는 재고로 쌓였습니다.”

 ‘사람들이 말렸을 때,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도 여러 차례 했지만, 이미 일을 벌려 놓은 상태였다. 남은 물건의 원가라도 건지기 위해 세일을 해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고가 브랜드의 이미지로 시작한 이상,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고전하던 이 대표의 사업에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열풍은 천군만마였다. 한국 배우에 대한 호감은 한국제품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명품이라는 바람이 불었다.

 이 대표는 올해 안에 매장 3곳을 더 개장할 계획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엑스포 등 대규모 국제행사로 급성장할 경제특수가 전망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인기에서 착안한 이 대표의 한글 브랜드 전략과 고가 전략은 2006년 더욱 날개를 달 전망이다.



 2006 한류 주도할 트렌드 세 가지

 반한류, 기업의 자선마케팅, 중동·아프리카



 성경제연구소는 1월 발표한 ‘2006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보고서에서 ‘반한류, 혐한류 현상’을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그 근거로 보고서는 일본에서 혐한류를 다룬 관련 서적이 3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 드라마의 주요 수출국으로 일본과 더불어 한류의 가장 큰 진원지이자 시장으로 인식되었던 중국의 ‘한국 드라마 방영 축소 조치’를 들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정민 연구위원은 ‘한류의 일방적인 소통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꼽았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아시아 각국에 일방적으로 공급되면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의 한류에 대한 반감은 한국 이미지의 하락은 물론, 한국 제품 판매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이 같은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스타마케팅을 자제하는 대신, 공익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스타로 브랜드와 제품을 선전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공익사업으로 마케팅 방법에 변화를 준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가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 자선마케팅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총 25만달러를 지원해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을 지원하고 있으며, 베트남 의사의 국내연수와 의약품 및 의료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지난해 쓰나미 피해가 컸던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 삼성학교를 건설해, 아이들의 교육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SK텔레콤은 베트남에서 얼굴기형 어린이에게 무료수술을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10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SK텔레콤 베트남지역본부장 김성봉 상무는 “SK텔레콤은 10년간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침으로써 베트남 국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으며, 30년 전 전쟁과 파병으로 미묘한 앙금이 남아 있던 양국 사이에 우호증진의 기회를 가져오는데 기여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2003년 사스 발발기간 중 사스 극복활동을 벌였고,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곁들인 ‘I LOVE CHINA 페스티발’을 개최해 중국 국민들과 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태국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약퇴치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04년에는 베트남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무료시술을 펼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 지역에서 불고 있는 대기업의 공익사업은 영화, 드라마 등 ‘문화의 한류’에 이어 ‘경제의 한류’를 이끌어 내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류의 선봉주자인 <겨울연가>는 지난 2005년 열사의 나라 중동과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뜨거운 태양의 나라 이집트인들은 난생 처음 보는 남이섬의 설경에 감탄했다.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사는 모습까지 다른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청신호가 울린 것이다. 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호감을 느끼는 데에는 이슬람국가들이 대부분이 이 지역에 ‘반미, 반유럽 흐름’이 대세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구문화에 대한 반감이 한국인의 애틋한 사랑과 가족 간의 정서를 다룬 드라마를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인들의 정서 안정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 가는 중이다. 일본과 중국을 넘어 불모지였던 중동과 아프리카로까지 확대된 한류열풍은  신(新)한류의 열풍을 기대하게 한다. 이미 시작된 한류열풍이지만, 중동에서 부는 한류바람은 의미가 크다. 중동시장을 발판으로 유럽시장으로의 확대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한류의 ‘시장 넓히기’와 ‘가격 올리기’ 사이에서의 우선순위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선 시장 넓히기와 후 가격조정’이다. 글로벌 시대에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세계 최고 확보’라고, MBC 콘텐츠사업부 관계자는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 투자할 생각이다. 문화적 수익과 매출의 획득이 우선이 아니라 수평적 영역을 넓히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영화배우 손예진



 “늦더라도 차근차근 준비해 해외 진출할 생각”



  <겨울연가>의 일본 내 빅 히트가 낳은 ‘욘사마’ 배용준을 위시해 장동건, 이병헌, 원빈을 모아 ‘사대천왕’이라는 이름으로 한류스타 마케팅이 일어났고 ‘지우히메’ 최지우를 비롯해 박용하, 류시원 등이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장나라, HOT 같은 가수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이들이 1세대 한류스타라면 손예진은 이들의 뒤를 이을 잠재력 풍부한 차세대 한류스타로 첫 손 꼽힌다. 

오성택 기자 ost69@chosun.com



 난 1월 초 개봉한 영화 <작업의 정석>을 끝으로 3년 만에 SBS 미니시리즈 <연애시대>를 통해 드라마로 복귀한 손예진씨는 출연료로 회당 2500만원을 받았다고 해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종전 여자 탤런트 최고 출연료는 2005년 <프라하의 연인>에 출연했던 전도연씨가 회당 2000만원으로, 손씨는 전씨에 비해 회당 500만원을 더 받는 셈이다. 제작사나 소속사 모두 ‘소문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제 24살인 손예진의 위상을 가늠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터뷰는 드라마 촬영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일요일 밤 11시, 수원 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위치한 피트니스센터 2층 건물의 직원용 회의실 탁자 위에는 작은 온풍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쌀쌀한 겨울 밤공기를 냉기를 녹이는 유일한 도구였다. 손예진은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털이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극중 인물의 직업이 피트니스센터 강사예요. 전직 수영선수 출신으로 털털한 성격에 보이시한 중성적인 매력을 가졌어요.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물인 데다가 극중 캐릭터가 전에 해보지 않았던 인물이라 흥미 있게 촬영하고 있어요.”

 인터뷰메이크업을 담당한 직원이 그녀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손씨는 메이크업이 완성된 모습을 거울로 점검하느라 눈길은 은색 거울에 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소속사 직원이 “차량으로 이동하며 메이크업을 고치고 의상을 갈아입은 다음, 곧바로 촬영을 하기 때문에 촬영 짬짬이 인터뷰를 하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탁자 위에는 김밥과 만두가 저녁 식사대용으로 올라와 있었지만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 ‘욘사마’ 배용준씨와 함께 출연한 영화 <외출>, 정우성씨와 출연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들었는데, 해외 나가면 인기를 실감합니까?

 “CF 촬영하러 한 번, 영화 프로모션 스케줄로 한 번, 합쳐서 두 번 일본을 방문했던 게 전부예요.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보다 배용준씨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한류열풍이 이런 거구나’ 실감했어요. 특히 <외출> 촬영할 때 삼척에서 국내·외 언론을 대상으로 촬영현장 공개가 있었는데, 국내 언론사보다 더 많은 외국 언론사가 몰린 걸 보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나요.”

 영화 <외출>에서 배용준의 연인으로 캐스팅된 뒤, 손예진은 ‘배용준의 연인’이라는 타이틀로 일본열도에 이름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일본의 유력 시사주간지 <아에라>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연기자들의 해외 합작영화 진출이 활발하고, 팬 미팅 등의 행사도 종종 치러지지만, 손예진의 해외활동은 2005년 영화 홍보차 일본 방문을 한 것이 전부다.

 - 본인이 출연했던 영화가 해외에서 개봉된 뒤 팬클럽이 중국에서도 생겨났다고 하던데요.

 “전에 <클래식>이란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된 적이 있는데, 그걸 본 어느 분이 인터넷팬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저도 얼마 전에 얘길 듣고 사이트에 접속해 봤어요. 주로 제 프로필, 사진 같은 걸 올려놨더라고요. 댓글도 달려 있고, 저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는 것 같은데, 전부 중국어로 쓰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어요.(웃음)

 그녀는 “국내의 팬클럽처럼 상시로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해외의 팬은 규모와 열성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이야기 끝에 그녀는 인도네시아의 한 팬으로부터 팬레터를 받기도 했는데, 인도네시아어로 쓰여 있더란 말도 했다.

 “아직도 그 팬레터의 내용이 어떤 건지 몰라요. 궁금하긴 한데 해석해 줄 사람이 없어서….”

 - 별다른 해외활동 없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만으로도 팬이 생기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한류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에 같은 아시아권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 머릿속 지우개> 홍보차 일본에 갔을 때 일본 관계자가 시사회가 끝난 뒤에 ‘한국 남자들은 다 저렇게 여자를 안아 주냐’라고 물었어요.  영화 속에서 정우성씨가 저를 가만히 안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한국 작품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배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고, 저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데 싫을 리 없죠. 일을 하는 데 ‘즐거운’ 책임감을 갖게 해주니까요.”

 - 배용준이나 이병헌, 장동건 같은 남자 배우들이 해외에서 환영받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여배우들에 대한 반응은 열기가 그만 못한데, 본인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관심이나 적극성을 보이는 건 오히려 여자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남자분들은 소극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지 않나 생각해요. 외국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건 마찬가지 아닌가요?”(웃음)

 - 따로 해외에서 출연 제의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다른 배우들처럼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제작 여건이 좋은 나라도 있고, 좋은 조건으로 캐스팅하겠다는 프러포즈는 받지만, 아직 제가 나가서 활동하기엔 준비가 더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요. 그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건 제 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걸 작품을 통해서 메우려는 욕심 때문이었어요.”

 손예진의 소속사인 바른손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미국의 유력 영화사로부터 ‘손예진을 캐스팅하고 싶다’라는 의뢰를 받았지만 거절한 적 있다”라고 밝혔다. 비록 거절하긴 했지만 할리우드에서 출연제의를 해올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향후 해외에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을 봤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해외진출을 준비하려면 기본적으로 언어능력이 필요한데, 따로 공부하고 있나요?

 “머릿속으론 ‘공부해야지’ 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핑계를 대자면 한 작품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스케줄 때문인데, 아직 해외로 나갈 만큼 제 자신이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 소속사와 제작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최고 개런티를 받는 여배우란 이야기가 설령 부풀려진 얘기라 해도, 기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쑥스러운 듯 웃으며)네.”

 손예진의 소속사 한 임원은 ‘회당 출연료 2500만원 논란’에 대해 “드라마 캐스팅 단계에서 ‘작품이 대박이 나면 보너스를 두둑하게 주겠다’라고 격려성 제안을 했다. 일종의 옵션계약으로, 야구선수가 타율 얼마, 홈런 얼마 치면 얼마를 주겠다는 제안과 같은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임원은 “야구선수가 옵션조건을 충족시켜 연봉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 없으면서 연기자가 그런 계약을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게 풍토”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손예진의 회당 출연료가 역대 최고 수준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 수입을 관리하는 데 특별한 노하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있나요?

 “제 또래 여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도 여행 좋아하고 쇼핑하는 거 좋아해요. 그렇지만 용돈을 얼마나 쓰는지는 잘 몰라요. 제 수입은 어머니가 다 관리해 주세요. 물론 언젠가는 저도 수입을 관리하고 투자를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갖게 되겠지만, 아직은 필요할 때마다 타 쓰는 게 편해요. 일을 할 때는 수중에 돈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먹을 것도 소속사 식구들이 다 사 주거든요.”

 -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영화가 아시아권에 유행을 하다 보니 반한류, 혐한류와 같은 반응도 있습니다.

 “연예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나라 언론보도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어떤 책은 그런 내용 중 가장 악의적인 것만 모아서 ‘혐한류’라는 제목으로 인기를 끈다고 그래요. 작품에 대해 매섭게 비판을 하는 것도 좋고, 부족한 부분은 비판받아야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비판이라도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어요. 또 배우가 받는 개런티와 연기력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얼마 받았는데 연기가 안 좋다’라는 식의 보도를 볼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때론 힘들기도 해요. 연기자의 흥행요소와 연기력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건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 인지도나 인기와 비교할 때 본인의 연기 기량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따로 연기 수업을 하지 않고 데뷔해서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닦는 중이에요. 아직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연기력을 운운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동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 해외에서 관심을 갖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큰 흐름 중에는 사랑을 다룬 영화가 많다는 점이에요. 손예진씨가 출연한 작품들이 대부분 멜로 장르인데, 멜로 장르를 좋아하나요?

 “네. 사랑 이야기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지만, 저는 특히 더 멜로에 끌려요. 책을 보더라도 손에 잡고 보면 사랑 이야기인 경우가 많아요. 멜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장르는 같더라도 다루는 이야기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계속 흥미를 가지고 출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개봉한 <작업의 정석> 같은 영화는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작과 표정이 많아서, 전에 제가 해온 연기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 드라마에서 털털하고 중성적인 캐릭터를 맡았는데, 영화 촬영하면서 배운 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2006년에는 합작작품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간다거나 하는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나요?

 “지금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가 4월부터 방영이 돼요. 두 달간 방영되기 때문에 지금은 이 드라마를 열심히 찍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요. 좋은 기회가 되고, 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기회를 갖고 싶어요. 그렇지만 마음만 앞서서 나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촬영준비를 마친 제작팀에서 ‘리허설이 있다’는 전갈이 왔다. 시간은 이미 12시를 한참 넘어서고 있었고, 촬영은 그제야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와 전화로 다투는 한 장면을 리허설하고, 실제 촬영하고 오케이가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렸다. 여주인공의 섬세한 실루엣이 카메라에 정확하게 담기 위해 적절한 조명과 배우의 동선을 몇 번이나 확인해 가며 공들인 촬영이 이어졌다. 제작팀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편집에서 살아남으면 밤늦게 고생한 보람이 있지만, 잘려나가기도 한다”라고 귀띔을 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회의용 탁자 위에 만두와 김밥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한류를 만든 한국의 드라마는 모두가 잠든 밤, 수원의 한 체육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문가 제안

 한류비즈 양국 공동이익 창출해야

 

 박귀현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류의 지지층이 확산되면서 한류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초창기 현지에 진출한 한국 중·소상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한류비즈니스는 이제는 한국기업을 거쳐 외국기업들조차 마케팅에 한류를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한류를 어떻게 비즈니스에 접목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류를 비즈니스에 접목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 나라에서 한류의 확산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파악하는 일이다. 우선 드라마나 영화,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가 유행하는 1단계에서는 한국 문화콘텐츠를 판매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단계인 파생상품 구매 단계라면 배용준 사진첩과 같은 문화콘텐츠의 인기를 활용한 파생상품이나 한국 음식 등에서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 3단계인 한국상품 구매단계에서는 한국의 높아진 이미지나 한류스타를 활용하는 마케팅을 통해 일반 소비재의 판매를 확대할 수 있다. 한류의 마지막 단계인 한국 자체를 선호하는 단계에 이르면 상품뿐만 아니라 한국 관광, 한국어 연수 등 다양한 서비스의 판매가 가능하다.

 한류 비즈니스 전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명제는 바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점이다. 과거 일본 내 한국인들은 김치냄새를 싫어하는 일본인들 때문에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아침에는 김치를 먹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일본인들이 김치를 먹고 있다. 80년대 초 농심 신라면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한국 본고장의 매운 맛’을 고집했다. 그 결과, 지금은 일본 라면들도 매운맛 라면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한국적인 제품과 마케팅으로 그 나라 사람들 수요를 창출해 나가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현지에 지사나 사무소가 없는 경우,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한류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일본 도쿄에는 정부, 기관, 기업들이 공동으로 결성한 ‘한류발전협의회’가 있는데, 현지의 이런 조직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한류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드라마, 영화의 인기를 이용해 이들 작품에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PPL(Product Placement : 간접광고)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대홈쇼핑은 <천국의 계단>이란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착용한 머플러, 목걸이, 휴대폰줄 등 20여개 품목을 일본에 팔아 짭짤한 이익을 남겼다. 최근에는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생산기업과 공동으로 PPL상품을 발굴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PPL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도 PPL에 대한 규제완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류 자산의 보호에도 우리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한국 문화콘텐츠의 불법복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장금>이 먼저 방영된 홍콩과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중국기업들이 재빨리 음식, 의류, 화장품 등에서 <대장금> 관련 상표권을 등록해 비즈니스 기회를 선점해 버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한류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류의 유지, 확산이 필수적이다. 기업들이 단순한 한류의 이용자에서 벗어나 한류의 지원자로 나서야 한다.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한류 이벤트를 지원하면서 이를 기업이나 제품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는 Win-Win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또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사회봉사활동이나 사회기여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현지 정부나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한류 확산에 필요한 토양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한류비즈니스로 우리 기업만 열매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도 이익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류가 역풍을 맞고 있는 것도 중국, 베트남 등 민족적인 자존심이 강한 나라에 한국문화가 일방적으로 수출된 데 대한 자국민의 저항감이 가장 큰 작용을 했다. 한류비즈니스에서 쌍방향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류는 물론, 이를 이용한 비즈니스도 장기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