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55% 점령 그러나 ‘NO’라 말할 수 없다”



‘오너 전횡을 막아라.’ 사외이사들에게 부과된 최대 과제다. 98년 3월 제도 도입 후 7년이 지난 현재 “사외이사의 힘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오너 1명의 이사회 지배에 대한 ‘제동 장치’가 가동된 결과다. 과연 사외이사제가 제대로 굴러 가고 있는 걸까. <이코노미플러스>는 국내 10대 기업의 사외 이사진을 해부, 국내 사외이사제의 아킬레스건을 짚어 본 뒤 선진 기업 사례를 통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제 ‘7살배기’들인 국내 사외이사들에 대해 ‘채찍’이 아닌, ‘보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사외이사들은 누구



 평균 61세에 학력은 석·박사급… 

 공무원·기업인·교수 順




 ‘평균 61세 나이에 석·박사 학력, 관계나 재계 명망가 출신.’

 <이코노미플러스>가 국내 10대 재벌 10대 기업 사외이사 52명을 분석한 사외이사의 표준형이다. 그들이 받는 보수는 월평균 200만~5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내 경제계를 주무르는 10대 기업 이사회 멤버란 간판은 명함 치곤 최고로 꼽힌다.

 올 들어서만 벌써 줄잡아 수십여명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법조계 인사, 전·현직 기업체 CEO, 대학 교수 등 소위 잘 나가는 고위직들이 재벌 기업 ‘사외이사 옷’으로 갈아입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감투’를 쓴 10대 기업 사외이사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최고 ‘성골’은 경제 관료들

 만일 올해 기업에 갓 입사한 사회 초년생 홍길동씨(27)가 장차 사외이사를 꿈꾼다면 어떤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하는지 국내 10대 기업 사외이사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자.

 일단 출신 성분을 잘 봐야 한다.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 첫 단추를 잘 꿰어야만 사외이사로 선임될 확률도 높다. 10대 기업 52명의 사외이사 중 ‘성골’은 공무원으로 17명(32.7%)으로 가장 많다. 특히 경제 관료 ‘빅3’로 꼽히는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출신이 최고 인기다. 기업인도 전체 14명(26.9%)에 달한다. 최소한 대학 교수(9명, 17.3%)나 금융권(8명, 15.4%)에는 들어가야 사외이사를 바라볼 수 있다. 세무·회계사(2명, 3.9%)나 언론인(1명, 1.9%) 쪽으로 빠지면 사외이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는 7명의 사외이사 중 금융권 3명, 기업인 2명, 고위 공무원 2명으로 짜여져 있다. LG전자도 기업인 2명, 공무원 1명, 회계사 1명으로 분포가 넓은 편이다. 반면 SK는 공무원을 선호한다. 7명 중 절반이 넘는 4명이 고위 관료 출신이다. 현대차는 사외이사 4명이 기업인, 공무원, 교수, 세무사 출신으로 선택 폭이 넓은 셈이다.

 출신 성분을 분석했으면 이제 학력을 보자. 전체 52명 중 의외로 학사가 20명(38.5%)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박사 학위 소지자도 17명(32.7%)으로 학사 출신과 맞먹는다. 여기에 석사 15명(28.8%)까지 합치면 석·박사급 학력이 전체 61.5%로 학사가 밀린다. 세명 중 두명 꼴로 석·박사인 셈이다. 고졸은 단 한명도 없다. 따라서 사외이사가 되려면 일단 ‘가방끈’부터 늘려 놓아야 한다.

 기업별로 보면 학사로만 짜여진 10대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특히 SK는 박사를 선호한다. 사외이사 7명 중 박사가 4명(57%)으로 절반이 넘는다. 현대차와 대한항공도 50%가 박사다. 그러나 국내 박사 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는 사외이사 중에선 박사가 없다는 점이 이채롭다.

 과연 몇살이면 사외이사에 도전할 수 있을까. 연령대를 살펴보자. 27세인 홍길동씨는 최소한 34년 이내엔 사외이사를 달기가 어렵다. 10대 기업 사외이사의 평균 연령이 61.2세에 달하기 때문이다.

 전체 52명 중 60대가 27명(51.9%)으로 가장 많다. 50대 사외이사는 오히려 19명(36.5%)으로 60대에 밀린다. 적어도 사외이사 세계에선 ‘오륙도 현상’(5060세대가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 통하지 않는 셈이다.



 사외이사 52명 중 40대는 단 1명

 70대도 5명(9.6%)으로 노익장을 과시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주력 부대인 40대는 단 한명(1.9%)뿐이다. 국내 10대 기업 최연소 사외이사는 47세인 박기태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다.  반면 최고령은 SK 사외이사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로 올해 77세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중공업이 사외이사 4인 평균 56.5세로 가장 젊었고, 현대자동차는 평균 66.5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학력과 연조, 출신 성분이란 까다로운 조건을 다 통과했더라도 아무나 사외이사가 되는 건 아니다. 일단 해당 업계에서 최고 자리에 올라야 한다. 말 그대로 ‘좁은 문’이다. 현재 1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명망가들이다.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7명 중 내국인 4명만 봐도 그렇다. 외환은행장(이갑현씨), 대법관(정귀호씨), 서울지방국세청장(황재성씨)에 한때 금융권내 최고 연봉으로 이름 높았던 장기신용은행 상무(임성락씨) 등이다.

 직급만 보면 LG전자가 더 화려하다. 전 한국GE 사장(강석진씨)과 전 현대전자 부사장(홍성원씨)에다 국내 최고 회계법인인 삼회회계법인 부회장(김일섭씨)은 물론 전 기획예산처 장관(진념씨)까지 포진해 있다.

 기업별 스타급 사외이사만 꼽아보면 현대자동차는 부장판사를 지낸 김광년씨, SK는 조순 전 부총리에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대한항공은 김종상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한화는 천기흥 전 서울지검 부장검사, 금호산업은 서울고등검찰청장을 지낸 김양균씨, 두산엔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사외이사 간판을 달고 있다. 전체 52명 중 외국인 사외이사는 5명에 불과하다.

 만약 홍길동씨가 30여년 후 사외이사 꿈을 이뤘다면 몇년쯤 사외이사를 지낼 수 있을까. 현재 10대 기업을 기준으로 점쳐 보자. 어렵사리 사외이사가 됐지만 그는 3년 이상 롱런하기는 힘들 것 같다.

 보통 사외이사들의 임기는 3년이다. 따라서 4년차 이상이면 중임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토대로 분석해 보자. 10대 기업의 사외이사 52명 중 4년차 이상은 전체 11명으로 21.2%에 불과하다. 10명 중 8명은 중임 없이 단임에 그친다는 결론이다.

 현재 10대 기업의 사외이사 중 경력 1년의 사외이사들이 20명(38.5%)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도 경력 2년차로 16명(30.8%)이다. 52명 전체의 평균 재임 기간도 2.44년으로 짧다. LG전자는 현재 4명의 사외이사 평균 재임 기간이 1.25년에 불과하다. 사외이사를 길게 하고 싶다면 한화그룹에 지원하는 편이 좋다. 한화는 4명의 사외이사 전원이 재신임받으면서 평균 5.75년에 달했다.



 #2 사외이사 성적표



 SK(주) 이사 비율·반대 의견 개진 1위



 내 명망가들로 구성된 1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성적표는 어떻게 나올까. <이코노미플러스>는 대학 교수 4인으로 짜여진 평가팀의 조언을 토대로 ‘이사회 점유율’, ‘출석률’, ‘반대의견 개진 건수’ 등 3개 분야에서 지난 1년간 10대 기업 사외이사 성적표를 분석했다.

 일단 10대 기업 사외이사의 이사회 점유율부터 살펴보자. 이사회 의결권은 사내 이사 1표, 사외 이사도 1표로 같다. 현재 10대 기업 이사회는 자산 총액 2조원 미만인 롯데제과를 빼면 9개 기업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숫자가 사내 이사보다 많다.

 따라서 ‘의지’만 있다면 사외이사들이 경영진 안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셈이다. 노영기 중앙대 교수는 “사외이사 비중이 높을수록 경영 투명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배가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외이사 법적 기준 수만 채웠다’

 현재 10대 기업의 전체 이사회 멤버는 모두 94명. 이 가운데 사외이사는 52명으로 10대 기업 사외이사 점유율은 평균 55.3%인 셈이다.

 현재 사외이사 비율은 SK가 10명 중 7명(70%)로 단연 1위다. LG전자부터 두산까지 8개 기업은 모두 과반수만 겨우 넘긴 상태다. 이는 ‘사외이사 숫자를 전체 이사회 과반수 이상으로 정하라’는 증권거래법만 겨우 맞춘 것. 해석하자면 “정부가 강제한 법적 기준만 채운 셈”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SK처럼 사외이사가 수적으로 사내이사를 압도하는 경우는 없다. 현대차·LG전자·한화가 7명 중 4명, 대한항공·금호산업이 11명 중 6명, 삼성전자·두산이 13명 중 7명식이다. 따라서 2위부터 9위까지의 순위는 무의미하다. 단 롯데제과는 자산 총액이 2조원 미만이라 사외이사가 이사 총 수의 25% 이상만 넘기면 된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들의 출석률은 어떨까. 외관상 출석률은 A학점이다. 전체 10대 기업 52명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평균 81.7%. 참석률 100%도 삼성전자 이갑현, 정귀호, 황재성씨를 비롯해 총 21명(40.4%)에 달했다.

 전체 1위는 98.7%를 기록한 롯데제과였다. 그러나 롯데제과는 3월16일 현재 사외이사 3명 전원이 롯데그룹 계열사 임원 출신이란 점에서 빛이 바랬다. 출석률 96.5%로 2위에 오른 SK가 실제적 의미에서 가장 앞섰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SK는 김태유, 남대우, 박호서, 오세종, 조순씨 등 사외이사 7명 중 5명이 100% 참석했다. 현대중공업(95.5%)과 LG전자(91.5%)도 참석률 90%를 넘어섰다. 반면에 금호산업 사외이사 6명은 평균 32.9%의 출석률로 전체 평균을 까먹었다.



 8개 기업 사외이사들은 ‘예스맨’

 사외이사의 이사회 점유율과 출석률은 외관상 성적표다. 알맹이는 이사회 때 사외이사들의 의결권 행사다. 특히 경영진이 올린 안건에 ‘노’(No)를 외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2004년 1년간 10대 기업 이사회를 통틀어 사외이사의 반대 표시가 있은 것은 단 2건에 불과하다. 각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주주총회 소집통지 공고 사항’에 따르면 SK와 LG전자만 한 차례씩 반대표가 나왔다. 국가 대표급 기업들인 10대 재벌사 사외이사들도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반증이다. 이수정 참여연대 경제개혁팀 간사는 “삼성전자의 경우 최소한 지난해 논란이 됐던 삼성카드 증자에 대해선 반대가 나왔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5일 개최된 SK 제16차 이사회. 당시 ‘정관 일부 변경을 위한 임시주총 소집 청구의 건’에 대해 조순 사외이사를 비롯한 7명의 사외이사 전원이 반대했다. 사내 이사 3명과 토론을 벌인 결과 안건을 부결시켰다.

 강석진(66) LG전자 사외이사는 지난해 2월6일 개최된 이사회 때 LG카드 기업어음 매입 결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현재 LG전자 사외이사인 김일섭, 진념, 홍성원 사외이사 등 3명은 2004년 3월부터 사외이사로 활동해 당시엔 이사회 멤버가 아니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롯데제과, 한화, 현대중공업, 금호산업, 두산 등 8개 기업 사외이사들은 모든 안건에 찬성해 전원 ‘예스맨’이었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무조건 반대표를 던진다고 잘한다고 볼 순 없지만, 1년에 수십 차례나 열리는 이사회 때 단 한 차례도 제동을 걸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3 국내 사외이사제 문제점



 거부하면 ‘왕따’ 당하기도



 문제 1  거수기 신세 여전

 상장사 이사회 95% ‘반대 의견 전무’



 “회사 고위층이 내놓은 안건에 혼자 ‘노’(No)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묘해지더군요. 사내 이사들은 당황하는 기색이었고 사외 이사들은 딴전만 피우더라고요. 토론은 벌어졌지만 당초 안을 뒤집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해 상장회사 사외이사를 지낸 K씨는 “한 번 ‘안티’를 걸자 이사회 멤버에서 ‘왕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외이사가 경영진 의견에 대놓고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사회=예스맨’이란 공식이 깨지지 않고 있다. 피오리나를 내쫓은 HP 얘기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다. 특히 사외이사의 들러리 양상은 여전하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만 봐도 그렇다. 최근 삼성전자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외이사 활동 내역’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삼성전자 이사회는 총 36차례 열려 145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이 상정 안건을 반대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수적 우위에도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에 그쳤다는 반증이다. 

 현재 제일모직 사외이사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지난 연말 제일모직 이사회 때 경영진 제안에 반대한 적이 있었다”며 “사외이사라고 꼭 반대 의견을 내라는 법은 없어도 100% 찬성으로 처리된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SK텔레콤의 사외이사들도 지난해 11차례 이사회에서 26개의 안건을 반대 없이 승인해 줬다. KT와 LG텔레콤도 각각 17차례와 7차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은 전무했다.

 비단 10대 재벌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2월말 현재 사외이사의 찬반활동보고서를 제출한 101개사 중 사외이사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은 불과 네 곳에 그쳤다. 국내 대표급 기업들이라고 수 있는 상장회사 이사회 중 95% 이상이 오너 의견에 찬성표만 던진 셈이다.



 문제 2  오너와 친분 인사

 롯데 3명 전원 그룹 임직원 출신



 사외이사 제1의 본분은 투명성 제고에 있다. 바꿔 말하면 ‘오너의 전횡을 막아라’는 게 최대 과제다. 그러나 오너 측근 사외이사가 영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룹 계열사 임원 출신도 다반사다. 이는 사외이사 추천을 최대 주주가 맡고 있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 사외이사로 선임된 안철수 사장은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직접 나서 설득해 거부하기가 더 어려웠다”며 “대부분의 기업에서 오너나 CEO들이 직접 추천한다”고 털어놓았다.

 3월15일 현재 롯데그룹 간판 회사인 롯데제과 사외이사는 모두 3명. 그러나 3명 모두 그룹 계열사 임원을 지낸 ‘한솥밥 식구’들이다. 롯데측은 “일부 사외이사는 올해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혀 왔다. 한화도 자사 상무를 지낸 오문두씨가 사외이사로 활동중이다.

 “회사 사정에 밝은 데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였다”는 회사측 답변도 전혀 일리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오너측 계획을 한 집안 식구가 반대할 순 없다”는 점에서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최근 홍콩 허치슨그룹 계열사 대표(에릭 입)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현대상선도 같은 맥락이다. 허치슨그룹은 지난 연말 골라LNG 등의 현대상선 적대적 인수합병 논란 때 현정은 회장의 손을 들어 준 우호 세력. 그때의 ‘공’을 현회장이 사외이사란 타이틀로 되갚아 준 셈이다.

강호상 서강대 교수는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한 사외이사들이 오너 측근들로 구성된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고 지적한다.



 문제 3  전문성보다는 ‘이름값’

 어제는 ‘관료님’, 오늘은 ‘이사님’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힘깨나 쓰는 관료들이 추천되는 건 좀 그래요. 본인들이 ‘관리’하던 회사 임원이 되면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10대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중인 대학교수 Y씨는 “사외이사가 전문성보다는 이름값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는 대외 방패막이용으로 사외이사를 쓰고, 사외이사는  돈 몇푼에 자기 인맥을 활용한 로비스트로 전락한 셈”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연초만 되면 전직 고위 관료나 금융인, 교수들은 “사외이사로 모시겠다”는 전화가 쇄도한다. A씨는 “지난 1~2월에 회사 다섯 곳이 동시에 사외이사를 추천해 와 고민 끝에 한 곳을 골랐다”며 “대부분 경력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와 달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업종 전문성보다는 대외 인지도가 사외이사 간택의 이유라는 지적이다.

 현대자동차의 사외이사는 모두 4명. 외국인(미야모토 마사오)을 뺀 3명 모두 자동차 업종과는 무관한 인물들이다. 공정위 약관심사위원을 지낸 김광년씨(66), 마포세무서장을 지낸 박병일씨(67), 고려대 교수 출신인 김동기씨(71)로 구성됐다.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7명 중 내국인 4명도 금융권 2명에 대법관 출신과 서울지방국세청창 출신 인물들이다. 삼성그룹은 아예 ‘변호사+세무/회계사’를 사외이사 영입 1순위로 지목하는 양상이다. 14개 상장 계열사 중 호텔신라를 제외한 13개사가 소위 ‘사’자 직업군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상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전직 고위 법조계 인사나 고위 관료들이 사외이사를 앉히면 대정부 로비스트나 다름없다”며 “사외이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문제 4  도덕적 해이에 무방비

 출석률 제로에 스톡옵션 나눠먹기도



“그 사외이사는 한 번도 얼굴을 못봤습니다.”

현직 기업인으로 사외이사를 지낸 B씨. 그는 “12차례 이사회 중 일곱 차례 참석했는데 한 사람은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특히 오너가 뽑은 사외이사들이 명함만 갖고 개점 휴업중인 사람이 많다”고 귀띔한다. 국민연금처럼 출석률 60% 미만은 사외이사 재추천을 하지 않는 회사들도 있지만 선임한 이상 임기 동안에는 속수무책이다.

이사회 참석률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출석률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장사들도 부지기수다. 실제 2월말까지 이사회 찬반활동보고서를 제출한 101개 기업 중 사외이사 출석률이 50% 이하인 곳만 전체 33.7%인 34개사에 달했다.

출석률 저조는 그래도 봐줄만 하다. 사외이사들이 경영진과 손잡고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3월초 우리금융 이사회를 통과한 ‘스톡옵션안’이 그렇다. 황영기 회장 25만주, 김종욱 부회장 9만주 등 경영진에 총 163만5000주를 부여한 안건이다.

국민이나 신한도 다 하는 스톡옵션안이 문제가 된 이유는 행사 요건이 느슨한 데 있다. 행사 가격이 9282원으로 이사회 당일 주가(3월2일 9430원)보다 낮은 데다 적자를 내지 않는 한 전체 수량 중 대부분 행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사회를 주도한 사외이사 7명 중 반대한 배성환씨(예금보험공사 청산관리부장)를 제외한 6명도 1만주씩 스톡옵션을 부여한 게 도마 위에 오른 결정적 이유다. 11조원 이상 공적 자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경영진들의 ‘돈잔치’는 ‘누이(경영진) 좋고, 매부(사외이사) 좋은’ 모럴 해저드란 지적이 높다. 결국 황영기 회장은 부과받은 지 보름만인 지난 3월16일 스톡옵션을 포기했다.





 #4 선진국 사례



 "이사회 눈밖에 나면 스타급CEO도 파리 목숨"

 

 진 기업들은 어떨까. GE와 소니를 통해 미국과 일본 사외이사 제도를 비교해 보자.

 미국은 알려진 대로 사외이사 강국이다. 이사회 눈밖에 나면 스타급 CEO들도 즉시 퇴출당하기 일쑤다. 최근 한두 달 사이만 해도 HP의 칼리 피오리나, 보잉의 해리 스톤사이퍼,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미국 보험업계의 대부 모리스 그린버그까지 줄줄이 낙마했다.

 반면에 일본은 사외이사제도만 본다면 한국보다 크게 앞선 건 아니다. 대다수 기업들이 여전히 내부 인사로 이사진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 소니가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을 퇴출시기는 등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장범식 숭실대 교수는 “한국은 미국식 사외이사제도를 따라가는 양상”이라며 “겉모습만 배울 게 아니라 오너가 아닌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기업 문화를 답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례 1 미국 - GE

 16명 이사회 중 12명(75%)이 사외이사



 GE는 세계 최고 기업이다. 기업 지배 구조 면에서도 넘버원으로 평가받는다. 기업 지배 구조 조사 평가 기관인 GMI(Governance Metrics International)가 2100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2월 발표한 기업 지배 구조 평가 결과에서 GE는 10점 만점을 받았을 정도다.

최태원 SK 회장이 벤치마킹 모델로 GE를 낙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GE가 지금과 같은 구조를 갖춘 게 최근 일이라면 놀라운 사실일까.

 지난해 10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방한, 최태원 회장과 만난 때의 일이다. 최회장이 물었다. “GE가 지금 같은 기업 지배 구조를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습니까.”

 이멜트 회장 답변이 재미있다. “그야 최근 일이죠. 기업 회계 부정으로 미국을 뒤집어 놓았던 엔론 사태(2001년) 이후일 겁니다. 전임 잭 웰치 회장 때만 해도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의견에 반하는 발언을 하면 묵살당했거든요.”

 10점 만점을 받은 GE의 기업 지배 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핵심은 이사회 독립성과 그에 따른 경영진 견제에 있다. 이를 위해선 이사회내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게 유리하다. 뉴욕증권거래소법에 따르면 ‘이사회 다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GE는 한 술 더 떴다. GE는 이사회 3분의 2를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게 목표다. 현재 GE의 사외이사 수는 12명. 사내이사 4명보다 3배나 많다. 점유율로 치면 75%다. 이는 국내 사외이사 점유율이 가장 높은 SK(70%)보다 높은 수치다.

 GE 사외이사 제도의 특징은 사외이사를 사외독립이사와 사외이사로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사외독립이사는 GE와 사업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금전적으로 연결돼 있으면 그만큼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데 따른 조치다.

 사외독립이사 조건도 까다롭다. GE에 판매 혹은 GE로부터 구매하는 금액이 자신이 중역으로 있는 회사 매출액의 1% 미만일 때와 GE가 자신이 중역으로 근무하는 회사로 제공한 대출금이 총 자산 중 1% 미만일 경우에 한한다. 이 기준에 따라 현재 12명의 사외이사 중 11명이 독립사외이사다. 그만큼 엄정한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외이사들의 활동 내역도 경영 전반을 총괄한다. GE 사외이사 임무를 대별하면  △CEO 선발, 평가 및 보상, 그리고 후계자 계획 감독 △고위 경영진 선발, 평가 및 보상에 대한 자문 및 감독 제공 △중요한 재무 및 사업 전략, 주요 활동에 대한 검토, 승인 및 감시 △회사가 직면한 핵심 리스크에 대한 이해와 리스크 완화 조치 승인 등이다. 사외이사가 사내 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다는 의미다.



 사례 2  일본 - 소니

 "주주 이익 중시하는 미국식 이사회로 이동중”



 “이데이가 소니를 떠날지는 몰랐다.”

 지난 3월7일 소니가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을 퇴진시키자 일본 재계는 발칵 뒤집혔다. 소니는 사실 ‘이데이 소니’로 불릴 만큼 ‘소니=이데이’로 통했던 회사인 탓이다. 10년간 소니를 통치해 온 노부유키 회장 퇴임에 사외이사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도 사외이사 바람이 불고 있다.

 사실 일본 대다수 기업들은 여전히 내부 인사로 이사진을 채우고 있다. 소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소니는 투명 경영을 외치며 변신했다. 16명의 이사진 중 절반인 8명을 사외이사로 채웠다. 여기엔 닛산자동차 신화의 주인공 카를로스 곤 회장, 고바야시 요타로 후지제록스 회장, 미야우치 요시히코 오릭스 회장 등 일본 간판급 인맥이 소니의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다.

 외국인 주주들과 함께 이들 사외이사의 파워가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을 퇴임시킨 결정타였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SWJ)은 3월10일자 기사에서 “일본에서 사외이사 기능이 점차 강화되면서 폐쇄적인 기업 지배 구조에도 변화가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주주 권한보다 종업원과 은행 등 채권자 권한을 중시하는 경영을 펴왔다. 실제 일본 기업 이사회도 과거 한국처럼 대부분 내부 인사들로 이사진이 구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겉모습만 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회사들에 대해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이사회를 채우는 한국보다 어쩌면 더 낙후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일본 기업의 소수 사외이사는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료 출신이 많다는 점은 한국과 닮은꼴이다. 이런 와중에 터진 소니 노부유키 회장의 퇴진은 일본에 불고 있는 사외이사 권한 강화의 상징적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다.



 Plus TIP



 사외이사 보수는 얼마

 1인당 4457만원꼴 … 삼성전자 6360만원 최고



 대기업 사외이사들의 1년 수입은 얼마나 될까. 대략 대기업 과차장급 연봉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증권선물거래소가 최근 밝힌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사외이사 활동 및 보수 내역’에 따르면 사외이사 1인당 연간 보수는 평균 4457만원(2004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에 따라선 이사회 참석 때 5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 실수령액은 이보다 웃돌 수도 있다.

 사외이사 보수가 가장 넉넉한 회사는 삼성전자다. 1인당 6360만원으로 전년(5644만원)보다 12.7% 늘어났다. SK텔레콤이 6000만원으로 두번째로 많았다. LG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55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LG필립스LCD는 2300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Plus TIP



 새로 선임된 거물급 사외이사들

 공무원·법조인 몸값 상종가… 기업인·교수 ‘아 옛날이여’



 올봄에도 ‘대기업-명망가’간 사외이사 짝짓기가 되풀이됐다. 98년 3월 사외이사 제도 도입 후 매년 주총 시즌 때마다 재현된 연례 행사다. 올해 기업과 사외이사로 인연을 맺은 고위급만 줄잡아 100여명에 달한다.

 올해 거물급 인사 중 기업으로 옮겨간 인맥은 관료가 단연 으뜸이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양승택 동명정보대 총장이 신호탄이다. 그는 지난 3월14일 과거 정통부 장관 시절 눈여겨 관리해 왔던 SK텔레콤 사외이사에 영입됐다. 3월16일엔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LG텔레콤으로, 서사현 전 산업자원부 차관은 데이콤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정보통신업계 3사가 거의 동시에 전직 관료 영입에 성공한 셈이다.

 

 고위직 ‘가자 기업으로’ 열풍

 재정경제부 요직인 세제실장 출신의 남궁훈씨는 삼성전기, 한영수 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은 신세계, 박정규 전 대통령 민정수석은 금호타이어 이사회 멤버가 됐다. 특히 황병기 전 감사원 사무총장(LG투자증권, 금강고려화학)과 오성환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현대모비스, CJCGV)은 한꺼번에 두 회사에 적을 두게 됐다.

 그 다음 활발한 쪽이 법조계다. 집단소송제 도입 등으로 법률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계 인사들은 삼성 그룹의 영입 1순위로 지목됐다. 3월16일 현재까지 기업 사외이사로 옮긴 법조인 출신 6명 가운데 절반인 3명을 삼성이 데려갔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장준철씨가 삼성SDI로, 법무법인 두우의 대표 변호사인 백윤기씨는 삼성물산으로, 강성용 세종 변호사는 삼성전기로 둥지를 틀었다. 현대상선도 단일 기업으로는 드물게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김동건 바른법률 대표 변호사와 전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강보현씨 등 2명을 한번에 영입한 케이스. 이밖에 김진관 전 제주지검장은 한일건설, 김영진 전 대구지검장은 남해화학, 이수형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한국기업평가에서 새롭게 사외이사 명단에 등재됐다.

 정계 인사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한승수 김&장법률사무소 고문이 한국신용정보로, 장성원 전 민주당 의원이 태림포장 사외이사로 새 명함을 팠다. 반면에 과거 사외이사 영입의 표적이 됐던 기업가, 교수, 금융권 출신 인사들은 최근엔 고위 공무원과 법조계 인사들에 밀려 썰렁한 주총을 보냈다. 과거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지냈던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이 포스코 사외이사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가 금호타이어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을 빼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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