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 그는 여당의 실세 중 실세로 꼽히던 중견 정치인이다. 서울(강서갑)에서만 내리 3선을 기록중이고, 작년 1월 전당대회 때는 당시 정동영 의원(현 통일부 장관)에 이어 2위 득점자로 여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장관이 작년 4·15 총선 불출마에 이어 당을 떠나 통일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자, 당헌에 따라 집권 과반 여당을 이끄는 당의장이 됐다. 권력의 중심을 향해 치닫는 그의 앞에는 무엇 하나 거칠 게 없는 듯했다.

  그런 신의원이었지만 작년 8월부터 몰아닥친 ‘과거사 파헤치기’의 광풍을 맞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여권이 추진하는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파헤쳐 민족 정기를 바로세우겠다는 것이다. 신의원은 여당의 의장답게 이 문제에서도 선봉에 섰다. 그러나 곧이어 신의원 부친이 일제 시대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고, 또 독립투사들에게 고문 등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신의원은 여당 의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의장직에서 사퇴한 8월부터 작년말까지 철저히 잠행했다. 가급적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들면서 본격적인 정치적 재기 노력을 시작했다. 4월2일로 잡힌 여당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변에선 신의원에게 “아직 (다시 나서기에는)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만류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그를 막기 어려웠다. 지난 2월 한때 각종 당내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신의원이 1, 2위를 다투는 것으로 나타나자 “역시 신기남이다”란 말이 당 안팎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재기의 희망도 잠시였다. 신의원은 지난 3월10일 정치 입문 이후 처음으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이날 실시된 여당의 예비 경선에서 탈락한 것이다. 4월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에 출마하는 후보를 가려내기 위한 실시된 이 선거는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두 10명의 후보 중 최하위 득점자 2명만 탈락시키는 예비 선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의장을 지냈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한때 여권 개혁 세력의 중추 인물로 꼽히던 신의원이 예선조차 통과치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광경을 살펴본 여당 인사들은 누구나 ‘정치 무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신의원의 부침을 지켜보면서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게 돼 버린 정치권의 세태’를 실감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의원은 정치에 관심 없는 일반 국민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천·신·정(천정배 의원·신의원·정동영 장관)’ 트로이카 중 한 사람이다. 이들 세 사람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6대 국회 첫 해인 2000년 무렵이었다. 당시 갓 재선에 성공한 세 사람은 민주당 개혁을 요구하는 소장파의 리더들이었다. ‘천·신·정’은 집권 실세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 그룹인 ‘동교동계’와 정면 대립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 왔다. 늘 당내 소수로 도전하면서 싸움을 거는 쪽이었지만, ‘천·신·정’은 정치권의 상식으로 볼 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싸움에서 어김없이 승리했다. 노무현 정부 첫 해인 2003년 가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것도 ‘천·신·정’이었다. 이들 트로이카에게 ‘천·신·정’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천·신·정’은 집권 여당의 ‘당권파’를 이뤘다. 거듭된 정치적 전투에서 승리한 결과, 도전하는 입장이었던 ‘천·신·정’이 어느덧 도전받는 위치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금 여당의 내부 역학 관계에서 ‘천·신·정’이 뭉치면, 어느 세력도 이들을 견제하기 힘들 만큼 열린우리당의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정동영 장관과 경쟁하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따르는 이른바 ‘재야파’ 정도가 ‘천·신·정’과 맞서고 있지만, 규모와 힘에선 아직은 벅찬 상황이다. 그런데 ‘천·신·정’의 한 축을 이루는 신의원이 여당의 예비 경선에서, 그것도 10명 중 2명을 탈락시키는 선거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내에선 신의원의 탈락을 ‘천·신·정’ 시대의 종료로 해석한다. ‘천·신·정’의 분화가 감지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한 틀에 묶여 있기에는 세 사람의 정치적 사이즈가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천·신·정’의 측근들 입에서는 작년 여름 이후 “친구로서, 동지로서 우정은 간직하되 서로의 갈 길을 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왔다.

 정동영 장관은 여당 대통령 후보 중 선두 주자다. 정장관은 작년 이후 여당내에 독자적인 세력 구축 작업을 해왔다. 흔히 ‘DY(정동영 장관 이름 영문 이니셜)사단’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간 비축한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장관의 지원을 받은 문희상·염동연·송영길 의원이 3월10일 예비 경선에서 모두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에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신의원은 정장관측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낙선했다. 천정배 의원 역시 작년말 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더 큰 꿈을 향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천의원은 김근태 장관과 더불어 정장관에 도전할 수 있는 당내 유력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신의원 역시 잠시 정치적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모색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천·신·정’의 세 사람이 이젠 서로가 경쟁하는 위치에서, 서로의 정치적 활로를 찾아가는 각개약진에 접어든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위 부대’를 이뤄 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노대통령의 경호실장’이라고 불렀던 유시민 의원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국참연(국민참여연대)’은 현재 노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흔히 친노 그룹으로 불렸던 인사들이 저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별도의 정치적 모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움직임은 때론 개별적으로, 때론 일부 집단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노대통령 임기 중반에 이르면서 열린우리당내 각 세력이 일제히 정치적 분화에 들어간 것이다.

박두식 조선일보 정당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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