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7’, ‘3.4’, ‘3.11’, ‘3.16’, ‘4.30’, ‘5.28’, ‘8.11’, ‘8.27’, ‘9.20’, ‘10.8’, ‘11.2’, ‘11.7’.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올해 벌인 열세 번의 인사조치 날짜다. 정몽구(67)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1998년 12월3일 그룹 회장에 오른 후 지난 7년간 언론에 보도된 인사만 마흔다섯 번을 단행했다. 노출되지 않은 인사까지 합치면 50회를 훌쩍 넘길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1년에 6회 이상 인사를 한 셈인데, 이는 통상 1년에 한두 번하는 기업인사보다도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변덕쟁이인가. 아니면 무엇이 그리 급했단 말인가.
 1998년 11월22일은 정몽구 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부친 정주영 현대창업주로부터 고대하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네가 맡아라.”

 얼마나 좋았을까. 정 회장은 측근들에게 그날 저녁 평소 잘 가던 회사 근처 술집으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엔 박정인 현대모비스 고문, 유인균 INI스틸 고문, 이계안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정순원 로템 부회장 등 최측근 6~7명이 모였다. 마침 정 회장은 그날 저녁 방한 중인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로부터 11일 만에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에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직함을 바꿔 달았다. 그리곤 이듬해 3월 현대자동차를 이끌어온 ‘정세영-정몽규’ 부자가 현대산업개발로 옮기자, 정 회장은 정식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정 회장의 연착륙을  위한 인사가 지속적이고 대대적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을 맡은 후 7년간 벌인 인사는 ‘물갈이-측근 배려-세대교체’로 흐름을 요약할 수 있다. 일인자가 바뀐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사 흐름이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정 회장이 다른 기업 일인자들과 달리 속공인사로 이를 마무리짓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측근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과연 이런 인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 회장의 인사 트레이드마크는 속전속결식의 ‘수시인사’다. 연말연초에 정기적으로 한두 차례 인사를 단행하는 다른 오너들과 달리 수시로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7년 동안 50여회가 넘는 인사의 횟수에서 잘 나타난다.

 김봉경 기아자동차 홍보실장(전무)은 “수시인사는 성과에 따른 보상을 확실히 한다는 점에서 조직의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며,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의 괄목할 만한 성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1998년 33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정 회장이 맡은 1999년 4134억원의 흑자를 시작으로 2000년 6679억원, 2001년 1조1654억원, 2002년 1조4435억원, 2003년 1조7494억원, 2004년 1조7846억원으로 매년 폭발적인 당기순이익을 나타내는 등 6년 동안 모두 7조2242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기아자동차도 2000년 3491억원, 2001년 5292억원, 2002년 6708억원, 2003년 7529억원, 2004년 6620억원의 순익을 올려 그 합계가 2조9640억원에 달한다. 정 회장이 재임한 6년 동안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서만 무려 10조원의 순익을 기록한 것이다.



 “내 사전에 2인자는 없다”

 이쯤 되면 재계는 정 회장의 수시인사를 ‘현대만이 가능한 인사’라고 비아냥댈 것이 아니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정 회장의 수시인사는 측근들의 불만을 잠재우며 단기간에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권승계를 염두에 두고 있는 재벌그룹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의 수시인사에는 성과에 따른 보상차원의 승진인사 및 비리자에 대한 퇴출인사 말고도 숨겨진 두 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측근을 중용하고 빨리 진급시켜 사기를 배가시키지만, 정점에는 오랫동안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인자를 두지 않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2인자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대권승계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정 회장이 지난 ‘왕자의 난’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 회장의 핵심 측근 3인방이었던 박정인(62) 현대모비스 고문, 이계안(53) 국회의원, 정순원(53) 로템 부회장에 대한 인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 9월20일 고문으로 물러난 박정인 전 현대모비스 회장은 3인방 가운데 정 회장과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측근 중 측근이다. 그는 196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가 1978년 현대정공 이사로 오면서 정 회장과 길을 같이했다.  2000년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 2년 만인 2002년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3년 만인 지난 9월 고문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올 신년 사장단 식사자리에서 “나보다 연장자가 누구냐”는 정 회장의 허를 찌르는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회장이 1995년 현대그룹 회장으로 등극과 함께 급부상한 인물은 이계안 국회의원과 정순원 로템 부회장이다. 이 두 사람은 정 회장의 경복고 후배들이며, 서로는 경복고 1년 선후배(정 부회장이 선배) 사이다.

 1995년 현대석유화학 상무로 승진한 이 의원은 이듬해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전무로 다시 승진하면서 정 회장 곁으로 왔다. 그 후 1998년 종합기획실 부사장,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조정실장(사장), 1999년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2001년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승승장구하다 2001년 현대캐피탈 및 현대카드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2004년 서울 동작을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아예 떠났다.



 기막힌 용병술 인사로 아들 대권 발판 마련

 쾌속 승진가도를 달리며 한때 2인자라는 소리를 들은 정순원 로템 부회장도 정점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는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으로 지내다,  1999년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조정실장 겸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2001년 현대모비스 부사장, 2001년 현대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 2003년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사장)으로 승진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1년 만인 2004년 로템 사장으로 옮겼다가 그해 부회장에 올랐다. 그는 정 회장의 외아들이자 차기 대권자인 정의선 사장의 인맥들이 핵심부서에 입성하는 데 제동을 걸었던 게 화근이 됐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 이상기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 최한영 현대자동차 상용사업담당 사장, 김익환 기아자동차 사장 등도 승진가도를 달렸거나 달리고 있는 측근들로 분류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핵심 측근들에게 최고의 직위와 명예를 잠깐이나마 맛보게 해준 만큼 별 불만들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이 같은 수시인사에서 정 회장의 기막힌 용병술을 엿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어쨌든 정 회장은 이 같은 측근들에 대한 인사를 통해, 예비 대권자인 정의선 사장의 인맥들이 핵심부서를 서서히 장악하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것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윤여철(53) 현대자동차 사장, 채양기(52) 현대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 권문식(51) 현대자동차 선행개발센터장 겸 연구개발본부 기획조정실장(부사장) 등이 꼽힌다. 윤 사장은 2000년 이사대우로 승진한 이후 2003년 이사, 2004년 부사장을 거쳐 임원에 오른 지 불과 5년 만인 올해 사장으로 임명됐다. 채양기 사장도 2000년 이사,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재무관리실장(부사장) 및 현대카드 부사장으로 매년 승진사령장을 받았다. 그는 특히 올해 그룹 내 핵심부서인 현대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을 맡은 데 이어, 11월 초 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임원으로 오른 지 5년 만에 CEO로 오른 것이다. 권 부사장은 2000년 현대 자동차 연구개발본부 선행개발실장(이사), 2001년 상무,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 선행개발센터장 겸 연구개발본부 기획조정실장(전무), 2004년 부사장으로 고속승진을 했다. 정의선 사장은 미래자동차 개발에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권 부사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떠난 사람도 불평불만 없으면 내 사람”

 또 다른 정 회장의 수시인사 원칙은 회사를 떠났거나 계열사로 전직발령난 사람도 다시 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근신기간’중 회사를 비난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즉, 정 회장은 퇴직했거나 계열사로 전보된 임원들을 지인을 통해 근황을 챙긴다는 것이다.

 퇴직했다가 복귀한 사람으로는 윤주익 전 엠코 부회장, 윤국진 전 기아자동차 사장, 박병재 현대정보기술 회장 등이 있다. 윤 전 부회장은 2002년 INI스틸 사장직을 그만두고 쉬다 정 회장의 호출로 2004년 엠코를 맡기도 했다. 윤 전 사장도 2001년 회사를 나왔으나, 2003년 다시 사장으로 복귀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계열사로 나갔다가 파워맨이 돼 온 사람들은 이상기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 이전갑 현대자동차 감사실장(사장) 등이 있다. 이 전 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다 그해 오토에버 대표이사 사장, 현대하이스코 부회장 등으로 계열사만을 돌았지만, 이듬해 정순원 부회장 후임으로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 사장은 1999년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조정실 부사장 겸 홍보실장, 기아자동차 기획실장(부사장)을 맡다가 2001년 계열사인 케피코 사장으로 사실상 한직으로 밀려나는 듯했으나, 2003년 현대자동차 감사실장(부사장)으로 복귀한 후 올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이 감사실로 복귀할 당시 현대자동차 내부에선 ‘이 실장이 현대자동차 내부에 특별한 인맥을 만들지 않았던 게 중용의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따라서 정 회장은 이 실장이 특별한 인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철저한 감사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올 들어 정 회장은 앞서 언급한 대로 열세 번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인사의 핵심은 정 회장 최측근들의 힘을 완전히 빼고, 아들 정의선 사장에게 힘을 완전히 실어 주는 것이다. 우선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박정인 현대모비스 고문, 이상기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 최한영 현대자동차 상용사업담당 사장, 김승년 현대자동차 구매총괄부본부장(전무) 등 최측근을 핵심보직에서 빼냈다. 이들 중 눈길을 끄는 임원은 김승년 전무. 정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김 전무는 정 회장의 인사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한동안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파워’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11월 초 고문으로 물러난 이중우 다이모스 사장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주변에서는 ‘정회장 가신그룹들의 완전정리’라는 분석과 함께 ‘정의선 사장 시대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특수임무 부여’라는 상반된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정의선(35) 사장은 올해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현대자동차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 현대모비스 사장 등 현대자동차그룹 주력 3사의 사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정 사장 시대를 열었다. 아울러 정 회장의 조카인 정일선(35) BNG 스틸 부사장, 사위인 신성재(37) 현대하이스코 부사장 등도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켜 정의선 사장의 주위를 두텁게 했다. 정의선 사장의 측근들도 약진했다. 채양기 기획총괄 사장, 이재완 전략조정실장 겸 마케팅총괄본부 부사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사장, 이봉재(35) 신임 회장비서실장 등. 이 중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이 실장은 뛰어난 어학실력으로 정 회장의 해외출장을 꼼꼼하게 챙긴 것이 높이 평가돼 최연소로 임원에 올랐다.

 과연 이 같은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인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경영구도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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